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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ICC에서 재발행한 "데카당트자본주의에서의 프롤레타리아투쟁"이라는 문건에서 [계급투쟁]과 [혁명조직의 역할]부분을
편집해서 올립니다. 현재 진행중인 '당 건설' 논의와 관련하여 '데카당스'시기에 맞는 계급투쟁의 특성, 혁명가조직의 역할 등에
대해 비교하면서 읽으면 좋을듯 싶습니다.
데카당트자본주의에서의 프롤레타리아투쟁
계급투쟁(Class struggle)
<상승기 자본주의>
19세기 계급투쟁의 형식은 이 시기 자본의 특성들과 노동계급 자체의 특성들 양자에 의해 결정되었다.
1) 19세기의 자본은 수많은 자본들로 여전히 분산되어 있었다. 100명이상의 노동자를 가진 공장들은 드물었고, 반-수공업적인(semi-artisanal) 기업들이 훨씬 더 일반적이었다. 19세기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 철도의 출현, 기계의 대대적인 도입, 광산의 번성과 더불어, 우리가 오늘 알고 있는 대규모의 산업이 우세하게 되었다.
2) 이러한 조건하에서 경쟁은 수 많은 자본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3) 게다가, 기술이 그리 높이 발달하지 않았다. 제 1세대 노동자의 대부분은 농촌지역에서 영입된 미숙련 노동인력들이었다. 가장 숙련된 노동자들은 수공업자들이었다.
4) 착취는 긴 노동시간과 대우 낮은 인금을 통한 절대잉여가치(absolute surplus value)의 추출에 기반하고 있었다.
5) 각 공장주 또는 각각의 공장은 그가 착취하는 노동자들과 직접적이자 개별적으로 대면했다. 19세기의 2/3이 지날때까지는 기업가들의 단일조직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개별적인 충돌들 속에서 자본가들은 흔히 산업 충돌의 타격을 입은 라이벌 공장들의 곤경들에 투기를 하고 그러한 상황을 이용해 그 라이벌의 고객들을 가로챘다.
6) 국가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충돌들의 외부에 머물렀다. 그러한 충들이 ‚공공 질서를 위협’하는 경우에 한해, 최후의 방편으로서 개입했다.
노동자 계급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관찰될 수 있다:
1) 자본과 마찬가지로, 매우 분산되어 있는 그리고 여전히 형성되고 있는 계급이었다. 가장 전투적인 부문은 훨씬 더 수공업에 관련되어 있어서 동업조합주의(corporatism)의 성격이 강했다.
2) 노동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직접적이고 전적으로 지배했다. 노동자의 부족을 초래하게 되는 생산의 급속한 팽창의 시기에 가서야, 노동자들은 자본의 공격에 대항해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었고, 임금과 노동조건과 관련 상당한 개선을 획득할 수 있었다. 위축의 시기에 노동자들은 그들의 위력을 잃었고 기세가 껶였으며 그들이 이전에 성취한 것의 어느 정도를 다시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의 한 표현으로서, 제 1 및 제 2 인터네셔널 –계급의 높은 전투성의 표시였던-이 경제 번영의 시기들(제 1 인터네셔널(IWA)은 1867년 위기가 있기 3년전인 1864년, 제 2 인터네셔널(Socialist International)은 1890-93년 위기의 전야인 1889년)에 창립되었던 사실을 들 수 있다.
3) 19세기에는 외국으로의 이민이, 주기적인 위기 동안 프롤레타리아계급을 강타한 실업과 엄청난 빈곤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유럽의 자본주의 중심지들에서 생존조건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계급의 중요한 부분들이 신세계로 도피할 수 있었던 점이, 순환적인 위기가 1848년 6월과 같은 폭발적인 상황을 자극하지 않도록 방지한 한 요소였다.
