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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펌글입니다.
백금산 목사의 목회자의 책 읽기 혁명
머리말
leaders are readers. 지도자는 독서가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성숙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방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책읽기이다.
책 읽는 사람은 자신을 성숙시킬 수 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21세기 한국 교회의 영적 성숙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책 읽는 목회자, 책 읽는 성도들' 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렇게 평생 독서를 실천하면서 평생 성숙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독서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독서 노하우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면 영적 성숙에 도움이 되는 책읽기 방법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분명하게 밝혀질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소책자를 통해 어떤 독서법이 좀더 실제적으로 우리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토론의
광장에 함께 참여하면서 앞으로 더욱 풍성한 독서 지침들이 한국교회에 소개되기를 희망한다.
이 소책자는 필자가 앞으로 쓰고자 하는 평생 공부하는 목회자 시리즈 3부작 맛보기에 해당되는 입문서이다.
시리즈 1권은 신학 공부 방법론을, 2권은 평생 스승이 될 만한 인물 연구를, 3권은 평생 교과서가 될 만한 명저에 대한 안내를 다루게 될 것이다.
1장 평생 독서법의 노하우를 찾으라
들어가는 말
독서의 중요성
교회사 속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신학자, 설교자, 목회자치고 책벌레 혹은 독서광이 아닌 사람은 거의 없다.
존 칼빈을 비롯하여 조나단 에드워즈, 스펄젼, 로이드 존스 등이 훌륭한 예가 된다.
독서는 이들 영적 거인들이 영적으로 성숙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독서를 하지 않거나 게을리하는 사람이 성숙할 수는 없다.
부흥 시대 때는 목회자 뿐 아니라 성도들도 성경과 더불어 신앙 서적들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했다는 것은
교회사가 보여주고 있다.
신앙적으로 영적 거인들을 가장 많이 배출했던 17세기 영국 청교도들은 '그 책의 사람들' 혹은 '책들의 사람들'이라고 불리웠다.
독서에도 단계와 급수가 있다
20세기 세계 최대의 독서 이론가인 모티머 애들러의 주장에 의하면 독서에는 기본적으로 3단계가 있다고 한다.
1단계는 책을 빠른 시간에 훑어보고 책을 내용을 미리 파악하는 개관 독서법이다.
2단계는 책을 씹고 씹어서 완전히 내 것으로 철저히 소화하는 분석 독서법이다.
3단계는 같은 주제를 놓고 여러 권의 책을 종합 혹은 비교하면서 읽는 종합 독서법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는 신앙 성숙을 위한 독서 방식으로 특별히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독서 지침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1. 독서 지침 첫 번째: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어라
신앙적, 신학적 성숙을 위해 어떤 책을 읽느냐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신앙 성숙에 꼭 필요한 중요한 책은 완전히 소화되도록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 성숙을 위한 독서는 다독이 능사는 아니다.
많은 책을 적게 읽기보다는 적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여러 책을 대충대충 읽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이렇게 한 권 한 권 소화시킨 책이 일생에 열 권만 되어도 우리는 굳이 다른 책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중요한 책, 소위 말하는 내 인생의 책이 30권만 되어도 그 사람은 복된 인생을 살아갈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더 핑크 역시 필자와 같은 생각을 밝혔다.
"한 두명의 저자에게 보내는 시간을 다른 20-30명의 저자보다 50-60배 더 많이 하라"
또한 역대 목회자 가운데 최고의 독서가였던 찰스 하이든 스펄젼은 "철저하게 읽어라. 몸에 흠뻑 밸 때까지 그 안에서 찾아라. 읽고 또 읽어 되씹어서 소화해 버려라. 바로 여러분의 살이 되고 피가 되게 하라. 좋은 책은 여러 번 독파하고 주를 달고 분석해 놓아라."
실제로 스펄젼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생애 동안 무려 100번 이상 읽었고, 그의 설교에는 천로역정의 문장들이 묻어 나왔다.
독서지침 두 번째:
신앙과 신학에 도움이 되는 탁월한 사람을 발견하면 이런 방법으로 그 사람의 책을 전부 읽는 것이다.
제자는 스승과의 사상적인 교류를 통해 사상이 성장하고 발전한다.
그 스승보다 뛰어나지 못하다면 스승의 사상을 전수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 스승보다 뛰어나다면
스승의 사상을 넘어서 더 깊은 사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이 평생토록 체험하고 사고한 진수를 엑기스처럼 흡수하게 될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읽고 있는 저자의 수준에 가까이 따라가게 될 것이다.
신앙 성숙을 위한 독서 방식은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있어 스승이 제자에게 도제의 방식으로 자신의 사상과 기술을 통째로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어떤 영적 스승을 만날 것인가?
