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친 아이들과 잠시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영 - 저는 초등학교 졸업했고요. 초등학교도 재밌게 다녔거든요. 그런데 홈스쿨하면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더 깊이 공부할 수 있잖아요. 여러 분야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하는 것이 더 쉬운 것 같아요.
사랑: 저는 친구들도 많은데 여기 온다고 해서 망설여졌는데 오고 나니까 여기 친구들이 도시 친구들보다 나은 것 같아서 좋았어요. 그리고 뛰어다니는거 좋아하는데 여기 와서 운동 많이해서 좋고요. 아토피가 있어서 먹는 것을 조심 안하면 올라오는데 여기 와서 좋은 음식 먹고 하니까 좋아지는거 같고요. 동물 키우는것도 좋아하는데 여기 와서 많은 동물들도 보고 키우면서 재밌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애들이 말투나 행동이 너무 거칠어서 다가가기 힘들고 그랬는데 배우는 진도에 맞게 나가니까 그거는 좋은데. 애들이 한반에 많다보니까 선생님들하고도 그렇고 아이들하고도 그렇고 관계가 많이 안 좋았는데 여기서는 같이 밥먹기도 하고 친구들하고 같이 자기도 하고 더 친해질 수 있고 공부도 더 재밌고 넓게 배울 수 있어 좋아요.
1박을 하고 떠나던 목요일 2시에는 아이들이 수업을 하지 않고 이렇듯 일을 하고 있어서 물어보았더니 한자수업을 담당하는 목사님께서 새벽에 우즈벡등 4개국으로 강의를 하러 떠나셔서 휴강이 되었다 하더군요.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크는 아이들 같아 보입니다.
이번에는 지난 4월 30, 5월 1일 있었던 홈스쿨세미나에 오셨던 정미진 사모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이번에 오랜만에 여러명의 식구들과 홈스쿨 세미나에 오셨네요. 오시게 된 동기는?
저희가 2004년 1월에 공동체 60~70% 멤버들이 대거 세미나에 참석했었어요. 공동체는 1998년 2월에 시작됬었지만 홈스쿨에 대한 이야기는 2002,2003년 이따금씩 이야기가 되다가 2003년 8월에 천안고신대학원에서 세미나를 했었는데 가게 되었어요. 제가 그때 가게 된 것은 홈스쿨하자는 움직임이 공동체 안에 있었는데 홈스쿨하면 학교와 여러 아이들로부터 떨어지기 때문에 반대를 하기 위해서 알아보려고 갔다가 충격을 받았어요. 패널 토론을 다섯 분이 하는데 그분들이 하는 말이 똑같은 내용이었어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홈스쿨 하고 있는데 그들이 누리는 기쁨, 자녀들의 모습이 왜 똑같을까? 뭔가 비밀이 있다. 반대를 하러 갔다가 좀 더 알아봐야겠다. 이런 결론을 맺고 있는 중에 2004년 1월에 세미나 있는 것을 계기로 "우리 다 가보자!" 그래서 자매들은 다 가고 형제들도 몇 분 갔어요. 그래서 거기서 "하자!" 하고 시작하게 됬어요. 그리고 나서 두어번 더 컨퍼런스에 갔어요. 하지만 우리가 한참 공동체를 세우는 과정이어서 홈스쿨에 매진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그때만 해도 너무 미국 일색이었어요. 저희는 농촌에서 아주 한국적으로 살고 있었고 컨퍼런스의 내용들은 굉장히 원리적인 이야기들인데 저희는 좀 더 실제적인 것들을 원했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세미나에 참석을 못했지요. 그러다가 저희 아이들이 중고등학교가 되면서 진로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몇 년동안 대두되면서 우연히 홈페이지에 다시 들어가보게 되었어요. 통합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들어가보니 굉장히 짜임새 있게 되었더라구요. 뭔가 굉장히 한국홈스쿨에 줄거리 있는 내용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홈페이지를 통해서 받았어요. 그렇지만 1월에 있는 컨퍼런스는 저희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웠어요. 한가정 정도는 밀어줄 수 있지만 다같이 가자니 비용 문제로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시기적으로도 그랬고요. 또 홈스쿨컨퍼런스는 온가족이 참여하는 그런 분위기인데 저희들은 그게 어려웠고요. 그러다가 이번 세미나를 홈페이지를 통해 보게 되면서 강사진도 좋고 저도 다시금 근원적인 것을 돌아봐야겠다. 표면적이고 실천적인 것보다 거기서부터 다시 단추를 매야겠다. 에덴으로 돌아가듯이 그런 마음이 들었고 저희 공동체에 새로운 가정들이 더해지면서 이분들이 여기 와서 적응하면서 자의반 타의반 홈스쿨을 하지만 좀 더 원리적인 것들이 터치가 되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이 있던 터에 새로운 가정들에게 같이 참여하면 좋겠다 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중요한건요. 등록비가 싼거에요. 저희한테 너무 부담이 없는거에요. 강사진도 좋고.사실 세미나 기간 자체가 1월에는 한가하지만 비용이 비싸고 이번에는 싸긴 하지만 굉장히 바쁜 때라서 자매들만 참석하게 된거였어요. 저 자신도 10대 자녀.. 제목 때문에 끌렸는데 그게 갑자기 바뀌면서 강성환 목사님이 다시 근본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그것도 굉장히 좋았어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지시하심과 뜻하심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 오늘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어요.