4) 이러한 특별한 조건들로 인해 노동자들은 경제적 저항을 위한 조직들, 즉 노동조합들을 창조할 수 있었는데, 이것들은 지역적, 업종별 형태를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소수의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다. 투쟁의 주요 형태인 파업은 개별화되어 그 이전에 오랫동안 준비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자본의 이런 저런 부문과, 심지어는 단일한 공장과 대치하기 위해서 번영기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이러한 모든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여전히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기관이었다. 자본에 대항한 경제투쟁에서 뿐만 아니라, 계급의 삶의 중심으로서, 노동자들이 공통의 관심사, 공동의 목표를 추구함을 배우게 되는 연대의 학교로서, 그리고 혁명적 선동에 개방된,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공산주의의 학교’로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5)19세기에는 파업이 일반적으로 장기간 지속되었고 이점이 파업의 유효성의 전제조건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굶주릴 위험을 감 수 해야 했고 이때문에 지원기금, 즉‚저항금(caisses de resistance)’을 준비하고 다른 노동자들에게 재정적은 원조를 호소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다른 노동자들이 작업을 계속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 파업중인 노동자들에게는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었다(예를 들어, 충돌에 관여된 자본가의 시장을 위협함으로써).
6) 이러한 조건들 아래에서, 조직화 이전에 물질적, 재정적 문제가 노동자들이 효과적으로 투쟁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이었다. 매우 빈번히 이 문제는, 투쟁의 실제 성취물보다 더 우선권을 가졌고,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그 조직이 자본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노동자들이 그들의 조직에게 지출해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본가들에게 대답하면서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
<데카당스기 자본주의>
데카당스기의 자본주의에서 계급투쟁은 자본의 관점에서 볼때, 다음과 같은 특성들에 의해 결정된다:
1) 자본은 고도의 집약과 중심화에 도달했다
2) 19세기에 비해서 경쟁은 수적인 면에서는 덜 한 편이지만 그 강도는 더 높다.
3)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 노동력은 더욱 더 숙련되었고 단순작업은 기계에 의해 수행된다. 노동자계급의 연속적인 세대들이 존재한다. 계급의 단지 작은 일부만이 농촌지역으로부터 영입되고 대부분은 노동자들의 자식들이다.
4) 착취의 주요한 기반은 속도강화와 생산성의 증가를 통한 상대적 잉여가치(relative surplus value)의 착취이다.
5) 노동자계급에 대항하여 자본가들은 그 이전에 비해서 더 높은 정도의 단결과 연대를 가진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개인적으로 대면할 필요가 없도록 특수한 조직들을 창조했다.
6) 국가는 사회적 충돌들에 자본가 자체로서든 아니면 ‚조정자’, 즉 통제자로서든 그러한 대치의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수준들 양자 모두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그러한 충돌들을 ‚수용가능한한’ 경계 내부에 유지하거나 아니면 진압한다.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지적될 수 있다:
1) 노동자계급은 단일화되고 높은 지적 수준으로 숙련되어 있다. 그것은 수공업과 아주 멀게만 관련되어 있다. 전투성의 중심은 그래서 대규모의 현대적 공장들에서 발견되고, 투쟁은 동업조합주의를 벗어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2) 이전 시기와는 대조적으로, 결정적인 큰 투쟁들은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발생하고 발전한다(러시아에서 1917년과 1905년의 혁명들은 전쟁이라는 위기의 급성형태로부터 출현했고, 1917년과 1923년 사이의 국제적인 거대한 투쟁물결은 제 1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에 뒤이은 경제적 위기라는 동요의 시기동안 발생하고 재건이 가져온 경제회복과 더불어 마감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전의 인터네셔널과는 반대로 공산주의 인터네셔널이, 가장 극심한 위기의 시기인 1919년 창립되어 이를 통해 계급 전투성의 강력한 고조를 가져온 이유이다.
3) 20세기에,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보여지는 경제적 이민 현상은 그것의 기원이나 함의의 측면에서 지난 세기의 커다란 이민물결에 필적할 수 없다. 그것은 자본의 새로운 영토로의 역사적인 팽창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식민지들에서의 경제발전의 블가능성을 드러낸다. 전식민지들(ex-colonies)의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그들의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나 과거의 노동자들이 떠난 바로 그러한 중심지로 향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체계가 급성 위기에 돌입하면 어떤 안전가치(safety-value)도 제공하지 않는다. 재건이 일단 종결되면 이민은 실업에 대한 해결책이 더 이상 되지 못하며, 실업은 그 이전에 저개발 국가들을 타격했듯이 이제는 선진국들을 타격한다. 위기는 어떤 탈출구의 전망도 없이 노동자계급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다.
