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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철학에 관하여(Sur la philosophie, 1988)
Gilles Deleuze, Pourparlers 1972-1990, Minuit, 1990, pp. 185-212(P.250)
Magazine litéraire(n° 257, sept. 1988) avec Raymond Bellour et François Ewald.
- 벨루르(Raymond Bellour 1939-) 프랑스 작가, 영화 이론가.
- 에발(François Ewald1946-), 프랑스 지성인, 한 때 마오(毛)주의자, 예술직업학교 교수
*한 다섯 해 전인가? 한철연에서 라깡 세미나팀을 연다고 할 때,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를 회원과 길게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그 회원은 나의 이유를 들어봐도 잘 이해 안 된다는데, 결론적으로 합류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헤어졌다. 나로서는 아직도 들뢰즈의 원전을 전부 읽지 못했고 지금도 다 읽지 못하고 있다. 그 당시 일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라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들뢰즈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선배도 그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만나는 거의 일년동안을 나를 나무라면서 술잔을 들었다 놓았다 했었다.
그 이유로서 하나는 프로이트와 벩송이 다르다는 것이다. 벩송은 전 저작에서 딱 한번 스키조프레니를 언급하지만, 그가 다음 시대의 철학적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한다. 무의식의 실재성을 먼저 주장한 이는 벩송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추억에 가깝고 벩송의 무의식은 박홍규의 설명에 비추어서 플라톤의 플라노메네 아이티아에 가깝다. 그리고 라깡의 상징계라는 것은 이야기를 매우 많이 다양하게 만들 수 있지만, 마치 신화나 (영화의) 가상세계처럼 부풀릴 수 있지만, 라깡의 상징계는 심층의 자발성과 실재성과 별개의 것이며, 벩송은 실재성과 상상작용은 현실적이고, 상징은 관념과 비슷하여 실재와 상상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혹시 상징계 중에서 어떤 특별한 체험의 경우에, 한번 또는 두세 번 성취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신비적 체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성하고 생산하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징계를 실재계와 상상계의 연결로서 보려는 노력이 아라한을 넘어서 보살의 경지일 것이다. 보살이 괜히 보살이 아니다. - 들뢰즈의 표현으로 보르헤스의 “소설”과 같은 것이리라. 이 꺽쇠는 당시 이야기와 관계 없다.]
이런 것은 학문상의 차이이지만, 한철연이 지향하는 우리나라와 통일의 문제에서 바라볼 때, 라깡 쪽은 유일신앙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쪽이라면(요즘의 상층의 페니미즘의 확대재생산도 비슷하게 간다), 벩송 사유는 프랑스혁명이래로 왕권과 교권을 제거하고 인민이 스스로 자발성을 발휘하는 쪽이다. 혁명은 상징계의 답을 인민에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스스로 문제제기와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여기에 보태어 당시 만났을 때도 잘 설명하지 못했지만, 정신분석학 접근자들은 라깡과 알뛰세(알뛰세가 68혁명의 복잡계를 카톨릭에서 풀어 보려고 장 기똥을 찾아갔다는 것은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다)를 통해 맑스-레닌주의와 접합에 대한 것인데, 지금 설명하자면, 맑스-레닌의 관점은 산업사회의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틀에서 통일과학을 인정하는 쪽인데 비해, 벩송에서는 통일과학이란 말은 이미 수학이 전횡하고 있던 시절이고, 사회학과 심리학의 발달에서 전혀 다른 학문적 기반으로 학문의 다양성에 새로운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후자의 학문들은 수학이나 물리학-화학으로 통일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과학과 인간과학은 수학의 원리, 물리-화학의 법칙과 달리, 새로운 생성의 학문이며, 학문의 기반도 생물학, 의학, 심리학, 기억론(면역학)에 기반을 두는 다른 방법을 필요로 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자본의 제국에서 벗어나 자주성과 자치성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달리 사유하고, 달리 말하기, 달리 실행하기, 들뢰즈 표현으로 되기를 할 때 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태계에서, 생명의 유기적 조직화에서, 우주의 생성과정과 더불어 생각해 본다면, 또는 현재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유추해 본다면, 우리가 달리 살아가야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54S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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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철학에 관하여(Sur la philosophie, 1988)」 185-212
- Magazine litéraire(n° 257, sept. 1988) avec Raymond Bellour et François Ewald
Q. - 당신은 새 책,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Le pli, Leibniz et le baroque, 1988)를 출판했다. 당신은 흄에 관한 연구(경험론과 주관성(Empirisme et subjectivité, 1953))로부터 오늘 라이프니츠에 까지 인도된 여정을 다시 그릴 수 있는가? 만일 사람들이 당신의 책들의 년대 순으로 따라간다면, 사람들은, 니체와 철학(Nietzsche et la philosophie, 1962)에서 절정을 이룬 철학사의 작업에까지 첫째단계 이후로, 당신은 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 1969)을, 그리고 가타리와 더불어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에 관하여 안티 외디푸스(L'Anti-Oedipe: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1972)와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2, 1980)을 쓰면서, 그 스타일이 대학계와 결코 다르지 않은 고유한 철학을 정교하게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화가(베이컨)와 영화에 관해 쓴 후에, 당신은 철학을 보다 고전적인 접근으로 재결합한 것 같다. 당신은 그러한 길 속에 있다고 인정하는가? 당신의 작품을 마치 하나의 전체, 즉 하나의 통일성으로서 고려해야 하는가? 반대로 당신은 거기에서 단절들과 변형들을 보는가? (185)
G.D. - 세 시기가 있다. .. 첫째가 스피노자-니체의 시기이다. 철학사의 관심으로 글을 쓴다. .. 예를 들어 흄(Hume, 1711-1776)은 믿음(croyence)의 기원적 개념을 진술한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왜 인식의 문제가 제기 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식은 믿음의 규정할 수 있는 양식이다. 철학사는 한 철학자가 말한 것을 다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철학자가 필연적으로 암시한 것, 말하지 않은 것과 그럼에도 말한 것 속에 현재인 것을 말한다. (185-186)