공동체 안에서 홈스쿨을 하시면서 힘든 점이 있으시다면?
저희한테 갈등은 공동체를 세우는데 많은 시간을 써왔기 때문에 항상 아쉬운게 알면서도 못하는게 아이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부족해요.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바쁘니까. 그런 면에서 지탄과 힐문을 받기도 했어요. 방문하는 사람, 여기서 몇 개월 있다가 나간 사람들중 “정말 홈스쿨 제대로 하는거냐?” 저희들에게 아킬레스건과 같은 부분이에요. 공동체 삶 중에서요. 우리네 살아온 삶의 모양이 바쁘고 힘들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육을 잘하진 못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의 갖은 갈등과 관계안의 갈등, 사람의 죄냄새 그런 것들이 아이들에게 굉장히 잘 전달될 수 있었어요. 오히려 뚝 떨어져 살면 홈스쿨에 여유롭게 그 부분에 있어서 치중해서 갈고 닦고 길게 호흡할 수 있는 것도 우린 헉헉대면서 달려왔고 그렇기 때문에 더 죄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매끄럽고 체계적으로는 못했지만 오히려 더 좋은 현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존에 해오던 분들에게 refresh가 필요한 상태에요. 있다 보니까 자기 방식대로 돌아가는 그러니까 부모가 자기를 키웠던 방식으로 말이에요. 처음에 저희가 Training of Child(온전한 훈련 기쁨으로 크는 자녀) 원문을 다운받아서 2004년도 그때는 번역이 아직 안되었어요. 제가 그것을 번역하면서 자매들과 세 번을 나누었어요. 그 때 이미 그 나이에 있었던 아이도 있었고 이미 큰 아이들도 있었지만 훈련한다는 것 그 개념을 저희가 도입을 했었고 거기에 뒤따른 부작용이 좀 있었어요. 온화한 방식으로 돌아가는 가정도 있었고요. 규정과 타협들이 이루어진 지난 6,7년이었어요. 그치만 훈련한다는 것 그것에 대해서 각 가정이 문화도 다르고 기준이 다른거에요. 정도라고 그럴까요 수준이라고 그럴까요. 우리는 요 정도 우리는 이 정도.. 그런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사니까 이런 면에서 충돌이나 갈등이 좀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희가 함께 살면서 터득한 방식은 존중하는 것이거든요. 나와 다름을 존중하자. 이게 홈스쿨 안에서도 일률적으로 똑같은 색깔 똑같은 목소리가 아니라 각 가정이 다양해요. 저희가 공동체학교를 하고 있지만 홈스쿨을 베이스로 하기로 정했거든요. 그 가정의 부모의 방침을 존중하는 방식에서 우리가 함께하는 부분은 말을 맞추고 생각을 맞추고 이럴려고 노력은 하지만 존중하는걸 바탕으로 해요. 예를 들면 예절부분도 각 집마다 너무 다른거에요. 그 가정에서 이만큼 하는 것을 우리가 ‘이렇게 해야합니다’ 종용을 못하는.. 그런 부분들이 존중과 함께 갈등부분이 있죠.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저 집은 이래’, ‘우리 집은 이래’ 이런 비교가 있을 수 있어요. 그게 좋은 점으로 계속 계발을 해가고 발전을 해가면 좋지만 사람의 본성이란게 그렇지 않잖아요. 편안한데 익숙한데 안주해있는 그런 면에서 우리가 ‘책도 읽자’, ‘부모교육도 하자’ 이렇게 했지만 자료가 충분치 않았던 거에요. 그런데 올해 제가 위원장이 되고 하면서 좀 더 참여하자는 분위기로 갔어요. 책도 읽으면서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으로 매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아이의 자세한 부분까지도 나누자 했지만 아직 썩 잘되고 있진 않아요. 부모와의 관계가 홈스쿨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요. 부모사이의 대화나 정서나 감정이나 문화가 오픈이 안되어 있으면 홈스쿨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요. 공동체다 보니까 그리고 제가 과학선생이다 보니 저희 아이들 뿐 아니라 남의 아이도 양육을 하게 되요. 