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4일 토요일
[(홍)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태어났다. 필립보 사도가 이끌어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과 같은 인물로 본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주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와 터키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천사에게 이끌려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본다.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이끌려 온 나타나엘에게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시며,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그들이 보리라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 초석들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1,9ㄴ-14
천사가 나에게 9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신약 성경에서 바르톨로메오 또는 나타나엘 사도의 이름을 찾아보면, 열두 사도의 이름이 열거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마태 10,3; 마르 3,18; 루카 6,14 참조) 오늘 복음에서만 그 이름이 나타납니다. 역설적입니다. 바르톨로메오는 사도인데, 그가 복음을 전하였다거나 제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을 하였다는 것은 전혀 없고, 오히려 그에게 복음이 전해진 장면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서 1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 장에서는 증언들이 고리처럼 이어집니다.
먼저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그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안드레아가 다시 형 시몬을 데려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필립보를 만나 그를 부르시고, 그다음에 오늘 복음의 첫 구절에서처럼 필립보가 다시 나타나엘(바르톨로메오)을 부릅니다. 이로써 복음서에서는, 바르톨로메오가 사도로서 복음을 선포하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전해진 증언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바르톨로메오 사도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필립보는 먼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말로 증언하였고, 그 말을 쉽게 믿지 않았던 나타나엘에게 직접 와서 보도록 초대하였고 그래서 마침내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요한 복음서 1장이 끝난 다음부터 지금까지, 사도들로부터 우리에게까지 신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묵시록에서도 사도들을 “초석”(묵시 21,14)이라고 부릅니다.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사도들에게서 전해진 신앙을 토대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명심보감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물 속 깊이 있는 고기와 하늘 높이 떠, 나는 기러기는 쏘고 낚을 수 있거니와 오직 사람의 마음은 바로 지척 간에 있음에도 이 지척 간에 있는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범을 그리되 모양은 그릴 수 있으나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은 알되 얼굴은 알지만 마음은 알지 못한다.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볼 수 있으나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명심보감 성심편)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착하게 살고 싶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지옥까지라도 가겠다고 했지만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로마 7장)” 이렇듯이 우리는 남의 마음을 알기도 어렵고, 나의 마음 또한 쉽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재능과 능력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바둑은 몇 번 두면, 상대방의 실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력에 맞게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하수는 바둑 판 위에 실력에 맞는 정도의 돌을 먼저 놓습니다. 이것을 접바둑이라고 합니다. 골프도 평균 타수가 있습니다. 하수는 자신의 실력에 맞는 타수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핸디’라고 합니다. 저의 바둑 수준은 아마추어 7급의 수준입니다. 저의 골프 핸디는 100 정도의 수준입니다. 인품과 영성도 몇 번 만나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인품과 영성은 능력과 재능에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품과 영성은 오랜 정진과 성찰을 통해 드러납니다. 마치 샘이 깊은 물은 쉽게 마르지 않고, 뿌리 깊은 나무는 거센 바람이 불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만과 위선에 빠진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비난하셨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계명을 안다고 하지만 율법과 계명의 정신을 삶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과 이방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들은 비록 율법을 모를지라도, 인품과 영성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들었던 물고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코이라는 잉어입니다. 이 잉어의 치어를 작은 어항에 넣어 기르면 5-8센티미터 정도로 자라고, 좀 큰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 두면 25센티미터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그런데 코이를 넓은 강물에 방류하면 놀랍게도 90-120센티미터까지 성장한다고 합니다. ‘로고스(Logos)와 ‘ 뮈토스(Mythos)’를 생각합니다. 로고스라는 어항에 갇히면 사람의 이성과 지성은 그 ‘틀’에서만 갇히게 됩니다. 관찰하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인과관계를 따지고, 물질과 자본이라는 도구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것들이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학혁명은 로고스의 세상입니다. 뮈토스라는 바다로 나가면 이성과 지성은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직관과 깨달음의 세상입니다.