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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17장
므리바 맛사에서 물이 없어 다투었고 아말렉과 전투에서 승리
(찬송 391장)
2024-4-19, 금
맥락과 의미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벗어난 이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그 사건들 중 우리가 읽어서 유익한 내용들을 선별해서 성경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구원 역사에서 상징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보여줍니다.
15, 16장에서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한 것과 만나를 주신 그 사건은 하나님깨서 계명을 백성에게 주신 것에 대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상징성이 있습니다. 실제 일어난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줍니다. “역사적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장도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침을 줍니다. 맛사(므리바)에서 물을 주시는 것과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해 말합니다.
1. 므리바 (맛사)에서 물울 주심(1-7절)
2. 아말렉과의 전투의 승리: “여호와는 나의 깃발”(8-16절)
1. 므리바 (맛사)에서 물울 주심(1-7절)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장막을 쳤습니다. 호렙산 근처의 어느 곳이었습니다(6절). 여호와의 명령대로 거기 갔는데 문제는 물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해서 갔는데 거기에 우리가 기대한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했습니다. 모세와 다퉜습니다. 모세가 뭐라고 합니까?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2절) 모세와 다툰 것은 여호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3절). 모세로 치면 억장이 무너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해야 하는데 오히려 대들고 있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백성들과 싸웠습니까?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지난 번 마실 물 문제로 그에게 원망할 때도 부르짖었습니다(5:25).
말씀 사역자는 성도들이 불평할 때 이렇게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자녀가 반항할 때 부모는 성급하게 혼내기보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 어떻게 해결해 주시겠습니까?”
문제 앞에서 부르짖는 인생: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하려고 하는데 어려움에 부딪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문제가 있는 곳으로 부르십니다. 고난 가운데로 부르십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탄식해야 됩니다. 어려움을 하나님께 아뢰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알고서 탄식해야 합니다.
모세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백성 앞을 지나가라.”(5절) 의도적인 말입니다. “장로들을 데리고 호렙산 반석으로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6절) 백성들 중 지혜로운 장로들 얼마를 데리고 가게 합니다.
전에 모세는 혼자서 호렙 산에서 서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출 3장). 이번에는 그 산 꼭대기가 아니라 아래쪽 반석 위에 서라고 하십니다.
“네 지팡이를 잡고 가라”고 하십니다. 지난 번 호렙산에서 나타나실 때 “여호와의 지팡이”(4:20)을 주셨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일강을 치던 너의 지팡이”(5절)입니다. 그 지팡이로 나일강을 쳐서 피로 만들었습니다.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6절). 이제 그 지팡이는 바위에서 물을 나오게 하는 데 쓰일 것입니다.
모세는 명령하신 대로 바위를 쳤습니다. “도대체 이 지팡이가 뭐냐? 이것으로 때려서 뭐 하겠느냐?”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순종했습니다. 물이 나왔습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물을 주셨습니다.
우리 대신 자기를 치시고 생명의 물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 6절을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앞에 서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소송에서 재판장이 아니라 피고의 위치에 서십니다(참조. 신 19:16-17).
여호와께서 서신 그 반석을 친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피고가 되신 여호와를 치는 것입니다. 여호와로부터 물이 나옵니다. 광야에서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듯이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친다’의 원래 뜻은 사람을 ‘때린다, 죽인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나일 강물을 죽였습니다. 이집트의 처음 난 것들을 쳐 죽였습니다(12:12). 원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쳐서 죽여야 하는데, 대신 반석을 쳐서 죽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쳐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고통 당하셨습니다. 고통 당하신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상하시고 고통 당했습니다. “그는 징벌을 하나님께 맞으며(침을 당하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상함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찢김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이사야53:4,5).
고린도전서 10:4는 말합니다. 구약 성도들이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 바위에 서 계신 그리스도는 맞아 죽으실 중보자이십니다. 그 바위에 서셔서 물을 내신 그리스도는 생명의 물을 주시는 분입니다(요 6:55). 우리에게 생명의 물을 주기 위해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막대기로 자신을 쳐 죽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그곳 이름을 뭐라고 하였습니까? “맛사”라 불렀습니다. 맛사는 시험한다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시험하시려고 단련하기 위해 어려운 가운데 두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가 우리 중에 계신가?” 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시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여호와를 믿지 않았습니다
또 “므리바”라고도 불렀습니다. ‘다툰다. 소송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에게 당연히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모세와 하나님을 피고석에 두고 나름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모세에게는 돌로 쳐서 죽이는 중형을 내리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그곳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맛사, 므리바라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시험했고 모세를 고소한 죄를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말씀에 기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셨으면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우리와 계신가? 하고 불신한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2. 아말렉과의 전투의 승리: “여호와는 나의 깃발”(8-16절)
1) 아말렉의 침략과 모세의 승리 (8-13절)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씨름하며 지쳐 있을 때 공격하였습니다(신 25:17-19).
아말렉은 광야 지역의 유목민입니다. 에서의 후손으로(창 36:12, 16), 에서의 후손의 나라 에돔에서 독립한 후에 사막 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였습니다(민 13:29; 14:45; 24:20; 삿 6:3-4; 삼상 27:8).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정예 병사를 뽑아 나가 싸우게 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섰습니다(9절). 여호와의 능력의 지팡이를 잡은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깁니다.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집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눈으로 보여 줍니다.
모세가 피곤해서 팔을 자꾸 내렸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과 훌이 도왔습니다. 돌을 가져와 모세를 앉혔습니다. 그들이 양쪽에서 그의 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교회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명의 지도자로 교회를 세우지 않습니다. 서로 돕는 직분자들의 공동체를 사용하십니다.
