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 시가 있는 시론 102 김근태 의원 8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여하고
김근태 의원 8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여하고 나니 생각하는 일들이 나에 가슴을 번개처럼 울리고 지나간다. 세월이라는 말이 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했다. 김근태 의원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고문에 자신의 의지를 이겨낸 철인 자 같은 모습으로 국가권력에 보여준 의지였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인권을 무참하게 파괴한 문제를 이겨내고 국민 앞에 폭로를 했던 의원이었다.
2019년 12월 28일에는 김근태 의원 열반에 8주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민주주의자 김근태 상 시상식에 참여해 많은 지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김근태 의원의 역사성을 고찰한다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했던 지도자였는데 그리도 쉽게 세상을 떠나간 것에 대하여 정치적 위인이라는 명성을 그리 쉽게 잊어버리고 있다.
나는 김근태 의원을 생각하면 전국연합에 인권 위원장으로 있을 시기에 김근태 의원이 감옥에 갔을 시기에 변호사 30여명을 선임하여 법적 대응을 하였던 일도 생각하면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인권운동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알고 있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섭섭하다. 인권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대응을 해 주었지만 그래도 대하는 이들이 찬바람이 부는 모습이었다.
1985년, 그 ‘구속의 삶’에 더 큰 비극이 닥친다. 김근태는 남영동에 끌려가 생사를 넘나드는 고문을 당하고 몸은 모조리 망가져버린다. 하지만 청년기 후로 쭉 품어온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은 더 커진다. 또 잠시, 1986년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에 걸려 2년 10개월간 수감된다. 출옥 후 다시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을 창설에 참여하며 민주화 운동의 선봉 자리로 돌아오지만, 다음해 또 2년간의 구속이 그를 기다린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 글 참조
김근태 의원과 함께 살았던 시대에 우리가기대할 수 있는 것은 미래를 향해 정진하는 지도자의 길이었다. 지도자는 바로 민주주의를 근본으로 삼아 정치에 있어서 자주적인 정치에 전승을 예언한 지도자로 여기고 있었는데 그 몸이 정치를 전승하는데 단절되었다. 그는 정치에 있어서 김영삼으로부터 이어지는 정치에서 김대중 정치로 이어지는 지도자였다.
그러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젊은 나에게 세상을 떠나는 것은 민족사에 가장 기대를 했던 율곡의 정치력을 바르게 전승하지 못하고 인생의 마지막 종결이었다는 것은 바로 율곡의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임진왜란을 맞이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율곡의 정치력을 발휘했다고 하면 그러한 국가의 위기를 맏이하지 않을 것인데 국가의 위기는 바로 대응을 하지 못한 요인이기도 하다.
김근태 의원이 정치적으로 율곡의 정신을 이어갔다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정치에 있어서 대를 이어 갔을 것인데 정치에 있어서 바르게 이어가지 못했던 것은 청년 조직을 바르게 세우지 못했다. 청년의 힘이 미약했던 것은 교육이 잘못이다. 청년에 대하여 민족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했다.
김근태 의원은 인권의 화신이여
김근태 의원은 인권의 화신인데
인권에 대하여 아무 말도 없다
인권이여 생명이여
우리에게 희망을 준
위대한 영웅이여
참으로 소중한 역사를
인권의 역사를 바르게
성찰하는 시간을
나에게 주고 있었지
우리의 영웅이었던 김근태 동지여
내일에 오는 정치의 미래를 위해
오늘이 중요한 길이다
정치의 길을 걷고자 하는 마음은
바람이 되어 그리움이 되어
오늘을 기다려 보리
내 삶의 뒤안길에 바람이 불어
파도치는 물결에 잠을 청하는 날
세상은 나를 향해 던지는 파도
마음에 꽃을 피우는 새
김근태 의원은 새
날개 잃은 새
2019년 12월28
진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