하지만 관여가 힘들어요 왜냐하면 그집의 문화가 있고 그 집의 부모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홈스쿨도 부부의 관계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반영되듯이요. 공동체는 더 확대되고 더 다양하고 더 많은 사람들 안에서 이뤄지는거에요. 부모들과의 관계가 아이들에게 적용이 되고 반영이 되는.. 그래서 형제 사이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관계속에서 적용이 되는거죠. 형제라면 엄마의 기질 아빠의 기질이 있으니까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다양한 기질의 아이들을 접촉할 수 있는 장이 되는거 같아요. 저 아이는 저렇다 보면서 취할건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들을 점점 하게 되는거 같아요.
이곳 보나콤에서 영어선생님을 맡고 계시고 이번 세미나에도 다녀가셨던 전선영 선생님을 만나보았습니다.
홈스쿨세미나 참석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사모님 권유로 가게 되었어요. 공동체에 들어와 보니 홈스쿨링을 교육 원칙으로 하고 있었고 오기전엔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생소하고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여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작년에 브레드 볼러 가족, 안점식교수님 가정등 홈스쿨러 가정의 방문으로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아직도 실제 제 가정에 맞는 방법을 찾기까지는 많은 배움과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같아 권유도 있고 해서 함께 가게 되었어요.
세미나 참석해서 얻은 유익이라면?
첫째 홈스쿨의 기본을 다시 점검하게 된 것이에요. 둘째 내 자식은 내가 교육하기 어렵다는 사고가 지배적이던 저에게 과연 하나님의 지혜로 부모에게 부여된 권위를 가지고 자녀양육과 훈련을 실제로 잘 해나갈 수 있다는 증거를 강사 목사님 부부를 통해서 보게 하신것과 그곳에서 만난 가족을 통해서 이 시대에도 요게벳처럼 하나님을 통해 자녀를 바라보고 시대의 요구에 거슬러 자녀를 양육하려하는 많은 가정들이 있음을 알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공동체 들어온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남편이 대전에서 온누리 교회를 섬길 당시 5년전 아웃리치로 이곳 보은에 왔다가 건축 시작할 당시부터 계속 틈틈이 와서 돕게 되었고 그러면서 공동체에 들어와 살고 싶다는 의견을 이야기 했어요. 남편은 원래 목장을 이루는 것이 꿈이었고 자연과 더불어 일하는 것을 동경하고 벼가 자라는 걸 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많이 느끼는 그런 성정의 사람이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도시 생활에만 익숙해 있고 직업도 갖고 있었고 교회에서 섬기는 일도 있고 또 그 일들을 소명으로 여겼던 저는 이곳에 들어와서 제 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마음을 열지 못했었고요. 그러던중 재작년 겨울 남편이 갑자기 몸의 이상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이 생겼고 그것을 계기로 남편이 원하는 삶을 함께 사는 것이 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과 또 그 때가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이 있는 때라는 것을 알게 하셔서 결정하였는데 들어와서는 저의 남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더 큰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
공동체 생활의 장단점을 말씀해 주신다면?