신앙의 스승을 잘 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스승의 그릇이 너무 작으면 그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각 분야에는 각기 최고의 달인들이 있다.
각 분야의 거장 밑에서 사사를 받는 것은 그 분야의 거장이 되는 거의 유일한 지름길이자 바른 길이다.
음악에 악성이 있고, 무술에는 고수가 있다. 바둑은 입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다.
교회사에도 각 시대마다 가끔씩 이러한 영적인 거인들이 나타났다. 바로 이러한 신앙의 거장들을 만나 그들을 시공간을 뛰어넘어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지혜로운 영적 거인족인 청교도 선배들
우리가 독서를 통해 평생 배울만한, 그래서 우리의 평생 스승으로 삼을 만한 영적 거인들은 누구인가?
아더 핑크는 후배에게 보내는 어느 편지 한 대목에서 영적 거인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존 오웬, 토마스 굿윈, 토머스 맨톤이 루터나 칼빈보다 2배 더 유익하다.
조나단 에드워즈, 존 오웬을 읽는 데는 2년이 걸린다.
그들의 책을 완독하기 전에는 다른 책에 손을 대지 말라
그가 소개하는 모든 이들은 청교도라 불리는 이들이다.
아더 핑크가 소개하는 청교도들을 만나보라. 영적 광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 영적 고수들이고 그들과의 만남은 후회하지 않게 할 것이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복음주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제임스 패커는 청교도를 40여년 가까이 연구한 다음에 청교도를 둘레가 20-30m요 높이가 거의 100m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인 레드우드 삼나무가 밀집해 있는 레드우드 공원에 비유한 적이 있다. 한 마디로 20세기의 영적 난쟁이 족속인 우리의 모습에 비해 청교도를 지혜로운 영적 거인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교회사의 영적 스승 6인을 말한다
필자는 17세기 청교도와 더불어 다음과 같은 영적 스승들을 소개하고 싶다.
그들은 경건한 삶과 신학이 결합된 인물들이다
당대와 후대의 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 여섯 사람의 저서를 모두 읽고 소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들은 바로 어거스틴 (5세기), 존 칼빈 (16세기), 존 오웬 (17세기), 조나단 에드워즈 (18세기), 스펄젼 (19세기), 로이드 존스 (20세기) 이다.
*백금산 목사는 장로교 목사이며 철저한 칼빈주의자이다. 필자는 호기심과 지적 욕구 때문에 열린 교회(김남준 목사)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그의 강의를 듣기도 했고, 책을 통해서 그를 만나기도 하였다. 그의 신학의 방향은 칼빈주의고, 그래서 당연히 무천년주의를 주장한다. 부흥과 개혁사 대표이기도 하고 예수 가족교회의 담임 목사이기도 하다. 아마 꽤 신선한 소장파 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대주의 신학을 추구하고, 전천년 휴거를 믿는 나와는 신학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면도 많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가 소개하는 신앙 위인 6명도 칼빈주의를 형성한 인물이거나 칼빈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로 빼곡이 채워져 있다. 태클을 걸자면 나는 어거스틴의 정체성을 의심한다. 칼빈의 공을 인정하지만 그가 제네바에서 추구했던 교회관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국가 교회를 추구했고, 구약의 신정국가 같은 형태의 종교와 정치가 일치된 그러한 체제를 지향했다. 물론 존 오웬, 조나단 에드워즈, 스펄젼, 그리고 로이드 존스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학의 경향을 비판 없이 그대로 흡수하는 것에 대해서는 필자는 반대한다.
배울 것은 배우되 급류에 휩쓸려 가듯이 이들의 사상과 주장에 흡수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균형감각을 위해 필자는 이들 외에
클라렌스 라킨, 피터 럭크만(그의 과격함은 배우지 않았음 좋겠다), 데이비드 웰스, 프란시스 쉐퍼, 앤드류 머레이, 워치만 니, 메킨토시, 제씨 펜 루이스, 로버트 앤더슨, 존 넬스 다비, 존 맥아더, 윌리암 맥도널드, 메튜 헨리, 아더 핑크, 에릭 사우어, 데이브 헌트, 엠알 디한 등을 추가하고 싶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필자가 백금산 목사를 좋아하고 그의 글을 즐겨 읽지만 그래도 내 눈에 비친 그는 장로교란 우물 안을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것은 필자가 김남준 목사나, 유기성 목사, 이찬수 목사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한계 또한 분명히 인식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부르신 것은 사람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의 한계에 갇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위대한 이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세상을 보지만 내 눈을 빼어버리고 그들의 눈으로만 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비판적 독서가 필요하다고나 할까 사족이 길었다.
