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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러시아 사회가 붕괴되는 혼란 속에서 지식인이 겪는 비참한 운명과 비극을 보여준다. 누구나 한 번쯤은 보셨을 영화이므로, (사상적인 면은 빼고)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려 한다.
유리 지바고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시베리아 부호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8살에 고아가 되어 '그로메코'가에 입양되고,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자라게 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어머니 장례식 때의 모습이다.
성장하여 그로메코가의 딸인 토냐와 결혼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유리는 군의관으로 참전한다. 그곳에서 남편을 찾아 종군 간호부가 된 라라와 다시 만난다 (이전에 몇 번 유리와 라라는 스쳐 지나간다). 라라는 어머니의 정부였던 코마로프스키와 원치 않는 관계를 맺게 되고, 크리스마스 무도회장에서 그에게 총상을 입힌다. 그리고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혁명가인 파샤와 결혼한다. 결혼 첫날밤 라라는 파샤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라라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파샤는 군대에 입대한다.
1917년 혁명정부가 수립되자 모스크바에서 곤궁에 시달리던 유리 가족은, 숙청을 피해 가족의 영지가 있는 우랄산맥의 바리끼노로 이주한다. 이곳에서 그들은 농사를 지으며 행복한 전원생활을 하게 된다.
'해가 뜰 무렵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하고 지붕을 이고, 끼니를 걱정하며 땅을 갈고, ... 자기 자신을 새롭게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유리의 일기 내용)
무료함으로 시내 도서관을 찾던 유리는, 우연히 이곳에 살고 있던 라라를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유리는 토냐와 라라 사이를 오가며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그 와중에 토냐는 다시 임신을 하게 되고, 유리는 고민에 빠진다.
'집에서 그는 발각되지 않은 죄인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식구들과 그들의 변함없는 애정은 그에게 죽음처럼 처참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는 라라를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토냐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그녀의 용서를 빌며, 더 이상 라라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리라'. 이에 라라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좋을 대로 하세요. 나는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어요." 슬픔에 잠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리는 마음이 흔들린다.
'고백은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고백하는 것을 다음 기회로 미루어도 늦지는 않으리라.' 그리고는 라라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쁨 속에서 집으로 가다가, 유리는 적군 (빨치산:Partizan)에게 납치된다.
시베리아에서 몇 년간 빨치산의 군의관으로 일한 뒤, 유리는 어렵게 탈출하여 라라에게 되돌아온다. 유리의 가족은 이미 바리끼노를 떠나 모스크바로 되돌아갔고 (토냐가 유리에게 쓴 편지를 라라에게 전해주고 떠난다. 살아 있으면 라라에게 돌아올 것 같다며), 그 후 외국으로 강제 추방당한 상태다.
다시 만난 유리와 라라는 행복한 생활을 하지만, 어느 날 그들 앞에 코마로프스키가 나타난다. 그는 라라의 남편이었던 파샤가 총살당했으며 (책에서는 자살한다), 라라도 머지않아 체포될 것이라며 극동지역으로 탈출할 것을 제안한다. 단지 유리 없이는 라라가 떠나지 않을 것이므로 그도 함께 데려가겠지만, 극동 지역에 도착하면 유리는 그들을 떠나야 한다는 조건으로. 유리는 라라를 지켜줄 수가 없음을 괴로워한다.
마지막 며칠을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유리아틴의 저택에서 유리와 라라는 함께 보낸다. 유리가 한밤중에 일어나 라라를 위한 시를 쓴다. 드디어 마차가 도착하고, 유리는 곧 뒤따라 간다고 라라를 설득하여 먼저 마차에 태워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라라의 떠나가는 모습을 창 너머로 애절하게 지켜본다.
'내가 무슨 짓을 했지?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라라를 저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를 넘겨주어 버렸어. 당장 그들을 뒤쫓아가야겠다. 라라! 라라!'
