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경찰서 습격
신성한 매실 758
그 시각, 형사팀 사무실에 있던 사내는 라이터를 켜서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펑!
그리곤 유유히 빈 배달통을 들고 정문으로 걸어 나왔다.
“불이야!”
“2층에도 불이다. 저긴 형사팀 사무실 아냐?”
“어서 소방서에도 연락해.”
“저놈들은 뭐야? 빨리 진압해.”
경찰서 마당은 고함과 비명 그리고 폭발하는 소리로 완전히 개판이었다.
이 틈을 이용하여 오토바이는 현장을 지휘하던 여자를 태웠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정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갔다.
이 상황에서 아무도 오토바이를 제지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주차장에서 불을 지른 청년 10명은 경찰이 주변까지 왔음에도 불타는 차 한 대를 두고 둥글게 스크럼을 짜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때가 왔음이라. 온 세상 악한 자들이 불에 태워질 때, 천년왕국이 왔음이라. 태워라, 처단하라, 때가 왔음이라, 666의 날이 왔음이라.”
잠시 후 소방차가 와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하지만 청년들은 그때까지도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 기이한 광경에 넋이 나간 서장을 그제야 명령을 내렸다.
“모조리 체포해!”
최림이 잠에서 깬 시각은 다음 날 새벽녘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사방에 벽만 있고 유리창이 없었다.
그야말로 캄캄한 칠흑 같은 방이었다.
눈은 떴으나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고 온몸이 나른했다.
그때부터 환각이 시작되었다.
몽환적인 장면들이 바로 눈앞으로 지나갔다.
여자의 나긋나긋한 손길과 입술이 그의 온몸을 훑어 내려갔다.
그는 기쁨과 두려움의 욕정을 만끽했다.
도발적이고 육감적인 몸매였다.
여자의 몸은 마치 뛰어난 악기처럼 그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몸과 몸이 부딪칠 때마다 그는 끓어오르는 욕정을 이기지 못했다.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마침내 시작의 끝이 다다를 때 그는 가슴이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제야 그는 눈을 떴다.
‘안돼. 정신 차려야 해.’
겨우 몸을 일으킨 최림은 벽을 더듬거려 불을 켰다.
그제야 최림은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을 알았다.
한순간의 쾌락과 배설 뒤에 오는 감정은 몹시 불쾌하고 씁쓰레한 것들이었다.
밖으로 나가려 일어설 때 최림은 자신의 머리맡에 있는 쪽지를 발견했다.
‘천년왕국을 건설하는 건 우리 몫입니다.
제대로 된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이 있다면 우리를 쫓지 마십시오.
이 땅의 천년왕국을 위해 투쟁하는 우리의 소망을 꺾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게 전두태를 아시냐고 물었습니다.
그에 관한 답은 그가 조만간 직접 설명할 것입니다.
그럼, 편히 쉬었다 가십시오.
민채원 드림.’
편지 끝에 드디어 민서라가 아닌 민채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최림은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창밖에 동이 트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열어 보니 여러 통의 문자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그중에는 ‘긴급’, ‘비상 소집’이란 문자도 있었다.
‘뭐지?’
최림은 새벽이지만 불길한 예감에 김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전화하면 어떡해요? 여긴 벌써 큰일이 벌어졌어요.”
“무슨 일인데?”
“경찰서에 천년왕국이란 일당들이 습격해서 권 팀장님을 화형에 처하고 주차장에 불을 질렀어요. 그런데 지금 어디예요?”
“뭐?”
최림은 술이 확 깨었다.
그리곤 동트는 산길을 거의 뛰다시피 내려왔다.
도평마을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었다.
과연 겨우 도착한 경찰서는 엉망이었다.
취재진과 복구 요원 그리고 경남지방청에서 온 고위 간부들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재난 현장에 온 것 같았다.
“이봐! 아무리 휴가 중이라 해도 비상을 걸면 1시간 이내로 들어오는 게 우리 규정 아냐? 당신 도대체 정신이 있어, 없어!”
서장은 최림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었다.
“죄송합니다. 멀리 좀 있었습니다.”
“멀리 어디? 이런! 한심한 친구. 얼른 피해복구 현장에나 가봐.”
최림은 힘없이 현장으로 갔다.
벌써 팀원들은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사무실에 올라가니 팀원들은 권 팀장의 죽음으로 침통한 표정이었다.
그날 밤 최림은 현장 복구 작업을 하다가 10시가 되어서야 경찰서에서 나왔다.