20세기가 주목해야 할 복음주의 지도자들
교회사에 나타난 영적 거인들을 당장 접하기가 어렵다면 20세기의 훌륭한 복음주의적 영적 지도자들을 한 사람씩 마스터하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로이드 존스,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 등이 있다.
또한 약간의 독특한 신앙적인 색깔이 있어서 보편적으로 모든 목회자가 공감하지는 않지만 신앙적인 사고를 함에 있어 여러 귀한 통찰력을 주는 사람으로서는
C.S 루이스, 자끄 엘룰, A.W 토져, 워치만 니도 있다. *자끄 엘룰은 필자도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 번씩 내게 부담스러운 책, 자극을 주는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최근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와 <호모 데우스> 란 책을 읽었다. 물론 나는 진화론을 당연히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책을 통해 지적인 불신자의 생각과 시대의 경향을 엿볼 수 있었다. 덤으로 아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러한 책들은 태권도를 하는 사람이 유연하게 발차기를 하기 위해서 순간 고통을 감수하고 다리찢기를 하는 것처럼 고정된 생각을 깨뜨려 주며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3. 독서 지침 3: 독서의 균형을 맞추라
책의 종류에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읽은 책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필자는 남의 집에 처음 방문할 때 그의 서재를 구경하는 것을 즐겨한다. 한국 사람처럼 남의 책을 마음대로 뽑아보지는 않지만 눈으로 책들을 훓어본다.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읽었는가 하는 것은 지금 이 사람의 뇌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좋은 방법이다. 기소선 목회자들은 월간 기쁜소식과 나끌너 같은 것이 꽂혀 있어 그들 두뇌의 황량함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동굴에서 벽화 그리다가 숲속에서수렵채집하다 막 나온 따끈따근한, 거의 유인원 수준의 사람들이다.
경건 독서와 신학 독서의 균형
신학 서적만을 읽는 사람들은 머리는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가슴은 자꾸만 식어지게 된다.
반대로 신학서적은 읽지 않고 경건 서적만 읽는 사람은 가슴은 쉽게 뜨거워질 수 있지만 그 열정은 곧 식어버리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되기 싶다.
그래서 균형, 밸런스가 필요하다.
독서의 균형을 통해 영성과 지성의 균형을 끊임없이 유지했던 인물로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마틴 로이드 존스를 들 수 있다.
에드워즈는 하루나 혹은 반나절 동안 신학 공부를 하면 그 다음 하루나 반나절 동안은 다른 공부를 하는 원칙을 세워서 실천해 나갔다. 로이드 존스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즐겨 읽었고 신앙의 멘토로 삼았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도 에드워즈를 읽어라고 권하는 전도사의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독서의 균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균형있는 독서를 하십시오. 균형이 깨진 독서처럼 거짓된 지식을 낳는 것도 없습니다. 만일 신학 서적만 읽는다면 이러한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균형있는 식사를 하듯이 독서에서도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라고 물을 것입니다. 제가 겸손하게 말하자면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신학 서적과 전기 읽는 것을 병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휴일 아침에는 신학 서적을 읽고 밤에는 전기를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고전 읽기와 신간 읽기의 균형
독서의 균형에는 신학 서적과 경건 서적 읽기의 균형 뿐 아니라 고전과 신간 독서 간의 균형도 필요하다.
C.S 루이스는 신간 3권에 고전 1권 정도로 균형을 잡아 읽을 것을 권고했다. *온고이지신이란 말도 있다. 고전이란 세월의 파괴력을 견디고 살아 남은 책들이다. 베스트셀러라고 불리며 잠시 화려하게 빛났다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책들과 차이를 가진다. 하지만 분야에 따라서 고전 안에 담겨 있는 정보나 지식이 시대가 지나면서 낡은 지식, 유효기간이 지나간 버린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으로는 훌륭한 고전 한 권 속에는 어마어마한 광맥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책 한권을 꼭꼭 씹어 소화했을 때 유행타는 책 100권을 읽은 것 이상의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잡다하게 여러 권의 별 영양가 없는 책을 읽어 나의 다섯 수레에 실릴 책의 가짓 수를 늘리기보다 한권의 위대한 책을 재독하는 것이 훨씬 유익을 주기도 한다.
