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백을 읽는 사람은 가슴이 따스하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책장을 넘기다
김석이
영혼까지 끌어모은 내용들이 쌓여갈 때
진정성의 두께가 도서관을 꽉 채우고
시대를 아우르면서 고전으로 거듭난다
오늘의 침을 묻혀 꼼꼼하게 읽으면서
닫혀있는 편견의 문 비스듬히 열어보며
내 안에 숨겨놓았던 아집들을 꺼내본다
딱딱해진 껍질들을 두드리고 주무르며
삶이라는 갈피마다 입김을 불어넣어
따스한 여백 위에다 수정하는 참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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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시경, 서경과 진나라 역사서를 제외한 모든 서적 특히 사상서, 문화 서적 등을 불태우도록 했던 분서(焚書)와 이보다 더 과장된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상가 460여 명을 생매장하며 탄압했다던 갱유(坑儒)가 합쳐져 분서갱유가 되면서 그에 대한 “폭군, 탄압”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러한 와중에 책을 뺏기지 않으려고 벽을 파서 보관하기도 했는가 하면 통째로 암기하기도 했다니 역사에서 한순간 권력을 쥔 자가 시대를 통째로 도륙하는 ‘발자국’이 얼마나 깊이 파이는지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한때 필자는 도서관만 가면 배설의 욕구를 느꼈다. 더러 그런 사람이 또 있다고 들었는데 도서관에 빽빽이 꽂힌 ‘진정성의 두께’를 소화해야 하는 지식과 정보 덩어리들에 대한 부담이 소화기(消化器)를 자극했는지 모르겠다. 또 지금은 ‘시대를 아우르면서’ 살아가야 하는 소시민이자 소시인(小詩人)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현실과 무엇으로 ‘거듭’ 나는지 자문만 하는 피지배자로서의 ‘발자국’이 답답할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가 책장 한 장과 다름없다면 ‘진정서의 두께’가 서로 다를 뿐 우리는 각자 한 권의 책이다. 시인은 자백하듯 타인을 ‘오늘의 침을 묻혀 꼼꼼하게 읽으면서’, 결국 ‘닫혀있는 편견의 문’을 ‘비스듬히 열어’ 자신의 ‘아집’을 꺼내는 성찰을 이끌어 낸다.
시인이 말하는 ‘딱딱해진 껍질’은 배격, 반항, 저항, 부정, 거부 등으로 외세의 진입이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책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하지만 이 ‘껍질’의 ‘두께’는 다 우리 자신한테 달린 것일지 모르겠다. 또 시인은 ‘두드리고 주무르며’ ‘삶이라는 갈피마다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온몸의 근육과 현실을 바라보는 두 눈이 너무 경직되지 않도록 부드럽게 ‘책장을 넘기는’ 접근법을 택했다. 우리가 앞으로 마저 걸어가야 할 ‘발자국’을 바르게 딛는 곳이 ‘따스한 여백’이라고 긍정의 행보로 갈무리하는 것 또한 언 강이 녹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 여백을 읽는 사람은 가슴이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