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 정신이란 무엇인가.
"작지만 강한 것을 추구하는 정신. 중심은 아니지만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중심이 하지 못하는 열린 미래를 만드는 정신. 땅과 언어와 문화의 울타리를 마음껏 넘나들던 실용적이고 국제적인 정신."
하지만 오랑캐정신과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우리 사가들이 한국의 근대를 어떻게든 서양의 근대와 맞추기 위해서 무진 애를 쓰는데, 그것이 곧 '자본주의 맹아론'과 같은 이론 따위로 나타난다.
곧 자본주의로 특징 지워지는 서구의 근대와 그 시기 한국의 시대를 '(서구의) 근대'로 잡기 위하여 저런 이론들을 고안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이식의 역사요 단절의 역사인 것이다.
우리 역사의 고유한 발전을 보지 않고 그저 서양의 역사를 토대로 그 역사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것.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의 틀에 우리 역사를 비추어봤더니 뭔가는 안 맞더라, 그래서 우리 역사에도 근대의 움직임이 있으니 자본주의의 맹아가 우리 근세에도 발견되지 아니하냐. 참으로 눈물겹다)
무엇인가?
바로 서양의 역사는 '正'이요 우리 역사는 '非正'이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 역사의식을 가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얼마든지 우리 역사의 독창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것을 천시하고 우리 역사를 '뭔가는 조금 모자란' 것으로 인식하여 온 자들이 만들어낸 역사가 곧 '이식과 단절의' 역사인 것이다.
서양이 추구했던, 그래서 '부하게' 되었던 이른바 실용정신이 正이요, 그것을 추구하지 못했던 우리는 역사의 異端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서양이 거쳐왔던 '正의 역사'를 우리도 걷자는 것이다?
글쓴이도 우리 역사를 '단절의 역사'로 보고 있으니 곧,
"우리는 일찌감치 한반도가 한국인의 마지막 땅이 아니고 한국어가 한국인의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의 교육은 한반도를 뛰어넘는 담판가나 전략가, 장사꾼을 길러내는데 초점을 맞춰야 했다."
하는 말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이러이러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하지 못했다. 곧 우리 역사는 단절된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만, 역사를 보려면 당시를 살았던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 당시(자급자족경제시대)에 과연 저것이 正의 역사이겠는가.
그래서 우리 역사는 異端인가.
공자가 우리나라를 오랑캐로 보았든 선비로 보았든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우리 정체성을 '異端'으로 보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아닐까?
한자와 중국어는 다르다.
우리 역사에서 중국어가 국어였던 적은 없다.
따라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도 이른바 '제2 통용어'인 한국어를 적기 위한 새로운 기호체계를 만든 것이 아니다.
세종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또 글쓴이의 얼을 가지고 있다면 한글을 창제하고 난 다음에 맨 처음 중국어를, 그리고 스페인어를 국어로 삼고 이탈리아어를 국어로 삼고 그 이후에 영국영어를, 그 후에 프랑스어를, 그 후에 독일어를, 일본어를, 그리고 미국영어와 히브리어까지 국어로 삼자고 아니했겠는가.
영어공용화가 필수인가.
이제 고민해야 할 때인가.
고민해서 무엇이 나오는가.
이제는 대통령이 "나라의 말이 미국과 달라 문자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하여야 할 것인가.
이제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영국으로, 또 다른 '대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야 하는가?
4천만, 아니 7천만 겨레 전체가?
말과 역사를 결부시키지 말자.
역사래야 '이식되고 단절된' 역사일 뿐이다.
이식되고 단절된 역사 속에서만 영어를 모국어로 삼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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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수 著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
[건강/생활] 2001.11.09 (금) 11:27
<허 연> "한국은 어짜피 변두리 국가다. 무사를 버리고 선비를 업어 키
운 것은 우리 문화 최대의 실수였고 보부상을 짓밟고 생원들을 양산해
낸 것은 우리 조상들의 가장 위대한 오류였다."
참 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유구한 5000년의 역사가 변두리였다니, 또 무
사와 보부상을 키우지 않았던 우리의 정체성이 실수였다니.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으로 90년대말 한국사회를 뒤흔들었
던 상명대학교 중문과 김경일교수가 최근에 쓴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
바다출판사)는 여러모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충격적인 책이다.
저자는 한계에 부딪힌 한국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채택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오랑캐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그토록 추앙하는 공자의 저술들 속에서도 우리는 분명 '동쪽 오
랑캐였다'. 그러나 우리는 오랑캐이면서도 오랑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짜피 중심국가(중국)도 아니었으면서 스스로 독립적인 생존능력을 키
우지 않았고 중심에 투항해 버린 나라였다. 그러면서 밖에 대한 두려움
만 키우고 자기도 중심의 일부라는 우월주의의 최면에 빠져있었던 것이
다.
