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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회 1역대기 1장-29장
<역대기 입문>
역대기 상/하 두 책에는 히브리말 성경에서 ‘나날의 말씀(행적)들’, 곧 ‘나날의 행적을 기록한 역사책’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예로니모 성인은 이 책을 ‘하느님의 역사 전체의 연대기’로 부르기를 제안하였다. 이렇게 볼 때, 우리말 이름 “역대기”는 예로니모 성인이 제안한 제목을 간단하게 줄인 것이라 하겠다. 칠십인역에 따라 교회의 전통 안에 오랫동안 자리잡아 온 이름은 “파랄리포메논”인데, ‘옆에 놓아 둔 것, 곁들여 전해진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이 책의 내용이 사무엘서와 열왕기의 보충으로 여겨진 데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역대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여러 가지 보충 자료와 더불어 신명기계 문헌의 기록과는 다른 역사 신학적 전망 안에서, 많은 부분 사무엘서와 열왕기의 내용을 옮겨 놓은 것임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역대기 상/하는 본디 에즈라-느헤미야서처럼 하나의 통일된 책이다. 따라서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 역대기를 상권과 하권으로 구분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나아가 역대기 마지막 몇 구절과(2역대 36,22-23) 에즈라서의 처음 몇 구절은(에즈 1,1-3) 그 본문이 서로 겹친다는 점을 감안하여, 역대기-에즈라-느헤미야서를 하나로 묶어 생각할 수도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히브리 말 성경의 경전 안에서 이 책들의 순서가 바뀌었다. 곧 내용으로 보아서는 역대기가 에즈라-느헤미야서보다 앞서야 하는데도, 편집 순서에서는 에즈라-느헤미야서보다 나중이다. 역대기가 유다교 경전 안으로 에즈라-느헤미야서보다 늦게 받아들여진 이유는, 역대기의 내용이 사무엘서와 열왕기를 되풀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번역본들과 주요 현대 번역본들은 이 책들의 내용에 바탕을 둔 논리적 순서에 따라 역대기를 에즈라-느헤미야 앞에 둔다. 우리말 번역에서도 이 순서를 지키기로 한다.
1. 역대기의 구조
역대기는 인간의 창조에서 시작하여, 바빌론 유배 이후 기원전 5세기까지 이어지는 대(大)역사를 다룬다. 성경의 역사 문헌 가운데에서 역대기만큼 오랜 기간의 역사를 다룬 책은 없다. 신명기에서 열왕기에 이르는, 이른바 신명기계 역사 문헌도 가나안 정복부터 바빌론 유배까지만을 다룰 뿐이어서, 아담부터 키루스의 해방령까지 이어지는 역대기의 역사 범위에는 훨씬 못 미친다.
역대기 역사의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뉜다.
1) 1역대 1-9: 아담부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거쳐 다윗에 이르는 조상들의 족보. 그러나 어떤 족보 목록에는 다윗 이후 시대의 인물들도 나온다.
2) 1역대 10-29: 다윗의 통치. 사울의 죽음부터 다윗의 죽음까지 다룬다.
3) 2역대 1-9: 솔로몬의 통치.
4) 2역대 10-36: 솔로몬의 죽음부터, 바빌론 유배와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직전에 이르는 유다 왕국의 역사. 유배 이후 유다인들의 귀향과 유다교의 복구에 관한 이야기는 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에 이어진다.
2. 저자와 집필 연대
보통 역대기 상 하와 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저자, 곧 ‘역대기 저자’ 또는 ‘역대기 편집자’의 작품으로 본다. 이 책들을 여러 저자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에는 아무도 동조하지 않는다. 이 책들 여기저기에서 서로 일치하지 않는 내용들이 눈에 띄는데, 이는 저자가 입수한 다양한 문헌들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에 따라 생겨난 결과이다.
역대기 문헌들의 최종 편집 시기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건들로 결정된다.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활동은 실제로 기원전 5세기까지, 아마도 기원전 4세기 말까지 계속되다가 끝났을 것이다(에즈라 느헤미야 입문 참조). 따라서 이 문헌들의 편집 시기를 기원전 4세기 중엽, 곧 기원전 350-330년 이전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
또한 이 편집 시기를 후기 유다교 시대, 곧 기원전 2세기 마카베오 형제들이 박해를 받고 전투를 벌이던 시대까지 끌어내려서도 안 될 것 같다. 집회 47,8-10은(기원전 190년경) 다윗에 관한 역대기의 묘사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시련의 시대를 맞기 이전, 가장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기에 이 책들이 쓰여졌을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역대기 문헌들의 편집 시기는 기원전 330-250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어떻든 역대기 저자의 책들 안에는 정확한 편집 시기를 결정할 만한 분명한 단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정도의 집필 연대 제시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3. 집필과 편집 방법
역대기 저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의 작품이 정확하게 언제 완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더라도, 그가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편집하고 집필하였는지, 그 작업 방법에 관해서는 좀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구약성경 가운데에서 역대기는 그 집필 과정과 방법을 스스로 분명히 드러내 준 유일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역대기 저자는 겨레의 옛 역사에 대한 자기 나름의 지식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엮어 나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문헌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옮겨 적었다. 물론 때때로 책의 목적에 맞추어 인용문의 순서를 정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다른 문헌들이나 자신의 역사 개념에 따라 일부 내용을 수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대에서는 보기 드물게, 역대기 저자는 자기가 입수한 사료를 인용하는 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입수한 사료가 비록 불완전하고 때로는 불분명하더라도, 가능한 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려고 최대한 노력하였다.
역대기 저자가 역대기를 쓰기 위하여 이용하였다고 밝힌 사료들은 아래와 같다.
- 유다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2역대 16,11)
- 이스라엘과 유다 임금들의 실록(2역대 27,7)
-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1역대 9,1)
- 이스라엘 임금들의 역사(2역대 33,18)
- 열왕기 주석(2역대 24,27)
- 다윗 임금의 실록(1역대 27,24)
- 사무엘 선견자의 실록(1역대 29,29), 나단 예언자의 실록(1역대 29,29), 가드 환시가의 실록(1역대 29,29), 스마야 예언자와 이또 선견자의 실록(2역대 12,15),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실록(2역대 20,34), 환시가들의 실록(2역대 33,19)
- 실로의 아히야가 한 예언(2역대 9,29)
- 이또 선견자의 환시(2역대 9,29), 아모쓰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의 환시(2역대 32,32)
- 이또 예언자의 주석(2역대 13,22)
-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쓴 기록(2역대 26,22)
이상의 문헌들 가운데 상당수는 서로 제목만 약간 다를 뿐 같은 문헌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두고 주석가들이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지만, 대체로 역대기 저자가 적어도 세 종류의 문헌을 이용하였음에는 동의한다. 먼저, 그가 가끔 이야기 전체를 그대로 옮겨 놓은 사무엘서와 열왕기를 꼽을 수 있다. 그 다음, 그가 위 책들의 내용을 보충하는 데에 이용하였을 다른 역사 문헌들(‘왕조 실록의 주석’ 같은 문헌)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문헌들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예언 전승들을 포함한 문헌들을 꼽을 수 있겠는데, 역대기 저자는 이 문헌들에 관하여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이 예언 전승들은 사무엘서/열왕기(사무엘에 관한 전승)나 구약의 예언서들(이사야서), 아니면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다른 사료들에 바탕을 둔 것일 수 있다.