라라를 떠나보낸 후 모스크바로 돌아온 유리는 이복 형 '예브그라프'의 도움으로 생활하던 중, 전차 안에서 길을 걷고 있는 라라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는 급하게 전차에서 내리지만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죽는다. 라라는 내란으로 잃어버린, 유리와 그녀 사이에 태어난 딸 '토냐'를 찾아 모스크바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유리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유리 이복 형의 도움으로 토냐를 찾아 헤매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경찰에 체포되어 유배되었다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1965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원작과는 다소 다르게 각색되어 있다. (오마 샤리프 (유리), 제랄딘 체플린 (토냐), 쥴리 크리스티 (라라)).
이 영화 닥터 지바고는 2002년에 드라마로 다시 제작되었다. (한스 매디스(유리), 키이라 나이틀리(라라), 알렉산드리아 마리아 라라(토냐)). 이 드라마는 내용이 원작에 훨씬 가깝게 제작되었지만, 영화의 스케일이나 영상미 등에 있어서는 1965년도 영화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
또 영화의 끝부분에서, 유리와 라라 사이에 태어난 아이도 딸이 아니고 아들이다. 라라는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 아이에게 유리의 일기장을 쥐여주고 달아나라고 한다. 이 영화도 이렇게 극적인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원작에서 라라는 극동지역으로 탈출한 뒤 코마로프스키의 아내로 살지만, 아이를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토냐의 양육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가 내란 중에 잃어버린다. 그리고 아이를 찾아 모스크바로 왔다가 우연히 유리의 죽음을 알게 된다. 유리의 죽음 앞에서 라라는 조용히 이야기한다.
'그날 눈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이 나세요? 제가 당신을 두고 떠날 수 있었겠어요? 오, 난 알아요. 알고 있어요. 당신은 일부러 그러셨어요. 그것이 저의 행복이라고 생각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그 후에, 모든 것이 파멸되었어요. ...'
라라는 유리의 장례를 마친 뒤, 그곳에 머물며 유리의 원고 정리를 도와주다가, 어느 날 외출한 후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도 경찰에 체포되어 어느 수용소에서, 이름도 찾을 수 없는 한 번호로 사라져갔을 것이다.
또 영화와는 다르게, 원작에는 더욱 현실적이고 가슴 아픈, 유리의 말년도 엿볼 수 있다.
유리는 라라를 떠나보내고 모스크바로 돌아와 8~9년을 더 살게 된다. 유리는 모스크바에서 시를 쓰며 궁핍한 생활을 한다. 유리는 가족을 찾아 외국으로 가려 해도 여권이 발급되지 않았고,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외롭게 살다가 이웃집 사람의 딸인 마리나를 만나, 별다른 사랑의 감정도 없이 동거를 하게 된다 (비 공식적으로 세 번째 부인). 그리고 그들 사이에 딸 둘이 태어난다. 마리나는 유리의 괴벽을 받아주고, 불평이나 신경과민, 분노 등도 헌신적으로 참아 내는 여인이다. 그러다가 유리는 이복 형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고 병원에 출근하게 되는데, 출근 첫날 만원 전차를 타고 가다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죽는다.
'마리나는 시체를 꼭 껴안고 있었다. ... 오늘은 마리나의 고통스러운 격정이 진정되었지만 지칠 대로 지쳐 마비된 상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시신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라가 찾아왔을 때, 마리나는 고인이 누워있는 방을 나와 복도에 앉아 기다린다. '마리나는 긴 외투로 아이들을 푹 싸서 두 손으로 가려 주고 나무 벤치 끝에 앉아서 다시 방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구속된 죄수를 면회하러 간 사람이 영무관의 허락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린 딸 둘과 함께 갑자기 과부가 된, 이 가련한 젊은 여인의 운명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다. 영화에서도 아예 마리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하지도 않는다. 가장 비참한 순간, 끝까지 유리 곁을 지켜 주었던 여인이었는데...
유리와 라라 사이에 태어난 딸 토냐는 세탁부가 되어, 고달팠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최근에 자신을 찾아온 유리의 이복 형 '예브그라프'가 앞으로는 그녀를 돌보아 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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