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 대부분 가정에는, 조부모님과 부모님 3대가 동거하는 대가족 제도가 보편적이었다. 아침·저녁에 조부모님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했다. 할아버지는 긴 곰방대 물고 소일하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주도하고, 할머니는 가사와 손주들 육아를 도왔다.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엄격한 훈육에, 어리광도 피우고 과자도 숨겼다 나눠주는 최고의 피난처는 할아버지·할머니였다. 대부분의 농사일이나 가사는 부모님이 담당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집안의 최고 어른으로서 대접받고 권위를 누렸다. 남자들은 노후에도 권위를 누리며 자녀들의 부양을 받으며 생을 마쳤다.
수렵과 채집 경제 시대의 원시시대 남자들은 다른 부족의 침입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짐승을 사냥하고 집을 짓거나 다리를 놓는 등 완력이 필요한 일을 담당했다. 남성은 가정에서 주도적인 역할로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권위를 세워 가족을 지키는 중심 역할을 하였다. 여성은 채소나 과일 등 채집 활동과 가사를 담당하며 육아를 전담했다. 그러나 수렵이 필요 없는 농경시대가 도래하여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면서 부족 간의 전쟁도 현저히 줄어들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남자의 완력이 필요한 시대는 저물어 갔다. 농경시대 여자들은 기존 여성들의 영역 외에도 농어업 경영에도 참여하면서 남성들의 역할에 반비례해 여성들의 역할은 늘어났다.
문명의 발달로 각종 기계가 발명되어 기계화되자 가사 노동에서 해방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났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으로 경제적으로 남성들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고, 여성들의 교육과 사회활동으로 여권신장이 되어 발언권이 강화되었다. 남성들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여성들의 영역이 넓어져 남녀경쟁이 치열해졌다. 남자의 완력을 대체한 기계의 운용으로 힘이 약한 여성들도 조작이 가능해지자 남성들의 완력이 필요한 부분이 줄어들어 앞으로는 남성들의 전담 분야인 전쟁까지도 기계(로봇)가 대신하게 되었다. 섬세한 조작이 필요한 기계 조작은 오히려 여성들이 더 적합하여 갈수록 남성 전용 영역은 줄어들고 있다.
남성들의 역할과 영역이 줄어들어 힘의 우위가 무너져 대등하거나 여성이 추월하는 부문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 금녀구역이나 다름없던 법조계, 사관학교, 군인, 공무원 등의 직역에서 남성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 남자들은 위축되고 있다. 여성 능력이 커진 만큼 상대적으로 전통적 권위에 젖어있던 남편들의 소외감은 커지고, 고분고분한 아내는 드세져 간다. 아이들은 아빠가 출퇴근할 때 ‘다녀오세요’, ‘다녀오셨어요’ 하고는 방에 들어가 버린다. 묻는 말엔 단답형으로 예, 아니오만 답하니 대화가 길어질 수가 없고 말도 안 통한다. 어머니와는 학교나 직장생활 얘기, 여자 친구 얘기 등 미주알고주알 하지만, 아빠는 투명 인간이 된다.
여성들이 가정 경제권까지 장악하여, 돈 벌어다 주는 역할까지 끝난 남성의 가부장적 권위를 위협한다. 자녀의 교육이나 부동산 등 거의 모든 가사를 아내가 결정한다. 평생 가정을 돌보다 퇴직한 남편은 이제 좀 편히 지낼까 하고 집에 들어앉으나, 아내는 평생 남편과 아이들 뒤치다꺼리하고 이제 좀 쉬려고 하는데 남편이 집에 들어앉으니 늙은 남편이 부담스럽다. 혼자 사는 친구들은 집안 걱정 안 하고 여행도 마음대로 다니는데 나만 남편 살이 한다고 푸념이다. 은퇴한 남자는 좁아지는 입지에 위기감을 느끼고 가족의 눈치를 보며 산다. 불필요한 존재라는 자격지심에 간혹 몽니도 부리지만 아내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고 만다.
동물집단에서 늙은 수컷은 비참하다. 사자 암컷은 무리에 잔류하지만, 수컷은 2~3세만 되면 무리를 떠나 방랑생활을 한다. 성장하면 사자 무리의 우두머리 수컷에게 도전하여서 이기면 대장이 되어 1~5년간 제왕으로 군림하면서 살아가는데, 이런 호사를 누리는 사자는 전체 수컷 중 5%밖에 되지 않는다. 사자가 사냥할 때는 숨어서 피식 동물 가까이 접근해서 사냥하는데, 수사자는 갈기가 있어 숨어도 노출이 되고 머리가 무거워 속도가 느려 사냥도 잘하지 못한다. 사자 제왕으로 군림하다 젊은 수컷에게 왕위를 잃으면 무리에서 쫓겨나 유랑생활을 한다. 쫓겨난 사자는 먹이를 훔치거나 빼앗아 먹고, 손쉬운 가축이나 인간을 공격한다. 식인 사자는 대부분 늙었거나 병든 사자이다.
남성상의 자존심은 수염과 서서 소변보는 것이다. 수염 기르기는 이미 사라졌고, 서서 소변보는 문화도 붕괴하고 있다. 시끄럽고 오줌 방울이 사방으로 튀어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이라는 아내와 아이들의 성화에 앉아서 소변보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 남성들이 앉아서 소변보겠다는 약속이 늘어나고, 부정 인식도 줄어들고 있다. 돈 버는 것 외엔 역할이 없어진 남자에게 그 임무마저 끝나자 남성들의 상실감이 커지고 햇빛 아래 놓인 두더지처럼 비실비실한다. 슬퍼도 울어선 안 되고 힘들어도 내색해서는 안 되는 유교 문화에 순치된 남자들은 속으로 병들어 간다. 외롭고 슬픈 마음을 친구들과의 술 한 잔에 담아낸다. 남자들이 기울이는 소주잔에는 눈물과 한숨이 한가득이다.
20여 년 전 인천 서쪽 연안부두 인근 지역에 근무할 때 젊은 맞벌이 직원이 안산 집에서 차로 출근하면서 아이는 유치원에 내려주고, 아내는 서울 영등포 직장까지 태워다주고 나서 인천 사무실까지 출근하고, 퇴근은 역순으로 하면서도 힘들거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우리 세대라면 각자 출근하라고 하든지, 아내를 태워다 주더라도 입이 돼지주둥이만큼 나왔을 터지만, 불평 없이 하는 걸 보고 남자 전성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전업 남자 주부가 늘어나고 매 맞는 남편과 황혼 이혼이 증가하고 있다. 가정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중심의 권위주의적 수직적 문화에서 아내와 아이들 중심의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큰소리치던 우리 세대는 행복한 세대이고 좋은 시절은 우리 세대로 끝이다.
마초여, 거친 숨 몰아쉬며 말달리던 광야가 그립지 아니한가? 지금, 어디서 쪼그려 앉아 담배 연기 길게 내뿜고 있는가? 마초여, 마초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