철학은 항상 개념들을 발명[창조]하는 데 있다. 나는 형이상학의 넘어감과 철학의 죽음에 관하여 걱정한 적이 결코 없다. .. 어느 사람도 자기 자리에서 개념을 창조하는 것을 행할 수 없다. 물론 철학은, 플라톤의 “경쟁자들”[스토아학자들]에서 짜라쿠스트라의 광대들까지[파라독스 발설자들]까지, 경쟁자들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정보이론, 소통이론, “개념”과 “창조적”이란 단어들을 차지하고 있는 상업적 판촉활동과 “개념가들”[개념형성자들]은 마치 자본주의적 최고의 사고처럼 상품의 코기토를 팔고[사는] 작동을 표현하는 염치없는 종족이다. 철학은 그러한 능력들 앞에서 작고 혼자이다. 그러나 그에게 축는다는 것이 도래하면, 적어도 웃는다는 것(de rire)이리라. (186)
철학은 소통적이지도 않고 게다가 관조적이지도 또는 반성적이지도 않다. 철학은 창조적이고 또는 심지어 본성적으로 혁명적이다.(186)
모든 개념은 심하게 역설적이다. 우리는 철학으로 카타리와 나를 만들기를, 앙티 외디푸스(1972)와 천개의 고원(1980)에서 시도했다. 특히 천개의 고원에서, 이 책은 큰 책이고 많은 개념들을 제안하고 있다. .. 우리는 각각 통로와 앞선 작업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정신의학에서 정치학에서 철학에서 이미 개념들로서 풍부하고, 나는 차이와 반복(1969)과 의미의 논리(1969)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두 인격으로서 협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들이 있어야할 셋째[강줄기]를 만들기 위해 서로 결합하는 두 시냇물과 같았다. 차후에 “철학”에서 질문들 중의 하나는 항상 이런 것이었다: 어떻게 철학(philo, 사랑)을 해명할 것인가? 그러므로 하나(une)의 철학, 그것은 펠릭스 없이는 시작도 도달도 결코 없었을 나에게서 둘째 시기였다. (187)
그러고 나서, 셋째시기가 있다. .. 지각에 의해 글을 쓰는 영국 또는 미국작가, 그리고 감화에 의해 글쓰는 클라이스트와 카프카 있다. 감화, 지각, 개념은 분리할 수 없는 세 가지 권능이 있는데, 이것을 혼성하는 음악과 같은 사유가 있다. 천개의 고원에서 분석의 초벌그림을 보여주었다. (187)
마지막으로 이모든 시기들은 서로 이어지고, 서로 뒤섞인다. 나는 이제 그것을 라이프니츠 또는 주름에 관한 책에서 더 잘 본다. 나는 그러고 나서 행하기를 원했던 것을 더잘 말할 수 있다. (188)
Q. - 그것은 급하지 않습니다. 우선 사람들은 당신의 생애에 대해 말할 수 있지 않는가? 저술목록과 전기 사이에 어떤 연관이 없는가? (188)
G.D. - 교수들의 생애는 흥미로운 것이 드물다. 물론, 여행들(le voyages)이 있고, 교수들은 단어들과, 경험들과, 학회들과, 원탁 테이블과 더불어 말하고 또 항상 말하면서 자신들의 여행들의 값을 지불한다. 지성인들(les intellectuels)은 굉장한 문화[교양, 소양]를 갖고, 그들은 모든 것에 관해(sur tout) 견해를 갖는다. 나는 지성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기탄없이 나눌 수 있는 문화[교양]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안다는 것, 그것을 나는 단지 현실적 작업의 요구(besoin) 때문에 안다. 만일 내가 여러 해 지난 후에 거기에 되돌아간다면, 나는 전체를 다시 배워야 만 한다. 견해를 갖지 않는다는 것과 이러 저러한 관점을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 매우 편안하다. 우리는 소통불가를 겪지 않지만, 반대로 우리가 말해야할 커다란 것을 갖지 않을 때, 우리에게 스스로 표현하도록 강요하는 전심전력(de toutes les forces)을 겪는다. 여행하다(voyager), 이것은 다른 곳에 어떤 것을 말하러 가는 것이고, 그리고 여기서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해 되돌아오는 것이다.또한 나는 여행할 성향이 거의 없다. 생성들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하여 지나치게 꿈적이지(bouger) 않아야 한다. 토인비(Toynbee, 1889-1975)의 구절에 감명을 받는다. 즉 “노마드들은 꿈적이지 않는 자들이고, 이들은 떠나지는 것을 거절하기 때문에 노마드들이 된다.”
당신들이 저술목록과 전기의 [연결] 기준들을 나에게 적용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보기에 나는 충분히 일찍이 나의 첫 저술을 썼으며, 8년 동안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여러 해 동안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추상적으로 안다. 약간은 마치 다른 어떤 이가 나에게, 내가 믿지만 진실로 내가 아닌, 추억들을 말해 주는 것처럼. 나의 생애에 마치 구멍처럼, 8년의 구멍들(les trous)이 있다. 나에게 나의 생애에서 흥미로울 것 같은 것이 그러한 것인데, 그 구멍들은 빈칸(les lacunes)들을, 가끔은 드라마 같은 것을 허용하고, 그러나 가끔은 그렇지 않는 그런 구멍들이다. 여러 해에 걸친 강경증(强硬症, des catalepsies, 마비증) 또는 여러 종류의 몽유병을, 나의 생의 대부분은 허용했다. 운동(le mouvement)이 이루어진 것은 아마도 이런 구멍들 속에서 이다. 왜냐하면, 궁지에 빠져 나오기 위하여 어떻게 운동하는지, 어떻게 벽을 뚫고 지나가는지는 좋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 꿈적이지 않으면서 또한 너무 말하지 않으면서, 거짓 운동들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고, 기억이 더 이상 없는 거기에 머무는 것이다. 피츠제럴드(Fitzgerald, 1896-1940)의 아름다운 단편이 있다: 어떤 이가 한 구멍을 가진 도시에 10년을 더 산보한다. 또한 반대의 것이 일어난다. 더 이상 여분의 구멍들은 없으나, 떠돌면서 과도한 여분의 추억들이 있는데, 사람들을 그것을 어디 놓아야 할지 어디에 위치할지를 더 이상 알지 못한다(그러한 것이 나에게 일어났으나 언제?). 사람들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추억들이 너무나 많아서 거기-추억들을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7년에, 14년에, 40년에 있었던가? 나의 생애에 두 가지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기억상실증들(les amnésies)과 이상기억증진(les hypermnésies)이다. (188-189 둘째 질의 답, 전문)
Q. - 말투의 이런 비판, 당신은 이것을 특히 텔레비전에 근거하여 행한다. 당신은 단네(Serge Daney, 1944-1992)의 영화 일기(Ciné journal: 1981-1986, 1986)의 책의 서문 속에서, 이 주제에 관하여 썼다. 그러나 철학자는 어떻게 소통하는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플라톤(Platon, 전428-전348) 이래로 철학자들은 책들을 썼고, 책을 통해서 표현한다. 그런 것은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거기에서 사람들은 철학자들이라 부르거나 또는 이름 붙은 자들 가운데서 두 가지 전형들을 구별하여 본다. 즉 대학의 자리를 차지하고 가르치고 교육하는 자들이, 그러한 것이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가르치지 않는 자들이, 심지어는 가르치기를 거부하며 매체들에 전념하고자 하는 이들, 즉 “신 철학자들이” 있다. 당신은 첫째 범주 속에 줄서있는 것 같다. - 심지어 당신은 “신 철학자들(nouveaux philosophes)”에 반대하는 “전단지(un tract)”를 만들었다. 당신들을 위하여 무엇을 강의 하는가? 이런 연습[학습]속에 둘도 없이 소중한 무엇이 있는가? (189-190)
G.D. - 강의들은 나의 삶의 부분이며, 내가 강의들을 정열적으로 했다. ... 미래는 어둡다. 왜냐하면 프랑스 대학에서 탐구를 해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렵기 때문이다. (190)
강의들, 그것은 일종의 슈프레히게장(Sprechgesang,서창, 敍唱)이며, 연극 보다 더 음악에 가깝다. 또는 강의가 록-콘서트와 약간 같다는 것을 원칙적으로 대립시키지 못한다. 방센[파리 8대학](그리고 우리가 생드니로 난폭하게 옮겨졌을 때, 그러한 것이 계속이었다)은 예외적인 조건들을 재통합해야만 한다. 우리는 철학에서 “인식들의 진행성”의 원리를 거부했다.(190)
긴 회기[강의기간]이 있었고, 어떤이도 전체를 듣지 않으나, 각각은 자신이 필요하고 욕구한 것을, 심지어 자기 학문과는 거리가 먼 가져야 할 어떤 것을 취했다. 직접적이고 자유 정신분열증적인 개입들의 시기였다. 그리고 카세트의 시대가 도래 했다. (190)
