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오로지 글을 써야 작가라고 할 수가 있다. 작가들이 밖으로 몰려 다니는 것은 천금 같은 글쓰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 대구수필가협회 2023년도 사업계획에서 우리 협회가 별도로 행사하던 세미나를 "시민과 함께하는 수필의 날 행사" 로 통합시켜서 대구문협과 공동으로 문학세미나를 개최 하기로 한 것은 행사를 줄여서 회원들에게 글 쓰는 시간을 더 많이 갖게 하려는 게 주된 이유이다. 회원들 간에 문심과 문정을 나누는 일은 가까운 인근으로 체력 단련을 겸한 산행을 함께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글쓰기에 왕도가 따로 없다. 오로지 혼자서 궁구하며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는 그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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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야기의 전개(구성) 방식
모든 이야기는 시작과 끝이 있다. 우리의 삶은 시작을 모르는 곳으로부터 와서 끝을 모르는 곳으로 흘러가니 우리는 누구나 다 호기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호기심이 끝없는 상상력을 발동케 하여, 그 끝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게 된다.
이런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이끌어 가서 작가가 전하고자하는 주제를 저절로 스며들게하는 기법이 결국은 소설의 구성 단계인데, 소설의 구성단계를 보면 전통적으로 사건의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의 순서를 취한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났다 소멸되는 기승전결의 인과법칙에서 극적인 효과를 도모하고자 특별히 위기와 절정을 삽입시켜 이야기의 핵심을 부각시켜 놓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오래 기억되게 하려는 술(術)일 뿐이고, 실재로 인간의 삶에서 소설처럼 위기와 절정이 그렇게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그 삶은 한시라도 편할 날이 없이 참으로 고달프게 된다. 그렇지만 이야기에서 위기와 절정이 없다면 그 이야기는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밋밋하게 되어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한다.
우리 수필이 다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가장 주된 이유도 바로 위기와 절정이 없는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수필이 위기와 절정이 전혀 없는 글이라고 정의하면 그건 틀린 말이다. 수필에서는 작가가 뼈저리게 체험한 고통이, 작가가 글로 표현해 내기 이전에 이미 작가에게 '삶 속에서의 깊은 사유'를 하게 했고, 그 사유의 작용을 통해서 이미 위기와 절정이 작가의 삶에 녹아든 것이고, 그걸 세월 지난 후에 작가가 다시 새로운 의미로 부활시킨 결과물을 토해놓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위기와 절정이 없는 글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수기형 수필의 경우는 작가가 자기가 체험한 이야기를 통하여 글을 이끌어 감으로 글 속에다 자기가 체험한 삶의 위기와 절정을 집어넣는 형태라서 매우 감동적인 글이 된다.
가. 발단
작품의 도입단계로서 주로 등장인물과 배경이 소개되고 사건이 실마리가 나타난다. 배경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분위기를 독자들이 은연중에 느끼도록 작가가 암암리에 깔아 놓는다. 첫 문장, 첫 소리를 잘 써야 한다는 것은 글이나 음악이나 모든 예술 창작물이 다 그러하다.
구약성경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쓰여 진 문장이나,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고 쓰여진 문장이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쓴 ‘논어’의 첫 문장이나, ‘빠바바 밤’하고 시작되는 베토벤 운명 교향곡 5번 중 1악장의 첫 음절이나 그 모두 아이가 어미 뱃속에서 나와 세상을 처음 만날 때 느끼는 환희의 소리처럼 장엄하고도 거룩한 불후의 첫 소리가 아닐 수가 없다.
첫 소리. 첫 문장, 사건의 발단은 산만함 속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떠도는 인간들의 마음을 확 끌어 당겨서 글 속으로 집중케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뭘까?" 하는 인간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문장이나 강하게 인간의 심층의식을 때리는 문장이 흡인력이 있는 문장이라고 하겠다. 대중 앞에서 말과 연설을 잘 하는 사람도 첫 마디의 말로서 단숨에 무리를 사로 잡는다. 소설이나 수필의 발단 역시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 전개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인물과 인물, 인물과 사건 간에 대립과 갈등이 일어나며, 그러한 사건과 맞닥트려서, 또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각 인물이 취하는 방식을 통하여 인물의 성격이 더욱 세밀히 묘사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작가는 장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암시나 복선을 깔아 놓게 된다. 암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독자가 알아차리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고, 복선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하기 위해 작가가 설정한 사건으로 사건전개에 필연성을 줄 목적으로 사용된다. 암시가 복선과 다른 점은 암시는 필연성과 상관없이 사용된다는 점이 복선과의 차이라고 할 수가 있다.