역대기의 이야기 전체를 구성하는 이 모든 자료에, 저자가 그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이용한 다른 자료들도 덧붙여야 한다. 그 자료들은 저자가 익히 알고 있고, 또 자주 참조한 구약성경 다른 책들의 본문들이다. 역대기의 족보들은 대부분 창세기와 탈출기와 민수기와 여호수아기, 그리고 룻기에 나오는 족보들과 같은 성격을 띤다. 역대기의 어떤 장들은 시편의 전례 본문을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시편 96; 105; 106이 역대기 상권에 인용된다).
우리는 역대기가 옛 문헌들을 단순히 모아 놓은 기록이 아니며, 어떤 부분은 이 책이 다 완성된 다음에 후대의 자료들이 덧붙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분명히 이 작품에서는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공헌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역대기가 구약성경에서 유일하게 그 집필 과정과 편집 방법을 자세히 분석할 수 있는 책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책의 편집 방법은 무엇인가? 이 작품의 세세한 내용에 들어가지 않고 사무엘서/열왕기와 역대기를 대충 비교만 해 보아도, 역대기 저자가 자기 책을 집필할 때에 따랐던 몇 가지 원칙적인 지침을 알아 낼 수 있다. 첫째, 저자는 생략법을 이용한다. 그는 자기가 입수한 사료에서 자신의 집필 의도에 따라 쓰고 싶은 이야기만 골랐다. 저자가 볼 때에 다윗의 통치와 그 왕조에 관한 역사는 하느님 백성과 그 운명에 관한 참된 역사였다. 따라서 왕국의 분열 다음에 이어지는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는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는 북왕국의 역사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유다 왕국과 그 수도 예루살렘에 관한 역사만 다루었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영광을 들어높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불리한 사건들이나 사실들도 한쪽에 제쳐놓았다. 예를 들면 다윗의 간통, 압살롬의 반역, 솔로몬 통치 말년의 사치와 우상 숭배 등은 역대기에서 생략되었다. 이 밖에 바빌론 유배 시절에 관한 역사가 역대기에서 통째로 빠진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역대기에는 바빌론 유배부터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재건까지 한 세기가 넘는 긴 기간을 두고 한 마디 언급도 없다.
둘째, 역대기 저자는 입수한 자료들을 다루면서 ‘적용’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는 이야기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들을 자기의 개인적 체험과 자기 시대의 상황에 비추어 묘사한다. 그것은 그가 정확한 연대에 관심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역대기 저자는 언제나, 임금들과 백성에게 재앙이 닥치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반대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복은 사람들이 성전과 예배에 관련된 모든 일에 열성을 가지고 충실하게 임한 결과로 여겼다. 저자가 왜 때때로 연대의 순서를 바꾸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도 역사적인 이유보다는 신학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역대기 저서들을 ‘경향 문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역사 신학’을 제시하고자 하였던 저자에게 일종의 모독이며 부당한 평가이다. ‘역사 신학’은 객관적이고 완전한 역사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역대기 저자의 저서들은 단순한 역사가의 작품이 아니라, 신앙인과 신학자의 작품이다. 그는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항구한 위업에 관한 증언과, 하느님 나라의 현실적(아직은 불완전하지만) 표상에 관한 증언을 발견한다.
역대기 저자가 사용한 또 다른 집필 방법은 ‘보충’이다. 저자는 자기의 주요 사료인 사무엘서와 열왕기에 나오는 자료들을 보충하고자 하였다. 그는 다른 문헌들과 기록이나 구전 전승들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 역사에 관하여 성경의 다른 책들에는 없는 내용을 상세하게 전한다. 그래서 역대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하는 데에 상당히 유익하고 정확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역대기에서 어떤 대목들은 저자의 개인적 반성이나 사물에 대한 저자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수많은 세부 사항이 모두 저자의 창조적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들은 후대에 알려지지 않은 사료들에서 저자가 발견한 내용일 수도 있다.
한편, 우리는 역대기와 사무엘서/열왕기의 병행 대목들을 비교함으로써 역대기 저자가 자신이 입수한 사료들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도 알 수 있다. 역대기에는 신학적 또는 문학적으로 재편집한 요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지만, 병행 대목들에서 나타나는 세부적인 변형들은 십중팔구 우연히 일어난 것이다. 역대기 저자는 사무엘서/열왕기의 히브리 말 본문을 우리가 사용하는 본문보다는 더 오래된 형태로(이를 ‘원 본문’이라 부르겠다) 알고 있었고, 사무엘서/열왕기와 역대기는 그 나름대로 필경사들의 피할 수 없는 잘못을 거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이 책들의 본문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 성경의 다른 책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필사 과정의 오류들을 매우 정확하게 가려 낼 수 있다. 동시에 이런 비교 분석을 통하여 역대기 저자가 얼마나 충실하게 자기 사료들을 옮겨 적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단순히 사료들을 옮겨 적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때로는 입수된 사료들을 솜씨 있게 삭제 정리하고 때로는 다른 보충 사료들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이야기 전체를 조화 있게 엮어 나갔다.
한 마디로 역대기 저자의 집필 방법은 그의 역사 개념과 신학 사상에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에 대해 좀더 상세히 살펴보자.
4. 역대기 저자의 신학
역대기의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역대기 신학 전체를 다 파악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책의 중요한 몇 가지 신학적 관점을 간추려서 강조할 수는 있다.
첫째, 역대기 저자는 다윗 왕국의 역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 자기 책의 중심에 놓았다. 다윗 시대 이전의 모든 역사는 아담까지 올라가는 족보로 처리하였다(1역대 1-9). 그 다음, 사울에서 다윗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10장에만 짧게 나온다. 사울의 죽음도 다루는 이 10장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왕국을 선호하시어 사울의 왕국을 배척하셨다. 역대기 상권의 나머지 부분 전체는(11-29장) 다윗 왕국의 역사를 다룬다. 이 대목을 사무엘서와 열왕기의 병행 대목과 비교해 보면, 적지 않은 차이점들이 발견된다. 역대기에는,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변덕스러운 통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반면, 다윗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그리고 다윗이 사울과의 갈등으로 쫓겨다니던 몇 해 동안의 유랑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빠져 있다. 게다가 다윗의 궁정에서 일어난 잘 알려진 사건들, 곧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와 정을 통하고 저지른 좋지 않은 일들,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왕위 계승 분쟁, 압살롬의 반란 등은 역대기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모든 사건은 2사무 9 - 23장에 간략하지만 생동감 있는 문체로 소개되는데, 고대 근동의 궁중 생활을 엿보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역대기 저자는 다윗 임금을 매우 인간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인물로 그린다. 다윗은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임금으로서, 언제나 다윗 왕조의 시조로 남을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성도로 만드는 데에, 그리고 성전 건축과 그 곳에서 거행될 전례를 세세히 기획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들은 모세 오경의 사제계 전승 안에 그려진 모세의 모습과 역대기에 그려진 다윗의 모습이 닮았다고 주장한다. 사실 두 인물은 비록 그들이 살던 시대는 다르다 하더라도, 둘 다 백성의 수장이요 하느님의 위임을 받은 입법자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다윗의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솔로몬 임금도 다윗처럼 이상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역대기 저자는 그의 인물 됨됨이를 손상시킬 만한 사건은 하나도 기록에 남기지 않았다. 곧 그의 통치 초기에 경쟁자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한 사건들, 그리고 말년에 궁중을 어지럽혔던 사치와 우상 숭배와 방탕한 생활에 관해서는 역대기에 전혀 언급이 없다. 솔로몬은 부왕 다윗의 지시와 세세한 계획에 따라 성전을 지어 낸 임금이다. 역대기 저자는 열왕기 저자보다 훨씬 더 장엄하고 풍부하게 성전 봉헌을 묘사한다.
