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덕생활을 할 때 그 정점은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삶이라는 성덕입니다. 하느님의 의지(뜻)를 소유하고 늘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최고의 성덕에 이른 이들의 삶입니다.
하느님 뜻 안의 성덕은 사욕과 시간 낭비에서 면제된 성덕이고 영웅적이고 신적인 성덕이며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1. 사랑과 하느님의 뜻
7-62,2 “나는 믿음도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가질 수도 없었다. 내가 바로 하느님이었으니까. 나는 오직 사랑이었을 뿐이다.”
3 이 ‘사랑’이라는 낱말을 듣자 나도 오직 사랑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 나머지 아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저의 주님, 저도 당신처럼 온전히 다만 사랑이고 싶습니다.” 하고, 안 해도 될 소리를 불쑥 내질렀다.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을 덧불이셨다.
4 “그것이 나의 목적이다. 그래서 완전한 자기 포기에 대하여 너에게 자주 말하는 것이다. (자기를 버리고) 나의 뜻 안에서 삶으로써 지극히 용감한 사랑을 얻게 되고, 바로 나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기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혼은 온전히 사랑이 되고, 온전히 사랑이 되기에 끊임없이 나와 접촉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와 함께, 내 안에,나를 위하여 있으면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한다.
6 이와 같이 살아가면 믿음과 희망이 거의 녹아 없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영혼이 하느님의 뜻으로 살게 됨에 따라 더 이상 믿음과 희망과의 접촉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9-30,3 사랑은 내 뜻에 일치하는 한에 있어서만 순수하다. 사랑과 내 뜻이 함께 길을 걸으면서 서로 끊임없이 평화의 입맞춤을 나누는 것이다.
5 사랑은 내 뜻 안에 있을 때, 오직 그럴 때에만 안전하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것을 높이 평가하여 탐하게 하며 스스로 지나친 광기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반면, 내 뜻은 사랑 자체를 조절하고 가라앉히면서 사랑하는 영혼을 더욱 견실하고 신적인 양식으로 부양한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는, 비록 거룩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불완전한 것이 많이 있지만, 내 거룩한 뜻 안에는 그런 것이 도무지 없다. 일체가 완전한 것이다.
7 사랑은 바로 내 뜻의 맏딸이지만 언제나 내 뜻에 의해 바로잡아질 필요가 있다.
11-32,3 홀로 사랑만이 인간적인 모든 불완전을 쳐 이기고, 영혼이 신적 생명을 얻으려고 하느님 안으로 가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태워 없애는 것이다.
4 그러나 사랑이 나의 뜻으로부터 생명과 양식을 받지 않는다면 참된 사랑이 될 수 없다. 나의 뜻이 사랑과 결합하여 영혼이 나로 바뀌도록 진정한 변화를 이룩하는 까닭이다.
“나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를 사랑하고, 경모하고, 완수해 드리는 것이다.그리고 아버지의 뜻만을 내 뜻으로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비로 사랑의 완성이요, 나와 같아지는 최고의 목표를 완성하는 인간의 완성이다.” (예수님께서 가경자 콘치타에게 주신 말씀)
2. 진정한 성덕의 길 - 가짜 성덕과 진짜 성덕
12-18,31 나는 오직 여기(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에만 진정한 성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것은 성덕의 환영(幻影), 망령 내지 유령일 것이다.
32 하느님의 뜻 안에서는 덕행들이 신적 질서 속에 자리를 잡는다. 반면에 그것이 이 뜻을 벗어나 인간적 질서 속에 있게 되면 자만과 허영과 격정의 지배를 받게 된다.
33 오, 얼마나 많은 선행이, 잦은 성사 참여들이 하느님 대전에 개탄할 만한 보속거리가 되는지! 그것은 그런 행위들에 하느님의 의지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런 결실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34 하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진정한 성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되면, 오,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질 정도가 될 것이다!
35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성덕의 길을 걷고 있다. 경건한 신심 실천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너무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36 만일 그들의 의지가 예수님과 하나 되어 그분 안에서 변화되지 않는다면 - 이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야말로 끊임없는 기도이기에 - 그들의 성덕은 그 모든 독실한 실천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이다.
이는 그런 영혼들이 그렇게 경건한 신심 행위를 하다가도 얼마나 쉽사리 결점이나 오락에 빠지고 불일치의 씨앗을 뿌리는 등의 짓거리를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이런 부류의 성덕은, 그러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성덕인가!
