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토)
드디어 미얀마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날에는 짐 정리하는 날이다. 버릴 것 버리고 챙길 것 챙기면서 여유를 부려야하는데 어제 충분히 쉬었고 이제 떠나면 언제 이곳을 다시 오겠나 싶어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는데 떠나는 날 제일 많이 움직인 것 같다.
먼저 6시에 일어나 호텔 사모님을 따라 깐도지 호수로 아침 운동을 하러 갔다. 호텔이 호수와 가까우니 이런 이점도 있구나 싶다. 이 숙소에 묵고 있는 프랑스 아주머니 두 분도 함께 했다. 사모님은 짧은 영어 실력으로도 외국사람들과 잘 융화하고 있는 것을 보니 호텔업을 위해 타고나신 분이다.
깐도지에 다다르니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리게 과거의 우울하고 음침했던 깐도지가 지금은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운동장소로 바뀌었는데 그 활기에 질투심이 느껴질 정도이다.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 요가 매트를 깔고 요가를 하는 사람들, 기체조 하는 사람들,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에어로빅을 하는 사람들 등 등.
한 가운데쯤 가니 새벽운동을 나온 사람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도 줄을 서 모힝가 한 그릇을 받아왔다. 맛을 보니 정말 정성들여 끓인 진국이 대충 모양만 내서 나눠주는 무료급식하고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모님 말씀이 이곳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 때 남에게 대접할 것은 더 신경을 써서 만든다고 한다. 거의 매일 있는 음식기부는 순수한 기부로 이루어지는데 사모님도 자주 기부를 한다며 이날도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두툼한 봉투를 담당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보았다. 미얀마에 살면 미얀마 사람처럼 변하는 것인가? 왠지 사모님이 미얀마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우! 맛있어요.”
프랑스 아주머니들은 ‘맛있어요’를 연발하며 모힝가를 맛있게 먹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멀리 호수너머로 황금빛의 쉐다곤 파고다와 몰라보게 발전한 양곤의 빌딩들이 보인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깐도지 역시 예전에 음침한 곳에 남녀가 앉아 옹색하게 사랑을 속삭이던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모힝가를 먹는데 얼굴에 기름기가 번지르르 하고 다들 유복해 보인다. 타나카를 바른 사람도 별로 없고 옷도 다 세련되게 입고, 길거리나 시장에서 만났던 사람들과도 너무 달랐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구나!’ 제 흥에 겨워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는 한 아주머니를 보니 중국 요순시대 고복격양(鼓腹擊壤)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그래, 행복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등 따시고 배 부르고 아침운동 하면서 건강유지 하는 것이리라.
오는 길에 사모님이 모힝가 만드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는데 대충 나열하면 이렇다. 먼저 잉어나 메기를 푹 고아 뼈를 발라낸다. 그 살이 녹아있는 국물에 바나나 대궁, 마늘, 양파 등을 넣고 다시 끓인다. 마지막으로 그릇에 삶은 쌀국수나 밥을 넣고 그 위에 튀김이나 야채를 올리고 국물을 부어 먹는다. 알고 보니 우리가 늘 해먹는 민물매운탕하고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열심히 듣기는 하였지만 집에 가서 절대로 모힝가를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모힝가는 미얀마 사람들이 잔칫날이나 중요한 행사 때 가장 즐겨 먹는 음식으로 영양 만점이니 여행자들은 이상할 것 같다는 선입관을 버리고 적극 시식을 하였으면 좋겠다.
돌아오자마자 아침 식사가 차려진 식당으로 갔는데 한식으로 뷔페를 어찌나 정갈하게 차려놓았는지 온통 먹을 것 투성이다. 안타깝게도 모힝가를 먹어 배가 부른 나는 얼마 먹지 못하였고, 모힝가를 맛만 본 언니는 이게 웬떡이냐? 하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인야레이크 호텔 테니스장에 교민들을 취재하러 갔는데 간발의 차이로 다 떠나버리고 없었다. 맛있는 한식 부페를 원망하며 할 수 없이 외국인들 운동하는 것만 구경하다 돌아왔다. 미얀마 땅인데 백인들 세상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왔다는 미쉘이라는 아가씨는 이곳으로 출장을 올 때마다 이곳에서 운동을 즐긴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참 부러웠다.