나는 공중들에게, 그가 나를 위해서 있었던 것, 즉 나에게 주었던 것을 결코 말하지 않았다. ... 거기서 철학이 어떤 점을 요구하는지를 나는 알았다, 즉 개념들에 의해서 철학적 이해뿐만이 아니라, 지각들과 감화들에 의해서 조작하는 것과 같은 비철학적 이해도 마찬가지이다. 둘(les deux)을 필요로 한다.철학은 비-철학과 함께 본질적이고 실증적인 연관 속에 있다. 철학은 비철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다. 가장 놀라운 경우를 보자: 스피노자 또는 니체인데: 스피노자, 그는 절대적 철학자이며, 윤리학(1677)은 개념이 중요한 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순수한 철학자는 모든 사람에게 엄격하게 말거는 자이다. 만일 누구라도 바람에 의해, 불에 의해 충분하게 단련하게 둔다면, 그는 윤리학(1677)을 읽을 수 있는 자이다. 또는 니체가 있다. 거기에는 철학 속에서 살아있는 것을 죽이는 지식의 과도함이 있다. 비철학적 이해는 불충분하지도 임시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두 절반의 하나이며 두 날개의 하나이다. (191)
Q. - 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 1969) 서문에서 당신들은 말했다. “시간은[알맞은 때], 사람들이 그렇게 오랜 이래로 그래왔던 것처럼 철학적 책을 쓴다는 것이 전혀 가능하지 않을 때, 접근된다.” 당신들은, 니체가 시작했던, 철학적 표현들에 대한 새로운 수단들의 탐구가 “다른 몇몇 예술들” - 마치 연극 또는 영화처럼 -의 발전과 더불어 연관하여 추구해야만 했다. 당신들은 보르헤스(Borges, 1899-1986)를 철학사의 취급과 유비적 모델로서 인용한다(마치 푸꼬가 말과 사물(1966)의 입문에서 그의 고유한 방식과 연관하여 이미 그렇게 했던 것처럼). 12년이 지나서 당신들은 천개의 고원(1980)의 열다섯 “고원”을 말했다. 사람들은 이 고원들을 각각으로 거의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고, 단지 결론은 마지막에 읽어야만 한다. 결론을 죽 따라가면서 당신들은 여백(ronde folle) 속에 앞서 설명한 고원들의 숫자들을 걸어놓는다. 마치 어떤 것에도 양보함이 없이, 의지적으로 질서와 무질서를 동시에 담당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들은 오늘 철학의 스타일에 대해, 건축학에 대해, 철학책의 혼성에 대해 이런 질문을 어떻게 봅니까?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부터 둘이서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둘이서 쓴다는 것, 그것은 대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보다 훨씬 더, 철학사에서 예외적이다. 어떻게, 왜 둘이서 글 쓰는가? 당신들은 어떻게 진행했는가? 어떤 요청이 당신들을 [함께] 머물게 했는가? 따라서 이 책들의 저자는 누구인가? 이 책들은 심지어 하나의 저자를 갖는가? (192)
[니체는 음악과 시를 철학과 연관하여 감화라는 방면에 발전시켰다. 들뢰즈/가타리는 문학과 회화(음악과 건축)를, 게다가 영화와 텔레비전을 다른 철학적 방식으로 전개하였다. 문학에 보르헤스를 수용하는 측면에서, 들뢰즈는 미래가 아니더라도, 기억 속에서 비어있는 구멍을 상상으로 찾아내기도 하고, 백과사전에서 권들의 차례 사이에 빠진 것을 상상계에서 삽입하듯이 구멍을 내어 열고 나간다. (54SLG)]
G.D. - 위대한 철학자들은 또한 위대한 스타일리스트들이다. 철학에서 스타일이란 개념의 운동이다. 물론 개념(의 운동)은 문장들 밖에 있지 않으며, 그러나 문장들은 대상[목적]에게 생명을, 즉 독립적인 생명을 부여하는 다른 대상을 갖지 않는다. 스타일, 그것은 언어의 다양화하기, [음악의] 전조(modulation, 轉調), 밖으로 향한 언어 전체의 긴장이다. 철학에서, 그것은 마치 소설(un roman) 속에서와 같다. 사람들은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자문해야만 한다. 단지, 작중인물들은 개념들이고, 환경과 풍경들은 시간-공간들이다. 사람들은 항상 생명을 부여하기 위하여, 감옥에 갇혀있는 거기서 생명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분출선(탈주선, 용출선)을 그리기 위하여 쓴다. (192)
이때부터 둘이서 글쓴다는 것은 반대로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정확하게 인격들로 되어있었다면, 각자는 자기의 고유한 삶과 자기의 고유 견해를 가졌으면, 서로 논의하고 협력할 것을 제안하면서 문제가 있었으리라. .. 우리는 [각자가] 확신한는 것도 전혀 없고, 인격적[개인적]인 것도 전혀 아니었다. 공기의 흐름, 바람, 하루, 하루의 한시간, 시냇물, 장소, 전장, 질병 등은 인격적인 개별성을 갖지 않는다. 이것들은 고유명사들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이것임들(hecceités)”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두 시냇물, 두 강처럼 서로 혼성된다(se composer). (193)
의미의 논리(1969)에서, 나는 일종의 계열적 혼성[작곡]을 시도했다. 천개의 고원(1980)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것은, “고원”은 메타퍼(은유)가 아니라는 것이고, 그것들은 연속적 변이의 지대들(des zones)이며, 또는 마치 각자가 지역을 감시하고 조망하는 여행(tours 순회)과 같으며, 서로들이 서로들에게 기호들로 이루어져 있는 순회들이다. 이것은 인도의 또는 제노바(génoise)의 혼성[작곡]이다. 거기에서 내가 보기에, 우리는 한 스타릴로, 다시 말하면 다조성(polytonalité 음악의 多調性)으로 가장 가깝다, (194) [왜 인디언(인도 또는 아메리카)과 제노바인가? 인도가 한나라 다언어, 다풍토, 다계급이 있는 나라이지만, 왜 제노바인가?(54NKI)]
Q. - 문학이 당신들의 작업에서 도처에 소개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허-마조흐의 소개(1667)」, 프루스트에 관한 작은 책(증보하기를 계속하고 있고)[1964, 1970년 증보], 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 1969)의 많은 부분, (루이스 케럴에 관한) 그 책의 부분들만큼이나 부록에서(클로소프스키, 미셀 투르니에, 졸라에 관하여), 카프카에 관한 책[1975] 등을 철학과 평행하는 방식으로 쓰면서, 이어서 가타리와 함께 앙띠 외디푸스(1972)를, 파르네와 함께 대화집(Dialogues, 1977)의 한 장(영국-미국 문학의 우수성에 관하여)을,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2, 1980)의 상당한 부분들을 썼다. 목록이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은 영화에 관한 긴 저작들[1권 1983, 2권 1985]과 소품으로 한 화가의 작업으로부터 출발한 프란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1981)가 이룬 것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학이 당신의 운동[생성과정] 전체를 변곡들(inflexions)에 의해 동반할 수 없는 것은, 문학이 철학과 그것의 표현 자체에 너무나 가까워서 이라는 것일까? 또는 그러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 인가? (194-195)
G.D. - 나는 이런 차이가 있었다고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다. 나는 일반적 제목인 “비평과 임상”으로 연구 일체를 꿈꿨다. (195)
그것은 진단의 업무만이 아니다. 기호들은 삶의 양태들로, 현존의 가능성드로 환원한다. 그것은 솟아나는 또는 소진하는 삼의 징후들이다. (195-196)
글쓰는 작동 속에는 생명으로 개인보다 더 많은 어떤 것을 만드는 시도가, 개인을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부터 생명을 자유롭게 하는 시도가, 있다. 예술가 또는 철학자는 자유는 깨질 듯한 질박한 건상상태, 연약한 유기체, 안정되지 못한 균형을 가졌는데, 스피노자, 니체, 로렌스 등이다. 그러난 그들을 부서 버린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살았고 체험하고 사유했던 삶의 과도함이다. 그들에게서 너무 큰 삶이지만, “기호가 가깝다”는 것을 그들에 의해서 이다: 즉 짜라투스트라의 마지막이나 윤리학의 5장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올, 그리고 아직 언어를 갖지 못한, 인민의 함수로 쓴다. (196)
내가 썼던 모든 것은 생기론적(vitaliste)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것을 희망하고, 기호들과 사건의 이론을 구성한다. 나는 문제가 문학에서와 다른 예술에서 달리 제기된다고 믿지 않는다. 단순히, 나는 문학을 위해 내가 바랐던 책을 만들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196) [들뢰즈 본인이 생기론적이란 표현을 썼지만, 그의 전체를 흐름상 스토아의 유기체론에 닮았다.]