4) 노동자계급에 의해 성취되는 지속적인 개선이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의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근거한 특이적이고 영구적인 조직들을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노동조합은 그것의 창립을 있게 했던 그 기능을 상실했다. 그것은 ‚공산주의의 학교’이기는 커녕 더 이상은 계급의 기관일 수도 없게 되어 자본에 의해 영입되어 국가에 통합되어 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가 사회를 흡수하는 일반적 경향에 의해 더욱 용이해진다.
5) 프롤레타리아투쟁은 엄격히 경제적인 범주를 넘어서는 경향이 있고, 국가와 직접적으로 대치하고 스스로를 정치화하고 계급의 대대적인 참여를 요구함으로써 사회투쟁이 된다. 이것이 로자 룩셈부르크가 제 1차 러시아혁명이후 그녀의 대중파업 (Mass Strike)팜플렛 안에서 지적해낸 것이다. 동일한 생각이, „각 파업 뒤에는 혁명의 히드라가 고개를 든다“라는 레닌의 표현속에 들어 있다.
6) 데카당스기에 발생하는 투쟁 유형은 조직 수준에서 미리 준비될 수가 없다. 투쟁들은 자연발생적으로 폭발하고, 전면화되는 경향이 있다. 산별적으로 보다는 지역적 영토적 수준에서 발생하고 그것의 진화는 수직적이기 보다는 수평적이다. 이것들은 혁명적 대치국면을 미리 보여주는 특징들이다. 그 상황에서 행동에 돌입하는 것은 단순히 직업별 범주들이나 이런 저런 기업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지리-정치적인 단위(지방, 국가) 수준에서의 전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이기에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은 투쟁에 요구되는 물질적인 수단을 더 이상 미리 준비할 수가 없다. 자본주의가 지금 조직된 방식으로 볼때 파업의 길이는 전반적으로 효과적인 무기가 아니다(나머지 자본가들이 관련된 자본가를 원조할 수있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파업의 성공은 더이상, 노동자들에 의해 모아지는 재정자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투쟁을 확장할 수있는 그들의 능력에 근본적으로 달려있다. 이러한 확장을 통해서만 전체 국가자본에 의협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현 시기에 투쟁중인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노동자들의 다른 부분들로부터의 금전적인 지원의 문제가 더 이상 아니다(이러한 지원은 노동자들을 그들의 진정한 투쟁방법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노동조합이 제공할 수 있는 대용연대(ersatz solidarity)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른 부분들이 투쟁에 동참하는 것이다.
7) 투쟁의 조직이 투쟁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라 투쟁으로부터 탄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자기방어, 즉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무장도, 국제공산주의그룹(Groupe Communiste International)과 같은 그룹들이 생각하듯이 총기류 몇개를 지하실에 숨김으로써 미리 준비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그 이전의 단계들을 통과하지 않고는 도달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의 단계들이다. ♣
혁명조직(revolutionary organisation)의 역할
<상승기 자본주의>
계급에 의해 그리고 그것의 투쟁에 의해 만들어진 혁명가조직은 강령을 기반으로 구축되고 소수로 이뤄진 조직이다.
그 기능들은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 사회의 비판을 이론화해 낸다.
2) 강령, 즉 계급투쟁의 최종목적들을 작성해 낸다
3) 계급 내부에 그 강령을 전파한다.
4) 계급의 즉각적인 투쟁의 모든 시기들에,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항한 계급의 자기 방어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마지막 점과 관련하여, 19세기에 혁명조직은, 이전 투쟁들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의 특정 맹아적인 수준을 기반으로하여 계급의 단위적인 경제적 기관들을 발의하고 조직하는 기능을 가졌다.
이러한 기능때문에, 그리고 그 시기의 상황-개량의 가능성과 계급 내부에서 개량주의적 환상으로의 선동 경향- 으로 인해 혁명가들의 조직(제 2 인터네셔널의 정당들) 자체가 개량주의에 감염되었는데, 이것은 결국 즉각적인 개량을 위해서 혁명의 최종목표를 포기했다. 그 결과 그 경제적 조직들(노동조합)의 유지와 발전이 그 유일한 임무로 여겨졌다(이는 경제주의로 알려져 있다).
