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이선 시인 홈페이지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
<시문학 7월 원고>
2010년 6월 19-20일 부산 문학기행 감상문
이선
1. 서울 출발
우르릉 우르릉 쾅쾅, 우르르르 새벽 4시 축포처럼 빗소리가 터진다. 부산문학기행 축제에 하늘이 축포를 쏘아댄다. 설레다, 깜짝 놀라다, 잠을 설친다. 장마 호우주의보가 내린 부산 문학기행은 빗소리를 업고 돌아다닐 것 같다. 부산 앞바다가 광란의 춤을 출 것이다. 연일 인테리어 공사를 한 몸이 반응한다. 어깨와 팔, 손목이 시큼하고 저리다. 얼굴도 부석부석 하다. 올해는 일복이 터져서 반년 동안 문학활동도 문전폐업이다. 남편에게 일을 다 떠맡기고 가자니 마음이 불편하다.
을숙도 철새도래지는 꼭 가보고 싶던 곳이다. 작년 안동 문학기행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집중호우도 두렵지 않다. 시는 자연을 사랑하고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구름을 사랑한다. 빗소리처럼 시원한 김선호 사무국장과 햇살처럼 따사로운 이혜선 회장의 상큼한 웃음이 우릴 더 즐겁게 한다. 작년에 한방을 썼던 김두자 시인과 얼싸 눈인사를 나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뒤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맨 마지막으로 심상운 시인이 도착하며 8시 반쯤, 31명을 태운 서울 대식구들은 붕붕 신나게 부산으로 달린다.
문덕수, 김규화 선생 등 10여분이 참가를 못하셔서 아쉽다. 서울에서 배선옥, 송시월, 김철교, 장혜원, 김두자, 이오장, 강정화, 김혜빈, 박이정, 김미옥, 김용언, 손해일, 이원철, 이승용, 박정원, 오양호, 이혜선, 이선, 신재연, 이솔, 김학산, 변세화, 이구재님 외 회원님들이 모시고 온 여러 지인들 31명을 태우고 버스는 달린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변덕스런 날씨가 무릎을 꿇고 화창해질 거다. 늘 그랬으니까.
2. 양산 통도사 - 사명암 주지스님의 설법
버스에서 내려 통도사 경내의 사명암까지 웅장한 솔숲을 주문진에서 온 이구재 시인과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강정화 시인이 그 동안 쌓은 공덕으로 통도사 사명암에서 주지 스님이 점심공양을 제공했다. 경내에서 기른 상추와 묵은지, 오이무침, 배추 겉절이로 맛난 점심을 들었다. 식사를 하나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말에 모두들 싹싹 긁어 먹었다. 대전에서 온 전민, 김용재, 홍순갑, 송영숙 시인과 서울에서 따로 내려온 김선진 시인, 제주도에서 온 양원홍 시인, 주문진의 이구재 시인, 그리고 통도사까지 와서 찬조금을 내고 가신 울산의 문송산 시인의 합류로 즐거운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주지 스님인 동원스님은 탱자의 일인자이다. 점심을 먹고 정자에서 주신 동원스님의 설법은 ‘가진 것을 버리면 행복하다’ ‘나무도 숲도 꽃들도 모두 오늘 행복하니 여러분도 오늘 행복하라’는 가르침을 내렸다. 우리는 탱화를 그리는 기법과 스님의 작품을 감상하고 작업실을 둘러보았다. 연꽃과 수련이 핀 아름다운 연못가를 걸으며 몇 명씩 사진을 찍으며 사찰의 고즈녘한 정서에 잠겨보았다.
불보사찰로 유명한 통도사는 가까운 백련암에서 사명대사가 기거했다고 한다. 대나무 잎들에 부딪치는 스님의 대금소리에 졸던 연잎이 소롯소롯, 고개를 든다. 부처께 귀의하고 7만평 아름다운 솔숲이 모두 자기 집이니 내가 가장 부자라는 동원스님의 말씀이 솔숲처럼 청정하다.