간단하게 대답하기 어렵지만 좋은 점은 첫째 큰 가족이 함께 산다는 것 무슨 일이든 함께 하고 함께 먹고 마시고 예배하고 서로가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 둘째 저희 각 가정들이 섬기는 기업이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선교지를 위해 쓰임받고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된다는 자부심, 셋째 풍성함을 누리고 산다는 것 예컨대 아나바다의 삶을 통해 꼭 내가 소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 모든 것을 빌려쓰고 나눠쓰고 아이들 옷도 가정마다 연령별로 서로 물려 입고 물건도 돌려 쓰고..내 이름으로 된 땅과 논답이 아니어도 실제 사용하는 자로서 누리는 여유와 열매, 또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도 크고요. 그중에서도 아침마다 둘러앉아 함께 큐티를 나누며 같은 본문의 말씀을 공유함으로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따라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다양하게 많은 면으로 보게되는 재미가 정말 큰 기쁨 중에 하나입니다. 아 또 있네요. 1년에 2천여명 가까이 방문하시는 수많은 손님들 특히 선교사님들을 만나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듣고 나누는 기쁨,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접하는 다양한 문화와 음식들 때로 위로들을 주고 받는 기쁨도 정말 큽니다.
어려운 점이라기 보다 불편했던 것은 처음에 왔을땐 문턱이 없이 사니까 내 형편과 상관없이 늘 개방되어 있고 속속들이 다 알게 되니 사생활 보장이 안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편해졌구요 물론 큰 식구가 함께 사니까 할 일이 많지요. 청소할 구역, 밥하는 횟수, 맡아서 감당해야 할 공동체에서의 역할 등, 또 모든 일을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진행해야 하니까 자주 회의를 가져야 하고, 가족 외출시 스케줄을 서로 잘 맞추고 양해를 구해야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저로 하여금 지난 날 일이나 역할 목표 사명위주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저에게 하나님을 위한 일의 중요성보다 큰 가치가 없어보이는 일상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경험들이 되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알아가고 있다고 할까요
그러나 무엇보다 말 그대로 어려운 것은 홈스쿨 교육입니다. 제게 가장 큰 숙제이자 난제 이지요 이전에 결코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생소하고 이야기를 들어도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진행해 가야하는지 참 어려움이 많습니다. 저의 기질상 감정표현에 적절히 반응하기보다 연약해 지거나 의존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때문인지 아이들의 여린 마음의 표현이나 상처를 잘 안아 주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잘 표현도 못하는 엄마라서 친밀한 나눔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을 대면해야 하는 처절한 장이 바로 홈스쿨 현장입니다. 지금도 노력하지만 할수만 있으면 쉽게 가려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일 중심으로 사는 게 편했고 이제 아이들이 커서 얼마 안있으면 독립시킬 준비를 하고 있던 저에게 가장 저를 작아지게 하는 어려움이에요. 하지만 후엔 이것이 가장 큰 간증거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예전 하늘소리 오케스트라에서 새롭게 홈스쿨을 시작하시게 되었다며 인사를 나누게 되어 얼굴을 익혔었던 송병석 선생님을 만나보았습니다. 내려가셨다던 이야기는 다른 분들을 통해 들었었으나 와서 만나보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홈스쿨러 공동체(보나콤처럼 삶을 공유하는 그런 공동체가 아니라 도란 도란 모여살며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일산의 헤이리마을 같은)에 대한 생각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내용에는 싣지 않았지만 집을 짓는 사람으로써 얼마든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 서울경기 외곽지역의 저렴한 땅을 사서 큰 돈 들이지 않고 저렴하게(생각보다 매우 적은)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결국 누군가 시작을 해야하고 실제로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나는 것은 아빠의 직장통근 문제를 비롯 재정문제등 여러 제약들이 있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홈스쿨러들이 동경하는 일이라 정말로 그런 동네 하나쯤은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홈스쿨을 하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국,영 수 중심의 공교육으로 아이들의 인의예지덕체를 기대 할수 없었고 인의예지덕체 모두를 겸비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와 고민 했습니다. 섬기던 일산사랑의교회 사모님으로 부터 목동 제자교회에서 우리나라 최초 홈스쿨 컨퍼런스에(2003년 12월) 참석 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참석하여 홈스쿨을 알게 되었고 공교육으로 할수없는 교육에 대한 대안을 제시 받고 저에게도 한번 해보자고 이야기 했지만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 여건상 제도권밖 교육으로 성공 할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나로서는 안된다고 단호이 반대했었지요.그대신 방과후 학원등 사교육에서의 교육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공부하며 홈스쿨을 응용하여 학교 교육을 받았고 그 노력으로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초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칠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홈스쿨의 결과물이 나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홈스쿨에 대한 관심과 도전이 생기게 되었고요. 결정적 계기는2007년 2월 분당 기쁨의교회 홈스쿨 컨퍼런스 마지막 날 참석한 아내를 픽업하기 위해 갔다가 처음으로 컨퍼런스 강의를 2시간 가량 듣게 되었고 당시 강사님으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아이들의 재능을 가장 행복해하며 잘 할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냐는 질문을 듣게 되었어요. 그때 하나님의 비전을 향한 아이들은 분명하고도 확실한 목표을 이뤄가며 살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홈스쿨이라 확신하게 되었었죠.