혁명가들의 조직 내부에서 오직 소수만이 이러한 진화에 저항하고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적 강령의 원래 모습을 옹호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소수 중 일부는 개량주의의 발달에 대항한 반작용으로, 프롤레타리아계급에 있어서는 이질적인 견해를 발달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당이 의식의 유일한 자리, 완성된 강령의 단독 소유자 이며, 부르조아계급과 그 정당들의 도식에 따라서 그 당의 기능이 계급을 ‚대표하는’ 것이어서, 계급의 결정기관, 즉 권력장악을 위한 계급기관이 될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 본다. 대리주의(substitutionism)라 불리는 이러한 견해는, 제 2 인터네셔널 내부의 대다수 혁명좌파에 영향을 끼쳤고 특히 레닌이 그 주요한 이론가였다(무엇을 할 것인가? 및 일보 전진, 이보 후퇴). ♣
<데카당스기 자본주의>
데카당스시기에 혁명가들의 조직은 이전 시기의 일반적인 특징들을 유지하지만, 노동자들의 즉각적인 이해관계의 옹호가, 이제까지 역사적인 사안으로 여겨져 왔던 최종목적으로부터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 추가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마지막 점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계급을 조직하는 역할을 갖지 않는다. 이것은 투쟁중의 계급 그 자체에 수행되어야 할 과업이다. 이때 계급은 경제적인-즉각적인 저항과 옹호를 위한 조직-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들 모두에 있어서 새로운 유형의 조직을 창조하고 권력의 장악을 지향하게 된다. 이러한 조직 유형이 노동자평의회(workers’ council)이다.
„노동자 해방은 노동자들 자신의 과업이다“라는 노동운동의 오래된 구호를 내걸고, 혁명조직은 혁명에 대한 부르조아적 관점에 근거한 모든 대리주의적 관념들에 대항해 투쟁해야 한다. 하나의 조직으로서 혁명적인 소수는 계급을 동원하기 위해서 즉각적인 요구들의 정강(platform)을 미리 준비할 과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모든 투쟁들에 결연히 참여하고, 투쟁을 위한 전반적인 방향을 선동하며, 계급 내부의 부르조아적 요소와 이데올로기를 비판해야 한다. 투쟁 동안 그것은 운동의 불가피한 절정인 혁명으로의 유일한 길인 전면화(generalisation)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방관자도 단순한 일꾼도 아니다.
혁명가들의 조직은 노동자들의 써클이나 그룹들의 출현을 고무하고 그 속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때 이러한 조직은, 어떤 노동조합의 건설도 불가능한 상황에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아직 그것의 완전한 형태의 단일기관들, 즉 평의회들을 창조할 처지에 있지 못하는 동안, 그러한 써클이나 그룹들은 계급 속에 존재하는 재편과 토론을 향한 실제적인 필요에 부응하는 임시적이고 미완성된 형태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써클들의 성질에 따라서 혁명가들의 조직은 그것들을 인공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에 대해서도, 그러한 그룹들을 당들의 전이벨트(transmissions belts)로 전환시키려는 생각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것들을 평의회나 기타의 정치-경제적 기관들의 맹아로 바라보는 견해들에 대해서도 대항해 투쟁해야 한다. 이 모든 견해들은 계급의식의 성숙과 단위적인 자기조직화(unitary self-organisation)의 과정의 발전을 마비시킬 뿐이다. 이러한 써클은, 설익은 정강을 결정함으로써 스스로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을 피한다면, 자신의 계급이 직면한 문제들에 흥미를 가진 모든 노동자들에게 열려 있는 만남의 장으로 남아 있는 한, 가치를 가질 수 있으며 그것들의 중요하나 임시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반세기동안 프롤레타리아계급을 짖누른 반혁명 시기의 결과로 혁명가들이 극도로 분산되어 있는 상황에서, 혁명가들의 조직은, 국제적인 수준에서 정치적 상황의 전개를 능동적으로 지원하고, 계급의 국제적인 정치정당의 건설을 향한 과정을 개시하게 될 논쟁과 대면을 고무할 임무를 갖는다. ♣
노동자계급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반혁명은 혁명가들의 조직 자체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시험이었다.