단체사진을 찍고 양산에 있는 통도사로 향했다. 통도사는 삼보사찰 중 하나로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있는 불보 사찰이다. 삼보는 부처님 율법과 승려와 부처이다. 통도사는 신라의 자장이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대국통이 되어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청건하고 승려의 규법을 관장, 법식을 가르치고 불법을 널리 전했다. 자장과 선덕여왕이 금강계단을 축조하여 모든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이 계단을 통과하도록 했다. 영축산은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하고, 모든 중생을 진리를 회통하여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이름 하였다.
칠이 벗겨지고 고색창연한 외관을 자랑하는 신라 때 사찰은 단청공사를 하여 산뜻하게 단장한 사찰과 조화를 이룬다. 대웅전에서 부처님 사리를 유리문을 통하여 바라보며 참배할 수 있도록 하여 이곳에서 기도하면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참선하며 절하고 있었다. 우리도 금강계단에 모셔진 부처님의 사리탑을 둘러보았다. 오래된 소나무 숲을 걸으며 할머니가 파는 오디와 버찌를 사서 여자 시인들에게 하나씩 맛보여 주는 남자 시인의 손, 아름답다.
3. 금련산 수련원 - 신진 교수 특강 및 시낭송회
부산 kbs 방송국 뒤에 있는 금련산 청소년 수련관은 지대가 높아서 해운대 앞바다와 광안대교, 부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장소다. 7km라는 광안대교는 가는 방향과 오는 방향이 따로인 두 개의 다리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은 깊은 안개로 바다와 부산 시내가 보이지 않는다. 대구의 김욱진, 문소윤 시인, 통영의 조영희 시인, 마산의 이상옥 시인, 김해의 조운주 시인, 속초의 신재연 시인, 부산의 배기환, 장동범, 조영희, 백영희, 송인필, 이몽희, 조민자, 최지인, 탁영환, 한경동, 이병구 시인들이 합류하여 네시 반부터 특강과 시낭송회를 가졌다. 시문학 132회 시낭송회는 모두 피곤하였지만 일사분란하게 강당으로 이동하여 회장단 지시에 잘 따라주었다. 전국 시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금까지 서울과 경기지역 시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시낭송회와 달리 이번에는 지방 시인들 위주로 시낭송을 하기로 하였다.
국민의례와 작고시인 오남구 시인에 대한 묵념에 이어 이혜선 회장은 ‘여기에 오니 71명 학도병들이 낙동강 전선에서 포항을 지켜낸, 영화 <포화 속으로>가 떠오른다. 부산의 아름다움에 감개무량하고 이곳에서 문학행사를 할 수 있음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여러분의 노고로 전국적인 모임을 갖게 되어 감사한다’고 치하하였다. 부산 시문학회 조민자 회장은 ‘오늘 이 모임이 우리 시문학 시인들에게 넓은 교제와 깊은 문학적 감동을 나누는 귀한 시간이 될 줄 안다. 부산 시문회 회원들은 여러분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맞이하고 함께 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시의 지평을 넓히는 소중한 기회로 삼겠다.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저희들이 정성껏 준비한 다과로 피로를 푸시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환영하였다. 심상운 시인은 격려사를 통해 ‘오늘 문덕수 선생님의 격려 말씀을 듣지 못해 아쉽게 생각한다. 1976년 29명으로 결성된 시문학회가 이처럼 350명, 전국 단위로 성장 발전하게 됨을 감사한다. 특히 활성화된 부산 시문학회의 위상을 보여주는 회원들께 고맙게 생각한다. 오늘 이자리가 모지 시문학지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하는 친목 도모와 토론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격려하였다. 전 시문학회 회장인 이몽희 교수는 ‘여러분을 환영하며 오늘 행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부사 천리가 다섯 시간 거리다. 멀다고 느끼지만 이 거리는 물리적 시간상의 거리가 아니라 심성, 정서적 거리가 아닌가 싶다. 만나고 보니 너무나 가까운 거리다. 이 심성적 정서적 거리를 없애거나 단축시켰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전하였다.
