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도 푸짐하고 넉넉한 구례5일장
이승기가 먹고 반했다는 팥죽, 이수근이 먹었다는 수구례 국밥
“웟다 이 생선좀 사보랑께잉~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는 생선이여.”
“돈이 없는디.”
“앗따 돈이 없으믄 내 꾸어 줄게. 임자는 사기만 하소잉~.”
흥정을 하는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산 따라 강 따라 간 구례. 가을 초입의 하늘은 유난히도 높고 강물은 깊다. 시리도록 맑은 섬진강 여울에는 반짝거리는 햇빛들이 물위를 걷고, 저 혼자 흘러가는 섬진강은 깊이를 알 수 없다. 가깝고도 멀리 겹겹이 둘러싸인 지리산은 시간을 잊게 한다.
저 높은 산과 깊은 강들이 세월을 두고 키운 것들이 여기에 있다. 구례3.8장이 그것이다. 3일이나 8일이 되면 세월의 잔주름 같은 구례5일장이 열린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날 손가? 구례에 가면 반드시 구레 5일장을 들러보아야 지리산과 섬진강에 온 보람이 난다. 구례장에 가면 없는 것이 없다. 지리산 자락에서 뜯어온 나물과 푸진 거리.
“일단 묵어보란게잉~ 지리산 산마물이여. 열이 묵다 다 죽어도 암도 그 맛을 몰라. 묵어보믄 알제잉~.”
나물전 할머니의 푸진 사투리는 밉지가 않다. 구례는 지리산 밑이다. 산나물이 지천에 널려 있다. 가는 곳마다 할머니들이 갓 뜯어온 싱싱한 나물을 노점에 늘어놓고 장을 벌리고 있다. 각종 취나물, 말린 고사리, 호박, 고구마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푸성귀들을 가득 늘어 놓고 있다. 할머니들은 앉은 채로 나물을 다듬다가 가끔 지나가는 손님에게 찰진 전라도 사투리를 툭툭 던진다.
추석 전이라 그런지 장은 초입부터 사람의 발길로 북적거린다. 장을 보고 손에 손에 비닐 보따리를 든 사람들, 장으로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 어딜 가나 발 디딜 틈도 없이 늘어놓은 좌판들… 구례5일장은 쇠락의 기운이 없고, 점점 북적거리기만 한다. 평소에는 한가하기만한 구례인데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인파들이 몰려든 것일까?
아침부터 장바닥을 가득 채웠던 인파는 해가 지리산 자락으로 넘어 갈 때까지도 빠질 줄을 모른다. 웬만한 5일장은 점심나절이면 이미 파장 준비를 하는데, 구례장은 오후 늦게까지도 인파로 북적거린다.
지리산 산골에 있는 구례는 의외로 권역이 넓다. 섬진강을 따라 하동이지척이고, 곡성과 잇대고 있으며, 순천, 광양, 남원과도 가깝다. 지리산에서는 풋풋한 산나물이 내려오고, 순천 여수에서는 갯것들이 올라온다. 섬진강에 기른 것들도 죄다 구례장으로 올라온다. 지리산에 둘러싸여 길이 험해 주변에 이렇다 할 장이 없는 관계로 사람들은 모두 구례장으로 모여든다.
하동 쌍계사에서 경봉스님을 시봉하고 있었던 법정스님도 쌍계사에서 걸어서 구례장까지 오갔다는 일화가 있다. 구례장에서 걸어서 오느라 탈탈 굶고 점심시간을 넘겨 오게 되었는데, 경봉스님은 공양시간이 지났다며 밥을 주지 않아 하루를 굶고 말았다는 법정스님의 수필은 구례장이 얼마나 큰 장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지금도 절에 스님들, 지리산 도인들도 모두 구례장으로 물건을 사러 온다.