그러한 폭풍 속에서 공산주의 강령의 근본 원칙들을 지켜낼 줄 알았던 경향들만이 오직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는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의 압력하에 계급의 입장을 포기하는 도구로서 대체적로 기능했던 ‚새로운 생각들(new conceptations)’에 대해 불신적인 이러한 태도는, 불가피하게도 혁명가들이 자본의 일대기에 있어서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있어서 생겨나는 변화들의 그 모든 함의들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풍자화적인 형태는, 계급의 입장은 ‚불변적이고’ 1848년에 한번 공식화된 공산주의 강령은 ‚마침표 하나도 변경될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이다.
혁명가들의 조직은, 종종 낡은 내용물을 새롭게 포장하여 선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모더니스트 이데올로기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는 한편, 그 조직이 계급에 의해 만들어진 이유인 그러한 임무에 따라 행동해야할 경우에, 사회의 삶에 있어서의 변화를 그리고 그러한 변화들이 계급에게 그리고 그것의 공산주의적 선봉에게 있어서 갖는 함의들을 파악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모든 국가들이 분명하게 반동적인 지금, 혁명가들의 조직은 소위 ‚민족해방’운동들을 지지하는 어떤 생각들에 대항해서 투쟁해야 한다. 모든 전쟁이 제국주의적 성격을 띠는 지금, 그것이 어떤 구실로든 상관없이 오늘날의 전쟁에 참여한다는 어떤 생각도 비난해야 한다. 사회가 국가에 의해 흡수된 지금, 자본주의가 어떤 실제적인 개량도 허용할 수 없는 지금, 선거라는 가면극과 의회에의 참여라는 어떤 생각에도 대항해 투쟁해야 한다.
계급투쟁이 오늘날 직면한 모든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조건들과 더불어, 혁명가들의 조직은, 노동조합과 같이 투쟁에 있어서 장해물일 수 밖에 없는 조직들의 부활에 관한 계급 내부의 환상을 분쇄해야 한다. 20세기의 첫 혁명물결 동안 계급의 경험으로부터 출현한 투쟁방법들과 조직형태들, 즉 대중파업(mass strike), 총집회(general assemblies),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통일, 노동자평의회등을 주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조직은 투쟁을 자극하고 그 투쟁을 혁명적인 결론으로 지향시킨다는 자신의 역할을 진정으로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계급을 ‚조직’한다거나 ‚대표’하는 것과 같은 자신에게 더이상 속하지 않는 과제들 포기해야 한다.
‚19세기 이래로 아무것도 변화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혁명가들은 마치 프롤레타리아계급을 톨스토이의 동화 속의 등장인물인 바빈(Babine) 취급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바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가 그 이전에 만났던 사람에게 말하라고 들을 것을 되풀이 한다. 그래서 그는 몇번이고 몰매를 맞는다. 독실한 신자에게는 악마에게나 했어야할 말들을 하고, 곰에게는 은둔자에게처럼 말을 했다. 그리고 불쌍한 바빈은 그 아둔함때문에 생명을 잃게 된다.
여기에 제시된 입장들의 정의와 혁명가들의 역할은 결코 마르크스주의의 포기나 ‚수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적인 것에 대한 진정한 충실함에 기반하고 있다. 레닌과 볼셔비키는, 멘셔비키의 생각에 대항해서, 투쟁의 새로운 조건들을 그리고 그것들이 강령에 있어서 갖는 함의들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1917년 10월혁명에 능동적이고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1906년에 그녀의 당의 ‚정통’주의자들에 대항해 다음과 같이 썼을 때, 그녀도 마찬가지로 혁명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따라서 만일 러시아혁명 때문에 대중파업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낡은 관점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마르크스주의의 일반적인 방법과 견해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영예를 획득하는 일이 될 것이다“(대중파업론, [룩셈부르크주의] 152쪽, 풀무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