특강을 맡은 신진 교수는 ‘지면도 집이다. 내면의 집이다. 우리는 가족이다. 가족애를 확인하고 나니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존경하는 선배님, 동료들 모시고 말씀 올리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인사말을 하고 특강을 시작하였다.
신진 교수는 <우리 시의 자생(自生) 모더니티>라는 제목으로 20세기 과도기적인 우리 문화 속에서 현실비판과 실험정신을 보여 준 송욱에서 김지하로 이어지는 비판과 사회전복 의지, 양성우, 조태일로 이어지는 허무에 바탕을 둔 감수성과 낭만, 농민 시와 임화 등 카프로 이어진 모더니즘 운동, 70-80년대 모더니스트인 오규원, 황지우, 박남철의 언어형식의 유희성과 현실 비판적 풍자정신을 논하였다. 그러나 현실도피와 예술적 성취를 동시에 성취하기엔 반항정신만으로는 부족하였다. 문화적 전통의 재발견과 민중의 노동시로 전이되어, 해체시 소비적이고 유희적인 태도, 일상성 회복, 현실부정, 붕괴, 부조리를 수요하며 삶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자 한 것도 현대시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문화사에 편입되었다.
새로운 모더니티의 방향을 제시한 엘리엇은 향이상시에 객관적 상관물을, 몰개성시론으로 정서적 환기를 시켰다. 이상, 조향, 김춘수, 전봉건, 문덕수, 등 현대시의 서구지향 모더니즘의 한편에서 자생모더니티가 생성되었다. 오규원, 이성복, 황지우 등 현대시의 생태문제, 여성문제, 민중적 역사의식이 극적상황제시와 이야기성에 의해 박진감을 얻었다. 판소리, 서사민요, 무가, 경기체가, 민간설화 등 양식의 차용을 거치면서 획득한 것들이다. 전통양식의 차용과 극적인 이야기성은 한층 깊은 감응과 소통, 선동의 효과를 주었다.
현대시의 자생 모더니티는 현실비판력, 하위 장르의 차용과 풍자, 박진감 있는 극적 상황과 언술, 시문학사의 정체성을 획득하면서 문화사에 편입, 기존의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시적대응, 형식모방 모더니즘의 강박관념에 현실성, 극성, 풍자성을 담으면서 우리 시문학사에 지속적인 자극제로 작용하였다.
신진 시인은 ‘우리 시의 자생 모더니티’ 특강에서 한국 모더니즘사 전체를 조망한 폭넓은 논제를 간단명료하게 요약해 주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본행사인 특강과 시낭송회는 6시까지 이어졌다.
특강에 이어 김선호 사무국장의 사회로 시낭송회를 가졌다. 132회 시낭송회를 지금까지 서울 ‧ 경기 사람들 위주로 했으므로 회장단의 배려로 이번에는 지방 시인들 위주로 이루어졌다. 지방회원들은 1부에 먼저 하고 서울, 경기 사람들은 2부에 하기로 한 거다. 변세화, 손해일, 이선 시인은 서울 대표로 1부 시낭송회에 참여했다. 필자는 이번 시낭송을 위해 의상까지 준비하고 왔기 때문에 1부에 넣어달라고 사무국장에게 떼를 써 간신히 통과했다. 우리는 시로서 열렬한 만남을 가졌다.
강남주 시인의 ‘간딘스키의 몇 마리 말들이 푸른색 추상명사 속’에서 뛰쳐나와 전국에서 모인 시문회 시인들의 첫 감성의 포문을 열었다.
김선진 시인은 ‘욕망과 잘못 쏜 화살을 울산바위 만한 지우개로 지우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 아픔을 안다. 한 식구니까.
김욱진 시인은 대구에서 ‘대청동 꼭대기 판잣집에서 어머니 치맛자락에 걸려 넘어진 바람을 업고’ 부산까지 한 바람에 달려왔다. 개회엔 좀 늦었지만.
