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살 배기가 그린 자화상?
망태 할아버지, 소운/박목철
흔히 떼쓰는 아이들을 어를 때 쓰는 말로 "망태 할아버지 온다"라는 말이 있다.
망태 할아버지란 말은 한국 전쟁 즈음해서 생긴 말이 아닌가 생각되니 그리 오래된 사연을 가진 말이 아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이라 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던 시절 커다란 광주리를 메고 다니며 갈고리로 휴지나
고물을 찍어 광주리에 담던 고물 수집상이 소위 말하는 망태 아저씨인데, 젊은 청장년이 대부분이던 그들의
호칭이 왜 할아버지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남루한 복장에 커다란 광주리를 메고 다니며
겁주는 갈고리로 고물을 찍어 어깨 너머로 던져 넣던 망태 아저씨는 아이들을 겁주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망태 아저씨가 망태 할아버지로 명칭이 바뀔 때쯤 겁주던 갈고리를 쓰지 못하게 하고 대신 집게를 쓰게 했다-
망태 할아버지 이전에 아이들을 겁주던 단어는 "아비 온다." 였다.
떼쓰는 아이를 달래다 듣지 않으면 "너 말 안 들으면 아비가 와서 잡아간다." 였고 대게의 경우 아이들은 겁을
먹고 때 쓰기를 멈추거나 말을 듣게 마련이었다. 망태 할아버지는 실체가 있지만 "아비가 뭐야?" 묻는다면,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 아비였던 셈이지만, 그래도 아비가 뭐냐고 따져 묻는 아이는
없었고 오랫동안 아비는 무서운 존재로 아이들의 떼쓰기를 멈추는 구실을 충분히 해 온 셈이다.
아비가 뭔가? 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여러 사례를 찾아보았지만, 딱히 와닿은 정의가 없었다.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한 존재를 역사에서 찾는다면,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가 떠올라 왜구에 대한 여러 기록을
찾아보았지만, 아비란 단어를 왜구와 연결할 만한 연결고리가 없었다.
옛 아버지들의 존재가 무서워 아비 온다는 것에서 유래 된 말이라는 설도 있지만, 아무리 그렇기로는 제 아비를
공포의 대상으로 아이들을 얼렀을 것으로는 무리가 있고, 커다란 구렁이를 업이라 하는데 아비는 업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옛 초가집이나 기와집에 살던 구렁이는 집을
지키는 수호신적 존재로 적대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었으니 말이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임진왜란 때 조선인의 코를 베어오라는 풍신수길의 명에 따라 왜군들은 전쟁에서 사살한
군인들의 코를 베어야 하지만 공을 과장하고자 조선인을 만나면 무조건 코를 베어 가는 통에 졸지에 코를 잘린
조선인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고, 임란 초기에 베던 귀 耳)와 임란 후기에 코
鼻)코를 합쳐 귀이코비란 말에서 아비란 어원이 생겼다는 그럴듯한 설명이 있었지만 일본의 만행에 대한 분노
로 심정적 동조는 가지만 역시 설說일 것이다.
-일본 교토에는 소위 귀 무덤이라는 게 있는 데 에도 시대 유학자 林羅山이라는 자가 코 무덤은 너무 잔인하다
하여 귀 무덤으로 바꿔 부르자고 하여 귀 무덤으로 불리는 10만 개 정도의 코가 묻힌 무덤이 있다-
일본에도 아이들을 어르는 아비란 말과 비슷한 말이 전해 오고 있다.
소위 -모쿠리 고쿠리- 라는 말인데, "모쿠리 고쿠리 온다" 라 하면 아이들이 겁을 먹고 때를 멈춘다고 한다.
모쿠리 고쿠리는 몽골군과 고려군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 정벌을 위해 일본에 상륙한 여몽군이 너무 잔인하게
일본인을 다룬 탓에 그 공포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워지지 않고 유전되어 계승되어 온 것이다.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왜구뿐만 아니라 여진구나 신라구에 대한 공포는 일본의 기록에 남아 있다.
서로의 아픈 기억을 후세에 물려 적대감을 심기보다는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지혜를 찾았으면 좋겠다.
공포의 전래는 멈추어야지,
다섯 살배기 손주가 할아버지와 자고 싶다고 안달을 하는 게 딱해서 금요일 만 데리고 자기로 했다.
날짜에 대한 개념이 없는 녀석은 "오늘 금요일이야?"를 매일 되묻고는 한다.
녀석 데리고 자려니 밤이 늦어도 영 자려고를 하지 않고 놀자고 하는 통에 난감해서 겁주기를 해 보았다.