장꾼들의 목청은 판소리처럼 거침이 없다. 흥정을 하는 전라도 사투리는 찰 지게만 들린다. 깊은 산중인데도 갯것들이 어물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정육점엔 시퍼런 고기들이 좍~ 걸려있고, 가는 골목골목마다 나물전, 낱알곡식, 농기구, 말린 고추… 좌우지간에 사람들은 뭔가를 팔고 사고 있다. 구례장에는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푸지다.
구례장에는 리어카에 물건을 가득 싣고 장사를 하는 이동식 가판대도 많다. 아이스크림, 커피, 고무줄, 각종 잡화... 소리소리 외치는 목소리도 정겹기만 하다.
한때 구례장은 새로 단장을 하여 시간을 비껴간 듯 했다. 100동도 넘는 함석지붕이 기와 장옥으로 전부 덮였다. 낡은 흑백 활동사진을 돌리듯 느리고 아득했던 시골장의 풍경이 반듯한 기와 장옥으로 변했다.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을 한답시고 구획을 그어서 정리하고, 반듯한 기와로 장옥을 이어 새로 단장을 했다. 그러나 아직 일부 골목에는 몸을 잇댄 함석지붕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때 묻은 기둥과 역으로 흐르는 시간이 함석지붕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구례장은 때로는 시간을 지우면서 세월을 담아 흐르는 강처럼 고고하다.
“할머니 이거 지리산에서 난 것인가요?”
“아따 물어보면 잔소리제이. 딱 씹어보믄 대번에 알제. 야들야들 허고, 씹을수록 고소한 것이 지리산 산물잉게. 시방 오늘 아침에 금방 뜯어 온 것이여.”
할머니는 양을 묻지도 않고 이것저것을 비닐봉지에 쏟아 넣는다. 양도 푸짐하고 싸게 줄 테니 가격은 깍지도 말란다. 아내는 할머니가 내민 비닐봉지를 그대로 받고 나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할머니에게 전달한다. 이런 식으로 장을 보다 보니 이제 양팔이 무거울 정도로 많은 것을 사고 말았다. 구례 장에 오면 아내는 언제나 트렁크를 가득 채우고 만다.
아내는 우리가 한 때 살았던 수평리 혜경이 엄마한테 말린 김장고추도 스무 근이나 사더니 구례장 방앗간에서 빻았다. 매운 고춧가루 덕분에 재채기를 신나게 하고 방앗간을 나왔다. 고춧가루까지 빻아 넣고 나니 정말 트렁크가 가득 찼다. 트렁크는 가득 찼는데 배가 고프다.
먹거리 하면 뒤지지 않는 것이 구례장의 먹거리다. 이승기가 먹고 반했다는 ‘팥죽집’도 있고, 오뚜기식당 국밥과 순대국도 별미다. 오늘은 이수근이가 먹었다는 ‘수구레’ 국밥을 먹기로 했다. 늦은 점심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엄마손 팟죽과 순댓국은 이미 먹어 본지라 이름도 생소한 ‘수구레’ 국밥집으로 갔다. 국밥집 앞에는 나물 파는 할머니들이 도열해 있고, 최불암이 한국의 밥상에 소개한 집이라는 플래카드와 이수근이 1박2일에서 먹었던 국밥집이라는 문구가 눈에 팍 띤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땀을 흘리며 수구레 국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국밥까지 먹었으니 이제 구례를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구례5일장은 본 후 트렁크에 가득채운 짐을 보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구례장터를 나서는데 자동차 바퀴가 뻑적지근한 모양이다.
구례는 푸지다. 반야봉과 노고단의 정기가 휘돌아 구례 넓은 벌판에 내려앉고, 섬섬옥수 섬진강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구례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하고 포근하다. 그 펑퍼짐한 터에 열리는 구례5일장은 언제가 보아도 활기가 넘친다.
양껏 장을 본 사람들이 무거워진 장보따리를 안고 정거장에 널널하게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구례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사람들은 바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느리고 여유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례5일장에 가면 모두가 부자가 되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