성전과 전례는 역대기 저자의 주요 관심사이다. 그래서 이 책의 첫 번째 목적이 예루살렘 성도와 성전, 그리고 그 곳에서 거행되는 전례의 역사를 정확하게 제시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책의 시작에 나오는 족보들을 보면,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족보가 다른 지파들의 족보보다 더 장황하다. 이 두 지파가 다윗의 가문과 예루살렘 지역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후계자들의 역사는 성전에 집중되고, 성전의 재건이나 전례의 개혁에 우선 순위를 두는 임금들을 가장 중요하게 다룬다. 아사와(2역대 14-16) 여호사밧(2역대 17-20), 특히 히즈키야와(2역대 29-32) 요시야가(2역대 34-35) 그런 임금들이었다. 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를 보면 유배가 끝난 다음에도 같은 관심사가 드러난다. 유배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성전의 폐허 위에 제단을 다시 세우고(에즈 3) 성전을 다시 지었으며(에즈 4-6), 성도 예루살렘을 재건하고(느헤 1-4) 전례를 복구하였다(느헤 8-9).
이와 관련하여 역대기 저자는 레위 지파에서 전례를 주관하는 이들을 특별히 선호한다. 이들은 아론 가문(역대기에서는 아론 가문도 레위 지파에 속함) 출신의 사제들이거나 다른 가문 출신의 레위인들이다. 모세 오경 전체는 사제들에 관하여 27번 언급하는 데 반하여, 에즈라-느헤미야서는 53번, 역대기는 무려 76번이나 언급한다. 레위 1,5와 민수 10,8의 전통을 받아들여, 역대기 저자도 나팔을 부는 임무와(1역대 15,24; 2역대 13,12) 제단에 희생제물의 피를 뿌리는 임무는(2역대 30,16) 사제에게 맡겨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단순한 하급 직원이 아니다. 그들은 계약 궤를 옮기는 이들이요 성전을 지키고 보호하는 문지기들이며, 성가와 악기 연주를 담당하는 이들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사제들을 도와 제사를 준비하기도 한다(2역대 29,34; 30,16-17). 그러나 제사를 거행하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역대기가 소개하는 전례 예식들에는 기쁨과 찬미와 감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역대기 저자 자신이 레위인들과 연관이 있거나, 아니면 레위인들의 평가절하된 직능을 재확립하려고 전례를 높이 끌어올린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다른 흥미로운 가설은 역대기 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과 그 곳에서 거행되는 예배의 유일한 합법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 그리고 저자 자신의 시대에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에서 다른 성소들을 세우고 다른 예식들을 거행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특별히 사마리아인들처럼, 분열을(이 분열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처음 일으킨 사람들에 대한 논쟁의 성격을 띤다. 이와 관련하여 역대기 저자가 솔로몬의 죽음에 이어진 왕국의 분열 다음부터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에 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가능하다. 역대기 저자의 견해로는 다윗 왕조로 유지되는 유다 왕국만이 합법적이다.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는 북왕국의 통치자들은 하느님의 참된 백성을 대표할 수 없는 분리주의자들이다. 그들의 수도 사마리아와 그들의 전례 예식들은 바알 숭배로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에즈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일어난 그 땅의 백성과 유다 백성 사이의 갈등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그 땅의 백성은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지만, 참 하느님 백성인 유배자들의 후손들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에즈 4; 느헤 2,19-20; 4; 6).
역대기의 특이한 관점들과 신학관은 ‘신정(神政)’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일종의 종합적 개념이라 하겠다. 저자에게 하느님 백성의 역사란 곧 유다 공동체 안에서 펼쳐지는 신정 왕국의 이상적 표상과 같다. 이 신정 왕국은 하느님께서 세우셨고, 그 머리에는 다윗이 자리를 잡았다. 실제로 하느님만이 참 임금이시고 다윗은 그분의 왕좌 위에 앉아 그분을 대리할 따름이다. 흘러간 역사의 현실들을 재조명함으로써 역대기 저자는 하느님의 왕국을 그 시대에 맞추어 재현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성도 예루살렘의 유일한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전례는, 하느님의 백성이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임금이신 하느님께 충성과 기쁨과 찬양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일은 그분의 백성이 매일의 삶 안에서 지켜야 할 첫 번째 의무였다.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지속적인 관계는 철저한 상선벌악의 개념에 바탕을 둔다.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모든 충성, 특히 예루살렘 왕좌에 앉은 임금들의 충성은 당연히 그분의 복을 불러들이는 데에 반하여, 모든 잘못과 불순종, 특히 성전이나 전례와 관련된 잘못은 하느님의 징벌을 끌어들인다.
상선벌악 개념의 철저한 적용은 다윗을 계승하는 임금들의 긴 역사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열왕기에는 백성의 행복과 불행에 원인을 제공하는 동기들에 관하여 아무런 언급도 없는 데 반하여, 역대기 저자는 하느님의 상선벌악의 논리에 바탕을 둔 정의의 개념에 따라 모든 사건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을 제시하려고 애쓴다. 므나쎄는 온갖 죄악을 저질렀지만 긴 세월 동안 나라를 통치하는 복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우상들을 치우고 성전을 정화시켰기 때문이다(2역대 33). 반면에 요시야는 그토록 주님의 율법을 지키는 일에 충실하였음에도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았는데, 이는 그가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이집트 군사들이 지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무모하게 전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2역대 35).
묵시 문학은 다가올 하느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알리기 위하여 지상의 현실에서 표상을 끌어 내어 미래에 투사한다. 이와 반대로 역대기 저자의 작품은 현실 안에서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기 위하여 과거를 이상화한다. 저자는 유다인들에게 다윗 시대의 신정 왕국을 끊임없이 상기시킴으로써 전례는 어떻게 거행해야 하는지, 하느님의 율법에는 어떤 자세로 순종해야 하는지, 상선벌악에 바탕을 둔 그분의 정의는 어떻게 바라야 하는지 알려 준다.
이처럼 역대기 저자의 책들은 과거 지향의 신학 전망을 표명하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그 책들은 곧바로 메시아 희망의 기초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역대기 저자의 특별한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저자는 하느님과 그분의 율법과 그분에 대한 예배에 어떻게 충실해야 하는지, 그 지침을 마련하는 데에 온갖 노력을 기울인 듯하다.
1역대 1장-9장: 아담부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거쳐 다윗에 이르는 조상들의 족보. 그러나 어떤 족보 목록에는 다윗 이후 시대의 인물들도 나온다.
역대기 상권은 아담에서 다윗까지의 역사 전체를, 더 오래된 책들 곧 모세 오경과 역사서들에서 빌려 온 족보들로 요약한다. 역대기 저자는 다윗의 통치를 특별히 중요한 것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그래서 다윗 이전의 모든 역사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하고, 1-9장에 족보들을 소개하여 계속 이어지는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첫 번째 인명록은 아담에서 열두 지파의 조상 야곱까지 이어지는 계보를 상기시키고, 2장부터는 열두 지파의 족보들을 소개한다.
1-9장에 소개하고 있는 아담에서부터 시작하는 온 이스라엘의 족보는 역대기계 역사학파들의 의도가 들어 있는 장치이다. 곧, 인류의 기원을 다루면서 온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을 이미 계획하셨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리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암시한다. 또한 유다와 다윗의 족보를 제시함으로써 다윗 임금의 선택과 다윗 임금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우실 것임을 드러낸다.
1역대 1,1-24 아담에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족보
우리는 먼저 1역대기 1장 1절인 “아담, 셋, 에노스”(1)이라는 뜻을 이해해야 한다.
