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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안양 신성중고등학교
하루신선 추천 0 조회 627 19.12.14 01:33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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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1.01.12 18:45

    첫댓글 1980년 신성중고등학교로 바뀌는데, 설립자인 정창선 교장께서 평북 선천의 신성중학교 출신이라는게 첫째 이유다.
    아마도 그 무렵에 학교법인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사립학원 특성상 학원 운영권이 설립자인 정창선 교장에게 집중되어 자연스럽게 신성중고등학교로 바뀌게 된 것으로 보인다.
    동중학교 동고등학교는 발음상 똥중 똥고로 불리워져 학교 이미지가 나쁘다는게 두번째 이유다.
    신성학원은 1980년부터 설립자인 정창선 교장의 의지에 따라 평북 선천의 신성중학교 후신이 되었고, 평북 선천의 신성중학교 출신이셨던 백낙준박사(연세대학교 총장)께서 방문하셔서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주셨던 일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신성중고등학교는 선천의 신성중학교 후신이 맞다,

  • 작성자 20.12.12 15:03

    인터뷰 내용으로 보면 신성학원은 당시 어려웠던 우리나라의 모습, 교육환경 그리고 국민의 교육열을 알게 하고 가슴뭉클하다.
    학교법인 신성학원은 1980년 학교명을 변경하면서 함께 바꾸지않았나 싶은데 학교연혁에는 처음부터 신성학원으로 되어있다.
    1980년 여름 설립자 정창선 교장의 갑작스런 죽음, 부인과 아들이 이사장에 있으면서 학교는 조국가족의 웅동학원과 비슷한 과정을 겪었나보다. 다행스럽게도 학교는 발전하여 명문사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부영그룹으로부터 기숙사를 건축 기증받았다.
    학교의 한자 명칭 신성(信聖)을 신성(新星)으로 바뀌었는데 되찾고 싶다.

  • 작성자 19.12.17 15:29

    양전백(梁甸伯,1869-1933)은 한국의 장로교 목사, 독립운동가. 아호는 격헌(格軒), 평안북도 선천 출생. 1894년 기독교에 입교, 1897년 전도사가 되었고, 1907년 평양신학교를 1회졸업하여 한국 최초의 장로교 목사 일곱명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길선주와 함께 민족대표 33인 이고 평양신학교 동기생이다.

    선교사들과 더불어 선천에 신성중학교와 보성여학교를 설립하고 YMCA 집회 강사로 활동하면서 평양의 안창호, 정주의 이승훈과 함께 평안도 지역의 대표적인 기독교 교육 사업가로 꼽히던 중, 1911년 105인 사건에 신민회 인사들과같이 연루되어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2년간 복역하다 무죄로 석방되었다.
    근현대사 양전백 김석창 참조~

  • 작성자 20.04.20 13:15

    신성중학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양전백 목사가 1906년 7월 선천남교회당에서 김석창, 노창권과 함께 설립한 기독교 학교였다.
    초기 신성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가장 어린 사람이 20세였고 연장자의 경우 25세가 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 학교는 1909년과 1910년에 각각 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기독교 정신을 가진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1911년 105인 사건의 주요 인사들이 신성중학교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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