날씨는 덥고 돌아다닐 마음이 안 들어 다시 숙소로 와서 낮잠을 잤다. 서늘기가 내려 민속촌에 가려고 택시를 불렀더니 사모님이 너무 늦었다면서 교통체증 감안하면 도착하기도 전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한다.
“오늘은 되는게 하나도 없군.”
“그러니까 호텔에 돌아오지 말고 바로 갔어야 해?”
날도 더운데다 되는 일이 없으니 서로 짜증이 앞선다.
“저 앞 모퉁이를 돌아 담벼락을 따라서 조금만 가면 아웅산 박물관이고 근처에 짜욱타지 파고다가 있으니까 일루 가보세요.”
우리는 사모님의 도움으로 그냥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사모님이 바로 옆에 있을 것처럼 말한 아웅산 박물관은 뱌로 옆이 아니었다. 먼저 담벼락을 따라가다 보니 완전 미로찾기 길이 펼쳐진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물어 겨우 아웅산 박물관을 찾아냈다. 현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고한다. 내가 쉽다고 다른 사람도 쉽게 찾을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여행자들에게 고통을 주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결국은 원하는 곳을 찾는다는 것이 여행자들이다. 아웅산은 수지여사의 아버지로 미얀마인들에게는 영웅이다. 우리나라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현 대통령과 같은 관계라고나 할까? 아웅산이 살았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든 이곳에는 아웅산의 사진들과 여러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어 심심치 않게 한 사람 두 사람 찾아오고 있었다.
다음 우리는 와불로 유명한 짜욱타지 파고다로 향하였다. 그동안 여러 와불을 보았지만 이곳만큼 크고 웅장한 와불은 보지 못하였다. 얼마나 큰가하면 길이가 66m, 높이가 17m이다. 발가락 하나와 사람이 맞먹을 정도이다. 발바닥을 보니 바둑판처럼 칸이 나뉘어저 있고 우리는 결코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쓰여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108법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불교의 세계는 육계, 색계, 무색계로 나뉘는데 육계란 감각적인 욕망에 머무는 세상이며, 색계란 물질을 대상으로 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 무색계란 정신수양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색계의 경지를 흠모하지만 결국 육계와 색계를 넘나들다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곳에서 재미있는 것은 누워있는 부처의 얼굴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인자해 보이기도 하고 무서워 보이기도 한다는데 내가 느끼는 것은 각도에 따라 남자와 여자가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다.
“언니, 서둘러야 겠어요.”
택시를 타고 49번가 세꼬랑으로 총알처럼 날아갔다.
“어머, 미리 와있었네요?”
“이곳을 찾느라 조금 고생을 했지만 별천지가 따로 없네요. 양곤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몰랐어요.”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좀전에 아웅산 박물관에서 만났던 김진아씨로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계시는 분이다. 이 분 역시 오늘이 마지막이고 가는 비행기까지 똑 같아서 이곳에서 만나 최후의 만찬(?)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숯불에 구운 생선과 꼬치구이에 생맥주를 마시며 그동안의 여행담을 나누었다. 김진아 선생님은 우리와 여행한 날 수는 비슷한데 여행지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이유는 지참한 안내서의 다름이었다. 누가 더 좋은 곳을 다녔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선생님의 책은 내용이 빈약해서 솔직히 갈만한 데가 별로 없어 바닷가에서 죽치다 왔다고 한다.
생맥주가 싸고 (1잔에 700원) 맛이 좋아 더 마시고 싶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에 들어 맡겨놓은 짐을 챙겨 공항으로 이동, 내일 아침이면 드디어 한국땅을 밟을 것이다.
호텔비 : 50,000원
택시비 : 25,000원
입장료 : 5,000원
식사 : 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