김학산 시인의 ‘누구나 한번 건너면 지상에서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레테강’ 강물 위로 변세화 시인은 ‘꽃과 나비의 밀어’를 얹었다. 시인들 모두 건너 온 ‘무거운 욕망과 뜨거운 비등점의 나날들’.
배기환 시인은 ’물고 물리는 심해의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감성돔처럼 날쌘 꼬리와 예민한 지느러미를 가진‘ 남자다. 그미의 빼어난 언롱, 말재간은 우리의 끼를 남김없이 발산하게 했다.
‘사람의 마을’에 사는 손해일 시인은 부산에서도 살았단다, 남원에도 살았다고? 부산 앞바다에서 놓쳐버린 손 시인의 꿈 한 조각은 ’도마 위에 주저앉은 뼈들의 삐걱거림‘이 ’새벽바다 안개꽃처럼‘ 아직도 부산 앞바다를 지키며 ‘바닷가 선술집에서 불혹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내일 손 시인은 바다의 꼬리를 잘라먹은 ’물결소리 희디 흰‘ 새벽바다를 다시 보겠지?
어머니의 자궁은 시인의 고향. 백영희 시인의 ‘홍시’처럼 '묵언정진한 혓바닥들이 달콤하게 녹는’ 밤. 아름다운 시결(詩結)에 씻긴 시인들의 정신은 ‘풀벌레들의 속옷처럼’ 가볍고 정갈하다.
분위기에 먼저 취한 제주도의 양원홍 시인. ‘굴참나무 빈집에서 목탁소리 나는 바람으로 기둥을 세우고,’ 시문학의 신진인 그는 시문학에 둥지를 튼다.
이선 시인은 그미의 ‘파랑 詩’를 증명하듯 파랑 쟈켓, 파랑 티샤쓰, 파랑바지, 파랑가방, 파랑 시 속으로 부산 바닷바람, 풍랑을 끌어들인다. 이선 시인의 몸속엔 옛 시인이 이식한 셀룰러 메모리가 저장되어 있을 것. 그날의 감성. 똑같은 목소리의 두근거림까지.
전민 시인의 ’스님은 행복도시로 내려갔지‘는 대단한 말풍선이야. 여자들은 어리고 앳된 여자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고 싶어지지. 설명이 없는 대담하고 굵은 남녘 사내, 그 풍자의 강에 풍덩 빠지고 싶어지지. ’개고기, 술, 장인장모, 마누라, 첩‘ 빗대어 어긋장을 놓는데 밉지가 않아.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 산조처럼, 풍경을 흔드는 바람‘처럼 중심이 아름다운 조민자 시인. ’개나리 덤불 위에 내리는 하얀 춘설‘처럼 결이 고운 조민자 시인. 그녀의 아름다움은 투명이다.
이혜화 시인은 ‘우듬지 높은 세상에서 젤 높은 세콰이어 삼나무’처럼 ‘먼 그대에게 닿고 싶은 심정’을 절절히 노래하고
조운주 시인은 ‘오라비와 나의 가슴문양이 된 붉은 꽃송이’, ‘쉰이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등짐을 시작한 아버지의 어깨에 시퍼렇게 살아있던 동백꽃만한 피멍, 불도장’을 평생 가슴에 찍고 산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
조영희 시인은 ’퍼득이는 햇살에 발돋음하여.... 뿌리깊은 역사의 나무로 나그네들 쉬어가게 하는 나무‘가 되고 싶은 ’우리의 소망‘을 전한다.
최지인 시인의 <길가 옛집>엔 ’노을처럼 북콰해진 아부지 얼굴‘, ’주인 잃은 경운기가 붉은 녹물을 흘리고 있다‘.
’애써 다리를 놓기 전에는 모두가 섬이다‘. 다리를 놓기 위해 우리는 광안대교 앞에 터를 잡고 손을 뻗는다. 서울, 대전, 대구, 제주도에서 한경동 시인을 알기 위해 모였다.