초심자들은 글을 쓰면서 처음에 자신이 암시 또는 복선을 깔아 놓은 것을 잊어버리고 전혀 다른 엉뚱한 사건을 늘어 놓는 글을 쓰기도 하는데 그건 인과관계가 결여된 불필요한 사건이거나 암시 자체가 엉터리 암시를 한 글임으로 퇴고시에 사정없이 지워야 한다.
다. 위기
사건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시기로 극적인 반전, 반전에 또 반전을 가져오게 하면서 글의 긴장감을 끌어 올린다. 긴장감은 독자들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글 속에 빠져들게 하며, 마치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모든 감정을 한 곳으로 갇히게 만들어 폭발력을 증대시키게 만든다.
주말 연속극 중에서 시청률을 끌어 올리려고, 지나치게 우연을 남발하여 반전에 반전을 이끌어 가기도 하는데, 위기의식의 남발로 극을 지루하게 만들어서, 주제의 부각을 오히려 훼손시키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라. 절정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단계로 그와 동시에 해결점이 보이는 단계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사건, 배경은 오로지 이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 온 것으로, 팽팽한 긴장이 단 번에 풍선이 터지듯이 “팍” 터져 나갈 때 글의 극적인 효과(여운)가 오래 간다. 작가는 이 절정의 순간을 잘 몰아 감으로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독자들로 하여금 오래오래 기억되게 만든다.
마. 결말
사건이 마무리 된다. 즉. 이야기 속의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주인공이 나아가야할 방향이 뚜렷하게 결정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간혹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끝나는 경우도 많다. 뒷 맛을 남기는 것이다. 어떤 결말을 쓸 것인가도 역시 어떻게 해야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오랫동안 전해지겠는가와 관계된 것으로 그 모든게 작가적인 역량일 뿐이니 글을 쓰는 이는 필히 이를 염두에 두고 글 마무리를 해야 한다.
이상으로 글의 전개(구성) 단계를 설명하였다.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의 이 순서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소설의 구성법이다. 이 구성법은 자연과학과 같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이 구성법에서 벗어나 결말이나 절정이나 위기를 앞에다 두고 그 다음에 사건의 발단이나 전개를 그릴 수도 있고 시공을 초월해서 구성을 짤 수도 있다. 그 순서를 어떻게 짜든 결론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기억되게 하는데 있다. 우리 수필이 읽고 나서도 금방 잊혀져버리는 이유는 바로 "오래 기억되게 하는 표현 기술 능력"이 수필작가들에게 부족한 때문이다.
(3) 오래 기억하도록 만드는 방법
사람의 뇌는 이야기는 오래 기억하고 사유는 금방 잊어 버린다. 소설이 다른 문학장르의 작품보다 오래 기억되는 것은 스토리에다가 주제를 입히는 때문이다. 스토리 텔링 할 때 그 스토리는 어떻게 만들어 내며 스토리는 플롯과는 또 어떻게 다른가?
인간의 행위가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연속되는 사건들의 결합으로 스토리를 만든다. 이때 스토리는 사건들이 시간 순으로 단순 결합된 것이지만, 플롯은 사건을 논리적으로 결합한 것이다. 논리적 결합이란 작가가 어떤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사건을 적절하게 배열하여 구조화 한 것을 말한다.(서사문학의 이해와 창작 p158/조남철, 조정래 공저).
이러한 구조화를 잘 시켜 나가는 것이 작가적 역량이라 하겠다. 더 쉽게 설명하면 영화 감독이 어떤 주제를 담아내기 위해서 장면장면을 촬영할 때, 불필요한 씬을 버리고 주제를 강렬하게 기억시키는 씬 만을 잘 배열하여서, 관람객들에게 잊지 못할 영상 이미지를 남기는 방식과 같은 것이다. 이때 장면을 찍은 씬이 사건이고, 씬의 나열이 스토리 인데, 중요하지 않은 씬(사건)은 삭제하고 주제를 인상깊게 드러내는 데 집중해야 하는 이치와도 같은 것이다. (씬을 너무 많이 나열하면 영화가 지루하고 진부해 진다)
(다음은 시점에 대해서 쓰겠다. 시점이란 이야기를 서술해나가는 자의 초점을 가리키는 문학용어로서, 소설에서 인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서술자의 시각 또는 관점을 뜻한다. 소설은 이야기 형식의 문학이므로 그 속에서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 즉 `서술자`가 있다. 이 서술자가 어떤 위치에서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이야기 방식이 달라지 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