"대한아, 밤에 잠 안 자고 떠들면 망태 할아버지가 잡으러 와" 녀석 망태 할아버지가 뭐야 묻지를 않고 대뜸
휴대폰을 들더니 음성인식 기능으로 "망태 할아버지"를 찾아 부지런히 망태의 존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흘깃 곁눈으로 보니 무서운 망태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잡아 가둔 그림이나 겁주기 좋은 영상들이 여럿 올라
있었다. "할아버지 이 형은 왜 여기 매달려 있어? 로 부터 왜? 왜? 가 이어졌고, 할배의 과장된 설명에 눈망울이
점점 커지며 겁을 먹은 기색이 역력하더니, "할아버지 대한이 자면 망태 할아버지 안 오지?'
묻고는 눈을 감고 한동안 뒤척이며 잠을 청하는 듯 싶더니 잠시 후 가볍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녀석 혹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 봉제 인형을 동생이라고 한참을 가지고 놀다 망태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는 잠들었다.
지금은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코로나에서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지구촌 한 곳에서 발생한 불행은 순식간에 국경을 넘고, 결코 나 혼자만 행복할 수는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웃에게 준 아픔은 잊지 않고 반성도 해야 하지만 적대감을 대물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비 온다. 거나, 망태 할아버지 온다. 말고 긍정적일 말로 애를 달래는 방법은 없을까?
밤은 깊어 오는데 잠이 영 올 것 같지 않다. 이러다 망태 할아버지나 아비가 날 잡아간다고 할 것 같다.
첫댓글 사진 속 대한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한번쯤 음미해 볼 주제를
맛깔나게 풀어내시는 필력이 역시 대단하십니다.
''아비'의 어원에 대해 저도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혹시 '도깨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찾아보니 '도깨비=돗+애비'라는 해석도 있더군요.
확실치도 않은데 공연히 어지러움만 더해드린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푸른꿈님 반갑습니다.
따뜻한 댓글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도깨비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말씀 흥미있는 말씀입니다.
더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조언이십니다.
우리가 일상에 흔히 쓰는 말 중에도 뜻이 아리숭한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알고 있는 지식은 나누는 게 좋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 종식 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건강에 유하시고 힘든 시기 잘 넘기시기를 바랍니다. 푸른꿈님,
대한이의 귀엽고도 의젓한 모습을 보니, 저도 딸애를
일찍 결혼시켜 손주를 보고싶은 생각이 문득 듭니다.
상기 애들을 겁주기 위해 쓰던 '아비온다.'는 과거에
저희 집에선 부친과 제가 동생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에비'라고 발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즉, "에비, 못써!"
"에비할꺼야" "에비온다!" 그리고 상기 말씀 중,
여몽연합군이 일본에 상륙하여 일본인들을 잔인하게
다루었다고 하셨는데, 사실 神風인 가미가제 때문에
여몽연합함대가 일본에 닿기 전 거의 전멸했다는 기록만
역사책에 나왔으니 이 역시 제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였네요.
코로나 사태가 점차 더 심각해져가는 요즘, 형님
건강 조심하시고 늘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역사상식 풍부한 좋은 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리피터님 간만에 반가운 마음으로 댓글을 접했습니다.
말씀대로 손주는 자식하고는 또 다른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저도 외손주이지만 많이 다름이 더욱 귀엽게 보입니다.
따님 결혼시키시고 이쁜 손주와 행복을 맛보시라 권하고 싶답니다.
일본 정벌은 일본 사무라이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합니다.
단, 규슈일대에 대 타격을 가했지만 육지에 군영지를 세우지 않고
배로 돌아와 숙영을 하는 방법을 택하는 통에 태풍시에 배들이
거의 침몰하는 바람에 살아남은 잔여병력이 육지에 피했다가
반격하는 사무라이들에게 살륙을 당했다고 합니다.
여몽연합군이 하도 잔인하게 살륙을 하는 통에 일본은 공포에 질려
우리의 아비온다 처럼 -모쿠리 고코리 온다- 라는 말과 험악한 인형
도 전해 온다고 합니다.
코로나 백신이라도 얼른 들여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우선은
코로나를 피하는 게 상책이 아닐까 합니다. 리피터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적대감이나 공포감보다 곶감이나 초콜릿으로 회유정책?^^
아, 무서운 망태 할아버지보다 대한이가 좋아하는 할아버지로
유혹하면 금방 말을 들을 것 같은데요.
잠 잘 자면 내일 또 할아버지와 잘 수 있다고 ㅎㅎㅎ
순정님 말씀이 아주 좋은 처방이십니다.
저도 곶감이야기가 떠 올랐답니다.
손주 녀석이 하도 할아버지 만 찾는 통에 딸애가 걱정을 하더군요,
애가 엄마를 좋아해야 하는데, 엄마 싫어 할아버지 만 좋아, 하니
자주 데리고 자면 아주 애와 사이가 멀어질 것 같다고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으로 정해졌지요, ㅎㅎ
순정님 말씀대로 녀석이 좋아하는 것으로 회유 해 볼 생각을 했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글 잘읽고
웃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움이 많으시지요,
건강하시기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