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당 초등학교 재경 동창회원 들의 야유회 요청이 있었으나 여러가지 여건상 미루다 성미화 총무 께서 날짜를 잡아 통지를 하며 참석자 확인을 하여 6월 29일(토요일) 30일(일요일) 날짜를 잡아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성낙석 회장의 여건상 29일 오후 4시에 분당선 복정역 2번 출구 환승센타에 집결 하기로 하여 나도 시간에 맞추어 나갔다.
4시에 참석한 재경 동창회원은 나를 비록하여 회장 성낙석, 총무 성미화, 남기인 성진모, 엄주화, 이창식, 이정희, 성옥자, 최익동, 윤경헌, 등 11명이 참석하여 이창식 회원이 준비한 12인승 봉고 승합차에 승차하여 출발을 하였다.
봉고차는 서울 외곽 순황 고속도로를 타고 경춘 고속도로를 달려 홍천 휴계소에 잠시 들려 커피 한잔씩 마시며 모처럼 어렵게 나온 야유회의 설례는 마음을 나누고서 다시 탑승하여 낙산 해수욕장 으로 달렸다.
봉고차 안에서는 이정희 회원이 준비한 찰떡으로 출출한 배속을 채우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낙산 해수욕장 과 붙어 있는 오션벨리 리조트 주차장에 도착 하였다.
리조트는 미리 예약이 되어있어 프론트에 인적사항 및 객실 예약을 확인한후 키를 받아 여장을 풀고 바로 해수욕장으로 나왔다.
시간이 늦은 관계로 해수욕장을 한바퀴 돌며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과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일상에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짤지만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생각이 든다.
어둠이 내린 시간 우리 일행 모두 봉고차에 올라 물치항 회센로 가서 싱싱하게 펄떡이는 자연산 농어와 광어 우럭 오징어 회를 떠서 식당으로 이동하여 소주와 함께 든든하게 회를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여운을 즐기고자 총무가 준비한 캔맥주를 한캔씩 하며 밤의 여운을 즐기고 객실로 돌아와 하루의 고단함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은 여자 친구들이 준비한 따뜻한 아침 식사를 함께하며 오늘에 일정을 정하고 오전 9시에 객실 키를 반납하고 우리는 낙산사에 들려 낙산사 경내를 함께 앞서거니 뒷서거니 다니며 살펴보고 낙산사를 나와 7번국도 해변도로를 따라 강릉 해수욕 장으로 행했다.
참고로 낙산사는 삼국시대 신라 문무왕 11년(서기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 하였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오봉산에 위치해 있다.
오봉산은 낙산 이라고 하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중의 하나 이며, 낙산은 관음보살이 항상 머무르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의상은 당나라에서 귀국하자 관음보살의 진신이 낙산 동쪽 바닷가 굴속에 있다는 말을 듣고 친견하기 위해 찿아갔다.
굴 입구에서 7일동안 재계하고 좌구를 새벽물 위에 띄우자 용중 과 천중 등 8부 신장이 굴속으로 의상을 안내 하였다.
공중을 행해 예배드려 수정 염주 한꾸러미를 받아 나오는데 동해의 용이 여의보주 한알을 다시 의상에게 바쳤다.
의상이 이들을 가지고 와서 7일동안 재계하여 관음보살의 진신을 보았고, 관음보살이 이르기를 좌상의 산꼭대기에 한쌍의 대바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땅에 불전을 짖는것이 마땅 하리라 하여, 의상은 그곳에 금당(법당)을 짖고 관음상을 만들어 보신한뒤 절 이름을 낙산사 라 하고 그가 받은 구술을 성전에 모셨다.
이 낙산사 의 관음상 에는 승려 조신이 꿈을 꾸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설화가 있다.
한 여인을 사랑하게된 승려 조신이 사랑이 맺어지기를 관음상 앞에서 염원 하였는데 해로하기 50여년 만에 결국 고통을 안고 헤어지게 된다는 설화 이며, 근대 작가 춘원 이광수는 이 설화를 [꿈] 이라는 소설로 발표를 하였다.
2005년 강풍을타고 번진 산불로 낙산사는 큰 피해를 입었다.
문화재청은 2007년 까지 원통보전, 범종루, 심건당, 취숙헌, 선열당, 홍예문누각, 홍련암 연희당, 해우소 등을 신축 하였고 2009년에는 설선당, 근행당, 응향각, 정취전, 고향실, 빈일구 대성문등을 신축하여 현재 손실된 사찰의 모습은 복원 되었고 주변 숲은 회복중에 있다.
◈ 낙산 해수욕장 ◈
◈ 물치항 회셴타 ◈
◈ 리조트 객실 에서 ◈
◈ 낙산사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