아담 - 아담(Adam)은 '흙'이란 뜻의 히브리어 '아다마'와 동일한 어원을 가진 이름으로서 그 의미는 '사람'이다(창 1,27). 그런데 본 족보는 유다 왕국의 위상과 기원을 밝히기 위해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인류의 시조인 아담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유다 민족의 기원이 되시는 하느님은 온 인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과 모든 종족은 유일한 기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보편적인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셋 - 셋(Seth)은 '택함을 받은 자', '대신 줌'이란 뜻의 이름이다. 그는 카인에게 살해당한 아벨 대신 하느님께서 아담의 가정에 주신 선물이었다(창세 4,25). 한편 본 족보에서 아담의 맏아들 카인과 그의 동생 아벨이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까닭에서인 듯하다. 즉, 아벨은 후사가 없었기 때문이며, 카인은 불경건한 자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생략했을 것이라 추정된다(창세 4,1-12).
에노스 - 에노스(Enosh)는 '약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특기할 사실은 그의 시대에 주님께 대한 최초의 예배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창세 4,26).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아담의 타락(창세 3장) 및 카인의 범죄 이후 죄악에 대하여 무기력해진 사람들이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죄의 유혹을 이기며 살 수 없었음을 시사해 준다.
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유다 지파를 강조하고 레위 지파를 중심에 두었음이 드러난다. 역대기 상권 2장 3절-4장 23절을 살펴 보면 유다, 다윗, 솔로몬 자손들을 언급하면서 다윗 가문에 관한 내용(1역대 3,1-24)을 중심에 배치했음을 알 수 있다.
1역대 3,1-24 다윗의 후손
“헤브론에서 태어난 다윗의 아들들은 이러하다. 맏아들은 이즈르엘 여자 아히노암에게서 낳은 암논이고, 둘째는 카르멜 여자 아비가일에게서 낳은 다니엘이다. 셋째는 그수르 임금 탈마이의 딸 마아카의 아들 압살롬이고, 넷째는 하낏의 아들 아도니야이다. 다섯째는 아비탈에게서 낳은 스파트야이고, 여섯째는 아내 에글라에게서 낳은 이트르암이다. 이렇게 여섯 아들이 헤브론에서 다윗에게서 태어났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다스리고,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다스렸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다윗의 아들들은 이러하다. 시므아, 소밥, 나탄, 솔로몬, 이 넷은 암미엘의 딸 밧 수아에게서 낳은 아들이다. 그리고 입하르, 엘리사마, 엘리펠렛, 노가, 네펙, 야피아, 엘리사마, 엘야다, 엘리펠렛, 이렇게 아홉이다. 이들이 모두 다윗의 아들들이다. 그 밖에 소실들의 아들들과 그들의 누이 타마르가 있었다”(3,1-9).
3장은 2,17이후 중단된 다윗의 족보를 다시 시작하는데, 첫 단락에서 다윗의 아들들을 소개한다(3,1-9). 이름이 약간씩 다른 이 명단은 2사무3,2-5과 5,14-16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단락(3,10-16)에는 유다 임금으로서 통치한 솔로몬의 후손들이 이어진다.
마지막 단락(3,17-24)은 2열왕 24장에서 여호야킨으로 불리는 여콘야 이후의 일곱 세대 또는 여덟 세대를 묘사한다. 그는 자손들과 함께 살아남은 최후의 유다 임금이다. 첫 세대에는 스알티엘, 프다야, 그리고 에즈 1,8,11; 5,14-14에서 세스바차르로 불리는 센아차르가 포함된다. 센아차르는 유배지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유배민 첫 무리를 인솔한 다윗 가문의 왕자다. 둘째 세대에는 즈루빠벨이 포함된다. 이 본문에서는 즈루빠벨이 프다야의 아들로 나오지만,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 그리고 하까이서에서는 스알티엘의 아들로 소개된다. 그는 성전 재건축의 주역이다(에즈 3,2.8; 5,2; 느헤 12,1; 하까 1,12-14; 2,2-23). 즈루빠벨부터 다섯 세대 또는 여섯 세대가 다윗 가문을 상속하게 되는데(3,10-24), 부분적으로 손상된 본문(3,22)을 우리가 어떻게 읽는지에 따라 세대 수가 달라지다. 다윗 계보는 하난야(3,19), 스칸야(3,21), 스마야(3,22), 느아르야(3,22), 엘요에나이(3,23)를 통해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세대로 엘요에나이의 아들 일곱 명의 이름을 열거하지만(3,24), 그 가운데 누가 다윗 가문의 상속자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일곱 세대 또는 여덟 세대가 기원전 400-350년경 역대기 시대로 우리를 이끈다.
역대기를 집필하던 시대에 다윗 가문의 자취를 기록한 이런 작업은 역대기 저자가 다윗 왕조 재건에 계속 희망을 두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나탄 예언자를 통해 표현된 다윗 왕조의 영원한 본질을 다시 강조한다. “그의 왕좌는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1역대 17,14; 2사무 7,16).
마태오와 루카는 예수님을 즈루빠벨에게서 나온 다윗의 왕손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마태오의 예수 족보나 루카의 예수 족보는 모두 역대기에 열거된 즈루빠벨의 어떤 후손도 언급하지 않는다(마태 1,13-16; 루카 3,23-37).
4장에서부터 8장까지는 12부족의 자손들에 대해 열거한다. 유다의 자손, 시메온의 자손, 르우벤의 자손, 가드의 자손, 므나쎄 반쪽 지파의 자손, 레위의 자손, 이사카르의 자손, 벤야민과 납탈리의 자손, 므나쎄의 자손, 에프라임의 자손, 아세르의 자손. 그리고 8장 1절에 벤야민의 자손에 반복해서 설명한다. 8장의 관심사는 벤야민 가손들의 정착지, 특히 예루살렘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창조와 구원은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을 거쳐 이제는 다윗과 레위 지파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족보로 보여 준다.
1역대 9,1-34 유다에서 돌아온 예루살렘 주민
“이렇게 온 이스라엘이 족보에 오르고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에 기록되었다. 유다는 배신한 탓으로 바빌론에 유배를 갔다. 그 뒤에 처음으로 자기들의 성읍에 있는 소유지에 돌아와 자리를 잡은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성전 막일꾼들이다”(9,1-2). 또한 9장에서는 ‘유배에서 돌아온 예루살렘 주민’들을 소개하면서, 벤야민과 레위 자손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음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편 족보 형식을 들어 혈통을 강조하는 것은, 이미 바빌론 유배 중에 혼합 민족이 되었을 것이며 이스라엘로 돌아왔을 때 자연스레 이민족이 섞여 들어오게 되었을 것이기에, 북이스라엘과의 대치 관계에서 족보를 통해 혼합정책에 강하게 도전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유일하고 합법적인 왕권은 정통성을 보존해 온 남왕국에 있으며, 그들만이 참이스라엘이라는 주장의 표현이다. 또한 합법적인 예배 장소로 예루살렘 성전만을 강조하려는 의도와도 연결 지을 수 있다.
1역대 10장-29장: 다윗의 통치. 사울의 죽음부터 다윗의 죽음까지 다룬다.
