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호질 (虎叱) - 박지원 -
민근홍 언어마을
[줄거리]
깊은 산중에 황혼이 짙어갈 무렵 산중 왕(王)인 대호(大虎)가 부하들을 모아놓고 저녁거리에 대한 의논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잡아 먹으려 하나 마땅한 것이 없었다. 의원을 잡아 먹으려 하니 의심이 많은 자이고, 무당의 고기는 속이는 자라서 불결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청렴한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결정을 했다. 이에 큰 범은 부하들을 남겨 놓고 골짜기를 내려온다.
이때에 정(鄭)이라는 고을에 벼슬을 탐하지 않는 선비가 있었으니, 그를 북곽선생이라고 불렀다. 나이 마흔에 손수 교서한 책이 일만 권이어서 지방 제후들도 그를 존경했다.
그런데 그 북곽선생이라는 선비가 이웃 동리에 사는 동리자(東里子)라고 하는 청상 과부의 집에 가서 그 과부와 밀회를 하고 있었다. 그 과부에게는 성(姓)이 다른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모친의 방에서 남자의 음성을 듣고 엿보니, 그 남자는 도학으로 유명한 북곽선생이 아닌가. 그들은 북곽선생이 밤중에 찾아 올 리가 만무요, 아마 뒷산 여우가 모친의 아름다움을 탐내고 둔갑하여 북곽선생으로 변해가지고 와서 모친을 흘리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여우를 잡으려고 몽둥이를 가지고 모친의 방을 습격하였다. 그러자 북곽선생은 허겁지겁 도망쳐 달아나다가 그만 들판의 똥구렁에 빠져 버렸다. 머리만 내놓고 발버둥치다가 겨우 기어나오니 더러운 것이 몸에 가득했다.
바로 그때, 호랑이가 '으흥'하고 앞에 다가와 선비를 꾸짖는다. 유학자의 위선과 아첨, 이중인격 등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며 더러운 선비라고 욕을 하였다. 북곽선생은 정신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만 살려 주기를 빌었다. 황공한 태도로 손을 부비며 고개를 들어보니 범은 간 데 없고, 어느새 날이 훤히 새고 있고 농부들이 북곽선생을 둘러싸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이에 그는 농부들에게, 자신의 행동은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조심하는 것이라고 변명을 한다. 농부들이 사라지자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감상 및 해설]
< 호질>은, 호랑이를 의인화한 우화적 소설로서 <양반전>과 더불어 당시 양반들이 지니고 있던 위선적인 모습을 희화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당대에서 학식으로 소문난 선비인 북곽선생이 과부 동리자와 정을 통하고, 과부의 아들에게 들켜 똥구덩이에 빠지고, 범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통해 연암은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 호질>은 제목 그대로 '호랑이의 꾸짖음'이 되는 바, 그 형식은 순수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받지만, 아무튼 호랑이의 입을 통하여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다. 연암은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양반들, 삼강오륜의 덕목만을 설파하면서도 호색적인 생활을 일삼는 양반들의 생활을 폭로했다. 특히 동물을 의인화하여 호랑이가 위선자의 비행을 나무라도록 한 것은 기발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도학자와 열녀 표창까지 받은 과부의 탈선을 소재로, 유학 대가의 위선과 정절부인의 가식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서 연암 박지원의 개혁사상을 여실히 발견할 수 있다.
연암의 기록에 의하면, 이 작품은 옥전현에 있는 심유봉의 가게에 가서 한 기이한 작품을 보고 그 글을 주인의 승낙을 받고 옮겨 써 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국내 많은 유학자들을 풍자한 것으로, 그들의 노여움을 폭발시킬까 해서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고 말했다는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요점정리]
ㅁ 성격 : 한문 단편 소설, 풍자 소설, 의인 소설, 우화 소설.
ㅁ 창작 연대 : 18세기 말(정조 때)
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ㅁ 주제 : 조선 시대 양반의 도덕적 허위 의식 풍자
⇒ 북곽선생으로 대표되는 유학자들의 위선 풍자
동리자로 대표되는 정절 부인의 가식 폭로
ㅁ 출전 : <열하일기> 중 '관내정사'
[생각해 보기]
■ '범의 성격
이 작품의 범은 단순히 의인화된 동물이 아니라, 인격화되고 성화(聖化)된 존재이다. 범은 선비로 대표되는 인간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주동적 인물이며, 한국인들의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영적 동물로서 연암을 대변하는 주인공이다. 뿐만 아니라, 제3부에 등장하여 인간을 직접 질타함으로써 작품의 유기적 구성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 제목의 의미
제목 '호질(虎叱)'은 '범이 꾸짖는다'는 뜻이다. 이로 보건대, 이 작품의 주인공은 범이며 그는 매우 비판적 관점을 취하고 있음을 추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주로 비판 대상이 되는 것은 북곽 선생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위선적인 선비 계층이다. 제목에 나타난 '꾸짖음', 즉 질타의 대상은 겉과 속이 다른 선비인 것이다. 즉, 이 작품의 제목은 '범이 위선적 선비를 꾸짖는다.'는 작품 내용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 범이 먹이감을 물색하면서 의원, 무당, 선비를 뭉뚱그려 맛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당대의 신분 질서, 그리고 작품 전개 방향으로 보아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가?
조선시대 신분 질서에서는 사(士) 계층이 가장 상류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의원이나 무당은 선비들이 천시하는 계층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세 계층이 먹이로서의 가치도 없는 인간으로 동일시되었다. 이것은 이 작품에서 가장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선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북곽 선생의 위선을 폭로하고 조롱하는 이야기로써 확인이 된다. 그러므로 범이 먹이감으로서 의, 무, 사를 같은 차원에서 논의한 것은 선비의 위선과 가면을 중점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의도이며, 또 북곽 선생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도입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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