’찬물도 걸려 넘어가지 않는‘ 어머니가 ’다음부터는 빈손으로 당겨라‘고 당부하신다. 문소윤의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부산 앞바다를 바라보는 금련산 중턱에서 시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이 시처럼 재잘대고 시처럼 웃으며 시처럼 손을 알싸 잡는다. 산이 병풍처럼 우리를 감싼다. 버찌가 붉게, 물들어간다. 우리의 시도 파랗게, 붉게, 검게 익는다.
4. 2부 시낭송회 및 3부 장기자랑
눈, 코, 입, 피부까지 즐거운 아우성이다. 부산 시인들이 준비한 수박, 참외, 회, 상추, 떡, 통도사에서 오감이 즐거웠는데, 이곳에서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행복이다. 부산 식구들은 우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써빙을 한다. 고급식당에서도 이렇게 호사를 받지 못했는데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이혜선 회장의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저들은 부산 바다를 퍼온 것일까? 비릿한 그리움.
장소를 강당으로 옮기면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흥이 깨지니 그냥 식당에서 2부 시낭송회와 장기자랑을 하기로 했다. 2부 사회는 박정원 시인이 맡아 차분하게 이끌었다. 1부에서 하지 않은 서울 시인과 부산 시인들이 대세를 이끌었다. 단상에서 엄숙하게 낭송한 1부와 달리, 객석에서 이뤄진 2부에서는 자유롭고 다채로운 끼들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솔 시인이 “저 2개하면 안돼요?“ 라고 하여 배꼽을 잡게 하였다. 모두 즐겁게 ”두 개 해, 두 개 해“를 외쳤다. 이솔 시인은 가곡과 시낭송을 다 하였다. 강심장이다.
김선호, 이혜선, 김용언, 김철교, 송시월, 장혜원, 등 서울 시인들과 강정화, 탁영완, 이혜화, 이몽희 등 나머지 부산 시인들이 시낭송을 하였다. 또 시인들과 함께 온 초대 손님들도 함께 무대를 빛내 주었다. 주문진의 이구재 시인은 방에 가서 검정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다시 하고 무대에 선 여가수처럼 쨔~안 나타나 즐겁게 하였다. 하이힐과 숄, 표지까지 유려하게 준비하여 최고의 무대매너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2부보다 재미있는 3부를 위하여 2부는 짧게 언급하기로 한다.
3부 장기자랑을 위하여 우리는 부산까지 문학기행을 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이다. 우리는 배기환 연출가의 개그에 따라 웃고 웃는 객석의 방청객, 아니 자발적 관객이다. 이몽희 연출, 부산 시인들이 대거 출연하여 만원권 파란 지폐를 모자에 받아낸 각설이 타령 공연은 프로급이다. 이에 더 웃긴 것은 대구에서 막차타고 달려온 김욱진 시인의 ‘삼포가는 길’ 노래다. 먼저 1만원을 내고 노래를 하겠다며 사회자에게 1만원을 내고 병에 숟가락을 꽂고 멋들어지게 불러 젖힌다. 에구구, 우리는 숨 넘어간다. 노래에 맞춰 변세화, 강정화 시인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또 심상운 시인까지 합세, 춤판이 벌어졌다. 심상운 시인의 다소 음이 틀린 엇박자를 또 김욱진 시인이 맞받아 절창을 한다. 심상운 시인은 손을 저으며 김욱진 시인 노래가 틀렸다고 하여 배꼽을 잡게 한다.
박정원 시인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동요를 부른다. 어찌나 귀엽고 앙증맞은지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차기 회장 박정원 시인은 자기가 부르는 동요처럼 심성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다. 어떻게 아냐고요? 필자가 십년 넘게 지켜보았는데 박시인은 진정성이 있는 순정파다. 변세화 시인은 여자 시인들이 노래할 때마다 덩실덩실 같이 춤을 춘다. 넘치는 끼를 어찌할 수 없는지 이번엔 인천 여자 시인이 노래를 할 때 손해일 시인이 나와서 춤을 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가끔 마이크를 빼앗는다. 모두 또 웃음바다.