성경통독 10,1-11,9 사울이 죽은 이유, 다윗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됨
1역대 10,1-5 사울이 죽다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어왔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도망치다가, 길보아 산에서 살해되어 쓰러졌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 뒤에 바짝 따라붙어, 사울의 아들들인 요나탄과 아비나답과 말키수아를 쳐 죽였다. 사울 가까이에서 싸움이 격렬해졌다. 그러다가 적의 궁수들이 사울을 발견하였다. 사울은 그 궁수들에게 부상을 입었다. 사울이 자기 무기병에게 명령하였다. ‘칼을 뽑아 나를 찔러라. 그러지 않으면 할례 받지 않은 저자들이 와서 나를 희롱할 것이다.’ 그러나 무기병은 너무 두려워서 찌르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울은 자기 칼을 세우고 그 위에 엎어졌다. 사울이 죽는 것을 보고, 무기병도 칼 위에 엎어져 죽었다”(10,1-5).
10장은 역대기 상권의 본론의 시작 부분으로서 본서의 주인공인 다윗 왕(14절)을 소개하기 위한 예비적 과정이다. 따라서 본장은 이러한 성격 때문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의 역사를 거두 절미(去頭截尾)하고 다만 그의 비극적인 최후만을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Saul)과 그의 아들들이 필리스티아와의 전투에서 전사(戰死)하는 장면을 기록한 본절 이하의 기록은 1사무 31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1사무 29,1에 의하면 이 전쟁은 길보아 산악 지대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이스르엘(Jezreel) 평야에서 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필리스티아 족속은 함의 자손이었으며(1,12) 지중해의 크레타(Crete) 섬에서 필리스티아로 진출한 해안 민족이었다. 이들은 기원전 1,400년경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후에도 잔존해 있다가(여호 13,2) 이스라엘과 잦은 충돌을 하였다. 또한 이들은 기원전 1,196년에 이집트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곧 주변의 도시 국가들을 병합하여 줄곧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막강한 존재가 되었다. 이와 관련 이들의 대(對) 이스라엘 역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들은 삼손 시대를 중심한 40여년 동안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러다가 이들은 기원전 1,055년경 미스파 전투에서 사무엘의 지도하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패배하였다(삼상 7,12, 13). 그리고 기원전 1,048년에는 믹마스 전투에서도 요나단에게 패배하였다(삼상 14,31). 그런 뒤 이들은 기원전 1,010년에 10장의 배경이 되고 있는 길보아 전투를 일으켜 이스라엘에게서 대승(大勝)을 거두기는 했으나 얼마 후 다윗 왕에게 완전히 정복당하고 말았다(14,10-16).
길보아 산은 갈릴리 지경(地境) 아래에 동서로 누워 있는 이스르엘 골짜기의 돌출 부분에 위치해있는 해발 약 500m의 석회암 산이다. 정확히 말해서 이 산은 이스르엘 골짜기 동쪽 끝에 있는 모레(Moreh) 산지 남쪽에 있다. 아마도 사울은 이스르엘(1사무 29,1)에서 필리스티아의 우수한 장비를 무용화시킬 수 있는 고지인 이곳으로 후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예상 밖의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으니 곧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사울은 그의 아들들과 더불어 전사당한 것이다. 한편 필리스티아 족속은 이곳을 점령하게 되므로 인하여 한동안 요르단 강을 건너 요르단 동편으로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한 사울의 세아들의 이름은 요나탄, 아비나답, 말키수아이다. 사울 주변에서 싸움이 치열해졌다. 적군의 왕을 노리는 필리스티아와 그 왕을 지키려는 호위병 간의 싸움이 더욱 치열했다. 활을 맞은 사울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자기 무기병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칼을 뽑아 나를 찔러라. 그렇지 않으면 할례받지 않은 저자들이 와서 나를 희롱할 것이다”(10,4)라고 사울은 말하였다. 무기병은 두려운 나머지 찌르지 못했다. 그러자 사울은 자기 칼을 세우고 그 위헤 옆어져 죽음을 맞이하였다.
사울이 죽은 이유에 대해 13-14절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사울은 주님을 배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죽었다. 그는 주님의 분부를 따르지 않아 주님을 배신하고, 영매를 찾아 문의하면서도, 주님께는 문의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그를 죽게 하시고 이사이의 아들 다윗에게 나라를 넘겨주셨다”(10,13-14).
13-14절은 1사무 31장의 기록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으로서 저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덧붙인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하느님을 배반한 자는 결국 패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경고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사울이 하느님을 배반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사울은 주님의 분부에 따르지 않았고, 영매를 찾아 문의하면서도 주님께 문의하지 않았다. 사울은 그녀에게 찾아가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는 요청을 했었다(1사무 28,12-19). 이와같이 미신적(迷信的)인 발상으로 무당이나 접신녀를 찾아가는 것은 주님께서 엄금하신 영적 간음의 행위였으며 도저히 용납받지 못할 중죄였다(레위 19,31;신명 18,9-14).
사울이 주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일체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1사무 28,6에서 그가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어느 정도 했음을 우리는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성심성의를 다해 주님께 묻지 않았으며), 응답의 전제 조건인 그의 죄에 상응하는 진실한 회개를 한 이후에 묻지 않았다. 즉, 그가 비록 형식적으로 주님의 뜻을 구했을지는 모르나 전심(全心)으로 구하지는 아니했음을 시사해 준다.
“주님께서는 그를 죽게 하시고 이사이의 아들 다윗에게 나라를 넘겨주셨다”(14) 이로써 저자는 사울과 관련된 기사를 마무리 짓고 다윗과 관련된 기사로 넘어가고 있다. 본서에서 사울에 관한 기록은 사무엘상의 기록에 비하면 대단히 축약된 것이다. 이와 같이 사울에 관한 기록이, 그것도 그의 비극적 최후만이 짧은 장에 요약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저자의 관심이 온통 다윗 왕조에 집중되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본장은 주로 다윗 왕조의 중흥(中興)을 전개하기 위한 도입 부분으로서의 가치만을 지닐 뿐이라 하겠다. 한편, 주님께서 배교자 사울을 처벌하시고 다윗 왕조를 세우셨다는 본절의 중요 개념은 본서 전체에서 북왕조(이스라엘)가 왜 본서 저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 배경을 제시해 준다.
1역대 11,1-3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다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으로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전에 사울이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 백성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무엘을 통하여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11,1-3).
11장 1절로부터 3절까지는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 지파의 왕이 되는 대관식 장면이다. 이처럼 역대기 저자는 다윗 왕조에 관한 기록의 초두에서부터 다윗을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으로 소개하고 있다. 즉, 11장 초두는 사무엘하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그곳에 나오는 다윗과 관련된 많은 기사를 생략한 채 곧바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을 기술하고 있다. 본서에 생략된 다윗과의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면,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는 장면(2사무 2,1-4). 다윗과 이스 보셋 사이의 대치(2사무 2,8-32), 요압의 비윤리적이고 야만적인 행위(2사무 3,27), 다윗의 범죄와 그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행위들, 다윗에게 임한 재앙들 등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역대기 저자가 본서에서 다윗 왕조의 부정적인 면을 생략하고 긍정적인 면만을 기록한 것은 다윗 왕조의 신정 국가적(神政國家的) 탁월성을 크게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바로 이와같은 맥락에서 11장 시작부터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장면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임금이 되었음을 평화롭게 서술한다. 이는 신명기계 역사서에서 다윗이 겪은 사울과의 갈등, 사울 왕국의 잔존자들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다윗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임금임을 드러내려는 역대기계 역사학파들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1절에서 “온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으로 다윗의 통치 범위를 드러내고 있는데, 사실 이 표현이 정확히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 알 수는 없지만, 통일 왕국을 포함하는 개념인 듯 하다.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으로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11,1) 병행 구절인 2사무 5,1에서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여기서는 '온 이스라엘'로 표기되었다. 그런데 사무엘하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틀림없이 유다 지파를 제외한 북쪽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 문맥의 초점은 이스 보셋(사울의 집)을 따르던 이스라엘 지파들이 하느님의 뜻에 굴복하여 다윗에게 나아올 수 밖에 없었던 사실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11,1에서 '온 이스라엘'은 계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전체(유다지파를 포함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헤브론에 모인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왕이 되어줄 것을 설득하는 장면으로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라고 말한다. 즉 백성들은 다윗과 자신들 상호간의 혈육 관계를 강조하면서 다윗에 대한 자신들의 전적 신뢰를 표한 것이다. 더욱이 율법에는 신정 국가의 왕은 반드시 동족인(同族人)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규정되어 있다(신명 17,15). 때문에 이러한 율법 조항에 근거하여서도 백성들은 왕이 될 기본적인 자격이 다윗에게 있음을 더욱더 강조한 것이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주님께서 택하신 자(기름 부음 받은 자)라야 하였는데(신명 17,15) 바로 그러한 자였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20년 전 사무엘 예언자를 통하여 기름부음을 받았었다(1사무 16,13). 때문에 그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백성들은 기필코 다윗을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으로 추대하려 한것이다.
