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며칠전입니다. 그 날은 올들어 가장 매서운 한파가 제주도에 급습한 날이었습니다. 밤사이 폭설이 내렸죠. 제주도 전체가 하얗게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12일 낮에는 눈이 먼지처럼 날리더니, 밤에는 눈송이가 조금 커지더군요. 이때 살짝 불안했으나, "에이~ 제주도인데 뭘~"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날씨를 얕보았던 제가 잘못했던거죠.
어쨌든,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서 공항 갈 준비를 주섬주섬하다가 뉴스를 보고 비명을 지르곤 말았습니다.
"꺄아아아악!!!"
그 다음 제가 한 행동이란? 드르륵~ 창문 열기. 그리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걸 제 눈으로 보고는 좌절!
눈 부비며 동생은 제 옆으로 와서... "언니 왜에? 와아~ 눈이다!! 눈다운 눈이네~"
갈 길이 먼 언니 옆에서 눈이라고 좋아라하는 동생의 모습이 어찌나 밉던지. ㅡ.,ㅡ
눈만 내리면 좋으나. 제주도 특성상 절대 눈만 오지 않는다는 거! 강풍을 동반합니다. 즉, 눈보라가 친다는거죠.
일단 공항에 가보자는 심산으로 주섬주섬 챙깁니다. 짐가방을 들고 집을 나섭니다. 택시타는 모습까지 보시겠다는 엄마를 만류합니다.
엄마는 "택시타는 거까지 볼게~"
"아냐아냐~ 엄마. 나 혼자 갈게. 어린애도 아니고 무슨"
"이제 또 언제 본다고. 엄마랑 같이 가자"
"아니.. 그래두..."
아, 난감... 엄마 나가시면 감기 걸릴텐데... 어쩌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저야 눈에는 익숙하니까. 그렇다고 쳐도 엄마는-_-;
하지만. 반전도 있죠.
현관 문을 열고 나서, 엄청난 눈보라를 보자... 엄마는...
"응. 그래.. 혼자 택시 타고 가는게 낫겠다.. 갈 수 있지?"
"응? 네에.. -_-;;;; 공항가서 연락할게~"
딸 배웅까지 멈칫하게 하고, 포기하게 한 눈보라. 그 눈보라를 헤치며 공항에 갑니다.
사실, 택시 잡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눈속에서 5분을 걷고, 10분을 기다려, 눈사람이 되기 직전에 택시를 타서 공항에 도착합니다.
눈 덮힌 야자수... 이거 흔치 않습니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죠. 공항의 모습은 이랬어요^^
제가 타고갈 비행기는 이스타항공 8시 55분 김포행 비행기.
9시가 지난 현재 그 전에 출발해야할 8시 10분 비행기도 출발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기타 다른 항공기들은 모조리 다 결항!
배웅을 못 오신 엄마는 걱정이 되었나봅니다. 10분에 한번씩 전화를 거십니다.
"비행기는 뜬대? 잘 갈 수 있겠어? 위험하지 않겠니?"
"괜찮아~ 비행기 사고 왠만해선 잘 안나~ 한두번 타본것도 아니고~"
사실.. 말은 이리 해도 걱정이 좀 되었습니다. 엄마 걱정할까봐, 일부러 씩씩하게..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비행기. 무작정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피커에서는 "결항되었습니다"란 방송만 나오고 있었고.
"지연이 어디냐, 타고 갈수만 있다면~!" 저 같은 심정으로 기다리는 승객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가 결항되자 급히 이스타항공으로 바꿔서 온 승객들도 있었구요.
9시 20분 정도 되자, 8시 10분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출발합니다.
그리고 9시 40분이 되자, 제가 탔어야 할 비행기도 탑승을 시작합니다. 원래 탑승시간은 8시 45분이었는데, 한시간 정도 늦춰졌군요.
이스타항공은 제주도에서 출발할 경우에는 보딩브리지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날만큼은 보딩브리지였으면 하고 기도했지만, 탑승구가 4번이면 뭐.. -_-;
버스를 타고 이용해야죠. 눈보라속에서 탑승을 해야하는 상황.
아, 추워.. ㅠㅠ 손시렵고, 기다린 것도 억울하고.. 승객들 표정이 편치 만은 않았습니다.
