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경주 남산 불교유적 답사
2011년 3월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부산분원 관음사 백팔고찰순례단
경주 남산은 불국토 (佛國土)를 염원한 신라 백성(百姓)들의 땅위의 부처님 나라이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조선 정조시대 문장가 유한준(兪漢雋,1732-1811)이 수집가인 김광국(金光國)의 서화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부친 글입니다.
좋은 그림과 글씨를 알므로 사랑하고, 사랑하니까 참으로 볼 줄 알고, 볼 줄 아니 모으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욕망으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에서 위의 글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재해석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즉, "알아야 참으로 보게 된다"라는 뜻의 한문을 만들면, "지즉위진간
(知則爲眞看)"이 될 듯 합니다.
지난 3월 두 번째 일요일(3월 13일), 우리 관음사 <백팔고찰순례단>은 '부처님을 참으로
보기'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하기에, 불교유적 탐방∙연구가이신 임상렬 전 교장
선생님을 초빙하여 경주 남산 불교 유적을 답사하게 되었다.
임상렬 교장 선생님은 여러곳에서 불교유적과 문화에 대하여 강연을 하는데,
금년(2011년) 6월 30일에는 서면 영광도서에서 부산포럼시민강좌로 범종에 대하여
강연이 있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임상렬 전 교장선생님이 준비해온 20페이지 상당의 가이드북입니다.
이날 임교장선생님은 노트북컴퓨터를 버스 TV모니터에 연결하여 파워포인트로 경주로
향하는 버스내에서 이날 답사할 유적지를 1차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설명중에 종교적 가치는 논외로 하더라도, 미술적 가치에 있어서 서양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동양에는 고려 수월관음도가 있는데, 전 세계에 39점이 남아 있는중 우리나라에는 최근에
사온 2점을 합하여 6점이 있고 세계 3대 박물관중 하나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2점
있고 나머지는 전부 일본에 있다고 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18세기 전반인 숙종대부터 영조대에 걸쳐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리산
유역을 근거지로 활동한 당대 불화의 일인자인 의겸파 金魚(불화나 불상을 조성하는 무리
들의 우두머리)인 의겸(義謙: 1690∼1760년경)의 불화(국보302호 청곡사 영산회괘불,
보물1204호 의겸등필 수월관음도, 보물1267호 안국사 영산회괘불, 보물1269호 개암사
영산회괘불, 보물1273호 해인사 영산회상도, 보물1317호 운흥사 괘불 등이 모두 의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아닌 유일한 불상인 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普薩坐像)이 인근
대신동 <내원정사>에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윤왕좌(輪王坐: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자세)라는 특이한 자세의 부산
대신동 내원정사의 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普薩坐像)
▲ 칠불암에 오르기 전 경주 남산 안내도 앞에서 설명중인 임상렬 전 교장 선생님
▲ 칠불암 마애불상군(七佛庵 磨崖佛像群) 국보 제312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남산동
가파른 산비탈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서 동쪽과 북쪽으로 높이 4m 가량되는 돌축대를 쌓아
불단을 만들고 이 위에 사방불(四方佛)을 모셨으며, 1.74m의 간격을 두고 뒤쪽의 병풍바위
에는 삼존불(三尊佛)을 새겼다.
삼존불은 중앙에 여래좌상을 두고 좌우에는 협시보살입상을 배치하였다. 화려한 연꽃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
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고
(항마촉지인)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 협시보살은 크기가 같으며, 온몸을 부드럽게 휘감고 있는 옷을 입고 있다. 삼존불
모두 당당한 체구이며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다른 바위 4면에 새긴 사방불도 화사하게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방향에
따라 손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원래 불상이 들어 앉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모셨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도 이곳 주변
에서 당시의 구조물을 짐작케 하는 기와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조각기법 및 양식적 특징
으로 미루어 보아 이 칠불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 위 사진들은 마애불상군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 보았다.
▲사진의 산봉우리 쪽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향해 경사진 산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神仙庵磨崖菩薩半跏像) 보물 제199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남산동
이 불상은 칠불암(七佛庵) 위에 곧바로 선 절벽 꼭대기에 새겨져 있어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이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어 보살상(菩薩像)임을 알 수 있다.