Q. - 정신분석학이 아직도 활약하고 있고, 심지어 특이한 방식으로 차이와 반복(1969)과 의미의 논리(1969)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신분석학은 기반이 있다. 제1권 안티 외디푸스(1972)에서부터, 정신분석학은 분명하게 무너뜨려야 할 적이 되어있다. 그러나 훨씬 더 깊이 있게, 그때부터 정신분석학은, 새로운 어떤 것을 사유할 수 있기 위하여 또한 새로이 사유하기 위하여 해체해야만 할, 특별한 비전(la vision)으로 남아있다. 그러한 것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그리고 왜 안티 외디푸스(1972)가 68년 5월 정세의 첫째 중요한 철학책이었는가, 아마도 왜 첫째 진실한 철학적 시위(manifete, 선언 첫째)이었는가? 이 책은, 미래는 프로이트-맑스주의의 어떤 종합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잘 그리고 즉시로 말한다. 그 책은 프로이트로부터(라깡과 그의 구조주의로부터) 자유롭고, 마치 사람들이 “신철학자”들이 맑스로부터(그리고 혁명으로부터도) 곧 자유로울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신들은 어떻게 그러한 것이 특이한 유비로서 나타나는 것을 지각하는가?
G.D. - 그거 호기심 많아요, 그점에서, 정신분석학으로부터 나온 것은 가타리이지, 내가 아니에요. 나를 거기에서 나오게 한 것은 가타리예요. 나의 마조흐에 관한 연구(1967)에서 그리고 의미의 논리(1969)에서, 나는 사도-마조히즘의 거짓 통일성에 관한, 또는 정신분석학에 부합하지 않았지만 정신분석학과 화해할 수 있었던 사건에 관한, 결과물을 가졌다고 믿었지요. 반대로 펠릭스[가타리]는 정신분석가 이었고, 또한 라깡의 제자로서, 그러나 화해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아챈 “아들”과 같은 방식으로, 남아있었다. 안티 외디푸스(1972), 그것은 아주 한 번에 이루어진 단절이며, 두 개의 주제로부터 이루어졌다. [하나] 무의식은 극장이 아니라 공장이며, 생산하는 공장이다. [둘] 무의식은 아빠-엄마를 망상하지(délirer) 않고, 종족들, 부족들, 역사학, 항상 사회적 장(場)인 지리학에 관해 망상한다(헛소리한다). (197)
만일 이책이 68년 후에 중요성을 가졌다면, 왜냐하면 그것은 이 책이 프로이트-맑스주의자의 시도들과 중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준들을 분배하지도 화해시키려 애쓰지도 않는다. 반대로 동일한 평면위에 생산을, 흐름들의 논리에 따라 사회적이고 동시에 욕망하는 생산을 하고자 애쓴다. 망상은 실재적인 것 속에서 작업[조작]한다. 우리는 실재적인 것, 이외에 다른 요소를 인식하지 못한다. 상상계와 상징계는 우리에게 거짓 범주들인 것 같았다. (198)
안티 외디푸스(1972), 그것은 실재적인 것의 일의성(l‘univocité), 즉 일종의 무의식의 스피노자주의였다. 그런데 나는 68년이 이런 발견물 자체였다고 믿는다. 68년을 증오하는 자들, 부정[하기]을 정당화하는 자들은 그것이 상징계 또는 상상계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게(ça) 결코 그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순수 실재적인 것의 침입이었다. 어째거나 나는 프로이트와 연관하여 안티 외디푸스(1972)의 진행방식과 맑스에 연관하여 “신철학자들”의 진행방식 사이에 최소한의 유비도 보지 않는다. 안티 외디푸스(1972)가 정신분석학을 비판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좋던 나쁘던 이 책에서 상세하게 다룬 무의식 개념작업을 함수로 하고 있다. 한편으로 신철학자들이 맑스를 고발할 때, 그들은 ‘자본’의 새로운 분석을 – 이 분석은 그들에게서 신비스럽게도 모든 현존을 잃어버린 - 전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맑스에서 흘러나왔다고 가정하는 스탈린의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귀결들을 고발한다. 그들은 비도덕적 귀결들을 프로이트에게 전가했던 자들에 오히려 가깝다. 그것은 철학과 더불어 볼 것이 아무 것도 없다. (198)
Q. - 당신들은 끊임없이 내재성을 네세운다. 그것은 당신들의 사유에 가장 고유한 것 같다. 그것은 결함없는, 부정없는 사유이다. 이 사유는 초월(transcendance)이라는 모든 조준을,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체계적으로 배출한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묻기를 갈망한다. 진실로 그것이 진리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일반화된 이런 내재성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개념들은 그만큼이나 더 부분적이고 지역적으로 남는다. 의미의 논리(1969)이래로, 당신은 새로운 책에 의해 개념들의 계략(une batterie)을 생산하는데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이주들(des migrations, 이동들)과 다음측정(des recoupements, 교차점)에 관해 물론 관찰한다. 전반적으로 영화에 관한 책의 어휘는 프란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1981)의 어휘와 동일하지 않고, 이 후자는 자본주의와 스키조프레니(1972, 1980)의 어휘와 동일한 어휘가 아니다. 이것들과 연관해서 정확히 하기 위하여, 세련되게 하기 위하여, 복잡하게 되기 위하여, 누적하기 위하여 다시다루는 대신에, 만일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의 개념들은 매번 고유한 체(un corps)를, 즉 특수한 발명의 수준을 형성해야만 한다. 그러한 것은 개념들이 집합적인 정식화 작업에서 다시 다루는데 전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가정하는가? 또는 아무 편견없이 단지 최대한 개방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것이 내재성과 화해될 것인가? (199)
G.D. - 내재성의 평면을 세우는 것, 내재성의 장을 그리는 것, 내가 전념했던 모든 작가들 각각도 [그것을] 행한다(심지어 그가 종합들의 초월적 용도를 고발했을 때, 칸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가능적 경험에 만족하여 그치고 실재적 실험 작업에는 아니었다). 온추상(l’Abstrait)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자체로 설명되어야 한다. 보편자들도, 초월도, 온일자도, 주체도(대상도), 온이유도 없고, 과정들만이 있다. 과정들은 통일화일 수도 주체화일 수도, 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더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199)
