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26> 서장 (書狀)
왕내한에 대한 답서(2)
진리란 바로 지금의 삶 속에 있다
"편지를 받아보니, 대문을 닫고 사람들과의 교유를 쉬며 세상사를 모두 간략하게 하고, 아침 저녁으로 오직 내가 전에 제시한 화두(話頭)만 들고 있다고 하니, 아주 좋습니다. 이미 이러한 마음을 갖추었다면, 마땅히 깨달음을 모범으로 삼아야 합니다. 만약 스스로 못나고 모자란다는 생각을 내어 근성(根性)이 열등하다고 여기면서도 다시 들어갈 곳을 찾고 있다면, 이것은 바로 궁궐 속에서 서울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화두를 드는 것은 누구며, 근성이 못났다고 아는 것은 또 누구이며, 들어갈 곳을 찾는 것은 또 누구입니까? 제가 구업(口業)을 무릅쓰고 거사(居士)를 위하여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이것은 다만 왕언장(汪彦章)일 뿐, 다시 둘이 없습니다. 다만 이 하나 왕언장일 뿐인데, 또 어디에서 화두 드는 자와 근성이 열등함을 아는 자와 들어갈 곳을 찾는 자를 얻겠습니까?
이들은 모두가 왕언장의 그림자일 뿐이어서 저 왕언장의 본분사(本分事)에는 전혀 간섭치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진짜 왕언장이라면 근성이 반드시 못난 것도 아니고 결코 들어갈 곳을 찾지도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의 주인공을 믿을 수만 있다면, 여러 가지 수고로운 일을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아무 문제가 없고 눈 앞에 펼쳐지는 온갖 세상사에 아무 의심이 없으면, 당신은 이미 할 일을 마친 사람이니 아무도 당신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 순간 한 순간 나타나는 다양한 경계에 따라 이러 저리 끌려다니며 온갖 즐겁고 슬픈 세상사를 맛보고 있다면, 당신은 진정 불쌍한 사람이다. 온갖 세상사 가운데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늙고 병들어서 죽는 문제이다. 늙고 병들어서 죽는 문제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삶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삶의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삶이 바로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 진리란 바로 지금의 삶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평범하여 눈길조차 주지 않는 바로 이 삶이 진리이다. 자신의 이 삶이 바로 진리인데도, 사람들은 왜 진리를 모르고 두려워하며 번뇌하는가? 그것은 의식(意識)의 속임수에 놀아나기 때문이다.
의식 속에서 모든 것은 생멸변화(生滅變化)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음은 의식에 속아서 자신과 세계를 생멸변화하는 모습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마음의 진실은 생멸변화하는 모습이 아니다. 마음은 모든 의식세계의 바탕으로서 의식의 본질이지만, 생멸하는 의식세계와는 달리 마음 그 자체는 생함도 멸함도 없다. 즉 마음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바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양 없는 바탕이다.
모양이 없으므로 생멸변화가 있을 수 없고, 모양이 없으므로 시간도 공간도 없고, 모양이 없으므로 주관과 객관이 없다. 이처럼 마음은 모든 개념적 파악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의식작용의 본질은 마음이다. 즉 의식작용은 마음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고, 마음이야말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실재이다. 나타나는 모든 의식적 현상은 전부 마음으로부터 나오므로, 모든 의식적 현상은 유일무이한 실재인 마음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양에 속지 않을 수만 있다면,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마음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며, 스스로 어리석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마음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며, 마음을 찾고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 본래 완전히 갖추어져 있음을 입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된 공부인이라면 진실한 자기자신이 무상(無常)한 의식현상의 바탕이 되는 바로 이 유일무이한 모양 없는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참선 공부란 곧 모양 없는 이 마음이 진실한 자기자신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 확신이 진실로 분명하여 한 물건도 없이 말끔할 때, 늙고 병들어 죽는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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