홈스쿨을 시작하시고 얼마 안되어 갑작스레 보나콤으로 내려오셨는데 계기는?
저희 부부는 2003년 일본 유학중 만나 결혼과 신앙생활을 다시 하며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체험하게 되었어요. 그 후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이 다 자라 분가 하고 나면 우리 부부의 재산을 정리하여 선교사님을 돕는 일로 평신도 사역을 꿈꾸게 되었고요. 그리고 홈스쿨을 하게 되면서 공동체와 선교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지금의 공동체가 아니고 홈스쿨러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였지요. 제가 전원 주택을 시공하고 설계하는 회사에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원생활, 귀농에 대한 막연한 꿈과 더 늦기 전에 결정을 내려서 가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그러던 중 교회 선교훈련을 받고 계시던 어떤 집사님이 저희에게 집사님이 생각 하고 있는 그러한 공동체 있는데 한번 가보자고 하더군요 .교회,선교,기업,가정,학교가 다 있는 공동체라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그 당시 현장일과 집사람이 시간이 나지 않아 가질 못 했지만 그러한 공동체가 보은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그리고 시간이 일년정도 흘러 저에게 어머님이 보은에 물려 주신 그리 크지 않은 땅이 있어 그곳 땅을 명의 이전 하기위에 갈 기회가 있었어요. 그 곳에 내려가 이전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 가는 중 그 공동체가 생각이 나서 들러 보러 갔었는데 우리 땅에서 9km 정도 밖에 안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핸들을 돌리고 향한 곳이 지금 살게 된 보나콤 입니다.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진 시간이었고 양계장 정리를 마치고 나오신 목사님을 만나보며 이런저런 얘기중에 결정을 보게 되었습니다
건축인테리어라는 직업에서 갑자기 농사일을 하시게 되었는데 힘든 점은 없으신지? 보나콤에서의 생활은 어떠신지?
힘든 점이 많습니다. 우선 체력과 정신적 부담입니다. 오랫동안 인테리어 건축디자이너생활을 하다 보니 자유스런 사고와 구속받지 않는 생활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공동체적인 생활에 충분한 접촉과 함께 교제를 통해 알아가는 과정이 없이 내려 오다 보니 처음 격어 보는 농촌 생활이 그리 녹녹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부모보다 빨리 적응해 가는 듯 했지만 아이들 역시 도심 생활 가운데 생활을 바꾸기가 쉬운 것 같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아이들과 함께하며 어느 정도 해결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내려 오면 부모와 함께 할수 있으리라 생각한 홈스쿨 교육이 공동체의 각자 기업이(현재 양계팀) 바쁘다 보니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녁시간이나 짬짬이 시간을 내야 된다는 마음을 먹지만 일하고 들어와 피곤함에 곯아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거든요. 아이들도 홈스쿨 모임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교재를 접해야 하는데 이 역시 이곳이 멀고 엄마와 제가 시간를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 가능치 않아 힘이 들더군요. 꿈꾸웠던 농촌생활과 공동체적인 삶 모두 꿈이 아닌 현실적인 삶으로 바꾸며 살아가야 하는 과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분량이 좀 되어 두편에 걸쳐서 두서없이 올렸습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공동체가 있지만 실제 삶을 공유하는 이런 공동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방문한 김에 보나콤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함께 몇몇 분의 인터뷰와 아이들의 인터뷰를 곁들였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먹거리가 훼손된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창조질서 아래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낼 뿐 아니라 이것을 선교의 도구로도 사용하는 보나콤이 부르더호프,떼제등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공동체들처럼 튼실한 신앙공동체로 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