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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삶의 운전대를 확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삶을 끝내려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공인 걸 잠시 쉬고 싶을 때. 삶의 구심력이 너무 강해서, 그 삶의 폭풍에 내가 자칫하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을 때. 정말 잠시만, 잠시만 내 삶의 운전대를 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잠시’라는 것이 잠깐 영화를 본다든지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을 때가 있다.
DVD 플레이어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듯이, 잠시 내 삶을 멈춘 채로 다른 시간대를 살고 싶은 마음. 여행은 바로 그럴 때 떠나야 제맛이다.
–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정여울
한 학기 동안 과제에 팀플, 중간고사에 기말고사까지 끝낸 친구들, 모두 수고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넘쳐나는 친구들에게 서울 시내의 힐링 플레이스, 북촌한옥마을을 소개한다. 자동차와 빌딩으로 대표되는 서울에서 전통과 여유로움을 느껴보자.
북촌한옥마을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건 1912년 이후부터이다. 도시로의 인구 집중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한옥주거지가 집단적으로 건설됐으며, 1960년 초반에는 북촌 대부분의 지역이 한옥으로 채워졌다. 이후 한옥 철거 및 다세대 주택 건설 등으로 북촌의 경관이 훼손된 적도 있었으나, 주민조직인 ‘(사)종로북촌가꾸기회’ 와 서울시가 힘을 합쳐 오늘날과 같은 매력을 완성했다.
북촌한옥마을 산책코스
안국역 2번 출구를 내려, 출입구 방향으로 한 블록쯤 걸어가면 초등학교와 함께 관광안내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간단히 지도를 받아, 북촌 여행을 시작해보자. 길 중간중간에 표지판도 있으니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첫 코스를 걷다 보면 많은 공방을 만날 수 있다. 창덕궁을 마주하는 이곳은 과거 왕실의 일을 돌보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그래서일까, 이곳에서는 각종 공예품 가게를 만날 수 있다.
좁은 골목길과 함께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면 많은 외국인 관광객 역시 볼 수 있다. 여행을 해서라기보단 친구들과 함께여서 행복한 표정이다. 어쩌면 우린,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배우기 위해 멀리까지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닐까?
북촌 내 박물관, 문화재
한옥마을 곳곳에는 작은 박물관이나 문화원, 전시실 등이 공개되어 있다. 또한 전통가옥을 좀 더 직접적으로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곳곳에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이기도 하다. 대개 1인실 5만 원 내외, 2인실 7~10만 원 정도에 운영 중이니 주변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한 번쯤 추천해 볼 만도 하다.
한옥마을의 시작 지점에 위치한 락고재 한옥체험관. 한옥스테이가 가능한 공간에는 한옥스테이 팻말이 붙어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을 생각이 없는 여행객이라면 공개된 한옥 문화재를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곳곳에 개방되어 있는 한옥 문화재를 방문하면,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다르게 정말 ‘집’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창덕궁길 쪽에 위치한 원서동 고희동 가옥. 이곳은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으며, 안에 들어가면 이처럼 운치 있는 모습과 함께 고희동 화가의 작품과 작업실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원서동 고희동 가옥 내 재현된 작업실의 모습.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 화가가 41년간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다. 현재는 서울시의 소유이며, 2004년 9월 4일 등록문화제 재 84호로 등재되어 있다.
고희동 화가의 실제 작품이 전시된 서화실은 촬영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서화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장소는 자유로운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곳곳에서 이렇게, 분위기 있는 사진을 찍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전통공예 체험
전통적인 한옥마을을 천천히 구경하며 공예품 가게를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매력이지만, 북촌의 진짜 매력은 전통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공방에서 각종 공예에 대한 강의와 일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을 살펴보자.
북촌 3경 근처에 위치한 북촌전통공예체험관에서는 매일 참여할 수 있는 전통공예 체험 활동이 열린다. 언제 누구라도 사전에 예약 없이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만들어 볼 수 있기 때문에, 북촌을 구경하다가 발걸음을 잠시 들러보면 굉장히 재미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북촌전통공예체험관에서 부채를 제작하는 모습과 완성된 공예품들. 천연염색 손수건, 닥종이 고무신, 수호신 장식의 에코백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매일매일 다른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하루에 3가지 종류의 체험이 가능하므로, 만들고 싶은 공예품이 있다면 날짜에 맞춰 북촌을 방문하기를 바란다.
북촌전통공예체험관 이외의 공개된 다른 공방에서도 체험 활동이 가능하다. 위 사진은 전통 부채를 제작 중인 모습이다. 1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간단한 공예품을 만들 수 있다. 작품을 만드는 동안 장인 또는 공방의 제자가 안내를 해 주니, 관심이 있다면 부담 없이 공방의 문을 두드려보자.
혹시나 공예품 제작에 관심이 생겼다면 공방에서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것도 괜찮다. 대개 1주일에 2시간씩 3~6개월간의 수업으로 진행되며 방학 특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프로그램의 일정은 공방마다 천차만별이며 공지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직접 찾아가 보거나 전화를 해 보는 것이 빠를 것. 더 많은 궁금증이 있다면 http://bukchon.seoul.go.kr/exp/exp01.jsp를 찾아보도록.
기와지붕과 여행객
공방을 나와 다시금 코스를 따라 발을 들이자.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 조금만 올라가면 기와지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가 나타난다. 서울시내에 탁 트인 하늘과 기와지붕을 내려다보는 것. 이것이 북촌이 주는 매력이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북촌에서
빗물이 내린 아스팔트 위, 모든 기다림에는 간절한 마음이 녹아있다.
북촌에서는 즐거운 표정을 한 관광객이지만, 일상에서라면 그도 평범한 40대 아주머니지 않을까. 여행은, 잃어버린 영혼의 순수함과 명랑함을 일깨워준다.
골목길에는 햇살이 비치기도, 그늘이 지기도 한다. 햇살을 느끼기 위해 담쟁이덩굴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왔을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서쪽 하늘로 해가 뉘엿뉘엿 사라져갔다. 하루를 마지막을 알리는 새빨간 노을은, 왠지 모를 아련함을 간직하고 있다.
돌담길을 따라 내려오면 삼청동 거리가 나타난다. 한옥의 매력을 담은 카페가 북촌의 끝을 알려준다. 여정을 마치고 굶주린 배를 채우며, 자연스럽게 비워진 마음을 바라보았다.
북촌은 일상에 지친 서울시민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최고의 ‘힐링 플레이스’이다. 한옥이 주는 편안함, 골목길 속에 묻어나는 여유, 이색적인 체험 활동과 구경거리. 3시간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기에 수많은 외국인이 찾아오는 것 같다.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에 지쳤다면, 가까운 북촌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는 건 어떨까...?
Epilogue. 여행을 마치며...
아는 길 위에서 비로소 나는 자유롭다.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낸 한 번의 용기 있는 발걸음이 아는 길을 만들고 그런 길이 많아질수록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범위는 더 넓어진다. 인생이란 여정도 그런 게 아닐까. 아는 길이 많아질수록 내가 맞닥뜨려야 하는 두려움은 줄어들게 되니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진정한 자유함은 낯선 길로 들어서는 나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늘, 새로운 길을 가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이애경, ‘그냥 눈물이 나’ 가운데
* 영상으로 만나는 북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