종일 현장에 있으면서도 동료들에게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 없었다.
최림은 김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김유리는 팀원들과 경찰서 밖 허름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최림이 들어가지 못하고 술집 밖을 서성이자 김유리가 직접 나왔다.
“뭐해요? 안 들어오곤.”
“내가 끼여도 돼?”
“별 소릴. 어서 가요. 그러지 않아도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최림은 못 이기는 체하고 들어가서 동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와. 최 형사.”
선임인 조 형사가 술이 벌써 불콰해지도록 마신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최림은 이 말 외엔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니야. 내가 미안하다. 권 팀장님을 혼자 남겨두고 밥 먹으러 가는 게 아니었는데. 미치겠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야. 그날, 그 공동체 마을인가에 갔을 때 그년이 어쩐지 수상하다고 생각은 했어. 정말이야. 그때 내가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그년을 족쳤더라면 전두태 이놈을 그때 잡을 수도 있었어. 다 내 잘못이야.”
최림은 조 형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옆에 있던 김유리가 설명을 곁들였다.
“오전에 권 팀장님이 최 형사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셨어요. 이제 우리도 다 알아요. 오늘도 그 여자가 주차장 방화를 주도했거든요. 그런 후에 권 팀장님을 방화 살인하고 나오던 전두태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했답니다.”
“민서라?”
“네, 사건 후 CCTV를 확인했습니다. 분명히 그 여자였어요. ”
김유리의 말에 최림은 남모를 한숨이 나왔다.
그런 계획이 있는 줄 모르고 어제 그녀와 술 마시고 섹스했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그녀에게 보기 좋게 이용만 당한 셈이었다.
“전두태의 얼굴도 CCTV에 확실히 찍혔겠네?”
“네. 행방은 아직 모르지만, 얼굴을 확인한 이상 이제 체포는 시간문제죠.”
그때 조 형사가 술에 취한 목소리로 최림에게 물었다.
“최림. 이놈아. 나도 네게 하나만 묻자.”
“뭘 말씀입니까?”
“넌 어제 그 마을에 가서 민서라를 만났지?”
“네.”
“그런데 왜 그년이 오늘 경찰서를 습격한 거냐! 응! 넌 도대체 뭘 했는데!”
최림은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는 조 형사의 질문에 별로 답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술이 한잔 들어가자 갑자기 어제 몸을 섞었던 민서라의 체취와 끈적거리던 땀 그리고 달콤한 입술 등이 되살아나서 정신이 혼미해졌기 때문이다.
‘민서라와 민채원? 민채원과 민서라…….’
술집을 빠져나온 최림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간단하게 샤워한 뒤 침대에 누웠다.
이제 모든 건 끝났다. 전두태는 얼굴이 알려진 이상 곧 체포될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의 죄에 합당한 죗값을 받게 될 것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우리 측 피해는 매우 컸다.
이 일로 권 팀장이 죽었다.
또한 서장은 경질되고, 팀장 이상 고위간부급들과 정문 초소 의경, 상황실 직원 등 수십 명이 다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
몹시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귓가에 자꾸 놈의 괴성이 메아리쳤다.
우하하하하하하, 카아아아아아아 ~
최림이 예상한 대로였다.
산음 경찰서 방화·살인 사건이 일어난 직후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졌다.
주관은 경남지방경찰청이 맡았다.
수사본부는 즉각 요한 공동체 마을을 압수 수색하였다.
이곳에서 전두태와 관련된 혐의자 대다수를 체포했다.
당일 산음 경찰서 주차장에서 노래 부르던 청년 10명도 포함하였다.
이렇게 하여 사건은 일단락되나 싶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건 첫째, 주모자인 전두태와 민채원의 행방이 묘연한 점이었다.
둘째, 체포된 청년 10명 중에는 원지 둔치 범인들이 없었다.
산음 경찰서 형사팀도 해체되었다.
따라서 최림은 합동수사본부에 합류하지 못하고 지구대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더 슬픈 건 형사팀의 막내였던 김유리가 느닷없이 사표를 낸 것이다.
최림은 너무 놀라 그녀에게 전화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녀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것이다.
팀원들은 그녀가 권 팀장을 잘 못 보필하여 책임을 진 것으로 이해했다.
또 어떤 이는 경찰서에 방화가 일어나던 날, 그녀가 큰 충격을 받아 그날로 자신의 천직을 접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최림으로선 그녀와 마지막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