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얻은 것을 자연으로 돌리는 변현단의 토종・순환 농법
송태웅
구례・곡성 지리산학교 교사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정태연의 무쏘는 곡성의 변현단 씨에게 가려고 출발하려는 시동부터 걸리지 않았다. 급기야 때마침 그곳을 들른 다른 활동가의 모닝의 보닛을 열고 배터리를 연결하는 수고 끝에 출발할 수 있었다. 흐린 하늘에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태연은 운전하면서 별의별 노래들을 혼자서 흥얼거렸다. 태연은 지리산학교에서 걷기반을 운영하며 또한 기타반 ‘일파만파’에서 활동하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583D4052D9899704)
곡성군 오곡면 명산리에 산다는 변현단 씨에 대한 사전 정보는 제로였다. 차 안에서 태연에게 변현단 씨가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하며 그와 관련한 몇 권의 책을 썼고 자신은 그 책을 읽어보았다고 했다. 나이 쉰이 넘어서 처음으로 논농사 한 마지기 반을 지어본 것과 텃밭에 고추, 상추, 오이, 호박, 배추를 재배해 본 것이 농사에 관한 경험의 전부인 나는 농사의 대가 앞에서 무릎 꿇고 강의를 듣고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주늑이 조금 들고 있었다.
명산리 마을회관에서 변현단 씨의 집을 물었다. 어떤 아낙네가 아주 친절하게 변현단 씨의 집을 알려주었다. 느낌에 마을사람들과의 관계가 좋구나하는 느낌이 왔다. 변현단 씨의 집은 앞뒤가 대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황토로 벽을 한 네모 반듯한 집이었다. 변현단 씨는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변현단 씨는 웃는 얼굴이 아주 선하게 뵈는 여자였다. 거실의 높다란 서가엔 책들이 빽빽했고 각종 메모와 자료들이 있는 책상엔 이집 주인이 이제 앉았다 일어선 듯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차를 끓여내 오고 알이 작은 사과를 내와 쓱쓱 옷에 닦아 먹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념으로 한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이야기는 거침이 없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3B624452D989D70D)
변현단 씨가 경기도 시흥에서 공동체 연두농장 생활을 마감하고 곡성군 오곡면 명산리로 내려온 것은 2011년 11월 30일이었다. 시흥에서 펼친 공동체 연두농장은 빈민, 기초수급자, 장애자 등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하고 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10가구 25명 정도가 모여서 의식주의 자립을 꾀하였다. 그러나 연두농장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웠던 것은 공동체가 인위적이고 조직적으로 흘러가는 것 때문이었다. 개인이 공동체에 의존하는 경향 때문에 개인의 완전한 자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공동으로 경작하는 땅도 땅주인에게 임대해야 했기 때문에 땅 걱정 없이 지속적으로 공동체를 꾸려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려웠다.
변현단 씨는 연두농장을 해체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었다. 그것은 마을 공동체와 같은 먹고 사는 공동체, 마을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있는 곳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고 싶었다. 그래서 경상도 등의 여러 마을을 알아보았지만 지리산 자락만은 극구 피하려고 했다고 한다. 지리산 자락에는 왠지 ‘머리 큰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 큰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정확히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농사 따위엔 아랑곳없이 산에 들어앉아서 토박이 농민들과는 아무 교류도 없이 도시에서 가져온 자기들만의 문화를 누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마을의 오래된 전통과 마을만의 문화와는 전혀 별개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인 것 같았다.