베스트셀러란 말 그대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란 뜻이다. 상업주의에 물든 출판사의 광고에 현혹되어 지갑을 열지 말고 *그런 책을 읽는다고 정말 읽어야 할 책을 읽을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읽을 수 있는 책도 한정되어 있다. 다독가의 기준으로 일주에 열권의 책을 읽어 1년에 500권을 읽는다고 가정할 때 필자의 경우 앞으로 죽기 전까지 30년을 읽을 수 있다고 할 때 기껏(?) 앞으로 15000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다. 매달 쏟아지는 그 많은 신간들을 다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대부분의 책들은 그럴 가치도 없다. 우리에게는 경제적, 시간적 한계가 있기에 아무 책이나 읽어서도 안 되고 균형을 잃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필자가 말하고 추가하고 싶은 독서의 균형은 신학 서적, 경건 서적 읽기의 균형 뿐 아니라 이러한 책들과 일반 서적 이를테면 인문학 서적을 읽는 것도 균형이 필요하다.
필자가 아는 요즘 제법 잘 알려진 목사는 철저한 칼빈주의자, 개혁주의자이다.
그는 교회에서도 심지어 시편 찬송만을 불러야 한다고 말하는 정도이다.
누군가가 이 목사에게 인문학 서적을 읽는 것에 대해 질문했을 때 이 목사는 아주 단호하게 확신있게 대답했다.
그런 것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신학서적 , 경건 서적 읽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그리스도인이 왜 그딴 책을 읽느냐는 식이었다.
나는 이 목사에게서 -그가 이렇게 말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결여, 결핍을 발견했다.
마그네슘이 몸에서 부족하면 한 번씩 눈썹이 바르르 떨리는 것처럼 일종의 영양소 결핍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문사철이라고 불리는 책들 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책들을 골고루 읽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람들이 주님 앞에 와서 빌라도가 제물에 피를 섞은 일에 대해서 말을 했을 때 주님은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했기 때문에 그들이 모든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라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멸망하리라고 하시고, 또 너희는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깔려 죽은 열여덟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들보다 더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아니라고 하시었다.
필자는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 드는 생각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신문을 읽으시고 뉴스를 청취하셨구나."
신문의 칼럼이나 오피니언, 사설란을 읽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백면서생처럼 현실과 유리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그 당시 기득권자의 횡포와 잘못된 사회구조를 잘 이해하고 계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골방에 들어가서 성경읽고 기도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언급한 이런 목사와 같은 생각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과유불급이라 하여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도 지나치면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은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그들의 고민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소설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도 마찬가지다.
설교자가 죄와 벌과 같은 소설을 깊이 이해하여 그것을 설교에 적용하여 인간 심리를 밝힐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악하다는 성경의 명제는 단순하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진리를 표피적으로 아는 사람은 좋은 설교자로 듣는 이에게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카프카의 변신을 목회자가 읽고, 카프카가 그의 짧은 소설 속에 형성된 인간관계를 사실주의의 관점에서 그려나가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 때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 폭넑게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배따라기를 읽으며 후회라고 하는 인간 감정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다.
배따라기를 읽은 적도 없고 로마서만 읽는다면, 갈라디아서만 읽는다면 그래서 대동강에 울려퍼지는 배따리기의 구설픈 가락이 영혼에 들려 공명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의 독서는 균형을 잃은 것이다고 필자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아까의 예의 그 목사에게는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혹시라도 주어진다면 이런 책 읽기가 어려우면 아침마당이라도 좀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인간이란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측은지심이 있을 수 없고 -주님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는 백성을 보시면 민망히 여기셨다는 말을 맹자식으로 표현하자면 측은지심이 되겠다-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울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일본 작가가 편의점 인간에서 묘사한 감정이 거세된 비정상적인 인간에 불과하다. 인간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상처를 보듬어 줄 수도 없는 법이다.
독서 지침 4 : 주제별로 읽어라
특정 주제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을 때는 여러 저자들을 비교 및 검토하면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주제별로 공부하고 싶을 때는 최대한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다 구해 읽어야 한다.
가령 로마서를 공부하거나 강해하려고 한다면 로마서에 대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다.
맺음말: 평생 독서의 스케줄을 만들자
평생토록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평생 죽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아서는 안 된다.
평생 독서는 평생 성숙을 위한 밑거름이다.
특히 목회자들은 신학교의 문을 나서는 때부터 신앙 성숙과 목회를 위한 독서를 체계적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그래서 평생 성숙을 위한 독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독서 계획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들어가면 좋을 것이다.
첫째, 기본적 신학독서 계획표, 둘째, 영적 거인 독서 계획표 셋째, 평생 고전(경건 필독서, 신학 필독서) 독서 계획표, 넷째, 강해하고 싶은 성경의 주석서와 강해서 및 연구서 독서 계획표, 다섯째, 강해하고 싶은 성경의 주제별 독서 계획표이다.
체계적인 독서가 성숙의 밑바탕이 된다.
필자는 21세기 한국 교회의 수준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독서 수준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 성도의 수준은 목회자의 수준에 달려 있다. 또 목회자의 수준의 목회자의 책읽는 수준에 달려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을 사람을 만든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