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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일) 동문들과 같이 화악지맥을 등산했다. 두번째 화악지맥 종주이다. 두 달전인 4월 19일, 도마치봉에서 화악산 북봉을 거쳐 실운현까지의 1차 종주를 했었고, 두 달만에 다시 이 지맥을 밟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합해서 전부 10인이었다. 김주홍, 이기후, 유한준, 정병기, 김의정여사, 박현출, 서석범, 김영준, 이헌석 제씨와 이 몸이다.
7시 15분 동서울터미널의 만남은 늘 아슬아슬하다. 화천 사창리행 버스가 떠나는 7시 30분이 너무 이른 시간인지라 늦을 사람이 늘 있게 마련이다. 10번째 인사가 버스출발 1분전에 도착하여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리는 출발했다. 날은 흐리다. 비가 오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아침 9시경, 이전에 산행을 위해 몇번 와 보았던 사창리에서 버스를 내려 간단히 산행준비를 한 후 택시 3대를 불러 지난번 내려왔던 실운현 밑 화악터널로 향했다. 대당 12.000원씩 소요가 된다. 도착시각을 보니 9시 31분이다.
지난번 산행에 이어서 지맥길이 이어지는 실운현까지는 고도차가 약 200m 인데 20분 정도 걸린다. 실운현을 향해 우리는 풀이 우거진 비포장 임도를 따라 느릿느릿 걸어 올라갔다.
20분이 지난 9시 51분 군에서 세워 놓은 입간판이 있는 실운현에 도착했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매봉을 향해 뻗어 있다. 매봉에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어 정상에는 올라갈 수 없고 부대정문에서 촛대봉쪽으로 방향을 바꿔 내려가야 할 것이라고 유한준 산행대장이 이야기해 준다.
콘크리트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은 힘이 들다. 그래서 각자의 산행속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선두와 후미가 벌어지게 된다. 거기다가 날이 조화를 부려 햇볕이 내리쪼기 시작한다. 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이 없으니 꼼짝없이 태양광선에 노출된다. 덥기 시작한다. 그래도 앞을 향해 계속 전진한다.
두어굽이 돌아드는 경사길을 계속해서 올라간다. 가슴은 걸음을 멈추고 지난 번 산행했던 화악산을 바라보기도 하는데 높은 곳은 구름에 가려있어 화악산의 모습 전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나는 일행과 약간은 떨어져 홀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걸으며 예의 개똥철학을 논한다. 생각이 조금은 정리되는 순간이다.
오늘은 산에 가는 연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의 무릉도원이자 샹그릴라는 산이었다. 오늘 같이 걷는 동료들도 어느 정도는 그러하리라. 우리는 산에서 이상세계를 찾고 있는 구도자들이다.
불완전한 일상생활에서는 맛 보기 어려운 아름다움과 질서를 찾아서, 보통사람의 생활에선 존재하지 않는 정연한 질서를 찾아서, 비상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우리는 산으로 나섰다. 속세에서 보기 힘든 질서와 아름다움이 거긴 있을 것만 같았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역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많은 산을 살펴야 하고 몸을 써서 오르며 직접 겪어야 한다. 시간과 열정이 없으면 중도탈락이기 십상이다.
나의 산에 대한 경험이 정연하고도 아름다운 하나의 질서로 이루어지도록 노력은 해 왔다. 그 궁극의 모습은 알 수 없지만 그 질서는 논리이자 아름다움이고 균형이다. 새로운 질서와 아름다움을 거기에서 실현하고 싶었다.
산에 대한 경험을 하나 하나 모아가되 그렇게 해서 내게 모여진 형상이 어떤 아름다운 양탄자 아니면 '만다라'(이상세계를 상징하는 불교의 그림)가 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이상향을 만들어 가는 나의 작업이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목마름이었고 그렇게 구축된 '만다라'는 아름답고 완벽하며 균형이 잡혀 있어야 했다.
이런 건 누구나 가진 열망이겠다. 신변의 잡다한 일들만 하다보면 자기가 사는 세계가 너무나 무질서하고 추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거기에 대한 반동이 일탈이자 탈출일 것이다. 그것으로 나는 산을 택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바둥거리고 있는 것인가? 이 질서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산에서 경치를 즐기며 걷는 사람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좀더 마음속 이상세계를 구체화하려는 자이고, 산행기를 쓰는 사람은 이것을 벼랑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이다.
10시 47분, 드디어 공군부대의 정문앞에 도착하여 후미를 기다린다. 햇빛이 뜨겁다. 그러나 해발고도를 보니 1,377m나 되니 공기는 맑고 시원하다. 약 20분이나 지나서야 후미가 도착한다. 늦는 이유는 나무그늘이 없는 길을 햇빛을 받으면서 계속 오르려니 힘이들어서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숲길이라 햇볕은 이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곳은 고도가 1,377m로서 오늘 등반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지점이다. 계속해서 매봉 정상에 갈 수 있다면 약 100m를 더 올라갈 수 있으나 부대가 있어 불가능하다. 쉬는 시간에 정병기사장이 사서 넣어 준 막걸리를 꺼내 정상주를 마셨다. 달고 시원했다.
