(4/15) - 왕들의 술문화
오늘도 조선시대 왕들의 건강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왕처럼 먹고 왕처럼 살아라>의 저자
장동민 한의사, 연결돼 있습니다.
(전화 연결 - 인사 나누기)
Q1. 오늘은 조선시대 왕들의 술 문화에 대해 알려 주신다구요?
조선시대 왕들도 술을 많이 즐겼었죠?
네 맞습니다. 주색(酒色)은 조선시대 많은 남성들의 대표적인 여가생활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세상사의 온갖 시름을 잊기 위해서, 또는 과중한 업무로 인한 심적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 또는 왕이라는 절대 권력의 최고 위치가 가지는 그 무거움을 잠시나마 벗어버리고자, 왕들도 술의 힘을 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8대 임금 예종의 경우에는 아버지 세조의 강력한 위세에 눌려있던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자 밥 대신 술을 먹을 정도로 과하게 술을 먹다가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였는데요, 급사하기 전까지 문종의 외손이면서 경혜공주의 아들인 정미수(鄭眉壽)를 자주 찾아 술대작을 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보통 왕이 술을 마실 때는 재색을 겸비한 여성이 동석하기 마련인데요, 예종처럼 여기에 뜻과 마음이 맞는 신료를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왕도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합니다.
Q2. 술 때문에 죽을 정도라니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걸까요?
네 비록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태조 이성계의 맏아들도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일찍 사망했다고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2대 정종은 이성계의 맏아들이 아니었던 거죠. 9대 성종의 경우에는 <오산설림초고>에 기록되기를 ‘역대 임금 중 가장 키가 컸으며, 술을 몹시 좋아했다.’ 라고 전해지는데요, 그 덕분에 ‘낮에는 성군, 밤에는 폭군’이라는 별명을 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천재 군주 정조는 술고래였는데요. 오죽하면 수원에 있는 정조의 동상에 '불취무귀(不醉無歸)' 즉 '취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라고 적혀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 왕조실록을 보면 본인뿐만 아니라 신하들에게도 강제로 술잔을 돌리면서 누가 먹나 안 먹나 감시하는 사람까지 지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Q3. 정말 술을 과도하게 좋아했던
임금들이 있었군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왕에게 있어서 음주문화는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용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생활과 건강에 있어서 뗄 레야 뗄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었는데요. 실제 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왕이 술을 먹지 않으면 신하와 어의들이 한 목소리로 음주를 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세종의 경우가 가장 많이 그러한 기록이 나오는데요, 세종 2년에는 상왕(태종)의 명으로 임금이 부득이 작은 잔으로 술을 한 잔 마셨다는 기록이 나오며, 세종 4년에는 정부와 육조의 신하들이 술을 들기를 청하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또한 세종 8년에는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이 임금이 한재(旱災) 즉 가뭄을 근심하여 술을 드시지 않으므로 술 드시기를 청하였으며, 다시 세종 8년에 이직 등이 임금의 건강을 걱정하여 술을 금하지 말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를 포함하여 같은 시기에 4회에 걸쳐 신하들이 세종에게 풍기를 걱정하여 술을 먹기를 간청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Q4. 그 당시에는 건강관리법의 하나로..
신하들이 왕에게 술을 권했던 것 같은데요.
그래도 세종은 계속 거부한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세종 22년에도 신하들이 술을 먹기를 간청하는 모습이 보이는데요, 이는 조선시대에 있어서 술의 약리적 이로움에 대해 잘 알고 있으되, 가뭄이라는 천재지변에 당하여 왕이 일부러 술을 삼가는 모습을 보이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건강보다도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인데요, 역설적으로 음주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종 14년의 기록을 보면, 궁궐 밖으로 나간 행궁(行宮)이 편안치 못함을 걱정하여 양전(兩殿)의 기혈을 조절하여 보호하기 위해 양전(兩殿)께 소주 10병을 올리고, 다시 반대로 양전(兩殿)의 명으로서 성종에게 수라와 술을 마시도록 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왕 자신뿐만 아니라 왕족들에게까지 술이 건강관리 방법으로 보편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Q5. 아, 건강관리를 위해
왕 뿐만 아니라 왕비와 대비에게도 술을 보냈어요?