역대기 저자는 다윗을 진정한 목자이며, 주권자이신 주님의 대리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을 위해 한 목자를 세우리라는 예언은 역대기 저자의 동시대인들 특히 포로 귀환민들에게 있어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가는 장면은 마치 이스라엘 최고 회의 같은 묵직한 권위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다윗은 백성들에게 왕으로서 준수해야 할 일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약속하며 율법에 의한 규정대로 대관식을 거행한다. 이 규정은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것으로, 기름 부음은 성별되었음을 의미한다(탈출 30,25-29). 이 같은 기름 부음의 의식은 신정 정치의 특성을 반영한 동시에, 신약 시대에 메시야가 받을 표징의 하나였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여기서 계약의 주체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다윗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계약의 성격이 쌍방적인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임을 시사해 준다. 즉, 이 계약은 군주와 백성간의 합의에 의한 계약이 아니라 하느님이 왕으로 지목하신 다윗을 무조건적으로 백성들이 자기의 왕으로 받아 들이겠다는 일종의 서약이었다. 이 계약에서 백성들은 다윗 왕에게 충성을 서약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사무엘을 통하여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3). 다윗에게 있어서 이는 세 번째 기름 부음이었다. 첫 번째는 사무엘을 통하여, 두 번째는 유다 지파의 장로들을 통하여 받았었다(2사무 2,4). 세 번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에 의해 기름 부음 받은 것이다.
“사무엘을 통하여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는 다윗 왕국이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하느님의 뜻임을 알려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윗은 세력이 점점 커졌다. 만군의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9절)라는 표현에서도 주님께서 다윗을 특별하게 여기고 계심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다윗이 임금이 된 후 처음 한 일이 온 이스라엘과 함께 예루살렘을 정복한 사건임을 전함으로써 처음부터 예루살렘이 얼마나 중요한 곳이지 드러내 준다. 그러고는 다윗의 용사들을 소개하고, 다윗을 따른 사람들을 소개한다.
성경 읽기 : 1역대 13장-17장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김
1역대 13,1-14 계약의 궤를 옮기다
“다윗은 천인대장과 백인대장을 비롯한 모든 지도자와 의논하고,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좋다면, 그리고 주 우리 하느님의 뜻이라면,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들과, 목초지가 있는 성읍들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사제들과 레위인들에게도 사람들을 보내어 우리에게 모여 오라고 합시다. 그런 다음에 우리 하느님의 궤를 도로 모셔 옵시다. 사실 사울 시대에는 우리가 그 궤를 찾지 않았습니다”(13,1-3).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것은 역대기계 역사학파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므로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곧 사울 시대에는 찾지 않았던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것에 관심을 집중한다. 구조면에서 볼 때, 14장은 13장과 15장에서 언급되는 계약 궤 이동 이야기에 방해가 되도록 배치되어 있다.
다윗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계약 궤를 옮긴다. 사무엘기 하권에 언급되는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에서 정병 삼만 명을 모두 소집하였다”(2사무 6,1)라는 내용과 비교했을 때 역대기에서 표현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수에서 대조를 이룬다. 또한 다윗은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불러 모으고, 또 이들과 온 회중은 자발적으로 이에 응함으로써 종교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들이 키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였다. 소들이 비틀거리는 바람에 우짜가 손을 뻗어 궤를 붙들었다. 그러자 우짜를 향하여 주님의 분노가 타올랐다. 우짜가 궤에 손을 뻗었으므로 그분께서 그를 치시니, 그는 거기 하느님 앞에서 죽었다”(9-10).
계약 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소들이 비틀거리는 바람에 우짜가 계약 궤에 손을 뻗어 붙들었다 하여 죽음을 맞게 되는 이야기는 사실상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고 나서 계약 궤는 오벳 에돔의 집에서 석 달 동안 머무르게 되는데, 계약 궤 이동이 중단된 이유를 15장 13절에서야 언급한다. 하나는 정중하게 계약 궤를 찾지 않은 것, 다른 하나는 율법에 따라 주님을 찾지 않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짜의 죽음으로 두려움에 휩싸여 계약 궤 이동이 중단되었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리고 계약 궤를 멜 레위인이 없어서 주님께서 진노하셨고, 석 달 동안 중지되었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서 15장 1-24절에서 적절한 레위인들의 직무를 정하고 계약 궤를 옮길 준비를 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에서야 비로소 우짜가 계약 궤를 옮기기에는 부적합하였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제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간다.
1역대 15,1-29 다윗이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다
“다윗은 다윗 성에 자기가 살 궁을 지었다. 또 하느님의 궤를 모실 곳을 마련하고 천막을 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레위인들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의 궤를 멜 수 없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이 영원히 주님의 궤를 메게 하셨고 당신을 위하여 봉직하게 하셨다”(1-2).
다윗이 권력을 강화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세운 이야기 후에(1역대 11-14장; 2사무 5장 참조), 역대기 저자는 이제 주된 관심사인 다윗의 종교적인 사항으로 시선을 돌린다.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계약 궤를 운반해 오기 위해 첫 단계로 키르얏 여아림에서 오벳 에돔의 집으로 궤를 옮긴다(1역대 13,1-14; 2사무 6,1-11). 이 이야기는 다윗의 성공(1역대 14장; 2사무 5,11-25)이 어떻게 그의 야훼 경배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 안에서 앞으로 옮겨졌다. 두 번째 단계는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이다. 이는 여기서 종교적으로 매우 장엄한 대행사로 묘사된다(1역대 15장).
2사무 6,15은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계약 궤를 메는 것으로 기록한다. 저자는 계약 궤를 멜 때 레위인의 역할에 특히 주의를 기울인다. “레위인들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의 궤를 멜 수 없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이 영원히 주님의 궤를 메게 하셨고 당신을 위하여 봉직하게 하셨다”(15,2) 이 설명은 계약 궤를 운반하는 특권을 사제(1열왕 8,3-4)에게서 레위인(2역대 5,4 참조)에게로 옮겨놓는다. “지난번에는 그대들이 그 궤를 메지 않았기 때문에, 주 우리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리치셨소. 우리가 그 궤를 법규대로 다루지 않은 탓이오.’ 그래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궤를 모셔 오려고 자신을 거룩하게 하였다. 레위의 자손들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모세가 명령한 대로, 하느님의 궤를 채에 꿰어 어깨에 메었다”(15,13-15).