필자도 레크레이션 교실에서 6개월 동안 지도자 교육을 받았지만 배기환 시인의 사회는 최고다. 전국에서, 세계에서 최고다. 재미와 재치, 개그, 모두 수준급.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사회자도 물리칠 솜씨. 단연 노래의 백미는 김두자 시인.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독백까지 외운다. 강하다. 장혜원 시인이 신세대 노래 ‘유혹’을 부르다가 몇 번씩 가사가 막혀 스톱하는데 김두자 시인은 끝까지 열창이다. 우리의 강정화 시인은 뒤질새라 춤으로 열정을 쏟아낸다. 하나둘 불려나와 노래를 한다. 송시월 시인은 점잖게 데리고 온 손님을 앞세워 순서를 메우는 센스쟁이.
양원홍 시인은 제주도에서 비행기 타고 와 비행기 삯을 뽑으려는지 시작부터 술취하여 여자시인들만 보면 “뽀뽀하면 안돼?“라며 달겨들어 질겁을 하며 웃게 만든다. ”아~안 되지~~??“라며 여자들은 깔깔깔 웃는다. 이몽희 교수는 하모니카 솜씨가 일품이라 모든 노래에 반주를 할 수 있는 인간 반주기다. 목청껏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러 스트레스 다 날려버린다. 못 불러서 웃기고 잘 불러서 즐겁고 가사가 틀려도 무조건 고, 고go!
3부 순서는 배기환 사회자의 재담으로 정말 즐겁게 진행됐다. 노래가 끝나고 대전의 김용재 시인은 예선 통과 1만원 받고, 송인필 시인도 예선 통과하여 부산 여자 시인을 안을 수 있는 특권을 받고, 변세화 시인에게는 위로금으로 천원짜리 지폐를 부상으로 줬다. 박이정 시인의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가사가 틀려서 더 재미난다. 배선옥 시인의 ‘찔레꽃’은 밤에 더 야하게 핀다. 백영희 시인의 노래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처럼 서울에 와 처음 본 얼굴과 이름이 오버랩으로 엉킨다. 다음엔 꼭 자기 소개 시간을 갖자. 회장단이여 제발, 아무리 스케줄이 바빠도 다음엔 꼭 자기소개 먼저 하고 놀자. 양원홍 시인의 꼬부라진 혀가 도로 풀리도록 우리는 마시고, 웃고, 즐겼다.
이선 시인은 문덕수 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비내리는 영동교’를 불렀지만 들을 님은 아니 계신다. 김학산 시인은 서울찬가, 장동범 시인은 까치, 비둘기, 토끼 시리즈로 또 즐겁게 한재담 한다. 이구재, 문소윤, 김선진 시인이 바위고개를 불러 들뜬 분위기를 차분하게 화끈화끈, 뜨거운 밤의 열기를 끈다.
그러나 시상식이 또 압권이다. 에쿠스 카다로그와 동남아 카다로그 여행 상품권을 걸고 전국 ARS 50% 상품권을 걸고 시문학 시인단이 심사를 하여 우수상과 특별상 수장자를 선정하였다. 이혜선 회장과 이몽희 교수를 뽑아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회원돌이 농성을 한다. 김선호 사무국장이 6대의 무인카메라가 돌아가는 특별상을 받고 맥주 1캔을 부상을 받는다. 수상자들의 감사무대가 이어져 ‘고향의 ’봄을 모두 같이 부르며 화려한 3부 장기자랑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아직 술기운과 노래 기운에 취한 회원들은 밤이 깊어도 방에 들어가지 않고 로비에 모여, 마당에 모여 웃음판이다. 부산 회원들은 서울 가는 차 안에서 먹으라고 수박과 과자, 술을 따로 준비하여 끝까지 부산의 바다 같은 인심을 자랑한다. 필자는 놀러가서 난생 처음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새벽 2시까지 버텼다. 작년 안동에서는 김두자 시인과 10시에 취침했다.
