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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아름다워라 주님 계신 영광의 나라 너무나도 귀하도다 주님 계신 영광의 보좌 아 저영광의 나라 내가 소망하오나 죄가지곤 갈 수 없어 주님 계신 영광의 나라" 오늘 우리가 부른 찬양입니다. 우리는 다 주님의 나라 천국에 갈 줄 믿습니다. 예수 믿는 최대의 목표는 무엇이겠습니까? 천국 가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구원의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생명의 문제, 죽느냐 사느냐 이 문제 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금은 보화 다 준다해도 나는 나는 부럽지 않아 내주님만 바라보니 세상 영화 부럽지 않아 아 저 영광의 나라 내가 사모하오니 거듭난자 갈 수 있어 주님 계신 영광의 나라" 육신의 질병은 병원에서 고칠 수 있지만 영혼의 질병은 예수님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고칠 수 없습니다. 이 나라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믿음으로 가는 나라, 거듭난 자가 가는 나라입니다.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이별도, 시기도, 질투도, 근심도, 돈 걱정도, 질병도, 가난도 없는 나라입니다. 바로 천국이 진정 풍성한 삶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만 생각하고 살면 안됩니다. 살았을 때도 천국의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살아 있을 동안 천국의 풍성한 삶을 이 땅에서 누리길 원하십니다. 마음 천국, 가정 천국, 교회 천국, 삶의 현장에서 천국같은 풍성한 삶을 누리시길 원하십니다. 어떻게 천국의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로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하겠습니다(32).(결핍의식이 아닌 은혜의식)
늘 결핍의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 있어도 풍요로운 삶으 살 수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큰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었습니다. 32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32)"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하는 정도가 어느 정도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위해 가장 크고 귀한 선물인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거절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원 자체는 물론 우리가 궁극적 성화의 단계에 이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믿음 생활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감격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도 이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물이 없다고 맛이 없다고 힘들다고 늘 불만과 불평, 원망가운데 지옥처럼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핍의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아니라 욕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가 중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매가 옷을 입은 채 바닷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옆에 있는 청년이 물속에 뛰어 들어 살리려고 하는데 옷에 물이 가득 차 방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옷을 벗기고 건져내 살리었습니다. 그런데 자매가 목숨을 살려준 청년의 은혜는 잊어 버리고 자신의 옷을 벗겨 사람들 앞에 수치를 당하게 했다고 평생동안 청년을 원망하고 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풍요로운 삶이 아닙니다. 의사가 중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수술하여 살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살아서 자신의 몸에 흉터를 보며 흉터를 남겨 놓았다고 평생동안 의사를 원망하며 산다면 얼마나 초라하고 빈곤한 인생이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자기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시간 지나면 원수로 만들어 버립니다. 은혜 의식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욕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은혜의식만 가지면 하나님 안에서는 풍요로운 삶을 살만한 것들이 모두에게 다 주어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2)"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풍성한 천국 생활을 누리도록 아들까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 주었습니다. 조금 가난할 수도 있습니다. 병들 수도 있습니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원망하고 낙심하며 초라하게 인생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이긴 인생, 승리한 인생, 천국 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은 경기를 녹화했다가 보시는 분 있을 것입니다. 이미 결과는 일본을 4:2로 이겼습니다. 그런데 녹화 경기 보면서 일본에게 먼저 선제골을 허용했다고 절망하는 사람있습니까? 골기퍼가 실수했다고 욕하며 안보는 사람있습니까? 결국 4대 2로 이긴 경기를 보는 것입니다. 즐겁고 기쁘게 볼 수 있습니다. 여유있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우리는 이긴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히 채워주십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으면 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우리가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구하지 않으면(약 4:3)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것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박지영 변호사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답니다.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음악대학에서 작곡이론을 전공한 분입니다. 아버지의 부도로 단칸방에서 살면서 피아노까지 처분해야 했었고 어렵게 어머니가 피아노를 다시 마련하여 피아노를 놓을 곳이 없어 주인 집 마루에 놓고 피아노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답니다. 고교를 졸업하던 해인 만 19세에 림프암에 걸답니다. 지옥같은 항암치료를 받을 때 몸안의 장기가 모두 입으로 딸려 나올 것 같은 토악질을 10시간씩 해댔답니다. 물을 넘기기도 어려웠답니다. 주사바늘을 하도 많이 꽂아 혈관이 모두 숨어버렸고 잠만 자면 가위에 눌렸답니다. 기도했답니다. 주기도문을 계속했답니다. 어느 정도 인생 여정이 아직도 남아 있으리라는 이상한 확신이 생겼답니다. 항암치료를 중단했답니다. 병원에서는 경고했지만 집에서 현미와 채소 등 자연식을 먹으면서 1년여 동안 암세포와 싸워나갔닸습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놓기 까지 하신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깨끗이 치유된 것입니다. 그 이후 15년 동안 감기나 타박상 등을 치료하러 병원에 간 일 외에는 림프샘 종양과 관련해 병원을 간 적이 없다고 합니다.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늘 함께 해주신 하나님께 뒹굴고 울부짖으면서 사랑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서울대 음대를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시적 삶 한정된 시간 동안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졌다고 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입니다. 선교단체 ‘한시미션’에 들어가 농촌 오지, 도시빈민, 소년소녀 가장, 장애우 등을 구체적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부르시더니 “지영아, 사법시험에 도전해보면 어떻겠니? 건강만 받쳐주면 정말 좋겠는데 그건 함께 기도해보면서 말이야.”