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의 세상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세상입니다. 물질과 자본이 아니라 에너지와 파동의 세상입니다. 소유의 세상이 아니라 존재의 세상입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로고스와 뮈토스를 뛰어넘은 큰 바다였습니다.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지불했습니다. 삶 속에서 자신이 본 것을 실천했습니다. 목숨을 바치면서 주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사도는 단순히 예수님을 본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가 아닙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길을 죽기까지 충실하게 따라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영예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교회, 사찰, 사원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보았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와 가치를 보았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본 것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지금 가진 것들을 포기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밭에 묻혀 있는 진주(하느님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팔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다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요한 1,46)
함께하고픈
믿고 바라며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임 만난
나를 건너
임께로 가세요
아직은
닿을 수 없는
벗과 임 사이에
내 기꺼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다리가 되어드릴게요
함께하고픈
믿고 바라며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임 만난
벗을 건너
임께로 갈게요
아직은
닿을 수 없는
나와 임 사이에
벗께서 기꺼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다리가 되어주세요
오늘의 성인
성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
같은이름 : 나타나엘, 바르똘로메오, 바르똘로메우스, 바르톨로매오, 바르톨로매우스, 바르톨로메우스
사도 성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또는 바르톨로메오)는 12사도의 한 사람으로 불림 받았다는 기록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는 필립보의 인도로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요한 1,47)는 평을 들은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이라고 여겨진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인도와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설교하였고, 그곳에서 아스티야제스 왕에 의하여 참수를 당해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는 카스피 해안의 아바나폴리스,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바르톨로메우스의 복음서는 위경이고, 프세우도-젤리시오에 의하여 단죄되었다. 그의 문장은 칼과 벗긴 살가죽이다.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 (Mary Michaela)
활동년도 : 1809-1865년
신분 : 동정녀, 설립자
지역:
같은 이름 : 데메지에르,메리,미리암,미카엘라
에스파냐의 마드리드(Madrid)에서 태어난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 데메지에르(Maria Michaela Desmaisieres)는 부모님 덕에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프랑스의 우르술라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다가 13세 때에 아버지가 사망한 후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도우며 살았다. 그녀는 결혼하라는 모든 요구를 물리치고 파리(Paris)와 브뤼셀(Brussel)의 에스파냐 대사이던 오빠를 찾아가 몇 년을 함께 살았다. 그런데 그녀가 하는 일이 주로 연회에 참석하는 등 외적으로 화려한 일들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매일 영성체를 하고 또 고행복을 입고 지냄으로써 이 모든 세속적인 일들을 이기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버림받은 사람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데 주력하였다.
에스파냐로 다시 돌아온 그녀는 즉시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조직을 갖추었다. 이 빈민 구제회가 발전하여 '성체와 애덕의 시녀회'라는 수녀회가 되었고, 1859년에 그녀는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수녀회는 주로 거리의 윤락여성들을 돌보았는데, 설립자가 생존해 있을 때에 교황청의 인가를 받고 날로 성장하였다. 그녀는 1865년 8월 24일 콜레라에 걸린 환자들을 돌보다가 그 병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1934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요안나 앙티드 투레 (Jane Antide Thouret)
활동년도 : 1765-1826년
신분 : 동정녀,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안, 조안나, 조한나
프랑스 상시-러-롱에서 1765년 11월 27일에 태어난 성녀 요안나 앙티드 투레(Joanna-Antide Thouret)는 제혁업자의 딸로 그녀의 나이 16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가사를 전담하다가, 1787년에 파리(Paris)의 성 빈첸시오 애덕 자매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1793년 혁명 정부가 프랑스의 수도회를 해체시켰을 때, 그녀는 그때까지 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시로 되돌아갔다. 그녀는 여기서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고,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한편 혁명으로 피해 다니는 사제들을 숨겨주었다. 이 사건 때문에 그녀는 1796년 스위스로 도망가야 했다.
그 후 그녀는 브장송(Besanion)에서 학교를 개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4명의 자매들과 함께 1799년에 학교를 세웠다. 그녀의 공동체가 급성장하자 앙티드는 벨러브에 불우여성 수용소를 세웠다. 1807년 그녀의 회칙이 브장송의 러 코즈 대주교로부터 승인받자 이 단체는 스위스, 사부아(Savoie), 나폴리(Napoli) 등지로 확산되었다. 1818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는 이 단체를 성 빈첸시오 드 폴의 보호 아래 있는 애덕의 딸 수녀회란 이름으로 승인하였다. 만년에 그녀는 이탈리아에 수녀회를 세우는데 전념하다가 1826년 8월 24일 운명하였고, 1934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