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생들 가운데 30%정도는 정신이 온전치 못해도 육체노동은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몸을 갖고 있었다. 갱생원에서는 사회복귀를 위한 자립 자금을 모은다는 명목아래 이들에게 각종 노동을 시켰고, 그 일의 관리를 동장들이 맡아했다. 동장들은 지능은 떨어지지만 몸은 건강한 원생들을 공사판으로 데리고 가 일을 시키고 돈을 받았는데, 그 돈 가운데 아주 일부만 원생들 이름으로 저축을 하고, 나머지는 지신들이 챙겼다.
동장 자리가 날마다 상당한 금액의 수입이 생기는 자리다보니 동장들 가운데는 갱생원에 살지 않고 바깥에 살림집을 구해 놓고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가끔 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동장 자리가 비는 상황이 생기면 서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병들고 힘없는 원생들은 온갖 비인간적인 상태에서 천천히 죽어 가야했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갱생원을 인수하자마자 원생들의 외부 노동부터 금지 시켰다. 동장들의 반발은 극에 달했다. 자신들의 가장 큰 수입원이었던 것을 없애 버렸으니 가만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동장들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참다못한 알로이시오 신부는 11명의 동장들을 사무실로 불러 마리아수녀회가 갱생원 운영을 인수한 동기를 설명하고, 갱생원운영을 도와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만일 도와준다면 직원으로 채용해 월 30만원의 봉급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중등하교 교사 초봉이 30만 원 정도였으니 적은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장들은 그보다 몇 배 더 많은 돈을 날마다 챙겨 왔기 때문에 알로이시오 신부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동장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마리아수녀회가 갱생원에서 손을 떼고 떠나게 하는 데 있었다.
1981년 1월28일 밤11시, 마침내 동장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수십 명의 기운 센 원생들이 술을 먹고 동장들과 합세했다. 술 취한 원생들은 갱생원의 기물들을 부수고 사무실로 몰려와 물건들을 마구 집어던지며 행패를 부렸다. 유리창이 깨지고 석유곤로가 뒤집어졌다. 폭동 주동자 중 한 사람이었던 1동 동장은 의무실 약장을 통째로 들고 가면서 약을 길바닥에 줄줄 흘리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갱생원 안에는 적당한 공간이 없어 수녀들은 소년의 집에서 출퇴근을 했고, 갱생원에는 부산 소년의 집 출신 대학생들이 임시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수녀들을 돕고 있었다.
“신부님, 큰일 났습니다!”
학생들로부터 동장들의 폭동 소식을 전해들은 알로이시오 신부는 곧바로 갱생원으로 향했다. 그러자 수녀들도 같이 가겠다 고 따라 나섰다.
“절대로 오지 마시오!”
“신부님, 혼자는 위험합니다. 제발 저희들도 가게 해 주세요.”
원장 수녀는 간곡히 말했지만 알로이시오 신부는 단호했다.
“순명으로 말합니다. 지금은 절대로 오지 마세요!”
수녀들은 알로이시오 신부를 따라가는 대신 성당에 모여 기도를 했고, 부산에서도 소식을 전해들은 수녀들이 급히 성당에 모여 십자가의 길 기도를 했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박 다미아노사무장(부산 중앙 성당 에서부터 알로이시오 신부의 일을 도와주었던 박 다미아노는 당시 서울 소년의 집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었다)과 함께 관할 경찰서 순경 두 사람을 데리고 갱생원 사무실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사무실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이런저런 연장을 든 동장들이 몰려와 알로이시오 신부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함께 갔던 순경 두 명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원생들도 술에 취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 와중에 한 동장이 알로이시오 신부를 죽이겠다며 연탄집게를 들고 정면으로 뛰어들면서 사나운 기세로 휘둘렀다. 옆에 있던 소년의 집대학생과 박 사무장이 막아섰지만, 알로이시오 신부는 얼굴과 손을 다치고 말았다.
동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연탄집게를 들고 달려들었고, 흥분한 원생들은 알로이시오 신부를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연탄집게 공격을 고스란히 당해야 할 처지였다.
그때 다른 동장 한 사람이 원생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알로이시오 신부를 사무실 밖으로 끌어냈다. 평소 동료 동장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비밀리에 수녀들에게 협조해 왔던 동장이었다.
그 동장은 9동 옆에 있는 아주 작은 오두막으로 알로이시오 신부와 박 사무장을 피신시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뒤따라온 원생들은 마치 서부 영화에 나오는 인디언들처럼 오두막을 둘러싸고 알아듣지 못할 괴성을 질러됐다.
