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역>에 도착하니 8시 10분쯤 지났다.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로 올라갔다. 벌써 많은 동창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박남용이 자리를 잡고 있다가 나에게 옆 자리를 권하였다. 소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차가 출발하기 전에 광주역으로 가서 소변문제를 해결하였다.
계획대로 하면 8시 30분에 출발해야 하였는데, 강공수와 정원길 그리고 윤정남이 아직 오지 않았다. 강공수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하여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였다. 다음에는 윤정남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6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콜택시를 불렀는데 아직도 오지 않아서 금방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오는 길이라 하였다. 여기까지 오려면 30분을 걸릴 것이다. 강공수와 정원길이 8시 45분쯤 주차를 마치고 관광차로 올라탔다. 윤정남은 8시 55분쯤 도착하였다.
9시에 우리 일행 30명을 실은 관광버스는 광주를 출발하였다. 우리가 시내를 빠져나가면서 강종원회장의 인사말과 임동수 총무의 오늘 일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기사의 안전운전도 함께 빌었다.
가는 도중에 강회장이 여러 가지 시간보내기 이야기를 하고 이어서 강공수가 나와서 우리 목요산우회에서 행하던 데로 노래 부르기를 소개하면서, 우리 목요산우회가 <향수(鄕愁)> 가사를 암송하게 된 이야기에 이어서, <산 너머 남촌에는>을 오늘 불러 보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산 너머 남촌에는 노래 가사를 나에게 암송해 보도록 권하였다. 내가 마이크를 받아서 산 너머 남촌에는 대신 향수를 암송하였다. 그런 다음에 산 너머 남촌에는 노래를 강공수가 스마트폰 불루투스를 이용하여 JBL스피커에서 나오는 여자가수가 부르는 노래에 맞추어 다 같이 불러 보았다.
이인에서 한 번 쉬면서 소변문제를 해결하였다.
논산에 있는 탑정호(塔亭湖)에 도착하였다. 관광버스에서 내렸는데 안개비라 내리고 있어서 무두 우산을 받고 걸어 다녀야 하였다. 나는 방수 등산복을 입어서 우산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탑정호로 들어가서 출렁다리를 건너갔다.
충남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와 가야곡면 종현리 사이에 있는 이 탑정호(塔亭湖)는, 본래 1941년 착공하여 1944년에 농업용 저수지로 준공되었다. 면적 6.36㎢, 제방길이 573m, 높이 17m, 가장 깊은 곳은 12m이며, 저수량은 3,161만t 정도이다. 논산평야의 젖줄로서 논산 농지개량조합 저수지와 인천천의 물이 이곳으로 흘러들어 수원이 매우 풍부하며 51.97㎢의 논에 관개용수를 공급하는데 물은 2개의 수문을 통해 논산천 양안에 놓인 저수지의 수로를 따라 성평리와 성덕리 쪽으로 흐른다. 남쪽으로 호남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붕어·잉어가 많아 낚시터로도 인기가 있다. 주위에 계룡산국립공원과 대둔산도립공원이 있으며, 관촉사전망대·은진미륵불이 있어 관광·휴양객이 많이 찾아온다.
이 출렁다리는 2018.08.30.에 착공하여, 2020.10.15.에 준공되었고, 다리의 폭이 2.2m이고, 주탑이 높이가 46.5m이고, 총 길이가 592.6m이다.
우리는 출렁다리를 건너갔다. <출렁다리 종점>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와 호안(湖岸)에 설치된 잔교(棧橋)를 따라 걸어가면서 호수를 구경하였다. 도로변을 따라 올라가면서 호안에는 각종 버드나무의 뿌리가 물에 잠긴 체 호수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호수를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어느 마을 앞에 도로변에는 <안천정사(顔川精舍)>라는 기기재(棄棄齋) 김상연(金尙埏)先生이 강학(講學)했던 정사(精舍)의 유허비(遺墟碑)가 서 있었다. <기기재(棄棄齋)>라는 호(號)가 그 분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버리고 또 버리라!’는 말에서 ‘그의 인생이 얼마나 겸손하고 베푸는 삶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갔을까?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 져 있었다. 한 편은 둘레 길이었고, 또 한 편은 호수 안으로 들어가는 호숫길이었다. 우리는 호수를 무찔러 가는 길을 택하였다. 그 길은 <수변 생태공원>길이었다. 호수에는 물에서 사는 닭도 있고 버드나무도 잠겨 있었다. 그 데크 길의 끝에는 아름다운 꽃밭도 나왔다. 그리고 그 길의 끝은 딸기 마을이었다.
