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각함- 강릉선교장 전통가구박물관
나무로 짠 장에 화각으로 옷을 입히면 화각장이 된다.
'화각 畵 角'은 화사한 그림을 그린 뿔이라는 뜻이다.
화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소뿔을 골라 종잇장처럼 얇고 납작한 각지를 만들어야 한다.
각지는 소뿔로 만든 종이라는 뜻이다.
각지를 만들기 위해선 소뿔을 삶고 자르고 말리고, 다시 숯불에 굽고 무거운 철판으로 눌러 식혀 편다.
다시 앞면 뒷면을 깎고 갈아야 한다.
시간도 정성도 많이 드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소뿔은 깎으면 깎을수록 맑고 투명해진다.
소뿔 하나에서 부채꼴 모양 각지도 딱 1장 얻을 수 있다.
종이에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각지를 얹어 비치는 밑그림을 따라 먹으로 윤곽선을 옮겨 그린다.
먹선이 마르면 색을 칠한다.
색칠한 것이 다 마르면 넓적한 붓으로 바탕색을 각지 전체에 덧칠하고 뒤집는다.
바탕은 주로 빨강색을 썼다.
각지를 뒤집으면 뒷면에 그림이 나타난다.
뒷면에 그렸기에 좌우가 바뀌어 보인다.
그러나 맑게 비치는 화각지는 화사하면서도 은은해 색감은 더욱 돋보인다.
이렇게 공들여 만든 화각지를 한 장씩 나무에 올려 놓고 불에 달군 인두로 조심조심 눌러 붙인다.
이때 화각지와 화각지 사이에 톱질로 홈을 낸다.
홈에 부레풀을 바르고 삶아서 말린 소뼈를 가늘 게 잘라 만든 긴 오리로 경계선을 박는다.
다시 표면을 매끄럽게 갈고 나무에 옻칠을 해 말리고 갈아내기를 여러차례 반복해 완성 한다.
우리나라 전통가구는 대체로 나무결을 살려 정갈하고 단아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화각공예는 화려한 색을 이용했다.
강릉선교장 전통가구박물관에 갔다가 조선시대부터 사용한 다양한 가구를 보며 놀랐다.
최고의 장인이 만들었을 기품있고 아름다운 가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고궁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최고의 가구가 있었다.
특히 화각함의 아름다움에 빠져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 장인의 고된 손길과 예술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민간주택 최초로 1967년 국가중요유형 문화재 5호로 지정받은 강릉선교장은
아름다운 전통가옥 중 최고다.
강릉선교장 전통가구박물관에서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간 옛 장인들의 숨결을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