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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게시판 스크랩 영산 석빙고
청목/金永柱 추천 0 조회 47 12.01.26 12: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영산석빙고(靈山石氷庫)

 

 

영산석빙고(靈山石氷庫)  사적 169호

 

지정번호 : 사적 제169호
지정년월일 : 1969. 2.28
소재지 : 경남 창녕군 영산면 교리 산410-2 
시   대 : 조선시대

 영산석빙고(靈山石氷庫  사적  제169호 )

 

화강석으로 쌓은 조선 중기의 얼음창고이다.
정확한 축조시기는 알 수 없으나 『여지도서』와 조선 후기의 읍지에 따르면 현감 윤치일이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들어가는 입구가 높고 뒤로 갈수록 낮은,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으로 되어 있다. 내부는 거칠게 다듬은 큰 돌로 쌓은 네모진 형태이다.
창고가 있는 곳에서 바라다보면 빙고 뒤쪽 끝으로 개울이 있는데 지금은 개울에 물이 말랐지만, 이는 상류에 제방을 쌓았기 때문이며 옛날에는 수량이 풍부했다고 한다. 다른 석빙고에 비해 약간 작은 규모이나, 쌓은 수법은 같다.
이 석빙고는 화강석< 花崗石 >으로 축조된 조선시대< 朝鮮時代 > 중기< 中期 >의 얼음창고이다. 석빙고는 문쪽이 높고 그 반대쪽이 낮은 봉분형의 외모를 가졌으며, 내부는 석재를 써서 장방형< 長方形 >의 빙실< 氷室 >을 이루고 있다. 입구를 남쪽에 두고 문은 지면에서 한단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된 석계< 石階 > 끝에 있다. 옹벽< 甕壁 >에 큼직한 돌 세벌을 쌓아 주변을 정리하였고, 천장은 주로 장대석< 長臺石 >을 얹었는데, 중간 3곳에 홍예< 虹예 >를 틀어올리고, 그 홍예와 장대석 사이의 배기공< 排氣孔 >에는 갸름한 돌을 끼워 외기< 外氣 >와의 조절을 피했다. 경주< 慶州 >와 안동< 安東 >의 석빙고 에 비해 약간 작은 규모이며, 조선 중기에 현감< 縣監 > 윤이일< 尹彛逸 >이 채석하여 세운 것이다. 내부의 길이 9.7m, 폭 4.1m, 높이 3.7m이다.

 

소     개
경주와 안동의 석빙고에 비해 약간 규모가 작고, 조선 중기 세운 석빙고이다. 영산 함박산 아래 남천옆 석빙고는 문쪽이 높고 그 반대쪽이 낮은 봉분형의 외모를 가졌다. 봉토주변에는 자연석을 쌓아 호석을 둘렀고, 봉토 정상에는 두 곳의 배기공이 설치된 것이다. 배기공에는 갸름한 돌을 끼워 외기(外氣)와의 조절을 기도했다.
문은 지표에서 한단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된 석계(石階) 끝에 있다. 옹벽은 큼직한 돌 세벌을 쌓아 주변을 정리했고, 옹벽 위로는 큼직한 긴 돌 세 개를 나란히 놓아 천정을 구성하였다. 거대한 돌을 거칠게 다듬어 벽을 쌓고, 세틀의 홍예를 바깥쪽으로 하여 판석을 덮어 공산 전체를 차단하였고, 앞뒤 벽은 그에 따라 축조되었다.


 

■ 주변유적지
영산 함박산약수, 구계리석조여래좌상, 영산만년교, 영산고분군, 영취산성, 영산읍성, 보림사삼층석탑, 법화암다층석탑, 영산연지못, 이현창비

 

찾아가는길
1. 영산IC-좌회전(5번도로)직후-우측도로 진입-300m-우회전-30m-다리(원교) 건너기전 좌회전-800m-석빙고2. 영산IC-좌회전(5번도로)-500m-영산고등학교네거리-우회전-영산시장통-구계리방향(우회전)-영명사 및 신씨고가 푯말-300m-우회전-500m-다리옆

보존상태 :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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