옷자락으로 덮여 있는 의자 위에 유희좌(遊戱坐)로 앉아 한 손에 꽃을 들고 한 손은 설법인
(說法印)을 표시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은 마치 구름 위의 세계에서 중생(衆生)을 굽어
보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있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갖춘 광배자체를 감실(龕室)로
표현했기 때문에 보살상(菩薩像)이 매우 두드러져 보인다.
불상 높이는 1.4m이며,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인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 유희좌(遊戱坐) : 결가부좌의 자세에서 한쪽다리를 풀어 대좌 밑으로 내린 자세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참배후 다시 칠불암쪽으로 내려오면서 전망 좋은 산등선에서
경주시 일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칠불암 암자
▲
▲위 사진은 임교장 선생님이 나누어 준 가이드북을 촬영한 것입니다.
▼ 경주 남산동 동ㆍ서 삼층석탑 (慶州 南山洞 東ㆍ西 三層石塔) 보물 제124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남산동
이 탑은 통일 신라시대인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두탑이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높이는 동탑이 7.04m, 서탑이
5.85m로 차이가 있다.
▲위 서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몸돌을 쌓은 일반형이다. 윗기단의 몸체에 팔부신중상
을 돋을 새김한 것이 독특하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단순한 장식
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을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다.
▲위 동탑은 3층인데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 양식으로,
바닥돌 위에 돌덩이 여덟 개로 어긋 물리게 기단을 쌓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을 얹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처마밑과 지붕 위의 받침이 각각 5단이다.
오전 답사를 마치고 예약된 식당으로 이동합니다.
<부산맛집기행> 회원협력업체인 여기서 점심공양을 합니다.
불가피하게 사찰에서 공양을 할 수 없을 경우 다음 카페 <부산맛집기행>에서 다녀오신
분들의 맛집후기를 참조하여 식당을 선정하는 편입니다.
▲오늘의 메뉴는 <순두부정식>입니다.
▲메뉴판입니다. 혹 여기에 들리실 경우에 참조하시라고.......
▲ 자외선소독기 위에 <부산맛집기행> 회원협력업체임을 표시하는
액자가 보입니다.
점심공양후 부처곡으로 이동합니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慶州 南山 佛谷 磨崖如來坐像)보물 제198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자연암반에 감실을 파고 마련한 이 여래좌상은 단정한 자세에 상현좌를 이루고 하의는
얕게 새겼다. 양 어깨에 걸쳐입은 법의는 아래로 흘러 내려 옷자락이 물결무늬 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시대 말기의
제작으로 판단되는데 이 불상으로 해서 이 계곡의 이름을 부처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석수장이가 돌을 쪼아 부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돌 속에 있는 부처님을 찾아 돌을쪼고 있다"고
시인 청마는 노래 했다.
이 부처님은 거의 일년내내 햇빛을 받지 못하는데, 동짓날 해뜨면 그 햇살이 부처님
像顔에 비로소 비친다는 할매 부처님은 정남에서 30도 치우쳐 앉아 계신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작고하신 고청 윤경렬 선생님은 나침판 들고 동짓날 살에는 새벽에
긴수건으로 두 귀를 두르고 아내 순이와 함께 이곳에서 그 장면을 보시고 감격의
희열을 느끼신점을 그의 저서 "마지막 신라인 윤경렬"에서 밝히고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기에는 이 편한 할매부처에 반하여 텐트를 치고 밤을 세웠다는
일본인도 있었다고 쓰여 있다.
▲ 출렁이는 대좌는 바다요, 둥실하게 놓인 두 무릎은 언덕이요,
사각으로 우뚝 솟은 몸체는 바위산이라 그 위의 둥근 얼굴은
솟아오르는 달님이라 느낀다.
다소곳이 숙인 둥근 얼굴과 작은 육계가 솟아있는 큰 머리하며 알맞게 생긴코와 초승달
같은 눈섭아래로 명상에 잠겨있는 두 눈이 그려집니다. 두 뺨을 형성하며 흘러내린 부드러운
곡면은 두툼한 입술에 잔잔한 웃음이 배어나오는 듯 합니다.