사람들이 초월을 불러일으킬 때, 사람들은 실험하는 대신에 해명[해석]을 도입하기 위하여 운동을 멈춘다. 벨루르(Raymond Bellour 1939-)는 시네마를 위해서, 이미지들의 흐름을 위해서 그것을 잘 제시했다. 그러한 이유로 해명은 부족하다고 가정된 어떤 것의 이름으로 항상 이루어진다. 단일성[통일성]은 정확하게 다수성이 부족한 어떤 것, 마치 주체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사건(비가 오다)이 없는 것이다. (200)
마치 개념과 같은 후렴반복(la ritournelle)을 예를 들어보자. 그것은 영토와 연관이 있다. 영토 속에 리투르넬로들이 있고, 리투르넬로가 영토를 표시한다. (200)
나는 철학이 다양체들의 논리라고 생각한다(나는 이런 관점에는 미셀 세르와 가깝다고 느낀다). 개념들을 창조하는 것, 그것은 평면의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고 앞선 것들에게 영역을 보태는 것이고, 새로운 영역을 탐험하는 것이며, 모라라는 것을 채우는 것이다. (201)
따라서 개념들은 돌풍에 의해서 작업[조작]한다. 천개의 고원에서 각각의 고원은 그러한 돌풍(une telle rafale)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개념들이 재파악과 체계성의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개념의 권능처럼 반복이 있다. 그것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연결(le raccordement, 접속)이 있다. (201)
나에게 있어서 반성[반사]를 대체하는 것, 그것은 구축주의이다. 그리고 소통을 대체하는 것, 그것은 일종의 표현주의. 철학에서 표현주의는 스피노자에게서 그리고 라이프니츠에게서 가장 높은 점을 발견한다. 온타인(Autrui)이란 개념, 나는 이것 중의 하나를 발견한다고 믿는데, 그것을 대상도 주체도(다른 주체)도 아닌 것으로 정의하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능 세계의 표현에서 발견한다. (201-202)
Q. - 그러나 새로운 개념을 창조할 필연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철학적으로 “진보(un progrès)”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그것의 임무들을, 그것의 필연성을, 심지어는 오늘날의 그것의 “계획(grogramme)”를 정의하는가? (202)
G.D. - 나는 가정한다: 많이 변하는, 그리고 역사 속에서 많이 변했던, 사유의 한 이미지가 있다. 사유의 이미지에 의해, 나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선가정된 어떤, 보다 깊은 어떤 것을 좌표들의 체계, 역동론들의 체계, 방향성들의 체계를 이해한다. (202)
또한 우리는 우리와 더불어 친구를 갖거나 또는 우리 스스로 혼자, 자아=자아이거나, 또는 우리들은 연인들이거나 또는 다른 어떤 것이다. 우리자신을 배반하는 것이, 배반당하거나 배반하는지 간에, 어떤 위험이 있는가? 심지어 친구를 불신해야 하는 한 시간이[때는] 없는가? 철학에 “사랑하는 자(philos)”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202-203)
사유의 이미지는 철학의 선가정과 같다. 그것은 철학을 앞서며, 그것은 일반 비철학적 이해가 아니라 오히려 선-철학적 이해이다. (203)
사유 이미지들의 이런 연구를 사람들은[들뢰즈도] 누스학(noologie)이라 불렀으리라, 그것은 철학의 서설들이다. 그것이 차이와 반복(1969)의 진실한 목적이며 사유의 이미지 속에 요청들의 본성(la nature)이다. 내가 의미의 논리(1969)에서 이런 질문에 의해 시달렸는데, 그 작품에서 높이, 깊이, 표면은 사유의 좌표들이고, 내가 이것을 프루스트와 기호들에서 다시 다루는데, 왜냐하면 프루스트는 기호들의 권능을 그리스 이미지에 대립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그것을 펠릭스와 더불어 다시 발견하는데, 왜냐하면 리좀은 나무들의 이미지 아래 펼쳐지는 사유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 속에서, 우리에게 모델[원본]은 없고 심지어는 안내자도 없으나, 그러나 참조(un référant), 끊임없이 조작할 마주침(un croisement)이 있다: 즉 그것은 두뇌 위에서 인식들의 상태이다. (203-204)
[들뢰즈가 누스학(noologie)을 썼다고 이 대담에서 말하고 있구나, 내가 바로 보았었네.]
철학과 신경학과 특권적인 연관이 있다. 사람들은 관념연합론자들, 쇼펜하우어, 벩송에게서 그것을 본다. 오늘날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두뇌의 미시생물학이다. (204)
우리는 두뇌로부터 갖는 인식에 따라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새로운 사유는 두뇌 속에서 알려지지 않은 홈[고랑]들을 생생하게 그린다. 그 사유는 두뇌를 뒤틀고, 접거나 쪼갠다. 이점에서 미쇼(Henri Michaux, 1899-1984)의 기적이 있다. 새로운 연결들, 새로운 신경소통들, 새로운 시냅스들(synapses), 이것은 철학이 개념들을 창조하면서 동원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자기[두뇌 생물학]의 고유한 수단들과 더불어 객관적 물질적 모음[덩어리] 또는 권능의 재료를 발견하는 두뇌의 생물학이 발견한 이미지이다. (204)
나에게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 그것은 화면(l’écran)이 두뇌(un cerveau)일 수 있다는 것이며, 레네(Alain Resnais, 1922-2014)와 지베르베르크(Hans-Jürgen Syberberg, 1935-)의 영화에서 마찬가지이다. (204)
Q. - 당신의 앞선 책은 푸꼬에게 전념했다. 그것은 철학사였던가? 왜 푸꼬인가? 당신의 두 철학들은 서로서로 어떤 연관을 유지하는가? 푸꼬(Foucault, 1986)속에서 이미 당신은 주름의 용어를 도입한다. 푸꼬-라이프니츠의 연관이 있는가? (205)
[들뢰즈가 푸꼬(Foucault, 1986)를 단행본으로 냈다. 이 작품은 푸꼬를 공시태로보다 통시태로 파악하는 글이다. 통시태라는 점에서 역사적 탐구일 수 있다. 그리고 푸꼬가 표면에서 상층으로의 위상들을 통시적으로 해놓았기에 들뢰즈가 행한 심층에서 상층으로 작업이 돋보이게 될 것이다. - 푸꼬가 말년에 표면 안쪽으로 들어가면서의 주름을 다룬다. 이에 비해 들뢰즈가 이번에 출간한 주름(1988)은 인식론을 넘어서 현존재를 총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을 보았다. (54SLI)]
G.D. - 푸꼬는 위대한 철학자이며 또한 놀라운 스타일리스트이다. 그는 지식과 권력을 다르게 잘라냈으며, 이 둘 사이에 특수한 관계들을 발견했다. 그와 더불어 철학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는 “장치들”의 제3차원으로서, 즉 지식들을 내던지고 권력을 재조절하는 구별된 제3의 항목으로서, 주체화의 과정을 도입했다. (205)
내가 썼던 책은 철학사가 아니다. 그것은 그와 더불어 행하기를 원했던 책이며, 더불어 내가 그로부터 갖고 있는 생각과 그를 향한 나의 찬사이다. .. 나의 차이들은 매우 부차적이다. 그가 장치(dispositif)라고 불렀던 것과 펠릭스와 내가 배치(agencement)라고 부른 것은 동일한 좌표들을 갖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는 기원적인 역사적 귀결들을 구성하는데 비해, 우리는 지리학적 혼성들에, 즉 영토성과 탈영토화의 운동에, 더 많은 중요성을 부였다. (206)