거기에서 강종원 회장이 버스기사에게 연락하여 우리와 다른 길로 갔던 친구들을 태우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우리를 싣더니 가까이 있는 <백제군사박물관>으로 갔다. 본관은 휴관(休館)이어서 우리는 왼쪽 길로 올라갔더니 홍살문을 통해 깊숙이 들어가면 계백장군을 모시는 <충장사(忠壯祠)>가 있고, 홍살문에서 오른쪽에 소나무가 잘 자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갔더니 넓은 잔디밭에 조성된 백제 계백장군의 묘소가 있었다. 우리는 장군의 묘소 앞에서 천 년 전에 나라와 동족을 지키기 위해 5천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적군을 맞서다 장렬히 전사한 장군의 결기에 머리 숙여 묵념하였다.
서둘러 <백제군사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와서 다시 관광버스에 올랐다. 예약해 놓은 식당에서 이미 음식을 차려 놓았으니 빨리 와서 먹어야 음식이 식지 않겠다면서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며 강회장이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다시 관광버스를 타고 어느 마을로 달려갔다. 마을 앞에 버스를 멈추고 내렸다. 마을의 골목길을 지나서 마을 뒤편으로 갔더니 <산 아래>라는 식당이 있었다.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이미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이미 고프던 참이라 음식을 보자마자 식욕이 땅겼다. 강회장이 전화로 예약해 놓아서 정성을 다해 차려진 <채소 비빔밥>(18,000원)을 대하자 우리들은 정신없이 음식을 먹어치웠다. 어떤 종류의 나물이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몇 가지 채소가 들어 간 것은 분명하였다. 그리고 독특한 반찬 한 가지는 <표고버섯 탕수>였다. 이 표고버섯 탕수는 맛도 있고 영양가도 있어서 최고의 메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잡채와 호박떡도 있었다. 모든 반찬이 다 맛이 있었다. 강종원 회장이 양주를 한 병, 류상의 회원이 가용주로 송순주를 또 조학친구가 다른 가용주를 가져와서 나누어 마셨는데 나는 감기 기운이 있어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식당에서 나와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 마을은 바로 우리가 구경할 관촉사(灌燭寺)가 있는 <관촉마을>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마을 앞에 <관촉공원>이 있고, 마을 서쪽으로 죽 뻗은 길로 곧장 갔더니 들길 끝에 <반야산관촉사盤若山灌燭寺>라는 일주문이 나왔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더니 천왕문(天王門)을 지나 또 계단을 수백 개나 올라갔더니, 산 중턱에 관촉사가 있었다. 마당 한 가운데에 <대광명전(大光明殿)>이 있고, 그 오른 쪽 마당에 <미륵전(彌勒殿)>이 있고 그 뒤로 유형문화재 제53호인 <관촉사 배례석(拜禮石)>과 보물 제232호인 <관촉사 석등(石燈)>이 앞뒤로 있고, 그 뒤(동쪽)에 높이 18m인 국보 제323호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이 포장 속에서 보수 중이어서 볼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서둘러 마을 앞으로 가서 관광버스에 올랐다.
관광버스에 올라 돌아오는 길에 강공수 친구가 넌센스 퀴즈 문제를 냈다. 답을 맞춘 사람은 그가 미국 케네디 공항에서 사서 싣고 온 <썬키스트>과자를 상으로 주었다. 퀴즈를 두 번 맞힌 사람은 칫솔을 주었다. 긴 여정이었지만 여러 친구들이 재능기부를 한 결과 즐겁고 흥겨운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렸다.
첫댓글 雅石 양수랑 친구가 '논산나들이'
기행문의 완결판을 찍어 주었습니다.
평소 뛰어난 필치(사진 등)로 우리를 감동시키더니 ~~~
앞으로도 계속하여 우리들을 유익하고 즐겁게 해주기를 부탁합니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지~~~
옳은 말씀 미쳐 생각지 못한 부문까지 놓치지 않고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으니 눈은 있어도 그 눈은 맹인 눈이야
사물을 바로 본다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 인에 반쪽 눈으로 보니 제대로 보지 못했군
아석 양수랑 친구의 글은 세심하게 날카로운 필치로 설명해주니 실제 참가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니
고맙기 짝이 없지 .. 이 다음 또 15야 나들이가 언젠가 또 다시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면서
건강이 좋지 못한 친구들이 속히 회복되어 만원 버스 속에서 제비처럼 재잘거리기를 기대함 .. 거듭
좋 은글을 올린 친구 아석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