37 또 어떤 이들은 성당에 가는 것, 모든 전례에 참여하는 것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의지는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이 영혼들이 스스로의 본분에 얼마나 등한한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가는 걸음을 막는 무엇이 있으면 벌컥 화를 내고, 그들의 성덕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 돗 울부짖으니, 그 불평과 불순종으로 가족들의 상처가 되기 십상이다. 이 얼마나 맹랑한 성덕인가!
38 또 다른 이들은 자주 고해성사를 받고 꼼꼼하게 영적 지도를 받으며 모든 것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 나 그들의 의지가 예수님의 의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을 반박하는 사람들이 되레 불행하다(고 여길 따름이다)! 이런 영혼들은 부푼 풍선과 같아서 작은 구명만 있어도 바람이 빠진다. 즉, 그들의 성덕이란 것이 연기처럼 공중으로 흩어져 오르다가 땅에 떨어진다.
40 나는 저 가짜 성덕들을 두고 예수님과 함께 울기 위해서 그분의 눈물이 되고 싶다. 진짜 성덕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며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사는 데에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3. 하느님 뜻 안의 삶이라는 성덕은?
12-27,6 딸아, 다른 모든 성덕들은 시간 낭비와 사욕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모든 것 속에서 순명에 주의를 기울이며 사는 영혼의 경우 시간을 많이 낭비한다.
8 그러나 내 뜻 안에서의 삶 성덕은 사욕과 시간 낭비에서 면제된다.
9 이는 지상 생활 중 내 인성의 성덕이었으므로 사욕이라고는 추호도 없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을 수행했던 것이다. 사욕은 신적인 성덕의 표를 제거한다.
10 이런 이유로 나는 내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을 원한다.
13-17,2 딸아, 영혼은 내 뜻 안에서의 행위를 할 때마다 내 눈앞에서 점점 더 지혜와 선성과 능력과 아름다움이 자란다.
6 딸아, 내 뜻 안에서는 성덕이 순간마다 자란다.
7 극히 범상한 것도, 이를테면 잠이며 음식이며 작업 따위도 내 뜻 안으로 들어와서 내 뜻의 대행자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영혼이 원 하기만 하면, 가장 큰 것에서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가 내 뜻 안에 들어올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3-32,4 내 뜻 안의 성덕은 태양으로 상징될 것이다.
14 이 성덕은 너의 창조주와 가장 밀접한 성덕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장 탁월한 성덕이 될 것이고, 다른 모든 성덕들을 자신 안에 포함하면서 그 모 두의 생명이 될 것이다.
18 내 뜻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적이 아니냐? 내 뜻이 영원하니, 이 기적도 영원하다.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뜻이 하느님의 뜻과 지속적인 친교를 맺는 매순간의 기적이다.
16-10,3 딸아, 어떤 성덕이 개별적이고 일정한 때 일정한 장소의 것일 경우, 외적인 기적 사건들이 보다 많이 일어난다. 그것은 그러한 개인들과 그 장소와 때를 끌어당겨 그 성덕이 내포한 은총과 선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4 한편, 내 뜻 안에서 사는 삶이라는 성덕은 어떤 장소, 어떤 사람, 어떤 때를 선정해서 선행을 하는 개별적인 성덕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게 될 성덕이다.
6 그것의 진정한 표상은 지평선을 비추는 태양이다.
10 그런데, 내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삶인 이 참된 성덕의 모범은 내 엄마이시다.
11 선치고 그분에게서 나오지 않는 선이 없었고, 그분에게서 샘솟지 않은 기적도 없었다.
19-11,7 내 뜻은 다른 덕행들처럼 땅에서 행해질 수 있는 천하고 하찮은 것들과 타협할 줄을 모른다. 오히려 만물과 만인을 발판으로 삼아, 영혼의 내면 전체를 변화시키고 덕행들 자체도 이 거룩한 뜻으로 바꾸기를 원한다.
8 여기에 덕행들과 내 뜻 사이의 큰 차이가 있다. 이 거룩함과 저 거룩함의 차이인즉, 덕행들은 사람들의 것이어서 기껏해야 인간적인 거룩함을 이룰 수 있는 반면, 내 뜻은 하느님의 것이기에 완전히 신적인 거룩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큰 차이냐!
9 인간은 그러나 이 아래 세상을 보는 데에 익숙한 탓에, 찬란한 태양인 내 뜻보다는 작은 등불인 덕행들에 더 깊은 감명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