그의 생각의 핵심은 ‘적게 먹고 적게 쓰자’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펼쳐 나가기에 이 명산마을이 안성맞춤이었다. 명산마을은 15가구 정도가 사는데 들이 넓지 않아 대부분 산 위에 화전을 일구고 사는 빈농이었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지인 6가구와 함께 명산마을에 내려와 먼저 흙부대로 집을 지었다. 지인 5명과 힘을 합쳐 2개월 만에 끝냈다. 30Kg 무게의 흙부대를 나르다가 허리디스크까지 얻어야 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08004152D98A2A04)
그리고 소위 ‘순환농사’를 시작했다. 순환농사라 함은 일체의 외부 투입없이 자연의 힘에 의지하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농사법을 말한다고 한다. 당연히 종자는 토종이어야 하고 풀과 생활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 똥과 오줌으로 퇴비를 만든다. 그러니 자연에서 얻은 것을 고스란히 자연으로 되돌리는 방법이다. 이렇게 논 1,300평, 밭 800평을 일구었다.
또한 전국의 토종 종자 320점을 발굴, 수집해서 전국에 나누는 일을 했다. 명산마을의 4가구에 각각 토종고추 500주를 분양해서 무퇴비로 재배했더니 맛도 좋고 탄저병도 늦게 왔다고 했다. 토종 씨앗으로 순환의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 고유한 형질이 발현되고 종 고유의 힘으로 성장하여 몹시 야물고 감자 같은 것은 매우 굵다고 한다.
이렇게 힘을 다하여 수집하고 증식한 토종 씨앗 나눔행사를 한다고 한다. 2014년 1월 18일 오후 1시 곡성레저문화센터에서 토종 종자에 대한 강연과 나눔행사를 하는데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와서 토종 종자를 나누어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틈나는 대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책으로 썼다. 지금까지 4권의 책이 나왔는데 연두, 자립인간,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소박한 미래 등이 그것이다. 책을 한 권 쯤 얻어오려고 했는데 같이 모여 단식을 하는 벗들이 다 가져가 버렸다고 해서 조금 서운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6C724552D98A4A0B)
보드판에는 재배할 작물들의 이름과 이러저러한 잡지에 보낼 원고마감 기일로 빼곡했다. 그는 올해 대마 농사까지 지었단다. 깜짝 놀라 그거 향정신성식물 아니냐고 물었더니 관청에 다 신고하고 재배했단다. 대마는 의생활과 응급처치의 의약품으로 시골에서는 꼭 재배해야할 작물이라고 했다. 그는 양귀비까지 재배하려 했지만 그것은 한 주당 25만 원의 벌금이 기다리고 있어서 포기했다고 한다. 농사경력 11년의 그의 머릿속에는 농사로 부활할 새로운 농촌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농사에 저술에 단식에 태극권까지 하니 적적할 틈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아직 혼자인가 물어보니 세상을 바꾸려면 혼자인 것이 좋다는 답이 성큼 돌아왔다. 그럼 인구도 줄고 노령화에 기여하는 거 아니냐고 되물으니 노인들도 엄연히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씩씩한 답이 돌아왔다. 매인 데 없이 자유로워야 잘못된 세상에 저항할 수 있고 세상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 결혼하게 되면 자본주의의 굴레에 매이게 될 가능성이 크고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의 모순을 두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30C54152D98A8801)
돌아올 시간이 돼서 마당에 나오니 대숲에 아직 녹지 않은 눈더미로부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서늘하게 사는구나. 서늘한 냉기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누그러지지 않게 단련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술은 좀 하시는가 물어보니 담배는 3년 전에 끊었지만 술은 잘 마신다고 했다. 언제 구례에 놀러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놓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눈발이 희끗희끗 날렸다. 태연은 또 혼자서 출발할 때의 노래들을 끝내려는 듯 혼자 흥얼거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119B4452D98AB004)
첫댓글 반갑습니다.
잘 풀어내시고, 잘 묘사하셨내요.
제가 가 보고 온 그데로 눈에 선합니다.
변현단님에 사는 곳과 모습이 님의 글로 또렸해져 옵니다.
봉사의 길 희생의 길이 아닐런지요.
부디 님과 지기님도 건강하시길...
사실이 아닌 것도 있는데요...추측도 작용한 듯...
허리디스크 한방에 낫는 병이 아닌데, 건강 유의하세요. 농사도 엄청 크게 지으시네요. 힘드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