그러면서 변두리 국가가 누릴 수 있는 특권마저 누리지 못했다. 이를테
면 다양함을 인정하는 포용성과 유연성,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는 실용성
, 국경을 넘나드는 도전정신과 독립정신을 스스로 버린 것이다.
지금의 우리사회를 둘러보자. 아직도 이중성은 남아있다. 미국이나 일본
인들 앞에서는 짐꾼 노릇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동남아 노동자나 중국 조
선족들에게는 비열한 권위를 부린다. 주식시장의 30%가 넘는 해외자본을
무조건 도끼눈으로만 바라보고, 우리가 쓰는 상당수의 언어가 중국어(한
자)라는 사실은 잊어버린채 세계 어디서도 믿어주지 않는 독창성만 자랑
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바탕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애국심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의 원인을 '변두리가 아니라는 착각'에
서 비롯됐다고 보고 그 마지막 해결책으로 '오랑캐 정신'을 제시하는 것
이다.
그러면 오랑캐 정신이란 무엇인가. 짧게 요약하면 작지만 강한 것을 추
구하는 정신이다. 중심은 아니지만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중심이 하지못
하는 열린 미래를 만드는 정신을 의미한다. 행동적으로는 땅과 언어와
문화의 울타리를 마음껏 넘나들던 실용적이고 국제화된 무리였다. 그래
서 그들은 거대한 중심문화 옆에서도 당당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
동이족을 거쳐 고구려에 이르기까지 우리도 오랑태 정신을 간직하고 있
었다. 이것을 복원하자는 것이다.
김교수는 이부분에서 영어공용화 문제를 거론한다. "세종대왕이 지금 살
고 있었다면 분명 영어공용화에 찬성했을 것"이라는 도입부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한자만이 국어이던 시절 실용적인 목적으로 다른 글자를 하나
더 만든 세종의 열린정신은 분명 지금의 상황에서 영어공용화를 지지할
것이라는 말이다.
"여진어와 만주어 그리고 한자어, 심지어 흉노어까지 뒤섞여 형성된 우
리의 정신속에 영어 하나를 더 집어 넣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는 저자의 말은 자극적이지만 매력적이다. 어쨌든 "강력한 중심문
화를 수용하면서 자신을 살찌워가는 오랑캐 강국을 만들기 위해 영어공
용화는 필수"라는 주장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고민해야 할 문제인 듯
싶다.
저자가 오랑캐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다음 문장에서 음미해보자. 이 책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찌감치 한반도가 한국인의 마지막 땅이 아니고 한국어가 한국
인의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의 교
육은 한반도를 뛰어넘는 담판가나 전략가, 장사꾼을 길러내는데 초점을
맞춰야 했다." (02)322-3885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의 김경일 (2001.11.09)
99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도발적인 책으로 열띤 찬반논쟁을 촉발시킨 김경일(43) 상명대 중문과 교수가 돌아왔다.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바다출판사)는 예사롭지않은 제목의 책을 상재하면서다. “정체 상태에 있는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선 발목을 잡는 유교 문화를 청산해야한다는게 앞의 책이었다면, 이번에는 열강의 힘이 교차하는 한반도에서 생존하려면 독특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오랑캐정신’의 회복이다. 동이족에서 발원했고, 고구려를 통해 전승됐으며, 발해와 여진족, 말갈족을 통해 펼쳐나간 변방문화의 에너지를 뜻한다. 오랑캐는 땅과 언어와 문화의 울타리를 마음껏 넘나들던 실용적이고 국제화된 무리였으며, 이런 오랑캐 정신은 작지만 강한 나라를 지향하는 변두리 국가의 생존전략으로 유효하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오랑캐를 자처한다. “족보상으로도 별로 하자가 없고(?), 교수 신분에 저서도 10여권이 넘으니 점잖게 너스레를 떨어도 한국사회에서 나름대로 체면 유지를 해볼 수있는 상황이지만 좀더 치열해지기로 했다”고 쐐기를 박는다.
오랑캐의 실용주의와 생존술을 근거로, 그는 영어 공용어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 우리 말이 타격을 입더라도 감수하고 영어 공용화를 밀고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바이링구얼’(bilingual·두 나라 말을 함께 씀)을 창시해낸 인물로 한자와 함께 한글을 동시에 사용한 세종대왕까지 끄집어낸다.
원래 책 제목으로 생각했다는 ‘한국인을 오랑캐로 만들어라’부터 ‘중국 문화가 우리를 죽였다’ ‘세종이라면 영어를 가르쳤을 것이다’ 등 소제목들은 한결같이 자극적이다. 부드러운 인상에, 조용조용한 말솜씨와는 딴판으로 글은 향신료를 가득 뿌린 것처럼 맵기만하다. “마음에 안드는게 너무 많다. 지식사회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점잖은 글은 육십 넘어서나 쓰겠다.” 그의 독설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