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는 고려
우왕 6년 (1380년) 삼도순찰사였던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도중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던 곳입니다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의
승리에 도취되어 자신의 마음속 내심을
대풍가를 통해서 표현했다고 합니다
대풍가는 중국의 한왕 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고향 풍패에 들러 그 기쁨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歸故鄕
安得猛士兮守四方
큰 바람 일어나니 구름도 높이 날아가네
위엄을 나라 안에 떨치며 고향에 돌아왔네
내 어찌 용맹한 인재를 얻어 국토를 지키지 않을 소냐.
정몽주가 이성계의 야심을 눈치채고
고려를 걱정하는 우국시를 읊기도 했다고 해요
千仞岡頭石徑橫 登臨使我不勝情
靑山隱約扶餘國 黃葉繽紛百濟城
九月高風愁客子 百年豪氣誤書生
天涯日沒浮雲合 怊悵無由望玉京
천 길 산봉우리 돌 길 비꼈는데, 올라 바라보니 감회가 그지없다
청산은 보일듯 말듯 부여국이요, 낙엽이 우수수 백제성이라
9월 높새 바람은 나그네 시름이요, 백년 호기가 서생의 신세를 망쳤구나
하늘가 해는 지고 뜬구름 이었으니, 옥경이 아아 어디인고 바라 볼 길없구나
옥경[玉京] 백옥경(白玉京)의 준말로, 보통 황제의 도성을 가리킨다.
두렵다 뉘 바라볼 수 없구나. 지는 고려왕조에 대한 탄식입니다.
그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이곳에 정자를 짓고
이 언덕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목대라고 지었답니다.
첫댓글 樓閣 보다 큰 정자가 臺랍니다. 이성계 역사탐방 마치고 대접 잘 받고
해설해주신 교수님들 배려로 좋은 기운 받고 돌아 옵니다. 1박2일동안
너무 많은 곳을 탐방하여 피곤이 겹칩니다.
블로그 작성 중인데 사진도 많고 사연도 많아 자료를 조사 중입니다.
답사한지도 오래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두 시를 읽고나서 정의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회의 감을 느낍니다.
역사는 성공한 자들의 역사라면, 백년 후의 역사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이데올르기를 떠나 성공한 역사가 정의라면
굳이 정의를 교육할 필요가 있을까요.. 생각해봅니다.
여진족의 추장이며 원나라의 천호장인 이자춘이,
이자춘의 조상인 목조가 전주 산골 이목대에서 애첩기생 때문에 고려관리와 싸우고
삼척으로, 함흥으로 쫓겨 가서 원나라의 천호장이 되는 팩트와
원나라의 천호장인 여진족 이성계가 역성왕조 조선을 약탈하고
조선중기에 와서야, 오목대, 이목대, 삼청동을 건립한 이유가
고금소총의 스토리 같아
700여년전 태조 이성계의 억지족보를 용비어천가에서 보면서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