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6:13-18,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
오늘 말씀은 고전을 마무리 짓는 종결부분입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마지막 권면과 문안인사 축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씩씩한 믿음의 기상이 있어야 합니다.
13절을 보면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바울은 우리 믿는 성도들을 향해 강건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 강건해야 할까요? 그것은 믿음생활하는 일에 있어 그 믿음을 뒤 흔드는 암초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암초는 바로 우리가 인식을 하고 있다고 해도 걸려 넘어지는 것들입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고 있는데 그일이 잘되지 않을 때 나는 역시 잘 안돼 라는 패배의식, 그래서 낙심하고 슬퍼하는 일, 그래서 괴로워하고 의욕이 상실되고 무력감에 빠지는 일, 뿐만 아니라 오해로 인한 피해의식, 그리고 억울해서 견딜수 없는 유혹에 넘어가는 것들입니다. 내가 믿음이 건강할 때 별것 아닌 듯 해도 막상 모진 기력이 소진되면 자신도 모르게 이런 암초들에게 길이 막히고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그는 전쟁에 나가서 이기고 또 열두명에 정탐군들 중에서 믿음의 보고를 한 용사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를 향해 여러 차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신31:6절“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여기서도 ‘강하고 담대하라’ 강조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믿음이 강한 천하를 호령하는 용사라도 넘어질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6:16절을 보면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했습니다. 믿음의 전진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남자다운 씩씩한 믿음으로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강한 ‘용장 밑에 약졸이 없다’했습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은 패함이 없는 분으로 무적의 군대 장관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약한 성도가 남자답게 강건한 믿음의 용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다음으로 사랑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14절“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3절에서 내면으로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있다면 외적으로도 당당한 힘을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랑을 언급하는 것은 모든 것의 그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3장에서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것처럼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덕목이고 열매라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잠10:12절“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또 롬13:8절“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높아지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5절“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여기서 스데바나는 고린도 교회에서 얻은 첫 번째 세례교인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식 세례명이며, 당시 교회의 관례에 따라 붙여진 세례명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면류관’ 또는 ‘왕관’으로 번역될 수있고, 동사로 번역하면 ‘화환으로 장식하다’가 됩니다.
이처럼 ‘스데바나’가 고린도 선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면류관’과 같은 그런 존재였다는 것은 그의 이름이 반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스데바나’는 ‘면류관’이라는 그 이름 하나 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겠지만 바울 사도는 ‘스데바나’를 15절에서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라고 칭찬합니다.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이것을 새 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친 가정입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지요? 어떻게 해야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배려와 섬김 그리고 희생과 자기 절제 곧 이타적인 마음이 몸에 배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첫째는 자기에게 새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둘째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즉 교회 공동체인 ‘성도들을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사도로서 기억하고 있는 아가야의 첫 열매 ‘스데바나’였습니다.
‘스데바나’는 참 매력적인 성도인데, 그에게는 섬김의 은사 외에 한 가지 은사가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도와 성도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은사입니다.
다시 16절을 보면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복종하라’ 이 말씀은 빌2:2,3절“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의 말씀으로 대비해서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17절“스테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야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나갈 때 부족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 나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의 약점을 들추어 내거나, 내 부족함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족함이란 무엇입니까? 서로 오랫동안 보지 못하므로 피차 그리워하고 여러가지로 부족감을 느끼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이 와서 그 모든 것을 일시에 보충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지극히 나약한 존재입니다. 혼자서는 약하지만 모든 성도가 주님의 일에 한 마음, 한 뜻을 품을 때 우리의 약함으로 주님을 시원케 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왜 마음이 답답함을 느낍니까? 무언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속에 부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짐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마음의 부담을, 그 짐을, 주님 앞에 다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마음은 가볍고 시원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16:18절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여기서 ‘시원케 하였다’는 말은 답답한 것이 풀어졌다는 것이고,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는 것이며 용기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도사역에 지쳐있던 바울에게 힘을 주었고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피곤할 때가 있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때로는 낙심할 때도, 포기하고 싶은 위기도 겪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붙들어 주는 손길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지칠 때 다른 사람이 알아봐 주고, 격려하며, 박수를 쳐 주면 새로운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귀한 일을 하는 사람을 알아봐 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잠17:9절을 보면“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화합하는자가 아니라 서로를 갈라놓게 하는 자들도 있는데 이러한 자들을 성경은 말하기를 잠6:16-19절에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라고 했습니다.
잠16:28절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이것의 시초는 에덴에서 하나님과 여자를 이간질했던 뱀인데 그뱀도 결국 상당한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이간질하는 영은 에덴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세속에서도 교회안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터키속담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중재 역할을 맡은 자는 사지가 갈기갈기 찢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 사이를 중재하고 화목하게 한다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예수님을 보면 이해가 빠를 듯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희생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엡2:16절“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화목의 직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고후5:20절“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애꿎은 사람을 억울케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약3:18절“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마치려 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공부하고 일하고 있을지라도
세상일에 분주하여 영적인 긴장을 잃어버리고 사는 자는 게으른 자요 잠에 빠진 자입니다.
영적 긴장감을 잃지 않은 자,
나에게 들려오는 저 소리가 참된 진리인지 아닌지 그 영의 상태를 분별하고,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항상 분별하며 사는 자, 그가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혼란의 때를 대비하여 영적으로 미리 준비하며 사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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