구체적으로 섬기기 위해 법대에 다시 편입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법무법인 로고스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변호사로서 직업적 소명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의 궁극적 소명을 분리하지 아니하고 세상 한복판에서 사랑을 외치신 예수님을 닮고자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소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장 잘 변론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내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법과 음악을 통해 잘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얼마난 풍요로운 천국적 삶입니까? 삶이 풍성하지 못하다고 원망하며 좌절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실 줄 믿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풍성한 교제의 삶을 누려야 합니다(31,33-34).(죄의식이 아닌 자녀로서 자긍심. 의롭다함을 얻음) 우리를 풍성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범죄로 인한 죄책감과 두려움, 죄의식입니다. 죄의식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풍성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지옥을 만듭니다. 아들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사탄은 총공세를 감행하여 죄의식을 갖게 하고 우리의 신분에 회의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기 자식이 거지처럼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빈궁하고 초라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탕자처럼 집을 나가 허랑방탕하여도 부모의 품에 돌아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왕은 자신의 아들이 왕자답게 우아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거지처럼 거리에 뒹굴고 불량배들과 함께 어울려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딸답게 풍성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눈물도 한숨도 고통도 없는 천국적인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연약하여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술로, 마약으로, 재물로, 욕심으로, 음행, 음란으로, 미워하는 마음으로, 낙심, 절망으로, 성격 파탄으로 자기도 자기를 어떻게 하지 못하며 넘어집니다. 이 때 사탄은 속삭입니다. 여러가지 함정을 파놓고 올무를 거미줄처럼 쳐놓고 우리를 기다린 사탄은 "그 바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너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아니야 너는 쓰레기야" 죄의식을 심어줍니다.
주기도문을 할 때마다 사탄은 말합니다.“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말아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말아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말아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 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아들 답게 살지못한 것에 대해 회의를 줍니다. 절망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4)"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너는 죄인이라"고 우리를 고소하는 것입니다. 거바 "오늘도 실패했잖아?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 따위로 사는냐? 예수 믿고 있다면 그 증거를 내 놓아 봐? 너가 의로운 사람이야? 속이지마 너 양심이 잘 알고 있잖아? 너는 은밀한 가운데 날마다 죄를 지고 있잖아?" 우리를 고소하고 정죄하고 대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넘어가 자포자기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정죄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날마다 죄를 짓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를 지었다해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어도, 모세가 살인 하였어도, 야곱이 사기를 쳤었어도, 노아가 술주정을 부렸어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모세를 노아를 하나님의 아들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죄문제는 상대방이 용서해 주면 끝이 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대방이 용서해 주시면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해 주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시 103:12)"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3:25)"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겔 18:2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미 지옥 갈 법정에서 의롭다 선언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31절 보십시오.
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하지 못합니다(31).
우리의 힘으로는 약하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시면 어떤 것도 우리를 대적하지 못합니다. 5: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대적한 원수 마귀에게 내어 맡겨 두시겠습니까? 아닙니다.
2)하나님이 우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송사하지 못합니다(33).
송사란 [재판의 처음 단계로 검사가 죄의 혐의를 주장하여 피의자를 재판부에 기소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사탄과 그 하수인들은 성도들의 신앙과 행위 사이의 모순을 끊임없이 하나님께 송사합니다. 욥의 경우를 보십시오(욥기 1:9-11; 2:4-5). 욥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욥의 선행을 격추시켜서 하나님으로 멀어지도록 간교하게 송사합니다. 스가랴서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송사하는 사탄의 모습을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행실이 선하지 못하고 깨끗지 못함으로 대제사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고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기 때문에 어떤 기소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고소할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고소할 것입니다. 우리를 비난하며 손가락 질 하는 많은 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였습니다. 내 스스로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의롭다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정될 할 수 없습니다(34).
정죄는 죄 때문에 재판장 앞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정죄함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댓가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의 사망 권세 하에서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0절을 보십시시오. 이미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 정죄함없네... 해방되었네 해방되었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는 인생살다 보면 실수할 수 있습니다. 죄악의 늪에 들어 갈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은 회개하고 돌아오면 우리 예수님을 통하여 용서받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 답게 교제를 통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버리지 않습니다.