그리고 2사무 6,12-19에서 가져온 설화 앞에 레위인의 책임에 대한 다른 지시(1역대 15,4-15)와 레위인 성가대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내용을 놓는다(15,16-24). “다윗은 레위인 수령들에게 일러, 그들 형제 가운데에서 성가 책임자들을 임명하게 하고, 수금과 비파와 자바라 같은 악기를 연주하여 흥겨운 소리를 드높이게 하였다”(15,16). 이런 전례 규칙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이 백성에게 터뜨리는 분노를 피하는 열쇠다(15,13). 이 사건의 정치적 의미는 종교 예식 뒤에 가려져 희미해진다.
한편 이곳에서 주목할 부분은, 사무엘기에서는 계약 궤가 싸움에서의 승리라는 목적을 지닌 것으로 표현되었으나 역대기에서는 준군사적인 목적보다는 종교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다윗과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천인대장들이 오벳 에돔의 집에서 주님의 계약의 궤를 모셔 오려고, 기뻐하며 그곳으로 갔다”(15,25).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오려고 모였다는 표현은 사무엘기 하권의 “다윗과 온 이스라엘 집안”(6,16)과 비교해 볼 때, 역대기서에서는 좀 더 공적인 자격으로 일하는 이들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윗이 당시 대 제사장들만 입을 수 있던 ‘아마포 겉옷’을 입고 껑충껑충 뛰면서 춤을 출 만큼 기뻐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비웃는 사울의 딸 미칼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계약 궤를 천막 안으로 옮기고 나서 다윗은 “하느님 앞에 번제물과 친교 제물”(16,1)을 바친 후,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16,2)을 해 줌으로써 사제의 역할까지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들은 다윗이 미리 쳐 둔 천막 안에 하느님의 궤를 옮겨 놓았다. 그러고 나서 하느님 앞에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쳤다. 다윗은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다 바친 다음에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였다”(16,1-2).
그리고 레위인들 가운데에서 “주님의 궤 앞에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기리고 찬송하며 찬양할 봉직자들”(16,4)을 임명하는 내용을 전함으로써(16,37-43) 역대기계 역사학파들이 레위인들에게 기울인 관심의 정도를 잘 드러내 준다. 그러고 나서 주님께 드리는 ‘감사 찬양’의 내용을 전한다.
1역대 17,1-15 나탄이 다윗에게 하느님의 약속을 알림
“다윗이 자기 궁에 자리 잡았을 때다. 다윗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주님의 계약 궤는 천막 아래에 있소.’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1-2).
다윗이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 다윗은 자신의 궁에 자리를 잡았다고 표현하는 데서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다윗이 자신은 향백나무 궁에 살고 있는데 주님의 계약 궤는 천막 아래에 있음을 언급하면서 주님의 집을 지어 드리고 싶은 의중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날 밤에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하실 말씀을 나탄에게 내리신다. 한마디로 다윗은 주님의 집을 지을 계획은 세울 수 있지만, 정작 집을 지을 사람은 다윗의 뒤를 이을 후손이라는 것이다. 결국 다윗은 성전 건축의 밑그림 작업을 하는 셈이다.
역대기 저자는 하느님이 다윗에게 하신 영원한 약속을 묘사하기 위해 2사무 7장을 사용한다. 1역대 17장은 사무엘기 하권의 내용을 종종 그대로 옮기지만 몇 가지 세밀한 사항을 변경한다. 이집트에서 빠져나온 것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다(1역대 17,6; 2사무 7,6과 비교). 통치의 영속성에 대한 약속은 하느님 왕국에 대한 언급과 함께 솔로몬 통치 체제와 연결된다.
따라서 역대기계 역사학파는 주님의 돌보심 아래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전쟁 용사이면서 위대한 정치인인 다윗의 모습보다는, 이스라엘을 예배 공동체로 모아들인 주님의 사람으로서의 다윗의 모습을 중시한다. 나아가 솔로몬이 이루게 될 성전 건축과 봉헌 기도에 중점을 두어 전한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내가 일찍이 너보다 앞서 있던 자에게서 내 자애를 거둔 것과는 달리, 그에게서는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 내 집안과 내 나라 안에서 그를 영원히 세우리니, 그의 왕좌는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1역대 17,13-14). 계속해서 다윗을 이을 후손을 일으켜 세우시고는 그 나라를 튼튼하게 해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언급한다. 더불어 사울을 지칭하는 “너보다 앞서 있던 자에게서 내 자애를 거둔 것과는 달리”(13)라는 표현을 첨가하여, 주님께서 다윗 후손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지켜 주시리라는 말씀을 더욱 강조하여 전한다. 주님께서는 다윗 집안을 영원히 세우시리라는 약속을 주신다. 이는 사무엘기 하권의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자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7,16)하는 표현과 비교해 볼 때, 사무엘기 하권에서의 주체는 다윗이지만 역대기에서는 다스리는 주체가 다윗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임이 들어난다. 임금은 단순히 주님을 대표하는 인물일 뿐임을 명시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유일한 임금으로서 직접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역대기계 역사학파의 신정 사상이 강하게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말씀과 환시를 전해 들은 다윗이 주님 앞에 나아가 감사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1역대 17,16-27 다윗의 감사 기도
“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 나아가 앉아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 하느님, 당신 눈에는 이것도 부족하게 보이셨는지, 당신 종의 집안에 일어날 먼 장래 일까지도 일러 주셨습니다. 주 하느님, 또한 당신께서는 저를 존귀한 사람으로 보아 주셨습니다. 당신 종에게 베푸신 이 영광에 이 다윗이 무엇을 더 보태겠습니까?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알고 계십니다”(17,16-18).
다윗은 하느님 앞에 나아가 앉아, 자신은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며 하느님을 높이면서 고백 형식으로 감사 기도를 드린다. 이곳에서는 하느님의 위대하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심, 왕좌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곧 하느님께서 다윗 가문과 그 집안을 두고 하신 말씀을 ‘영원히’ 지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 복을 내리신 분은 당신이십니다. 영원히 찬미받으소서”(17,27).
다음에 이어지는 18장-21장에서는 다윗이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여 땅을 점령한 이야기와 다윗이 사탄의 부추김에 넘어가 인구 조사를 하게 된 이야기를 전한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사무엘기 하권에서는 하느님의 부추김으로 인구 조사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24,1). 18-20장은 17장에서 하느님께서 영원히 다윗 가문을 지켜 주시리라는 약속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17장에서 시간적으로 영원히 지켜 주시리라는 약속을 하신 것이라면, 18-21장에서는 공간적으로 이 약속을 지켜 주신 것이라 하겠다. “주님께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도와주셨다”(18,6)하는 말씀은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그러고 나서 22-29장까지는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면서 성전 봉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조직을 정비하여 질서를 잡고, 군대와 행정 조직을 준비하는 내용을 전한다.
1역대 21,1-22,1 인구조사, 흑사병, 그리고 제단
다윗은 비록 인구 조사라는 하느님 보시기에 악한 행동을 하였으나 곧 뉘우치고 용서를 받은 후,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하느님의 집이며 이스라엘의 번제 제단으로 세운다. 그리고 그곳에서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치며 주님께 호소하여 응답을 받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사탄이 이스라엘을 거슬러 일어나,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도록 다윗을 부추겼다. 그리하여 다윗은 요압과 군대의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자, 브에르 세바에서 단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여, 그들의 수를 알 수 있도록 나에게 보고하시오”(21,1-2).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저자는 한 가지 변화를 소개한다. 다윗이 죄를 짓도록 부추기는 것(2사무 24,1)은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다. 사탄은 유배 이후 문학에서 인간을 시험하거나 고발하는 하느님 조정의 천사로 등장한다(욥 1,6-12; 즈카 3,1-2). 히브리어 명사 사탄은 ‘적대자’를 의미한다. 후대 묵시문학에서 사탄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창조물로서 하느님을 부끄럽게 하고 그분의 일을 파괴하는 것이 그 임무다. 유배 이후의 신학자들처럼 역대기 저자는 악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본문에서 사탄을 소개한다.
