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큰 녀석]
온종일 흐린 날씨는 당장이라도 눈비를 쏟아낼 듯하다. 점심을 먹은 지 한 시간이 지났다. 시장에 가겠다는 아내가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에 두 눈을 고정하고 있다. 출발 시간이 늦어지면 퇴근 시간과 맞물려 정체되는 것이 싫어 나설 것을 재촉한다.
목적지까지 가는 데는 삼십 분 정도 걸린다. 도착을 앞두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전에 알고 있던 동네가 아니다. 몇 년 만에 들린 것인지 확인이 안 된다. 신항이 들어서면서 주변 상권이 달라졌다. 배후 도시의 역할이 맡겨졌다. 빈터로 남아있던 주변은 아파트 단지와 주상 복합 건물이 들어서고, 임시 천막을 덮어씌운 상가는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었다. 바닷물이 고여 질척이고 승용차가 겨우 교행하던 길은 4차선 포장길이 들어섰다. 부둣가 주변에서 붉은색, 파란색 고무 대야에 담아 생선과 조개를 팔던 흔적은 없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이런 경우에 하는 말이던가. 온전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듯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양쪽 상점에는 동해안에 있을법한 대개가 수족관에 그득하다. 입맛이 절로 다셔진다. 행인을 불러 모으는 점원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찻길을 건너 수산물 공판장 옆 생선 가게를 찾아간다. 문어, 낙지, 꼴뚜기가 보인다. 머리가 큰 대구는 제철답게 가게마다 널려있다. 살아있는 대구는 큰 물통에 담겨 있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은 널따란 얼음 위에 불룩한 배를 내밀고 누워있다. 그물에 묶였던 커다란 상처가 머리둘레에 허옇게 띠를 이룬다. 암컷은 보이지 않고 수놈이 곤이를 품은 채 손님을 기다린다.
입이 유난히 큰 대구가 애를 가득 안고 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애가 타고 끊어지는 것에 비유하기도 하지 않던가. 가끔 자연 방사를 끝내 배가 홀쭉한 녀석이 숨을 헐떡인다. 암수와 뱃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에 따라 값이 다르다. 배를 갈라 건조한 대구는 꼬챙이를 어깨에 끼워 몸통을 펼쳐 위세를 떨치고 있다. 대구는 살이 희고 두툼하며 먹을 수 있는 부위가 많다. 아가미부터 내장에 이르기까지 버릴 게 거의 없는 생선이다.
배의 항행 길이가 길어지고 저인망 어선이 등장하면서 씨가 거의 말라 버렸다. 기록에 의하면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가야 무덤에 함께 묻힌 그릇에서도 대구 뼈가 나와 한국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먹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어획량이 수천 톤에 이르렀지만, 90년대는 마구잡이로 그 양이 수백 톤에 불과하여 대구 값이 금대구가 되었다. 오죽했으면 진해만에서 대구가 산 채로 잡힌 것이 뉴스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동해안에서 명태가 사라지고 오징어를 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뒤 집중적인 투자와 인공 방류 사업에 따라 이천 연도부터 어획량이 늘어 예전과 버금가는 물량 회복에 성공했다고 한다.
제철은 11월부터 2월까지다. 이 시기가 지나면 잡히는 양도 적고 맛도 떨어진다. 회유성 어종인 대구는 11월 말 때쯤부터 산란한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수심이 3~250M 되는 지역에 자라는데, 먹이는 어류가 주를 이루지만 갑각류도 가리지 않는다. 1년이면 50㎝ 전후, 5년이면 80㎝ 내외로 자라고, 성체의 크기는 최대 1M에 20kg을 넘는다고 한다. 개체 수 확보와 자원 관리를 위해 1월 하순부터 2월 중순까지 금어기가 있다.
몇 군데 가게에 놓인 대구를 둘러보다가 싱싱한 놈으로 한 마리를 샀다. 아내는 아들이 좋아한다며 길이가 내 허벅지까지 오는 크기를 골랐다. 가격은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 잡히는 양이 적으니 자주 사 먹을 수도 없다. 수도권까지 들고 갈 일만 남았다. 곁들여 작은 낙지도 몇 마리 산다. 조리하기 편하게 손질해 주는 대구를 받아 드는데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백일이 다가오는 손주 얼굴도 볼 수 있어 벌써 목소리가 밝다.
지난날 대구는 접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몸통이 냉동되어 굳어진 동태와 비늘이 다 벗겨진 얇은 갈치가 밥상에 올랐다. 그것도 가끔 오일장에 다녀오는 날만 먹을 수 있었다. 몇 걸음만 하면 매장에 생선이 널린 것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흔한 풍경이 어색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예상했던 대로 차가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퇴근길 정체는 만만찮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은 가변 차선제가 적용되지만, 시장으로 올 때와 비교하면 두 배 정도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몇 년 전 같은 단지 주민과 대구를 사서 포를 떠 회와 튀김으로 먹고, 나머지는 맑은 탕을 끓였다. 살이 물러 식감이 좋은 기억은 없다. 그 뒤로는 대구의 맛을 즐기는 매콤한 볼 찜만 찾았다.
세태에 따라 현재의 편리성과 효용성에 밀려 본래의 가치가 실종되었다가 새롭게 찾아지는 일이 많다. 크고 힘든 것은 기관에 맡기고 작고 보잘것없는 일들을 찾아 우리 주변부터 살펴 실천해 나간다면 희망이 보일 것이다. 늦었다고 소리치지만 그래도 길은 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목이 마르면 흐르는 냇물을 손으로 퍼마시고, 내린 눈을 뭉쳐 먹던 기억이 스친다. 흔했던 개똥벌레도 물방개도 보기 어렵다. 하늘소나 풍뎅이는 모습을 감췄다. 동식물 도감에서만 만날 수 있는 현실에 유년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가 널브러진 생각을 접고 돌아선다.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흔하디흔해 버려지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자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아끼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대상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 주변에는 짧은 기간에 아예 자취를 감춘 것도 많다. 환경의 변화와 생태계의 여러 현상을 몸으로 자료로 확인하고 있다. 지구 기온이 높아지고 가뭄이 길어지거나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린다. 특정 지역에 한정된 일이 아니다. 그 영향이 고스란히 피해를 준다.
사람이 자연과 함께하면서 자연을 소중히 다루고 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 하찮은 식물이나 곤충이 사라졌다.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복원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는 훼손되지 않도록 세대를 뛰어넘어 후손들이 누릴 수 있게 보전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