한밤중 마당에서 술과 마른안주로 다시 판을 벌리고 새벽 2시에 번개를 동반한 소낙비에 옷이 흠뻑 젖었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복도 소파로 옮겨 담소하다 경비원의 경고에 후다닥 방으로 옮기며, 방에 있던 다섯 명의 잠자 시인들을 옆방으로 보내는데, 그 중에 운전수 아저씨가 계실 줄은 몰랐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는데 더욱 친절해진 아저씨. 아마도 회장님이 약을 쓴 걸까? 밤새 잠들 수 없었을 텐데 미안함도 있었지만, 시간이 아까운 마음이 더 크다. 새벽 4시까지 시문학 발전을 도모하며 의논들을 하였다고 하니 그 정력과 저력 만만세다. 이 기분으로 쭈욱 밀어붙이는 거다. 계속.
5. 달맞이 고개와 누리마루 관광
다음날, 아침이 되자 금련산을 산책하거나 아침 운동으로 몸을 풀며 둘째 날 일정을 시작하였다.
8시에 수련원에서 아침식사. 부산 회원들이 준비한 수박과 떡, 아침부터 포식이다. 버스는 달맞이 고개를 달렸다. 안개 때문에 바다는 볼 수 없었지만 주위 아름다운 풍경들을 돌아보았다. 달맞이고개에서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안개비를 맞았다. 애인의 숨결보다 부드러운 안개비가 뺨을 간질인다. 안개비를 맞은 여자 시인들의 얼굴이 예쁘다.
안개가 도시를 가려 다음날 일정이 모두 안개처럼 뿌옇게 될 줄 알았지만 누리마루에서 안개에 가려졌던 바다를 가까이 만날 수 있었다. APEC 정상회담이 열린 누리마루에서 서양문명과 한국정서가 어우러진 현대식 건물을 보았다. 바다가 건물 주춧돌까지 성큼 다가왔다. 안전과 경관을 모두 즐길 수 있으니 정상들도 감탄했겠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남자시인들이 여자 시인들을 줄 세워 사진을 찍어주었다. 바닷바람에 안개방울이 밀려 와 얼굴이 시원하다. 이런 바다 안개 맛사지는 처음이다. 참 신선하다.
누리마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경거리는 정원 잔디밭에 남겨진 까마귀다. 다쳤는지 날지를 못하고 그 자리에서 폴짝, 뛰기만 한다. 한국에서는 흉조로 불리는 까마귀가 서양에서는 왕권을 상징하는 상스러운 새로 사랑받는다. 고정관념을 버리면 시도 세상도 아름답다.
6. 을숙도 철새도래지와 몰도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조금씩 나오더니 을숙도 철새도래지에서는 햇빛이 쨍쨍. 습도가 높아 무지 덥다. 그러나 모두 표정들이 밝다. 부산의 이영애 수필가가 해설가로 동반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 자리 잡은 을숙도는 부산시청에서 7km 지점에 있다. 1978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해군에서 부산시로 편입되었다. 낙동강 하구에 토사가 퇴적되어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어패류가 풍부하여 한때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역이었다. 1966년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1987년 4월 낙동강 하구 둑의 완공으로 섬 전역이 공원화되면서 대부분의 갈대밭이 훼손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자 철새가 줄어드는 등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되었다. 부산시는 을숙도 개발계획을 백지화하고 이 일대를 핵심보전지역으로 지정하여 을숙도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을숙도를 지나가는 명지대교 건설을 철회하고 개발계획을 수정하여
곡선다리를 놓아 을숙도를 피해 멀리 돌아가도록 고속도로를 건설하였다.