백성의 인구조사는 하느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에 의지하는 결과이기에 하느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내렸다. “그러자 다윗이 하느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런 일을 하여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 종의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21,8)라고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 이에 주님께서 다윗의 환시가인 가드에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신다. “세 해 동안 기근이 드는 것이냐? 아니면 원수들의 칼이 너를 덮쳐 석 달 동안 네가 적들을 피하여 도망 다니는 것이냐? 아니면 사흘 동안 이 나라에 주님의 칼, 곧 흑사병이 퍼져, 주님의 천사가 이스라엘의 온 지역을 파멸시키는 것이냐?' 저를 보내신 분께 무엇이라고 회답해야 할지 지금 결정해 주십시오”(21,12). 다윗은 사람의 손에 당한는 것도바 주님의 손에 당하는 것이 낫다고 3일간의 흑사병을 선택한다. 그러나 흑사병은 이스라엘에 내려 7만 명이 죽었다.
주님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서 있는 것과 성전의 연결은 22,1에서 명확해진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치며, 주님께 호소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번제 제단 위로 불을 내리시어 그에게 응답하셨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 천사에게 분부하시어 칼을 칼집에 도로 넣게 하셨다”(21,26-27). “그래서 다윗이 말하였다. ‘이곳이 바로 주 하느님의 집이며 이스라엘의 번제 제단이다”(22,1). 하느님이 다윗의 제물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은 그분이 ‘하늘에서 불’(21,26)을 보내시는 것으로 표시된다. 이는 카르멜 산의 엘리야를 연상시키는 하느님의 행위(1열왕 18,38; 레위 9,24 참조)로, 성전 봉헌 이야기에서도 되풀이될 것이다(2역대 7,1).
1역대 22,2-5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
이어지는 22-29장의 내용은 역대기에만 나온다. 종교적 세부사항이 토라의 제의법과 매우 유사하다. 이것들은 22,12에서 다윗이 솔로몬에게 한 지시의 일부로서 묘사된다(16,40 참조). 역대기 저자의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성전 건축에서 다윗이 한 역할이다. “다윗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 아들 솔로몬은 나이도 어리고 연약한데, 주님께 지어 바칠 집은 아주 웅장하고 그 명성과 영화를 온 세상에 떨쳐야 하니, 내가 집 지을 준비를 해 두어야 하겠다.’ 그래서 다윗은 죽기 전에 준비를 많이 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는 아들을 불러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위한 집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22,5-6). 다윗은 기본적인 성전 설계와 모든 건축 재료를 준비한다. 사실상 이 성전은 다윗의 성전이다. 그리하여 다윗 왕조와 연결된 희망은 성전과 결부된 희망과 결합된다.
1역대 28,10-19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 모형을 넘겨주다
“자, 보아라. 주님께서는 이제 성소로 쓰일 집을 지으라고 너를 선택하셨다. 힘을 내어 일을 해 나가라.’ 그러고 나서 다윗은 현관과 거기에 이어지는 건물과 창고와 옥상 방과 안쪽 방들과 속죄소의 모형을 아들 솔로몬에게 주었다. 그 밖에 마음에 떠오른 모든 것의 모형도 주었다. 그 모형은 주님의 집 뜰과 둘레의 모든 방, 하느님의 집 창고와 성물 창고에 관한 것이었다”(28,10-12).
다윗이 성전 모형을 솔로몬에게 넘겨준 것으로 두 임금 사이에 성전 건축 작업의 연속성이 성립된다. 이 모형 또는 양식에는 사제와 레위인의 일 구분, 예배에 쓸 성전의 온갖 기물(28,13-18), 그리고 성전에 대해 다윗의 “마음에 떠오른 모든 것”(28,12)이 포함된다. 모세오경의 사제계 전승은 이 모든 결정이 모세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긴다(탈출 25,9-30). 그러나 역대기에서는 건축만이 아니라 성전 예배 전체가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손으로 쓰여진 기록에 들어 있다. 그분께서는 나에게 이 모형의 온갖 세부 사항을 분명히 알려 주셨다”(28,19). 이 계획에 헌신하는 인물인 다윗이 토대를 닦은 것으로 소개한다. 주님의 손으로 쓰였다는 표현은 ‘그 책’을 따르려는 유배 이후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기록된 말씀에 책임을 진 사람을 모세에서 다윗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탈출 31,18과 비교).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말하였다. “힘과 용기를 내어 일을 해 나가라. 두려워하지도 말고 당황하지도 마라. 주 하느님이신 나의 하느님께서 너와 함께 계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주님의 집에서 예배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일을 마칠 때까지, 너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더구나 하느님의 집에서 드리는 예배에 관한 모든 일을 하려고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각 조가 대기하고 있다. 또 무슨 일을 하건 온갖 일에 솜씨 좋은 지원자들이 모두 너를 기꺼이 도울 것이며, 지도자들과 온 백성이 너의 말대로 할 것이다”(28,20-21).
1역대 29,10-30 솔로몬을 임금으로 세움
“주 저희 하느님,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한 집을 지어 드리려고 저희가 준비한 이 많은 것은 다 당신 손에서 받은 것으로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16). 다윗이 주님을 찬미하며 감사 기도를 드린다(29,10-20). “그날에 그들은 주님 앞에서 크게 기뻐하며 먹고 마셨다. 그러고 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다시 임금으로 세웠다. 그들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주님께 속한 영도자로 세우고, 차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사제로 세웠다”(22). 솔로몬이 기름부음 받아 임금이 되는 장면을 전하는 이 부분을 열왕기 상권 1-2장과 비교해 보면 역대기계 역사학파의 신학적 의도가 잘 드러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솔로몬이 임금이 되는 과정에서 불미스럽다고 여기는 사건들은 모두 빼고 다윗에게 해가 되지 않는 내용만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윗 임금의 노쇠, 수넴 처녀와의 관계, 솔로몬을 임금으로 세우려는 나탄과 밧 세바의 계책, 아도니야의 임금 행세 등 다윗에게 해가 되는 이야기는 모두 빼고 다윗을 이상적인 임금으로 제시하는 데 필요한 내용만을 전한다.
1역대 29,26-30 다윗 통치의 요약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마흔 해이다.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를 다스렸다. 그가 부와 영광을 누리며 장수하여 나이를 다 채우고 죽으니, 그의 아들 솔로몬이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다윗 임금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무엘 선견자의 기록과 나탄 예언자의 기록과 가드 환시가의 기록에 쓰여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모든 통치와 무용, 그리고 그와 이스라엘과 세상의 모든 나라가 겪은 사건들도 실려 있다”(27-30).
이 부분은 다윗 임금과 그의 왕국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놓은 기록이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26절)을 다스렸다는 기록은 주목해 볼 부분이다. 역대기 저자는 헤브론에서 다윗이 통치한 곳이 단지 유다 지역만을 포함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단순히 “헤브론에서 일곱 해,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를 다스렸다.”(27절)라고만 기록할 뿐이다. “그가 부와 영광을 누리며 장수하여 나이를 다 채우고 죽으니”(28절)라는 내용은 다윗이 하느님께 얼마나 복을 받아 누렸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