저는요? 뭐.. 비행기가 뜨는 것도 기적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겁도 났습니다. 보험을 많이 들어놓긴 했지만, 이 꽃다운 나이에 비행기 사고라-_-; 머리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건 사실입니다.
이 와중에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 저 또한 사람들에게는 "쟤 뭐야~?" 이런 의문을 들게 했었죠.
정말 눈이 많이 쌓이긴 했습니다. 제주도 해안가에 이리 눈이 많이 쌓이진 않거든요. 제주도 해안가에서 20년을 살아봐서 압니다.ㅋ 초등학교 6학년때 이렇게 눈이 오긴 했지만 그 후로 이런 눈은 오지 않았어요.
제 좌석에 앉아서 밖을 찍어봤습니다. 아, 뒷자리를 앉아야 했는데, 급한 마음에 지정해주는 대로 앉은 꼬양입니다. 이럴때 뒷좌석에 앉아야 하는데 말이죠. 생존율이 뒷좌석이 높다고 합니다. -_-;
비행기는 이륙이 좀 늦었습니다. 탑승을 다 완료하고 한동안 활주로에 멍~ 그렇게 10분 넘게 있었습니다. 바람은 맞바람!
바람에 비행기는 흔들흔들. 이럴때 안전벨트는 더 꽉 매게 되지요. 비오는 날, 돌풍이 몰아치는 날 등등 별의별 날에 비행기를 타보지만 눈보라 치는 날 비행기를 타는 것도 처음이네요. 비행기를 타면서 많은 일을 다 겪는 꼬양입니다. 비행기 관련 에피소드 모아봐야겠군요.
어쨌든, 두근두근~ 비행기는 드디어 이륙!
거센파도! 비행기는 부웅~ 뜨구요~ 저는 카메라로 살짝 사진을 찍습니다. 제주도의 파도. 원래 저랬죠. 저런 시퍼런 파도를 보며 자랐기에. 항구의 모습은? 도두항이라고 생각됩니다~
비행기가 어느 정도 고도에 오르자 파란 하늘이 펼쳐집니다.
너무나도 편안해 보이는 구름. 왠지 심술도 나더군요. 제주도 날씨는 눈보라에 속 뒤집어지는데 구름 위 세상은 너무나도 평화로워보였으니 말이죠.
그리고 제주도뿐만 아니라 나머지 지역들도 눈이 내렸으니, 산도 마찬가지로 하얗죠^^
서울에 도착하니 이 시간입니다. 11시 15분.
8시 55분 비행기가 아니라 10시 비행기가 되었지만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사고라도 날까 마음졸이면서 탔던 비행기. 무사히 도착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휴대폰을 켜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아~ 서울에 도착했어~"
"다행이다~ 거기도 눈 많이 오지?"
"아니~ 너무 맑아~ 그리고 여기가 더 따.뜻.해"
사실 바람이 안 부는 서울이 더 따뜻했습니다.
제주도의 세찬 바람은 머리스타일 망가뜨리기, 피부 망가뜨리기를 너무나도 즐겨합니다. 하지만, 공기는 좋아서 폐는 좋게 만들죠.
어쨌든, 딸 배웅까지 포기하게 한 눈보라. 눈보라속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오기란.
마음고생은 했으나, 실제 비행기를 조종한 분의 심정은 오죽했을까요?
눈보라속에서 무사히 서울에 도착한 꼬양은 이 후기를 미리 올렸어야 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제야 올리네요~ (며칠이 지난거야 대체~)
1월 13일. 제주공항에 내려졌던 윈드시어(wind shear.난기류) 경보와 강풍경보는 이날 오후 4시를 기해 해제돼 항공편 운항이 정상을 되찾았지만, 이날 하루 제주에서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항공기 60여편이 무더기 결항해 도민과 관광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 불편 겪은 사람중에 한명이 꼬양도 있긴 하지만.
제가 겪은 건 불편도 아니겠죠?
여하튼, 짜릿한 경험을 했네요.ㅋㅋㅋㅋ
첫댓글 멋진 포스팅이신데요?
한수 배워갑니다...^^
지금은 서울에 있나요~~? 서울까지 무사히 와서 다행이에요~~*
우와... 무사히 와서 다행이예요.. 정말 가슴이 철렁했을듯합니다..
와 눈 가득한 산, 절경이네요.
내가 탔는데도 뜨는거보면 대단한 이스타야..ㅎㅎ
ㅎㅎㅎㅎ 이스타가 저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