푸꼬에 의해서 마지막 개방적인 길은 극히 풍부하다. 주체화의 과정들은 “사적 생활”과 더불어 보아야할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개체들이나 공동체들이 주체들로서 구성되는 조작(l’operation, 실험)을 지칭한다. 그 주체들이란 구성된 지식들과 확립된 권력들의 여분(en marge)[노마드]이며, 새로운 지식들과 권력들로 일어나도 좋으니까. (206) [인민이 주체화로서 새로운 지식과 권력으로 행하는 것은 기존의 국가 기구에서와 다르다. 그런 의미에 변역(變易)과 혁명(革命)은 주체화의 과정일 것이다. (54SLI)]
온전히 애절한(élégiaque) 주체성이 있다. 그 주체는 고양 속에서 만큼이나 불평(plainte 탄식) 속에서 태어난다. 푸꼬는 오늘날 사회 속에서 묘사되는 주체화의 운동들에 매료되었다.주체성을 생산하는 과정 중에 있는 현대 과정들은 어떤 과정들인가? 그때에 사람들은 푸꼬에게서 주체의 회귀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그가 제기한 문제를 전혀 보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또한 많은 논의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207)
Q. - 그 때문에, 사람들은 앙티-외디푸스(1972)에서, 코드화된 사회들, 초코드화된 국가들, 흐름들을 탈코드화한 자본주의[제국]들의 구별을 통해 보편적 역사의 조각[절편]들을 잘 본다. 그리고 천개의 고원(1980)에서 당신은 이 주제를 다시 다루면서, 노마드의 전쟁기계들과 정주적 국가들 사이의 대립을 도입한다. 당신은 “노마드학(nomagologie)”을 제안한다. 그러나 정치적 정립들은 이로부터 흘러나오는가? 당신은 푸꼬와 함께 감옥 정보 그룹(GIP: Group d'information sur les prisons, 1971년 창설)에 합류했다. 당신은 꼴뤼쉬(Michel Colucci, dit Coluche, 1944-1986)의 대통령선거(1981년) 후보를 지지하는 데 서명을 했다[11%를 얻었다]. 당신은 팔레스타인에게 지지 입장을 냈다. 그러나 68년 이후부터, 당신은 오히려 가타리보다 훨씬 더 “침묵(silencieux)”을 나타낸다. 당신은 인간 권리들의 운동(mouvement des droits de l’homme)에, 권리 국가(Etat de droit, 통치국가)의 철학에 이방인으로 남아 있었다. 선택에 있어서 망설임(réticence), 실망(déception)인가? 도시[국가] 속에서 철학자의 역할은 없는가? (208)
G.D. - 초월자들 또는 보편자들의 재구성, 권리를 지닌 반성적 추체를 재정립하는 것 또는 소통의 간주관성을 창립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은 철학적인 중요한 발명은 아니다. 사람들은 총의(un consensus, 교감)를 기초하고자 원한다. 그러나 총의는 철학과 더불어 보아야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여론(opinion)의 이상적 규칙이다. 사람들은 자주 소련에 대항하여 인도했던 촉진 철학[쏙쏙철학]을 말했다. 에발(François Ewald 1946-)이 제시하기를, 인간의 권리들을 권리상 주체를 어떻게 만족했던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달리 흥미있는 법률적 문제들을 제기했는가에 있다. (208)
시의 적절치 않은(intempestif, 니체 반시대적). (209)
내가 생각하기에, 철학은 공적인 것도 선전도 부족하지 않으나, 오히려 그것은 사유의 은밀한[저항적] 상태처럼 노마드 상태이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유일한 소통, 그것은 아도르노(Adorno, 1903-1969)의 모델, 즉 바다에 떠있는 병이며[난바다의 나뭇잎], 또는 니체의 모델, 즉 한 사상가에 의해 날려져서, 다른 사상가에 의해 끌어 모은 화살이다. (210) [들뢰즈가 선승과 같이 이런 은유적 표현을 좋아한다.]
Q. - 라이프니츠에 전념한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Le pli, Leibniz et le baroque, 1988)(그의 이름은 부제와 주제 -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 있지만)는 철학자들의 – 칸트, 벩송, 니체, 스피노자 - 모습들에 전념했던 당신의 긴 계열의 책들을 다시 묶어 놓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관하여(sur, 철학자에 관하여)라는 책보다 의(de, 철학자의)라는 책이 더 많다는 것을 잘 느낀다. 또는 오히려 라이프니츠와 당신의 사유전체, 이 둘을 동시에 놓는 놀라운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완전히 현재적이다. 당신은 이런 일치를 어떻게 강하게 느끼는가(ressentir)? 사람들은, 이 책이 라이프니츠 개념과 동조하여 당신의 다른 책들에서 온 여러 계열들의 개념들 집성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매우 유연한 방식으로 모든 자료들(les donnees)을 약간 재활용하면서, 보다 전지구적 특성이란 새로운 자료(une nouvelle donne)를 생산하기 위하여 [전개념들을 집성한다고 말했다.(211)
G.D. - 라이프니츠는 매혹적이다. 왜냐하면 아마도 어떠한 철학자도 그보다 더 많이 [개념들, 자료들, 용어들] 창조하지 못했다. 그것은 겉보기에 극히 야릇한 용어들이고, 거의 광기있는 용어들이다. 그것들의 단위는 추상적인 것 같고, “모든 술어는 주어 속에 있다”와 같은 전형이며, 단지 술어는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사건이며, 그리고 그 주어는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그것은 봉지(une envloppe)이다. (211) [벩송이 덩이, 덩어리라고 하는 것과 같고 들뢰즈의 다양체와 같다.]
[들뢰즈의 말년 작품인 주름(1988)은 들뢰즈의 사유 흐름의 종합판인데, 공시적으로 우주 전체를 각 사건별(개체화)로, 0에서 무한까지 또는 먼지에서 보살까지, 개념화 하는 작업을 한 셈이다. - 이 작업은 플라톤이 국가론 다음으로, 결정체 다섯 가지 – 정육면체(흙), 정8면체(공기), 정사면체(불), 정20면체(물), 우주로서 정12면체 - 로 생성되는 우주론을 썼듯이, 들뢰즈는 노마드론 다음으로 사건들과 개별자들을 주름으로 설명하면서 우주론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공동체의 노마드와 우주의 사건들을 정리하고 나서야 그는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쓰고 싶었고, 여기서 말하듯이 가타리와 다시 작업하게 될 것이다. 이런 서양철학의 유비는 동양철학의 우주와 인간과 다른 점이 될 것이다. 중국에서 공자학은 천하와 인간이라는 도덕론에 경도되었으나 그래도 역경이 우주와 사건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인간사에 치중하면서 자연사를 뒷전으로 밀렸다.
