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명은 생명사상의 입장을 토대로 자신의 사상을 이야기한다. 양수명에 따르면 생명은 가장 근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어떠한 것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작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생명은 본능에 중시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으로 허위 또한 없다. 그래서 본능의 감정을 억압하는 것은 생명을 중시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생명 표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생기’가 넘치는 생명이 가득한 철학을 중시한다.
양수명은 인심, 마음을 중시하는 인심관이 대표적이다. 인심은 인간의 심장과 의식작용을 의미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양수명은 인심을 선험적으로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것이라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심은 생명의 활동 능력으로 진화의 과정에서 형성되며 끊임없이 발전해 온 것이다.
그는 이 인심을 본능, 이지, 이성 등으로 구분한다. 그에 의하면 본능과 이지, 이성의 뿌리는 같지만 역할은 다르며 본능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이지와 이성은 인위적인 것이다. 먼저 본능은 조건반사로 자동적인 것으로 이지로 향하는 단서이다. 이지는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본능적인 것보단 주위의 도구를 활용하거나 말, 글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강아지가 사료를 보면 침을 흘리거나 허겁지겁 먹는 것은 본능과 같다. 하지만 버튼을 누르면 간식이 나오는 장난감을 통해 버튼을 눌러 간식을 얻는 것은 본능이 아닌 버튼을 누르면 간식이 나온다는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맛있는 것을 먹는 삶의 질을 높이는 행동일 것이다. 이지는 인간의 경우에는 삶의 질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생활로부터 추상적인 세계를 설정하며 삶의 폭을 확장시킨다. 그렇다면 같은 인위적인 이성과 이지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이성과 이지는 본능이 아닌 두뇌의 활동으로 사유의 영역이다. 이지는 주로 인식의 측면이며 이성은 도덕이나 종교의 측면이다. 물론 이지와 이성은 늘 함께 있는 것이다.
인심은 비록 후천적으로 형성되지만, 인심의 거처인 몸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가진다. 즉, 몸으로부터 형성이 되었을지라도 형성된 이후에는 몸에 대해 반작용하며 주재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특히 양수명은 인심의 자율적, 주동적, 영활한 자각 능동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각 능동성이란 무엇일까? 인심은 사물을 주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마음은 몸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고 몸을 지도할 수 있다. 양수명은 이러한 인심의 특징을 자각 능동성이라 한다. 그는 자각 능동성의 주요구성 요소로 주동성, 영활성, 계획성 등을 이야기한다. 먼저 주동성은 마음을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생명 자체에 내재한 활발한 생동의 힘으로 여기고 독창적인 새로움을 도출하는 원천으로 생각한다. 영활성은 마음을 오묘하게 운용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규칙을 따르지 않고 당면한 문제를 교묘하게 해결하는 것으로 활동력에 강할수록 더 영활 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계획성은 마음의 자각 능동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계획은 다가오진 않았지만 해야 하는 것으로 미리 정할 수 없는 영활성과 구분된다. 구체적인 현장에서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계획이라는 것이 한계를 드러내지만, 자연의 원리와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면에 기여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양수명은 인간의 마음인 인심이 후천적인 것으로 주어지지만 주동성, 영활성, 계획성을 가지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의 마음은 후천적인 것인가? 인심의 기원문제는 관념론과 유물론으로 다른 입장을 보이는데 인심을 유물론의 관점으로 본 양수명과 달리 나는 관념론자들과 같이 선험적인 관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양수명의 이론처럼 마음이 몸에 지배당하는 것도 아니고 몸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점, 마음에 주동성, 영활성, 계획성이 있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면서 각자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가지며 살아가고, 살아가면서 새로운 감정, 마음을 얻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갓난 아이가 성인에 비해 마음이 부족한 것, 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주동성, 영활성, 계획성 등이 발달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경험을 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경험해나가며 마음을 발달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모든 사람의 마음에 주동성, 영활성, 계획성을 다 가지고 살아가겠는가? 모두 다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중에서는 물론 어떤 것이 더 발달했는가의 차이는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마음에 영활성, 계획성이 이미 주어지고 발달의 문제로 본다면 모든 영역을 발달시킨다면 좋겠지만 그중에서는 계획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상황들이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계획을 해놓는다면 많은 일에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