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항
은 미항(美港)인 통영항을 빼닮았다. 돌산대교 바로 옆의 둥그스름한 여수항을 조망하는데 모르는 사이에 손이 뻗어나갔다. 만져보고
싶었다. 저쪽 어디에 조선시대의 바로크적 건축물인, 통영의 세병관과 같은 여수 진남관이 있을 터였다.
대교 옆의 무인도는 여수항의 조망에서 하나의 방점이다. 반대쪽에는 한려수도의 눈 시린 풍광이 아슴하다. 맛 또한 두 말 할 나위가 없었다. '식객'의 작가 허영만을 얼마 전 만나고나서부터 그의 고향인 여수의 음식이 궁금했다.
전남 여수의 맛집 4곳을 찾았다.
황소식당은 반찬도 맛깔스러운 '봉산동 게장거리'의 맛집이다. 싱싱한 돌게를 사용한
간장게장(왼쪽)과 양념게장은 감칠맛 그 자체다.
· 반찬과 게장 맛이 깊어서 녹더라-황소식당
황
소식당은 '봉산동 게장거리'(8곳 성업 중)에 있는 10년 된 유명한 게장백반 전문집이다.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두 가지. 각
게장백반은 4년째 6천원이다. 명중곤(58) 사장은 "여수시장님이 2012년 엑스포 때까지 값을 올리지 마라고 당부를 하더라"고
했다. 게는 '박하지'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돌게다. 3~6월, 11~12월이 제철인데 지금은 국내산을 사용하고 있다. "인천 무안
군산 옹진 여수 수협을 통해 현재 10kg짜리 2만 5천 상자를 확보해 놓았어요."
게장과 함께 나오는 반찬 12가지의 맛이 깊다. 이 집 맛이 다 깃든 반찬들. 젓갈이 3가지다. 새우젓갈이 특이한데 생새우의 살점이 양념장 사이로 달고 고소하게 터져 나온다. 이 낯설고 새로운 맛에 빠져 오는 마니아들이 많다. 멍게젓갈은 맛에도 깊이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다. 얼큰한 조기탕도 싱싱하고 시원했다. 어느새 없어져버렸다. "서울 사람들, 이 조기탕에 환장을 한다"는 게 명 사장의 말이다. 멍게젓갈 새우젓갈 조기탕만 보고서 이 집을 찾는 이들이 있단다.
간
장게장과 양념게장의 맛을 말해서 뭣하랴. 게 살이 중독성 강한 감칠맛으로 터져 나온다. '먹는다'와 '녹는다'가 동의어가 되는
순간이다. 게장은 도둑놈이다. 장둘애(58) 여사장은 "간장게장의 양념장에는 간장 생강 대파 마늘 등 5가지 재료를 넣는다"고
했다. 간장게장은 하루 숙성시키고 양념게장은 마른 홍고추를 그때그때 고춧가루로 갈아 싱싱하게 낸다. 점점 빠져드는 맛이었다.
포장판매가 매출액의 칠팔 할이란다. 여수시 봉산동 원광한방병원 뒤. 오전 9시 30분~오후 9시 영업. www.황소식당.com, 061-642-8037.
한일관의 40가지 해산물한정식 중 찬음식들
· 30~40가지 음식, 허리띠를 풀어라-한일관
'
한일관'은 여수식의 해산물한정식으로 유명한 집. 눈이 휘둥그레지고 허리띠를 풀 수밖에 없다. 서너 차례에 걸쳐 40여 가지의
음식이 잔칫상처럼 나온다. 죽 갓김치 고추지 물김 양상추샐러드가 앞차림으로 나온 다음 찬음식이 쏟아진다. 두툼한 살점으로 단맛까지
내는 농어회를 비롯 키조개 관자살, 해삼, 멍게, 굴, 참소라, 병어, 호래기, 문어, 연어샐러드, 복 껍데기 등이 한 상
가득하다. 박영복(58) 사장은 "손님들이 평균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드신다"고 했다. 한쪽에 쏙가재 몇 마리가 있다.
데친 것이겠지. 오산이다. 이 놈이 생것이다. 쏙 빼서 초장에 찍어먹는 맛이 들큰하니 새롭다. 찬음식에서는 소라 문어를 빼고 모두
생것이다. 벌써 상차림에 놀라고 맛에 놀라기 시작한다.
그
런데 따뜻한 음식들이 또 한 상 가득 널브러진다. 조기구이 버섯깐풍기 해물표고버섯볶음 떡갈비 낙지호롱 담치 생선가스 전복구이 튀김
생선맑은국…, 헤아리기에도 숨차다. 낙지호롱은 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돌려 양념을 바르고 구운 것이다. 버섯 요리가 부드럽고
감칠맛이 썩 깊었다. 한일관은 원래 1996년 7천원 메뉴에 1개 층으로 시작했다. 소문은 금방 쫙 퍼졌고 13년이 지난 지금
380석의 본점 3개 층에 200석의 엑스포점(2008년 개점)까지 내게 됐다. 마지막 식사 상에는 된
장국 간장게장 갓김치 갈치속젓과 1년 이상 묵은 배추김치가 나온다. 박 사장은 "우리집 음식은 술을 곁들여 천천히 편안하게
여유롭게 먹어야 한다"고 했다. 토요일에는 외지인들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2인상 5만 원부터, 3인상은 1인 2만 원과 3만
원. 여수시 여서동 여수신시가지 내. 오전 11시~오후 9시 영업. 061-654-0091.