머리부분에 남아있는 붉은 색은 채색을 한 흔적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와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慶州 南山 塔谷 磨崖佛像群) 보물 제201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이 일대는 통일신라 시대의 신인사란 절이 있었던 곳이다. 9m나 되는 사각형의 커다란
바위위에 마애조상군의 만다라적인 조각이 회화적으로 묘사된 것으로 신인종(神印宗)
계통의 사찰 의 조각임을 알 수 있다.
남쪽의 큰 암석에는 목조 건물의 유구가 남아 있고, 폐탑이 흩어져 있어 남면의 불상을
주존으로 하는 남향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남면에는 삼존불과 독립된 보살상이 있고,
동면에는 본존과 보살 그리고 비천상이 있으며 그 옆으로 여래상과 보살상이 있다.
그러나 모두 마멸이 심하여 자세한 조각수법은 알 수 없다. 그리고 북면에는 9층과 7층의
쌍탑이 있으며 서면에는 보리수와 여래상이 있다. 이렇게 불상, 비천, 보살, 탑 등 화려한
조각의 만다라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특이한 것이다.
▲ 북면 동편의 탑은 9층이고, 이 탑이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서편의 탑은 7층입니다.
탑의 각 지붕 가에는 풍탁이 달려있고, 각 층마다 두 개의 창문이 열려 있는데 열린 쪽을
더 깊게 새겨서 탑의 입체감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가운데는 연화좌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석가모니 부처님 머리 위에는 천개가 떠서
햇빛을 가려주고, 천개 위로 하늘 여인 두 사람이 나르고 있습니다.
▲ 동면에는 두 불상과 그 둘레에 하늘을 나는 듯한 천인 상이 여러 구 보인다. 두 부처님
은 선명하지만 비천상은 마모가 심해 있는 듯 없는 듯합니다. 두 불상 중 본존불은
아미타여래로 연화대좌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원형 두광을 하고 계십니다. 본존불
왼쪽에 있는 협시보살은 머리에는 보관을 썼고 양 어깨에는 천의가 덮혀져 있으며
두 손을 합장하고 본존불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 동면 두 번째 바위 면에는 보리수로 보이는 두 그루의 나무 아래에서 결가부좌로
앉아 선정에 든 스님이 새겨져 있습니다.
▲ 남면 감실의 삼존불 / 남면 바위 면에 얕은 감실을 파고, 그 안에 세 불상을 새겼는데
본존불은 큰 연화대좌위에 앉아있고, 양쪽 협시보살은 모두 합장을 하고, 본존불을 향하여
고개를 바싹 가까이하고 있습니다. 동쪽에는 보리수가 있고 그늘 아래는 삼존불이 자리에
같이 앉아서 정답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는 드물다고 합니다.
삼존불 가운데 본존상은 큰 연꽃 위에 앉아 있는데 옷자락이 무릎 아래로 물결치는 듯
주름이 잡혀있다. 이러한 옷자락을 상현좌 라고 합니다. 오른쪽 협시보살은 연꽃위에 앉아
합장을 하고 머리를 본존불을 향하여 돌리고 있어서 두광도 타원형으로 조각이 되어 있다.
이러한 기법은 변화를 주면서도 얇은 조각에 입체적인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왼쪽 협시보살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합장을 하고 본존불 가까이에 앉아 있습니다.
▲ 남면 입체여래상 / 석조여래입상은 몸통과 다리부분이 다른 돌로 만들어져 서 있다.
대석에는 발만 새겨져 있고 발목 윗부분만 하나의 돌로 된 불상이다.몸체는 대석의 홈에
끼워 넣었고 두광과 얼굴일부가 손상되었으나 볼록한 가슴에 잘록한 허리로 보아 여성
처럼 보입니다. 손모양은 좌상에만 나타나는 항마촉지인을 입상에 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데 왼손을 배에 대고 있기 때문에 출산을 도와주는 안산불이라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서면 여래좌상 / 부처님 한 분과 비천 하나가 새겨져 있습니다 양 옆에는 협시보살
대신에 오른 편에는 능수버들이 있고 왼편에는 대나무가 있는 그늘 아래 부처님이 큰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머리위에는 육계가 있고 귀는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으며
눈과 코, 입술이 이 바위 새겨진 어느 불상보다도 근엄한 표정입니다. 머리 뒤에는 보주형
으로 된 두광이 보입니다 부처님의 머리위에는 비천이 피리를 불면서 옆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있으며, 이 면은 동방유리광의 세계이고 부처님은 약사여래라고 생각 됩니다.
