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선곡을 하는가
“부름 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표준새번역; 마 22:14).”
나는 위 말씀을 이용해 이렇게 말하고 싶은 적이 많았다.
“부를만한 곡은 많으나, 뽑힌 곡은 적다....!”
이미 2004년에 ‘선곡의 어려움’이란 제목으로 ‘매일 드리는 제사’ 글을 쓴 바 있는데,
지금 이 글도 아마 거의 비슷한 맥락이 될 것 같다. 음악 사역자에게 있어서 선곡은 사실 일상적인 일이다.
매 주 교회 예배는 물론, 소그룹 모임과 공연, 방송, 음반 제작 등등 선곡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음악 사역자에게 선곡은 출근하는 회사원이 매일 아침 어떤 넥타이가 어울릴까 고르거나,
오늘 점심은 어떤 것을 먹어야 하나 고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선, 교회에서 회중 예배를 인도할 예배 사역자는 자신에게 맞는 넥타이를 고르듯이 선곡할 수 없다는
제한에 부딪힌다. 그렇다고, 목회자나 회중들에게 어울리는 넥타이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께 어울리는(성경에 기록된 표현으로는 ‘합당한’) 넥타이를 골라 드려야 한다.
그렇다면, 목사님이나 회중이나 인도자 자신보다 하나님의 취향을 알아야 그분께 합당한 넥타이를
골라 드릴 수 있다.
‘80년대 초중반에 몇몇 선교단체와 큰 교회에서 자체 찬양집을 출판하곤 했었는데,
원래 자기 단체들을 위한 곡들을 100~200곡 정도 번역 또는 창작하여 선곡한 그 찬양집들은
온 교계에 널리 환영받으면서 이 땅의 찬양의 부흥을 일으켰었다.
지금처럼 카피할 음원도 거의 없고 제대로 된 악보도 없고 곡 수도 다소 적은 그 당시 찬양집에서는
선곡할 곡들의 비율이 매우 높았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예배의 편의’를 위해 축소복사를 할 필요가 없는 미니 악보들의 찬양집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1000곡이 넘게 실린 레파토리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참고할 음반과 원곡 악보들도 넘쳐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점점 더 선곡할 곡들의 비율이 점점 낮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
음반이나 공연용 선곡은 회중 예배의 경우와는 좀 다를 수 있다.
아티스트의 음악성과 특징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곡들도 선곡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위한 선곡을 해야 한다는 원칙은 적용된다.
위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님께선 많은 ‘후보들’을 부르시고 청하신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뜻에 합당한 자들만 최종적으로 선택하신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후보에 들었다고 안심하거나 교만하면 안 된다.
기름 부음 받은 사울 왕도 타락해서 멸망했으며,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이었던 가룟 유다도
그 직분을 빼앗겼다. 마치 1000곡이나 되는 찬양집에 실렸지만 한 번도 선곡되지 못한 몇몇 곡들처럼,
아직도 많은 사역자들이 후보에 만족하며 사역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주님께서 나를 그분의 사역의 도구로 늘 선택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부를 곡들을 조심스레 선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