사기꾼 야곱같은 이스라엘게 말씀합니다.“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사 43:1-3)
3.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35-39)(소외 의식이 아니라 사랑의식, 역경을 뛰어넘어)
고독한 사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소외된 사람은 풍성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고독하게 하고 소외의식을 갖게 만듭니다. 사탄의 공략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서 송사하고, 정죄한 다음 마침내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린 사탄은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분리시키려고 간교하게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게 만듭니다. "너의 삶의 모습을 보라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받고 사는 모습니냐? 하나님이 사랑하면 너를 그렇게 놓아 두겠느냐?" 사탄은 우리에게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시련을 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합니다. 환란(환경), 곤고( 외로움, 절박함, 질병 ), 핍박(외부적인 압력), 기근(굶주림), 적신(헐벗음), 위험(갖은 질고, 사고, 공갈 협박), 칼(전쟁) 등과 같은 엄청난 무기를 준비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려고 합니다.
1) 그러나 어떤 것도 그리스도 사랑에서 우리를 끊지 못합니다(35-36)
(1)환난 곤고, 핍박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2)기근이나 적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지 못합니다.
(3)위험이나 칼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지 못합니다.
2)우리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38). 바울은 확신하면서 완료 시제를 쓰고 있습니다. 나는 확신하게 되었고 계속 확신하다는 말입니다.
(1)사망과 생명은 사망의 위기와 생명의 재난입니다. 인간 생애 전체를 뜻합니다.
(2)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은 영계의 존재들 전부를 가리킵니다.
(3)현재의 일이나 장래의 일은 기간적으로 모든 때를 말합니다.
(4)높음 깊음은 공간적으로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늘 위에 있는 세력이나 땅에 있는 세력이나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3) 우리는 오히려 넉넉히 이깁니다.
이런 고난이 닦쳐와도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무엇으로 이깁니까?(37)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고난이 있습니까? 환난이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합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합니다. 두려워 말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비록 곤난에 처해 있다해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어 결국 모든 것을 이깁니다(37-39).
생후 20개월만에 자동차 사고로 신체의 85% 이상에 3도 화상을 입었던 조엘 소넨버그 그의 몸은 숯덩이처럼 변했지만 교수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는 믿음으로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치료한 후에도 아이들은“원숭이!”라고 놀리고 어른들은 “왜 가면을 쓰고 다녀?”라고 말하며 음식점 가면 밥맛 떨어진다고 사람들이 나가버린데도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계에 전하면서‘인간이 극복하지 못할 시련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무려 50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고등학교 때 지역축구연맹 대표팀 주장을 맡았고 손가락 없이 자전거 타는 법도 배워 산악자전거를 즐기고 수영과 스쿠버 다이빙, 수상스키를 즐기며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 험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렇게 풍성하게 살수 있도록 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가족 여행을 가면서 톨게이트에서 돈을 내려고 준비하는 순간 바퀴가 18개나 달린 대형 트럭이 40t의 양파를 적재한 채 밀어 닦쳤답니다. 고통하는 아이를 보며 부부는 부둥켜 안고 엉엉 울며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 부부에게 조엘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조엘은 저희 부부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주님, 이제 조엘의 생명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을 끔찍한 사고에서 구해주신 것을 감사 드립니다.” 의사가 살 가망이 없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말합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지만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물론 조엘에게 기적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우리 애를 위해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미리 이런 말씀을 드리는 까닭은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기적을 갈망하고 있었음을 상기하고 하나님께 감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추수 감사절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밤마다 비병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사람들앞에서 말을 합니다.“우리 가족은 가장 멋진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생필품만으로도 감사했던 순례자들의 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엘이 살아 있어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앙상한 뼈만 남은 아들, 손가락이 없어 엉엉우는 아들을 품에 껴안고 아버지는 말합니다.“조엘,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다섯 손가락을 모두 갖게 될 거야. 예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단다.”온 가족이 서로 끌어 안고 웁니다. 도주 트럭 운전기사 18년만에 체포되어 법정에 섰습니다. 법정에서 가족이 진술을 합니다. 조엘의 동생 솜머가 말을 합니다. “저는 정의가 오늘 이 법정에서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빠와 제 가족이 겪은 세월을 어떤 형벌로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제게 십자가의 능력에 대해 가르쳐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제 삶의 중심인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사랑과 용서를 통해 우리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던 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싶습니다. 저희를 사랑으로 가르치며 양육해주신 부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게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 오빠에게도 깊이 감사합니다.”
누나 제이미가 진술합니다.“조엘은 제 동생입니다. 저는 동생의 인내력과 고통에 당당히 맞서는 태도, 삶에 대한 애착,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을 존경합니다.….”
다음엔 엄마가 앞으로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최악의 참상을 최선의 아름다움으로, 능력의 이야기로 바꾸셔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말을 합니다. “도트씨! 당신은 18년 전에 생기 넘치는 개구쟁이 내 아들을 시커멓게 불에 그을려 비명을 지르는 숯덩이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의사와 친구와 가족들,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 숯덩이를 자르고 갈고 광택을 내어 눈부신 금강석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아들을 아빠를 포옹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마지막 조엘이 말합니다.“도트씨!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주인이요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한없는 은혜를 깨닫도록 기도합니다. 저는 증오심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망과 절망이 또 다른 고통을 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사랑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으로 둘러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승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풍성한 삶을 살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3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32)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겠습니까?(33)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습니까?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