▲보리사 계단에서 강설중입니다.
▲위 불상 명칭도는 임교장 선생님이 나누어 준 가이드북을 촬영한 것입니다.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 136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이곳에 남아 있는 이 석불좌상은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전한 불상이다. 8각의 연화대좌에 앉아 있으며 별도로
마련된 광배에는 화불과 보상화 그리고 당초무늬로 장식되어 화려하며 특히 광배 뒷면에는
약사여래상을 가는 선으로 조각하였는데 이러한 형식은 그 예가 드물다.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 후반의 제작으로 보이며 전체높이 4.36m 불상높이 2.44m의 대작이다.
▲항마촉지인을 하고 8각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석가모니불.
별도로 마련된 광배에는 화불과 보상화 그리고 당초무늬로 장식되어 화려하다. 석불 주위
를 돌면서 부처님의 얼굴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 석불의 얼굴 속에서 근엄함과 자비
로움, 그리고 친근함 등을 두루 느낄 수 있습니다. 옷자락의 흐름이나 화려한 광배 등
뒤어난 조각은 통일신라 예술의 향기를 보여준다.
▲광배 뒷면에 가는 선으로 조각된 동방유리광세계 약사여래불.
골짜기 이름은 미륵곡! 방향으로 보면 서쪽을 보므로 아미타불!
가는 선으로 조각된 부처는 동쪽을 보므로 약사여래불!
▲ 능지탑(陵只塔)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이 탑은 예로부터 능시탑 또는 연화탑이라 불려 왔는데 이 주변에서는 문무왕릉 비의
일부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문무왕이 "임종 후 10일 내에 庫門 밖
뜰에서 화장하라"하고 "상례의 제도를 검약하게 하라"고 유언하였으며 이곳이 사천왕사,
선덕여왕릉, 신문왕릉 등에 이웃한 자리인 것으로 보아 문무대왕의 화장지로 추정할 수
있다. 당초에는 사방에 소조대불을 모시고 감실을 세웠을 가능성도 있으나, 기단 사방에
12지신상을 세우고 연화문 석재로 쌓아 올린 오층 석탑으로 추정된다.
언덕모양으로 남아있던 것을 1969년부터 4차례에 걸쳐 발굴하고 1979년 11월 29일 현재의
모습으로 준공하였다. 발굴 과정에서, 기단 네 면 중앙에서 소조불상 편들이 발견되었고
12지신상들도 발견되었다.
▼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보물 제63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동
이 세 석불은 이곳 남산 기슭에 흩어져 누워 있던 것을 1923년에 지금의 자리에 모아서
세운 것이다. 중앙 여래상은 높이 2.66m 좌우의 보살상은 높이 2.3m이다. 특히 조각솜씨가
뛰어나 다정한 얼굴과 몸 등이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인
신비가 풍기고 있다.
풍만한 사각형의 얼굴,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진 뺨 등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을 간직한 이 석불들은 7세기경 신라 불상 조각의 대표적인 것이다.
▲왼쪽의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보병(寶甁)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중앙의 본존불은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표면이 매끄럽게 표현되었다.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을 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
(佛性)을 표현하고 있다. 목이 표현되지 않은 원통형의 체구에 손을 큼직하게 조각하였
는데, 왼손은 여원인(與願印),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옷은 불상을 전체적으로 강직해 보이게 하지만, 어린아이같은 표정과 체구
등으로 오히려 따뜻한 생명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의 보살 역시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묘사하고 있는데, 무겁게 처리된 신체는
굵은 목걸이와 구슬장식으로 발목까지 치장하였다.
▼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아래 망월사가 있다.
▲ 망월사 연화탑(蓮花塔) / 각층의 옥개석 층급받침에 연화무늬가 나란히 3개씩 붙어 있어
연화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탑은 연당이라는 작은 연못 한 가운데 있는데, 이 연못은
특이하게도 9각형으로 되어 있다.
▲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불교유적 탐방 연구가이신 임상열 교장선생님이 노트북
컴퓨터를 TV모니터에 연결하여 파워포인트로 불상에 대하여 설명하고 계십니다.
_()_
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