서양철학이 동양삼국과 다른 것은 사유에 국가라는 종합이 있기도 하지만 우주(자연총체)라는 것이 있다. 물론 동양에서 대우주와 소우주의 비유는 많지만, 중국의 틀에서는 천하와 개인으로 환원된다. 그래서 주역(周易)조차도 자연의 탐구로 나가가기보다, 천하의 변역(變易)하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64개의 대사건(고원들)로 설명하기에 또는 하늘의 뜻에 따라 해석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서양은 소크라테스의 황제(참주)반대와 신화(은유) 반대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새로운 주체화를 만들어보려는 과정을, 플라톤은 천하라는 국가(폴리테이아편)도 있고 우주 전체의 당시의 과학으로 본 사건들(생성들)도 다루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우주의 비례에 맞는 인간 신체의 내부의 비례로 보는 동양의학에서 경험적 실증이 남아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54SLI)]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반복 복습과 다음추구가 동시에 있다. 라이프니츠를 따라야 하는(의심없이 그 철학자는 창조적 신봉자 중의 가장 나은 신봉자를 가졌다.) 것과 동시에 그에게 반향하는 예술가들에게 따라야 한다. 말라르메, 프루스트, 미쇼, 한타이, 불레즈 이 모든 자들은 주름과 풀림의 세계를 가공한다. (211) [이 인물들에 대해 상세한 것은 주름을 보라.]
나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한권을 책을 만들기를 바란다. 짧게 쓴다는 조건에서. 또한 가타리와 나, 우리는 자연과 인위 사이에 모든 차이가 흐려지는 순간에, 우리의 공동작업을, 즉 일종의 온자연 철학을, 다시하기를 바랄 것이다. (211-212) [그것을 실현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philosophie, 1991)를 가타리와 더불어 쓸 것이다.]
(lu 54NKI) (13:38, 54SLI)
# 인명 ***
493 엠페도클레스(Empedocle, Ἐμπεδοκλῆς, 전493경-전430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시칠리아 섬에서 출생하였으며 정치·의술·예언 등 다방면에 재능을 가졌다. 스
428 플라톤(Platon, Πλάτων,전428년/427-전348)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며, ‘아카데메이아’ 설립.
O
1541 그레코(El Greco, 1541?-1614) 스페인 화가. 본명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Domnikos Theotokopoulos), 「오루가즈 백작의 매장(L'Enterrement du comte d'Orgaz, 1586)」 「Saint Jerome 1609」
1598 잔 로렌초 베르니니 (Gian Lorenzo Bernini, 1598-1680) 나폴리 태생, 바로크 조각가이자 17세기 로마의 건축가이다. 「Ecstasy of Saint Teresa, 1651」- 천의 흐트러짐과 떨림같은 흐름, 「Bust of Louis XIV, 1665」-흉상인데 가슴부분을 천의 넘실거림. 「축복받은 알베르토니(l'Extase de la bienheureuse Ludovica Albertoni 1474)」-테레사만큼이나 법열(황홀경)에 떠올라 상승하는 주름들.
1599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 영국 시민혁명가, 국가 수반.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lat. 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이다.
1646 라이프니쯔 (Gottfrid Leibniz, 1646-1716) 이 다재다능한 철학자는 프랑스에 거주한 시간이 많아서 많은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다. 그리고 그는 뉴턴과 서로 따로 미적분을 발명하였다. 새로운 논리계산(명제계산)을 발명하고자 했다.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현재로는 폴란드보다 더 동쪽에 있는 쾨니히스베르그 출신의 프러시아 공화국의 철학자이다. 인간의 표상적 인식의 조건을 규정하고, 도덕적 이성의 신에게 종속을 요청하고, 미적으로 신의 작업의 숭고함에 경건하게 기도하는 듯이 긍정한 프로테스탄트 철학을 구성하였다.
1769 나폴레옹 1세 (Napoléon Ier. Napoléon Bonaparte, 1769-1821) 프랑스 군인인 국가 수반, 황제. .
1777 클라이스트(Bernd Heinrich Wilhelm von Kleist. 1777-1811) 독일 극작가. 1804년에 부패 재판관을 풍자한 걸작 희극 <깨진 항아리(Der Zerbrochenekrug)>를 비롯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암피트리온(Amphitryon)>으로 결정적인 명성을 획득했다.
1788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칸트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칸트의 사상을 올바르게 계승했다고 확신했다
1818 맑스(Karl Marx, 1818-1883) 독일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이론가, 언론인, 공산주의 혁명가다.
1836 자허-마조흐(Leopold von Sacher-Masoch, 1836-1895) 역사학자, 소설가. 언론인. 갈리시아(Galica) 왕국의 렘베르크(deu. Lemberg 우크라이나어 리비우(L'viv, en français Lvov, Lviv)에서 태어났다.
1842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Étienne Mallarmé 1842–1898), 프랑스 시인, 비평가. 상징주의 시인, Hérodiade, 1864-1867
1844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독일의 문헌학자, 철학자. 서구의 오랜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니체-르네상스(Nietzsche-Renaissance) 이탈리아에서 .... 1964년?부터... ]
1856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유대계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1859 베르그송* (Henri Bergson, 1859-1941) 유태인 출신의 프랑스 본성내재주의 철학자. 훗설과 달리 현상보다 강도성의 근원에 대한 탐문을 철학의 주요 관심으로 보았다.
1885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 영국 소설가, 시인 겸 비평가. 『채털리 부인의 사랑, 1928)은 그의 성철학(性哲學)을 펼친 작품이며 외설시비로 오랜 재판을 겪은 후 미국에서는 1959년에, 영국에서는 1960년에야 비로소 완본 출판이 허용되었다. 이 밖에도 많은 중편 및 단편소설, 시집, 여행기, 평론집, 서간집 등이 있다. 『아들과 연인, 1913)
1860 체홉(Anton Pavlovitch Tchekhov ou Tchékhov, 1860-1904) 러시아 작가, 극작가.
1871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 프랑스의 작가. 작품으로는 1913년부터 1927년까지 출판된 연작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다.
1878 스탈린(Joseph Staline1, 1878-1953) 조지아 출신, 러시아 볼세피키 혁명가. 소비에트 서기장.
1883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 현재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에서 유대인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프라하 유대인 사회 속에서 성장했다.
1889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 영국의 역사가.
1896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1896-1940) 미국의 소설가, 단편 작가.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1925), 단편소설 「파열(The Crack Up, 1936)」과 1945년 에세이 유작집 「붕괴/ 파열(The Crack Up)」와는 다른 것 같다. 1935: 피츠제럴드가 병에 걸려, 휴양을 위해 트라이턴과 애슈빌에 머뭄. '붕괴'라는 에세이집에 실리게 되는 글을 이때 집필.
1899 미쇼(Henri Michaux, 1899-1984) 벨기에 출신 프랑스 귀화(1955). 작가, 시인, 화가.
1899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 아르헨티나 작가. 단편소설과 수필 영역에서 20세기 문학의 고전으로 취급 된다.