철새도래지에는 갈대발을 쳐서 작은 구멍을 군데군데 뚫어 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사람과 새를 격리시켰다. 수많은 철새무리가 영화에서처럼 파드득, 파드득 날아올랐다가 산처럼 무너지는 광경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아쉽다, 단지 새 6마리를 보았다. 왜가리 2마리와 중백로 4마리가 전부다. 겨울 철새인 고니 한 마리가 다쳐서 남아있다는데, 보이지 않는다. 망원경이 없으니 어떤 게 고니인지 알 수가 없다. 겨울에 다시 와서 고니와 도요새, 흰뺨 검둥오리 무리를 만나고 싶다.
길가에 흰꽃을 피우고 있는 가로수가 쥐똥나무라느니, 아니라느니 설왕설래한다. 나무, 풀, 꽃, 새들에 관심이 많다. 시의 소재가 자연이므로.
에코센타에서 박재된 새들을 둘러보고 다대포 해수욕장 몰운도로 향했다. 그곳 횟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을숙도에서 몰도로 오는 길에 낙동강 하류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보았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걸 처음 보았다. 큰 수문으로 썰물 때 닻을 내려 바닷물을 막는다고 한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부식되어 공업용수와 농수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에는 맛있는 고기가 많다고 한다.
바다횟집에서 회덮밥을 대접받고 부산과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의 모델인 모래 퇴적으로 이뤄진 몰운대의 아름다운 정경과 넓은 모래사장이 사람을 유혹한다. 뒤에 뒤처진 지방의 이름도 모르는 남자 시인과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로 작당하고 바다로 쳐들어갔다. 여기까지 와서 바다를 만나지 않고 떠날 수는 없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신발을 손에 들고 모래사장을 달렸다. 젖은 맨발로 식당까지 가서 발을 씻고 부산 시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올랐다. 여기까지 와서 바다를 안지 않고 가면 그게 바로 반역이지 뭐냐,
7. 서울 도착
설레임과 걱정으로 시작한 부산문학기행은 서로 얼싸 안고 발길이 안 떨어져 아쉬움을 남기며 끝났다. 밝은 낮에 일찍 서울에 도착한 우리는 그렇게 부산의 비릿하고 끈끈한 정과 이별했다. 부산 사람들의 끼와 정, 후한 인심, 사람을 흡입하는 매력, 꼭 기억할 거다.
아름다운 다대포 앞바다, 광안대교의 밤풍경, 낙동강 철새도래지 을숙도, 누리마루, 달맞이 고개. 그러나 부산 시인들이여! 당신들이 바로 바다와 산, 강이었다.
특강을 해주신 신진 교수, 4월 24일 부산 회원들과 만나 행사를 의논하고 행사장소 답사와 예약 등 수고를 아끼지 않은 이혜선 회장과 부산의 조민자 회장, 장동범, 탁영완 시인과 다리 역할을 하며 수고하신 강정화 시인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또한 이몽희, 이병구, 배기환, 한경동, 조영희, 백영희, 최지인, 송인필, 김금아 시인, 부산 회원님들의 헌신적인 협조와, 순박한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는 과분한 대접과 정을 받고 돌아오면서, 우리들은 메말라가는 서울인심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전라도 지방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심양면 찬조해 주셔서 모임을 풍성하게 해 준 회원들과 서울 경기지방에서 함께 한 많은 회원들, 전임 회장,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달해 달라는 이혜선 회장의 당부가 있었다. 불편한 몸으로 실무를 맡아 날아다닌 김선호 사무국장 정말 애 많이 썼다.
처음에는 서먹하였지만 식구라고 부르며 우리는 서로의 정서에 물들어갔다. 시문학에 대한 열정과 정, 시를 향한 지극한 사랑과 집념을 보았다. 350명 시문학 문인회 회원들이 뭉치면 어떤 행사도 거뜬히 치룰 수 있다. 소나기를 맞아가며 밤새 나누었던 여러 정담과 계획들이 시문학회 발전의 밑거름으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첫댓글 시문학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