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과 항아리 횃불(사사기 7장) - 양털과 이슬
기드온과 삼백 용사가 미디안을 물리치는 모습을 통해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핵심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미디안을 물리치고
자유를 주시려고 기드온을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동안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를
찍어 없애고 여호와를 따르게 됩니다.
그러면서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다면
이 두 가지 표적을 통해 알게 해달라고 청하게 되는데 ....
삿6: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삿6: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슬은 하나님의 은혜인 복음의 말씀을 말하고
양털은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신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양털에만 이슬이 있다는 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약속하신
메시아 언약의 말씀을 이루어 주시지 않은 상태를 말하며
복음이 율법 속에 숨겨진 구약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래서 메시아 언약의 말씀을 이루어 주지 않아서
대적인 미디안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고 있지만
그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슬이 주변 땅에만 있고
양털이 마른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뱀의 머리를 밟은 복음의 말씀을
온 땅에 전파해서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시대를 말합니다.
이처럼 기드온이 여호와께 두 가지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은
메시아 언약의 말씀을 이루어 주셔서 그 복음으로
대적을 물리쳐 주실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이 그 표적을 보여주셨다는 것은
약속하신 메시아 언약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보내서
십자가에서 뱀의(사탄의) 머리를 밟고 그 복음으로
대적으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구원해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하시는 모습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성령이 오신 후에
제자들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
하나님 백성을 구원하는 모습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그 복음을 전해야 대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두 가지 표적을 통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대적을 물리칠 군사들을 모으게 되는데 ....
삿7: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삿7: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손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해 주신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말합니다.
손의 의미를 사도행전 2장 3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나님이 대속제물로 죽으신 예수님을
부활케 하심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셔서
복음을 알고 깨닫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손은 우리에게 부어 주신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핥는 것은
다른복음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것에서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만 구별해서 먹고 따르며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용사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것은
바알과 아세라에 무릎을 꿇고 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율법과 복음을 구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누룩이 들어간 다른복음을 전하게 되므로
대적을 물리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고 돌아가라고 말씀하는 것이며
오직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깨달은 자들만
진리의 말씀만 전하게 되므로 대적을 물리치고
백성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용사인 삼백 용사만
전쟁에 참여하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결국 삼백 명만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
삿7: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보리떡 한 덩이는 버림받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으로
유대인의 지도자들로부터 진리가 아니라며
자신들이 먹을 것이 아니라서 부스러기 취급받는
복음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 복음의 말씀이 하나님 백성의 대적인 (미디안을)
사탄을 물리치고 사탄의 포로에서 구원해 주실 것임을
모형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뱀의 머리를 밟고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사탄도 알고 있다는 뜻으로
미디안 군사의 꿈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기드온과 삼백 용사는 미디안을 물리치게 되는데 ...
삿7: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횃불이 무엇인지는 창세기 15장 17절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창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창세기 15장 말씀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데
십자가 복음을 통해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로 보증해 주시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횃불을 빈 항아리 안에 감춘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횃불 언약의(메시아 언약)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오직 그날만 소망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용사를 말합니다.
삿7: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항아리를 부순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십자가를 통해
다 이루어 주셨다는 뜻이며
오른손으로 나팔을 분다는 것은
이웃에게 복음의 나팔을 부는 모습을 말하는데
복음을 깨달아 믿은 믿음의 용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의 나팔을 불게 되므로
백성들이 복음을 알고 깨닫게 되어
대적을 물리치게 되는데 ....
삿7: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결국 복음을 먼저 깨달은 믿음의 용사들이
복음을 전하게 되므로
복음을 알지 못해 사탄의 포로로 살아가던 자들이
복음을 알고 깨닫게 되어 대적을 물리치고
자유를 얻게 됨을 모형으로 그려주고 있는 것이
기드온과 삼백 용사가 대적인 미디안을 물리치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여리고 성을 6일 동안 매일 한 번씩 돌되
백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7일에 일곱 번 돌고 양각 나팔을 길게 불면
백성이 큰 소리로 외치니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모습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이처럼 창세기 3장 15절에서 약속하신 메시아 언약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횃불 언약을
십자가를 통해 다 이루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복음으로 미디안을 물리치고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오직 누룩이 없는 진리의 말씀으로만
대적을 물리침을 잊지 마시고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