1901 라캉(Jacques-Marie-Émile Lacan, 1901-1981) 프랑스의 철학자, 정신분석학자. 파리정신분석학회(Société Parisienne de Psychoanalyse)의 회장(1953년)에서 6개월 만에 탈퇴, 프랑스정신분석학회(Société Française de Psychanalyse)를 조직.
1903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 1903-1969) 독일 사회학자, 철학자, 피아니스트, 음악학자, 작곡가. 그는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더불어 프랑크푸르트 학파 혹은 비판이론의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1907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 프랑스의 소설가, 문학비평가, 철학자, 엠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의 친구이다.
1922 알랭 레네(Alain Resnais, 1922-2014), 프랑스 영화감독. ‘시간’을 탐구하는 그의 실험은 현대 아방가르드 영화들의 종합판을 연상시켰다. <지난해 마리앙드 바에서(L’Ann dernie Marienbad)>(1961) 1997년 작인 <누구나 [과거에는] 그 노래를 알았다.(On Conna la Chanson)>(1997)의 제목 뜻은 ‘누구나 아는 진부한 얘기’라는 관용어이다.
1922 한타이(Simon Hantaï, 1922-2008) 헝거리 태생 프랑스화가. 독창적 주름잡기(le pliage)[폴딩(Folding)] 방법(주름위에 색칠하기)
1922 로브-그리예(Alain Robbe-Grillet, 1922-2008) 프랑스 소설가, 영화인. 시공간 해체와 사도마조히즘이 돋보이는 아방가르드 영화감독. 샤로뜨(Nathalie Sarraute)와 함께 누보로망작가.
1925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푸꼬(Foucault, 1986) 출간(Minuit). [푸꼬(1926-1984) 사후 2년이 지나], 새로운 시각으로 푸꼬를 조명한 연구서이다. 들뢰즈는 이 책을 “내가 필요했기 때문에, 또 푸꼬에 대한 존경 때문에”썼다고 했다.]
1925 불레즈(Pierre Boulez, 1925-2016) 프랑스 작곡가, 교육자, 오케스트라 지휘자, 주름에 따른 주름(Pli selon pli)(1957, 1962. 등등 다섯 편으로).
1926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 철학자. 레이몽 루셀(Raymond Roussel, 1963), 지식의 고고학(L'Archéologie du savoir, 1969),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Surveiller et punir. Naissance de la prison, 1975,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Histoire de la sexualité, vol. 1: La volonté de savoir, 1976), 성의 역사 3: 자기 배려(Histoire de la sexualité, 3: Le souci de soi, 1984)
1929 슈미트(Bernard Schmitt (1929–2014) 프랑스 경제학자. ‘양화거시경제학파’
1930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 고등학생 때부터 청년사회주의 단체에서 활약하였다. 그는 초기의 횡단성 개념을 통해 구조주의를 공격해 나가던 것에서 점차 분열분석 방법을 통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실천을 모색하였다. 그는 국가권력의 탄압에 저항하면서도 권력 장악을 위한 대(大)정치가 아니라 다양한 주변자들, 소수자를 중심으로 대중들이 전개하는 '분자혁명'을 강조하였다.
1930 세르(Michel Serres, 1930-2019) 프랑스 철학자, 과학사가.
1935 지베르베르크(Hans-Jürgen Syberberg, 1935-) 독일 영화감독. (Hitler, ein Film aus Deutschland, 1977): fr. Hitler, un film d'Allemagne
1939 벨루르(Raymond Bellour 1939-) 프랑스 작가, 영화 이론가. 다네(Serge Daney, 1944-1992)와 1991년에 Trafic(분기별 발간)을 창간했다.
1944 단네(Serge Daney, 1944-1992) 프랑스 시네마 비평가, 기자. 주로 Cahiers du cinéma(1964-1981), Libération(1981-1991), Trafic(1991-1992)에 근무했다. 각광(脚光, La Rampe: Cahier critique, 1970-1982, 1983)
- 기사논문집 Ciné journal: 1981-1986(préf. Gilles Deleuze), 1986, P.315. 초판본에 들뢰즈가 서문을 썼다. 그리고 이 한 권을 두 권으로 사후에 재편집했다.
1944 꼴뤼쉬(Michel Colucci, dit Coluche, 1944-1986) 프랑스 유머작가, 코메디언. 1981년 대통령선거 후보. 지지자들: Eddy Mitchell ou Michel Sardou, du poujadiste Gérard Nicoud, leader de la CIDUNATI, au comité d'intellectuels conduit par Félix Guattari, avec parmi eux des sociologues reconnus comme Pierre Bourdieu, Gilles Deleuze et Alain Touraine. / 1차 투표에서 Valéry Giscard d'Estaing 32 % ; François Mitterrand 18 % ; Georges Marchais 14,5 % ; Coluche 11 % ; Jacques Chirac 8 % ; Michel Debré 7 % ; Brice Lalonde 3,5%27. / 2차에서 미테랑 51.7%. 데스땡 48.2%
1946 에발(François Ewald 1946-), 프랑스 지성인, 한 때 마오이스트, 예술직업학교 교수
?-? 빠르네(Claire Parnet, s.d.) 들뢰즈 제자, 기자. 들뢰즈 대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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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죄수에 관한 정보 그룹(Groupe d'information sur les prisons: GIP), 1971년에 돔나쉬(Jean-Marie Domenach), 푸꼬(Michel Foucault), 비달-나께(Pierre Vidal-Naquet)에 의해 시작되었다.
1973 신철학자들« nouveaux philosophes » 또는 신철학« nouvelle philosophie » 1970년대 중반에 나타난 매체와 출판을 통한 철학의 경향을 지칭한다. 대부분은 전체주의를 바판하며 반대 프랑스 마오주의에서 나온 저자들이다. 글뤽스만(André Glucksmann, 1937-2015), 레비(Bernard-Henri Lévy, 1948-), 브뤽크너(Pascal Bruckner), 장베(Christian Jambet), 라르드로(Guy Lardreau), 돌레(Jean-Paul Dollé), 수종(Gilles Susong), 브느와(Jean-Marie Benoist), 끌라벨(Maurice Clavel)이다. / 이는 1973년 9월에 프롤레타리아 좌파(GP), 마오의 영감을 받은 비밀혁명 그룹이 자기 해체의 결단을 내린다. 이를 대표하는 두 경향이 있다. 하나는 전체주의에 반대하여 맑스주의 고발을 시도하는 글뤽스만(André Glucksmann, 1937-2015)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맑스-레닌 공산주의자 연합을 이끈 바디우(Alain Badiou, 1937-)이다.
(17:12, 54SLI)
시냅스
첫댓글 들뢰즈의 철학이란?
[들뢰즈에서, <철학은 혁명적이다. (원문 186쪽)> 여기서 나온다. - (이 시대에) 총체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기에 드물고 힘들다.
나로서는 우둔하여 들뢰즈와 플라톤의 사유의 과정이 유사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개인 – 국가 – 전지구로 확장한다는 의미에서.(54SLI)]
[“시냅스” 개념은 1985년 영화에 관한 대담 「영화: 시간-이미지”에 관한 대담(1985)」에서 먼저 나오며, 두뇌(또는 시냅스)의 회로의 관점에서 연결과 접속에 관한 것이다. 「철학에 관하여(Sur la philosophie, 1988)」에서 시냅스는 주름과 연관이 있다.(54T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