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11,19-26, 요한 10,22-30): 당신으로 물들이는 향기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꽃이 피고 다시 계절이 바뀌고, 또 바람의 온도가 변화하면서 깊어가는 계절 한가운데 서면, 과연 우리의 생(生)도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무엇을 전하고 새겨주며, 그래서 어떤 기억으로 간직될지를 돌아봅니다.
때로는 홀로 짊어지기 어려운 십자가의 무게를 토해놓으려, 슬픔이 가득한 눈빛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대할 때면, 아직 설익고 부족함으로 가득한 영혼의 위로일지라도, 작은 힘이 되어주길 간절히 비는 기도를 가슴에 채우고 그 앞에 앉습니다. 부디 마음 깊이 주님께서 친히 어루만져 주실 사랑으로 그 영혼이 물들고 치유되도록, 너무나 소중한 그대의 심장이 다시금 용기를 얻어 힘차게 뛰게 해달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저는 꿈꿉니다. 그렇게 하나씩 둘씩 다 내어드리고 언젠가 텅 빈 껍질만 남을 때, 그 가벼움으로 주님께로 옮아갈 수 있기를 말입니다. 부디 그리 길지 않은 우리 삶의 여정 동안, 저 또한 영과 믿음으로 충만하여 다가오는 이들에게 주님의 체온을 전할 수 있도록 비는 소원 한 가지만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 26절, 그리고 다시 21절에서.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살피시어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라고 전합니다.
위대하고 높은 칭송을 받아 그 족적(足跡)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사람을 통해 거룩한 초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순박하리만큼 착한 사람, 때묻지 않은 영혼 깊이 성령의 향기와 믿음의 충실함에 배어나는 가난한 영혼이 주님께로 마음을 열게 합니다. 그것은 함께 머문 시간이 복된 그리움이 되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도록 존재감이 사랑으로 번지게 하는 그의 모습이 위로가 되는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축복의 신비입니다.
그런 인연 가운데 주님과 멀리 떨어져 그저 세상 속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도 있는 이들이, 주님을 만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소중한 이름을 새로이 얻게 되고 전혀 다른 차원의 삶으로 옮아가게 됩니다.
여기 있는 우리도 우리 곁에 머문 이들을 그렇게 주님께로 다가가 은총과 기쁨에 물들도록 초대하는 문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힘이 미약하다고 느낄 때면, 주님께서 요한복음 10장 25절에서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라고 하신 말씀에 확신을 가지고, 우리 또한 주님의 도구로 살아갈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겸손하게 의탁하는 일이 우리의 몫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어지는 29절에서,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라고 우리에게 믿음을 다지도록 일깨우십니다. 우리의 생이 당신 사랑으로 물들어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안아줄 수 있도록 손을 내밀 수 있는 신앙의 여정 안에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다가온 이의 허(虛)한 가슴에 다시금 희망과 열정과 사랑의 불씨를 지필 수 있도록 거룩한 영의 바람이 되어줄 수 있도록 오늘 여기 있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몸짓을 사랑으로 끌어안아 은총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