잠시 뒤 난동을 지휘한 동장이 오두막으로 들어와 험상궂은 얼굴로 알로이시오 신부를 쳐다보며 앉았다. 그 동장은 앉은 채로 방문을 열고 “조용히 해, 새끼들아!”하고 고함을 질렀다. 흥분해 날뛰던 원생들은 금방 조용해졌고, 동장은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신부 양반, 신부가 갱생원에 와서 한 달이 되도록 잘해 준 것이 하나도 없어 원생들이 참다못해 오늘 밤 난동을 부렸소. 이제 신부와 수녀가 갱생원을 떠나든지, 아니면 우리 동장들이 떠나야겠소. 그러나 갱생원의 모든 건물과 담장과 기타 시설물들은 우리 동장들이 떠나야겠소. 그러나 갱생원의 모든 건물과 담장과 기타 시설물들은 우리 동장들이 동원해서 만든 것이오. 이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고, 또 우리가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아왔는데 막상 밖에 나가서 살려면 먹고살 방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11명의 동장에게 한 사람당 7백만 원씩 주시오. 그러면 우리 동장들은 내일이라도 당장 이곳을 떠나겠소.”
말을 마친 동장은 알로이시오 신부의 대답을 재촉했다. 입을 다물고 동장의 눈만 뚫어지게 보고 있던 알로이시오 신부의 눈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동장이 휘두른 연탄집게에 찔렸던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음산한 갱생원의 한 오두막에서 한쪽 눈이 일그러진 험상궂은 주모자 동장과 알로이시오 신부는 그렇게 한 동안 마주 앉아 있었다. 동장의 말 한마디면 제 정신이 아닌 바깥의 원생 무리들이 어느 순간 폭도로 돌변해 덮칠 수 있었으니 알로이시오 신부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뒤 동장은 계속 혼잣말을 했고, 알로이시오 신부가 침묵하는 가운데 1시간쯤 지났다. 그때 동장의 부하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귓속말을 했다. 경찰이 왔다는 것이었다. 동장은 재빨리 몸을 피해 어디론가 사라졌고 오두막 주위의 난동꾼들도 흩어졌다.
알로이시오 신부와 바 사무장이 오두막 안에 잡혀 있다는 것을 안 소년의 집 대학생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겅찰서에서 전투 경찰을 보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날의 폭동은 일단락되었다.
그날 신부님은 폭도가 되어 버린 동장들을 상대로 용감하게 맞서다가 무수히 매를 맞고 새벽녘에야 돌아오셨는데, 모자와 양복이 피로 얼룩져있었다.
다음날 아침, 신부님은 양복을 손질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셨는지 양복과 모자는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고, 손질을 해도 계속해서 핏물이 멈추지 않았다. 살아 돌아오신 것이 기적이었다.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과의 추억』중에서
동장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알로이시오 신부는 더 이상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동장들도 따지고 보면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설득해 갱생원 운영의 좋은 협조자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동장들과 그들의 사주를 받은 한 무리의 원생들이 갱생원으로 출근한 수녀들을 사무실에 가두고 협박하며 갱생원 운영에서 손 뗄 것을 요구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알로이시오 신부는 더 이상 조용히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곧바로 서울시청으로 갔다. 시장을 만나 밤새 일어난 사건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는 적절한 조치를 요청했다. 크게 화가 난 시장은 은평구 관할인 서부경찰서장에게 연락해 당장 갱생원에 경찰을 보내 사건을 수습하라고 지시했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곧바로 서부경찰서로 달려갔고, 경찰서 마당에는 한 무리의 전투경찰들이 갱생원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투경찰이 도착하자 수녀들의 인질 소동은 곧바로 끝이 났다. 11명의 동장들 가운데 9명은 도망가거나 스스로 물러났고, 2명은 갱생원 운영을 돕겠다고 남았다(이 두 사람도 얼마 뒤 갱생원을 떠났다)이렇게 해서 원생들은 자신들을 괴롭혀 온 동장들로부터 해방되었고, 마침내 갱생원에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불의와 폭력으로부터 불쌍한 원생들을 보호하고, 오로지 그들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겠다는 한 가지 생각에 알로이시오 신부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롭게 맞서 이겨냈다. 만일 알로이시오 신부가 동장들의 폭력과 위협을 두려워한 나머지 또는 일시적인 평화를 위해 악랄하고 간교한 동장들의 돈 요구에 응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약점이 되어 훗날 갱생원을 운영 하는데 두고두고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