아론과 훌 두 사람이 모세의 손을 각각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12절) “내려오지 않았다”는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아멘’이라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믿는다’는 말과 연결됩니다. 4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나옵니다(4:1, 5, 8, 9, 31).
모세는 백성들이 자기를 믿을까 염려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모세를 믿을 수 있는 표적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여 백성을 홍해를 건너게 했습니다.
이제 백성들은 모세를 믿었습니다. 14장 31절에 백성이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백성이 믿었던 모세의 손을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견고하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신실하게 돌보시는 분임을 그림처럼 보여 주십니다.
우리에게 여러 어려움이 적들처럼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운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고통 앞에서 울부짖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라.”(14절) 책에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모세의 아들같은 여호수아의 “귀 안에 두라”고 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앞두고 신명기 6장에서 같은 것을 명령합니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네 자녀들 안에 말하라”(신 6:7에 “네 자녀에게 강론하며”의 원어의 뜻). 기록된 말씀을 모세가 여호수아의 귀 안에 두는 것처럼, 앞으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자기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귀와 마음에 두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손의 마음에 이 말씀을 두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오늘도 이 기록된 성경 말씀을 우리 자녀들의 귀와 마음에 들려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초자연적인 기적을 후손의 시대에 계속 행하시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몸으로 계실 때 행하신 기적을 교회에게 계속 행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해가 뜨고 지는 보통의 일을 통해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과 성례에 참여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십시다. 배우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승리의 말씀, 신약과 구약의 은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기록된 이 말씀을 우리와 자녀의 귀에다 들려줍시다. 외우고 마음에 둡시다. 말씀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악한 자를 없이 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아멜렉은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14절).
노아 홍수 때 악한 자를 쓸어버린 것처럼 아말렉에 대해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창세기 7:4, 23). 아말렉 백성을 쓸어버리겠다는 것은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는 노아 홍수를 생각나게 합니다. 앞으로 인류를 심판하실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생명 책에 기록하셨습니다. 그 백성을 구원한 내용을 기억해서 영원한 구원에 있게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수들, 교회의 원수들은 영원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복 주실 하나님, 심판하실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말씀을 기억하고 즐거워합시다.
2) 여호와 닛시(14-16절)
모세는 승리한 후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찬양했습니다.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가 전쟁터에서 싸웠지만 모세의 높이 든 손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싸우셨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16절에 모세는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천하에서 아말렉을 기억함이 없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신 25:17-19; 삼상 15:8; 대상 4:43).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되 특히 약한 사람들을 공격한 것에 대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는 분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오늘 우리가 말씀을 기억합시다. 어려움이 생긴다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교회의 직분자를 쉽게 원망하고 다투지 맙시다. 직분자와 부당하게 다투는 것이 여호와를 시험하는 큰 죄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죄인들을 치는 대신 자신이 서신 반식을 치시면서 물을 주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들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치시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생명의 물을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합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깃발! 여호와께서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과 싸우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하게 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와 마귀와 싸워 승리합시다.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기록하신 신구약 성경으로 우리를 무장합시다(에베소서 6:11,17). 그 말씀을 좋아하고 묵상하고 주야로 기뻐하며 순종합시다.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 언약 백성이 계속 이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의 가정마다 복을 내려 주시고 직장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마다 복을 내려 주시기 소원합니다. 주의 백성들이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관악교회가 서울경기 지역에 힘껏 복음을 전하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힘쓰도록 기도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0절, 훌
훌은 갈렙과 에브라의 아들이며, 성막을 만들던 책임자가 될 브살렐의 할아버지입니다(역대상 2:19-20). 그는 출애굽기 24:14에서도 아론과 함께 모세를 돕습니다.
<참고> 12절, 내려오지 않았다
“내려오지 않았다”(아무나)는 ‘굳세다’는 뜻입니다. ‘아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믿는다”(아만)에 쓰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백성들이 모세를 믿은 것에 대해서만 쓰였습니다. 모세의 부르심에서(4:1,5,8,8,9,31), 홍해를 건넌 후에 (14:31) 쓰입니다.
시내산에서도 하나님께서 “백성이 너를 영영히 믿게 하리라”(19:9)에 쓰입니다.
모세가 전쟁 중에 견고하게 손을 들고 서 있는 눈에 보이는 행동은 백성들이 모세를 믿는 정신적인 행동에 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 14절, 아말렉을 “없이하여”
아멜렉을 “없이하여”(마하)는 노아 홍수 때 하나님께서 홍수로 땅을 “쓸어 버린다”에 사용되었습니다(창세기 6:7, 7:4,23,23).
열왕기하 14:27에서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쓸어버리시겠다”는 것은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세력은 노아 홍수 때처럼 쓸어버리시겠다는 하나님의 결심이 들어 있습니다.
<참고> 16절,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직역하면 “손이 여호와의 보좌 위에!”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분의 보좌 위에 앉아서 맹세하십니다. 아니면 그 분의 보좌의 명예를 걸고서 맹세하십니다.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니라”(16절). 앞으로 하나님께서 아말렉과 죄인들과 더불어 싸우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여호와의 손을 보좌 위에 들었습니다.
오늘도 여호와의 손이, 보이지 않는 여호와의 손이 들렸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보좌 가운데 하늘에 계시고 지금도 영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십니다. 예배에서 만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삶 가운데서 거룩을 향해 싸울 때 우리와 함께 싸우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나스)’과 ‘여호와의 보좌(카스)’는 두 글자 중 한 글자가 같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승리로 이끄는 깃발이 되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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