네 그런데 왕은 건강뿐만 아니라 정치와 외교를 위해서도 술을 마셔야 했습니다. 특히 외국 사절을 접견할 때나 신료들과도 수시로 술을 마셔야 했는데요. 분위기를 주도하려면 왕이 술을 잘 마셔야 했으며, 실제로 술을 잘 마시는 것은 왕이 갖추어야 할 자격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예를 들면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내쫓았을 때의 일인데요, 그 당시 둘째 아들 효령대군이 그 뒤를 이어 세자가 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효령대군이 불교에 심취하여 술을 못 마신다는 것.’이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의 왕은 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어야 했다고 전해집니다.
Q6. 술이 건강관리를 위한 ‘약’을 넘어서
정치 외교를 위해
왕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까지 여겨졌었군요?
네 그렇습니다. 연회 중에서 태평관에서 열리는 연회는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열리는 연회였는데요. 이 연회에서는 불행히도 중국 천자의 사신이 주인이었으며, 우리 조선의 왕은 그 사신을 접대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보통 연회에서는 먼저 차를 마시고 난 다음에 이어서 술을 마셨는데요, 이때 조선의 왕은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사신들이 왔을 때 대작하던 양 보다 두 잔이 더 많은, 일곱 잔을 마셔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때 조선에 온 중국의 사신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상대적으로 술이 약한 왕은 그 칙사가 권하는 대로 계속 마셔야 했기 때문에, 그와 대작하는 일이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일화가 <연려실기술>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Q7. 어느 임금의 일화가 기록돼 있었나요?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한데요?
네 선조 때의 이야기인데요, 선조 때 중국에서 오기로 한 칙사가 술을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술이 약한 선조는 자신이 마실 술잔에 술 대신 꿀물을 따르도록 하고 사신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조가 전혀 취하는 기색이 없자, 이에 의심이 든 칙사가 서로 술잔을 바꾸어 마시자고 제안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선조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는데요, 이때 통역을 담당하던 표헌이 본인이 선조의 술잔을 받아 칙사에게 전하겠다고 나섰고요, 술잔을 건네는 척하다가 일부러 엎어져 잔을 쏟았다고 합니다. 술자리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었는데요, 선조는 칙사 앞에서 실례를 하였으므로 감옥에 가두라고 짐짓 호령호령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놀란 중국 칙사는 이런 일로 감옥에 가두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극구 말릴 수밖에 없었고요, 마침내 칙사가 귀국한 후 선조는 표헌의 임기응변을 가상하게 여겨 특진을 시켜 주었다고 전합니다.
Q8. 재치 있는 신하였네요.
그렇다면, 한의학에서는 술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네 이러한 술에 대하여 <동의보감>에 이르기를, ‘술은 오곡(五穀)의 진액(津液)으로 미곡(米穀) 즉 쌀과 곡식의 화영(華英) 즉 꽃부리니 사람을 이롭게도 하나 또한 해(害)도 적지 아니하다.’라고 하여 술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술에는 크게 4가지의 특징이 있는데요.
첫 번째로 술은 대열(大熱), 대독(大毒)한 성질이 있다고 되어 있으니, 날씨가 아주 추우면 바다도 얼게 되는데 오직 술만은 얼지 아니하니 바로 열(熱)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술을 마시게 되면 쉽게 본성을 잃는 것도 바로 술에 있는 이 독(毒)때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Q9. 그럼, 나머지 특징은
어떤 것들인가요?
두 번째로 술은 습열(濕熱)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습열이란 습기와 열기를 말함인데, 쉽게 말해 장마철의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느낌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몸에 열기가 생기고 습기가 몸에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술은 성질이 날래며 맑고 위로 올라가기를 좋아합니다. 술을 마시면 언행이 거칠어지며 쉽게 흥분하게 되고, 기가 역하게 되는 것은 바로 술의 이러한 성질 때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네 번째로 술의 맛은 쓰고 달고 맵다고 되어 있는데요. 술을 마실 때 첫맛은 쓰게 느껴지고, 이후에 좀 마시다 보면 술기운에 힘입어 달게 느껴지고, 정도 이상으로 마시게 되면 매운 맛을 보게 되는 것은 술의 이러한 맛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 지나치게 술을 사랑했던 정조도 세손일 때는 할아버지 영조의 술에 관한 물음에 답하면서, "술은 나라를 망하게 한다."라며 그 폐해를 지적했습니다.
지금까지 장동민 한의사와 함께
‘왕들의 술문화’에 대해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