구백식당의 서대회무침, 서대, 금풍생이구이.
· '서대회무침, 금풍생이구이' 나가신다-구백식당
구
백식당 손춘심(61) 사장의 입담이 구수하다. "26년간 장사했지라. 탤런트 강부자 언니는 여수에 왔다하면 우리집을 와버려." 이
집을 찾았던 연예인 정치인의 사진들이 벽을 도배하고 있다. 사연이 재미있다. 원래 철물점을 했는데 그 자리에 광장을 조성한다고
잠깐 옮겨 식당을 임시로 열었다. "그게 본업이 돼 부렸어."
서대는 납작하니 이상하게 생겼다. 이걸 말린 뒤 포로 뜯어먹기도 한다. 생 서대의 살은 불그스름하고 두 눈은 광어처럼 왼쪽에 몰려 있다. 서대회무침의 핵심은 막걸리식
초다. 막걸리를 한 달간 발효시켜 식초를 만드는데 큼직한 막걸리식초 발효통이 9개나 보였다. '식객'의 허영만은 "초고추장의
본령은 막걸리식초를 사용한 것"라고 말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막걸리식초에 버무린 서대회무침은 새콤매콤달콤했다. 회 살점은
물컹댔지만 치커리 양파 정구지 상추 무 오이 깻잎 파슬리와 어울린 회무침이 썩 상큼했다. "서대회무침에다가 콩나물과 유채나물을
넣고 쓱쓱 비벼 먹는 맛도 그저그만이제라."
금
풍생이는 강당 돔, 깨 돔이라는 놈이다. '샛서방고기'라고도 하는데 바람난 여편네가 자기 서방에게는 주지 않고 숨겼다가 고소한
샛서방에게 준다고 붙은 우스개 이름이다. 소금을 얹고 구워낸 구이가 고소했다. "금풍생이는 지금이 제 철이여. 고소한 지느러미
하나에 소주잔 한 잔이여. 금풍생이는 간을 먹어야제. 웅담 이상의 맛이여. 그걸 먹어야 제맛이요." 아구대창찜도 유명하다, 2만
원. 서대회무침 1만 원, 금풍생이구이 1마리 1만 원. 오전 7시~오후 8시 30분 영업. 여수여객선터미널 입구 앞. "왜
구백식당이죠?" "전화번호를 보랑께." 061-662-0900.
상아식당의 시원하고 풍만한 통장어탕.
· 입속에 한가득 밀려오는 통장어탕-상아식당
상아식당은 여수의 식객들이 꼽는 집이다. 장어탕의 새로운 경지다. 장어를 통으로 썰어 넣은 탕이다. 장어(붕장어 혹은 아나고)가 풍만하게 통째로 밀려온다. 장어의 지름은 5~6cm쯤. 얼큰한 우
거지 탕에 장어 살점이 두툼하다. 장어를 칼로 써는 벽면의 사진이 김밥을 써는 모습 같다. 손영숙(53) 사장은 다랑이논으로
유명한 남해 가천마을이 고향이다. 여수에 산 지 40년 됐다. 그녀는 "장어 머리와 뼈로 육수를 먼저 낸 뒤 통장어 썬 것을 넣어
다시 1시간을 끓인다"고 했다. 장어 살점이 비단결처럼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다. 스리슬쩍 푸근하게 녹아내려 버린다. 장어 살점이
있다가 없어지는 그 순간에 주린 속은 부드러워지면서 해장이 되는 것이다. "보통 장어는 한 마리에 1kg이 넘어요. 어떤 것은
3kg이 되는 것도 있어요."
통
장어탕의 맛에 포인트가 있었다. 장어 살점에 매운고추 몇 조각을 한데 섞어 한 숟가락 떠 먹는 그 맛은 가히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맛이다. 음식궁합의 한 지경이다. 통장어탕에는 식이섬유의 대명사인 우거지를 넣었다. 무청과 배추 우거지인데 무청을 많이 넣으면
탕의 색이 검어진단다. 여수식의 장어탕처럼 약간의 들깻가루를 풀었다. 그러나 걸쭉하지는 않았다. 장어탕의 핵심은 또한 된장이다. 이
집의 된장은 시판 된장에 콩을 삶아 갈아 넣어 고소함을 더했다. 통장어 토막들, 배추와 무청의 우거지, 고소한 된장이 어울려
통장어탕이 되는 것이다. 부산 사람들도 자주 찾아온다고. 반찬으로 멍게젓갈 무 파래 멸치 김치 시금치 등이 나온다. 원조통장어탕
1만 2천원, 산장어 양념·소금구이 각 1만 3천원. 모두 2인분부터. 여수시 국동 잠수기수협 상가. 오전 8시~오후 9시 영업.
061-643-7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