이곳 갈림길에서 길은 철조망을 넘어 약간 오른쪽으로 틀며 급한 내리막길이 된다. 미끄러질 새라 조심스럽게 아래를 향한다. 길이 조금은 분명하지가 않다. 다니는 사람이 적어서일 것이다. 오늘 우리 일행말고 다른 사람은 하나도 만나지 못 했을 정도이다.(우리 이외의 등산객이 없는 이 현상은 산행 끝까지 계속된다)
숲속으로 난 길을 조심스럽게 확인하며 전진한다. 11시 반이 다 되어가니 배고프다는 사람들이 나온다. 조금 더 가서 밥을 먹기로 한다. 12시 45분이 되니 이제 본격적으로 약간은 넓은 공터를 찾는 작업이 시작된다. 10인이 둘러 앉으려면 폭과 길이에서 조금은 여유가 있는 곳을 찾아내야만 했다. 12시경 드디어 선두가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였다. 모두들 기뻐하며 도시락을 풀어 놓는다. 밥과 반찬과 라면, 술로 입을 즐겁게 하며 약 40분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다시 전진이다. 능선길은 완만하여 별로 힙들지 않아 다행이다. 12시 55분, 해발 1,168m의 촛대봉에 도착하였다. 오늘 처음 만나는 정상석이 반겨준다.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정상석에 쓰여있는 글짜가 생경하다. 촉대봉이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결국 燭臺峰이라는 말이리라. 촛불을 한자에서 '촉'이라고 읽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러나 초를 꽂은 대를 '촛대'라고 하지 '촉대'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무에 가려서 시계가 잘 트이지 않는 지루한 길을 약 한 시간 가니 삼거리가 나온다. 13시 52분 화악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도착한 것이다. 가던 방향으로 연이어 남쪽으로 2.8km 내려가면 화악리로 간다고 한다. 우리는 왼쪽으로 틀어 3.9km 떨어진 홍적고개를 향한다.
한참을 가다보니 시계청소를 위해 나무들을 베어낸 길이 나오고, 그 길엔 풀이 우거졌는데 그 풀섶에 빨간색 산나리가 자주 눈에 띈다. 15시 36분 홍적고개에 도착하여 6시간 5분의 종주산행이 끝났다. 홍적고개는 가평과 춘천이 만나는 곳이었는데 GPS상 고도는 392m로 비교적 낮은 고개이다. 다음 지맥 종주산행은 이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원래 여기서 택시를 불러 가평역으로 나갈 계획이었으나 날이 덥고 땀을 많이 흘린지라 시원한 물에서 발이라도 닦고 가기로 하여, 아스팔트길을 걸어내려왔다. 한참을 내려오니 집이 드문드문 있는 한가로운 마을이 나오고 작은 시내가 눈에 띈다. 모두들 발을 벗고 어떤 이는 웃통도 벗고 시원하게 물에 담근다.
약 40분 후 호출한 택시 3대가 와서 동승하여 가평역 근처 막국수집으로 갔다. 택시비는 한 대당 19,500원이다. 막국수집엔 막국수는 있는데 술안주 할만한 수육이 다 팔려 안주가 없다. 결국 옆집에서 보쌈 큰 것 두 개를 시켜서 맥주와 소주를 흠뻑 마셨다. 이 집은 택시기사가 우리 일행에게 권할 정도로 유명한 집이어서인지 막국수의 맛은 괜찮았다. 다만 안주거리를 준비하지 못한 것은 흠이었지만. 오늘의 음식값은 이기후회원이 쾌척하였다. 다들 어려운 시절인데, 고마운 일이다.
가평에서 청량리행 기차는 입석이었다. 배낭 뒷주머니 넣어서 늘 가지고 다니는 낚시의자를 열차의 통로에 펼치고 그 위에 앉아서 오는데 또 술이다. 소주를 3병 가량 사왔다. 세 사람을 뺀 7인은 청량리 도착한 뒤에도 맥주 한 잔씩 하고서야 헤어진다.
여기까지 그날의 산행(화악지맥 종주 2회차)을 주저리 주저리 기록해 보았다. 지루한 사람은 아래 표만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산행을 좀더 시각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사진을 실어 둔다.
표. 주요지점 도착시각 및 해발고도와 특기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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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콘크리트 길을 보니 더 더워지네요....명길형님으로 부터 녹슬은 철모를 봤냐는 전화가 왔었습니다..그러고 보니 놓치고 그냥 지나친것 같습니다....에고 또 덥네요~~~ 사진 잘 봤습니다...제 사진은 다음주에나 가능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