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법화 이 시대의 신사임당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홀로 여섯 아이를 기르며 품격 있는 여인의 삶을 살다 가신 진해의 어른이었다. 일제가 나라를 강제 장악하고 있던 구십육 년 전 진해에서 태어나 당시로선 고급 교육기관인 진해여고를 나와 평생을 서예로 살며 학원을 열어 남을 가르치고 그것으로 생계를 꾸리며 소박 담백한 삶을 사신 분이다. 여섯 아들딸은 저마다 잘 장성하여 삶을 잘 꾸리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어머니의 일생 사신 모습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말년에 효성을 다하는 모습ㅃ을 보였다. 불심이 지극하시어 경전을 쓰거나 보급하는 일에도 정성을 다하셨고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독경시간을 거르지 않는 의지를 보이셨다. 스님들에게도 알뜰한 정성을 표하시어 필요한 물품들을 늘 챙기시곤 했다. 진해에서는 진해 여고 출신들이 관. 재. 일반의 가정을 장악한다. 진해여고 동문 회장을 오래 했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고문으로 있었기에 진해의 어른으로 존경 받았다. 물론 사회활동도 그만큼 많이 하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환으로 계실 때 더러 문안 인사드리면 손을 잡고 놓지 않아 뿌리치고 나오기가 매우 어려웠다. 학문으로 덕행으로 가꾸어진 육신이기에 얼굴 모습도 단아하고 입성도 늘 단정하시어 이 시대의 신사임당이라는 말에 모자람이 없던 분이었다. 맞춤하신 떠나심이지만 보내는 사람들은 늘 아쉽고 안타깝다. 그러나 더 고생하시지 않고 가시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합장으로 보내드려야 할 것이다. 닦으신 저승길이 이미 밝아져 있겠지만 아미타 가피로 반야선 편히 타시고 살같이 극락에 이르시길 기원한다. 동지섣달 모진 추위가 살을 에이는 1월 2일(음력 12월 8일 성도재일) 저승길을 떠나셨다. 아마도 재는 해인사 용탑에서 모시는 듯하다. 아마도 2월 19일이 막재인 듯하다. 인연이 되면 걸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