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회 안산자락길 걷기 후기입니다.
+ 주님의 사랑과 선으로
기쁨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01. 모임 일시 및 장소
ㅇ일시 : 2020년 1월 18일(토) 오전 9:00
ㅇ장소 : 6호선 마포구청역 2번출구(안)
02. 코스 : 안산자락길
* 구간거리 : 약 7km
* 구간으로는 ;
마포구청역 ○---○ 홍제천 ○---○ 안산폭포광장
○---○ 벚꽃동산 ○---○ 자락길(메타세콰이어길)
○---○ 독립문 공원 ○---○ 서소문성지
( 매주 토요일 서소문밖 네거리 성지에서
오후 3시에 특전미사가 있습니다
시간가능하시면 미사참례도 좋을듯 합니다.)
* 소요시간 ; 약 5시간
03.준비물 :
-.장갑,(경)등산화,식수
-,기부금 1,000원
04 난이도 : "하"
05.참가자명단 (존칭은 생략입니다.)
1. 김성일 임마뉴엘
2. 이문순 요세피나
3. 이재전 프란치스코
06.기부금.
1,000 X 3 = 3,000
※알림 사항
1. 모임 시간 준수
(지각시 진행자에게 미리 연락바랍니다)
2. 진행자(선두 리딩자) 보다 앞서 걷거나
너무 뒤쳐지지 않도록 합니다-
이탈시 진행자에게 사전 연락 바랍니다
3. 일회용품 사용 피하며 개인 컵을 사용합니다
4. 걷기중 일어나는 사고는
진행자및 평의회는 책임지지 않으며,
안전 사고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5. 체력에 맞게 주3회 정도 걷기 생활화를 합니다.
홍제천길 따라 걷다보니
기둥에 유명화가들의 그림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 그중 일부를 올립니다.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소', '싸우는 소', '흰 소'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화가 이중섭.
그는 근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반만년 역사 중 너무나 아픈 격동기였던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시기를 살아왔던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착하고 근성 있는 한국인을
묘사했던 천재 화가였습니다.
다소 투박하지만 강렬한 그림체로 그려진 그의 작품은
당시의 역사를 관통하며 아픔 속에서도
우직하고 묵묵하게 살아간 한국인을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고통 속에 울부짖는 것이 아닌 힘들고 슬프지만 맑은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작품 속 소의 모습은
당시의 한국인의 모습을 투영하며 영원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 불행한 천재 화가 " 라는 수식어 처럼
화가 이중섭의 일생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의 말로(末路) 처럼 자신의 예술 세계를
알아주지 못한 시대에서 그는 외롭고 쓸쓸하게
저물었다고 합니다
동양화가. 호는 운보(雲甫). 김기창
7세 때 장티푸스로 언어불능에 청각까지 잃었으나,
김은호에게 그림을 배워
18세 때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 첫 입선했습니다.
연 4회 특선을 했으며, 24세 때 선전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습니다. 해방 전에는 김은호의 영향으로
정확한 선묘와 설채(設彩)를 바탕으로 한 인물화와
자연풍경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고 해요
<널뛰기>(1931) <물새>(1932) <여(女)>(1932)
<정청(靜聽)>(1933) <금운(琴韻)>(1934) 등
선전에 출품, 입선한 작품에 그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27세에 선전 추천작가가 된 후 일제 군국주의에 동조하고
조선총독부 전시체제와 문예정책에 협조하였습니다.
친일미술가조직 구신회(九晨會)에 참여하거나(1941)
조선남화연맹(朝鮮南畵聯盟) 전시회(1942),
반도총후미술전람회(1942ㆍ1943),
결전미술전람회(決戰美術展覽會)(1944) 등에
일본화 부문에 일본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그림을 출품하였고. [매일신보]에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시화 연재물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1943)의
삽화를 그리는 등 친일행위에 적극 가담했다고 합니다
1만원권의 세종대왕을 그려넣기도 한 그였지만
친일행적으로 많은 논란을 낳았습니다..
올해 영화계에 봉준호 감독이 있었다면,
미술계 새 역사는 김환기 화백이 썼습니다.
처음으로 백억 대 작품이 나온 건데요,
하지만 아쉽게도 미술 시장은 더욱 침체돼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합니다.
8,800만 홍콩 달러, 우리 돈 131억8천만 원.
김환기의 작품 " 우주" 의 낙찰 가격입니다.
우리나라 미술 작품 가운데 경매가가
100억 원을 넘은 것은 처음으로,
한국 미술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습니다.
에블린 린 ( 크리스티 아시아 미술 부회장) 의 말에 따르면
길게 봤을 때 김환기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이 작품이 계속 기록으로 남을 거라고 믿는다 말합니다..
홍제천을 유유히 노니는 조류들
홍제천은 분류상 지방 2급하천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조선시대에는 하천연안에서
중국의 사신이나 관리가 묶었던 홍제원이 있던 곳으로
당시에 " 홍제원천 " 으로 불리며
제법 유명했다고 전해지는 하천이예요..
윗돌무지 / 아랫돌무지
락가든이라는 뜻이래요
큰바위들로 만들어진 정원..
홍제천은 북한산 수문봉, 보현봉, 형제봉에서 발원하여
종로구, 서대문구를 관통하여 한강으로 흘러가는
지방하천입니다. 홍제천 분수대 옆에 설치된 물레방아는
강원도 정선군 백전리에서 100여년 전부터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전통 물레방아를 재현 한 것이라 합니다. .
전기가 없던 옛날에는 탈곡과 정비,
제분을 할 경우에는 물레방아를 사용하였습니다.
물레방앗간에는 맷돌, 장독대, 연자방아도 만들어 놓았어요
메타세콰이어길에서..
봉수대로 올라가는 중에 차 한잔의 여유를 가졌습니다..
무악정에서..
봉수대에서..
꼭 가보아야할 곳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1908년 의병탄압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세워졌던
경성감옥을 시초로 하고 있으며,
1923년 서대문 형무소로 개칭되었습니다.
이후 해방 뒤에도 교도소, 구치소로 활용되다가
1987년 교도소 시설은
경기도 의왕시로 옮기었고,
박물관, 문화재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는 그 건물에 서대문독립공원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대한제국 말기에 지어져 일제 강점기 때의
독립 운동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의
정치적 격변과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여러 주요 사건과 연관된 장소가 되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하여 보니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겪었을 고초를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지고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조형물
각종 고문기구들과 사형장(가운데)
유관순 열사
(1902년 12월 16일 ~ 1920년 9월 28일)
유관순 열사에 대한 삶의 역사적 평가는
우리 민족의 최대 운동인 3.1운동을 이끈 선구자로서
나이 어린 여자의 몸으로 주눅이 들지 않고
일본 재판정에서도 당당하게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한 인물로 민중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가
'이러이러한 일을 했으며' '이러이러한 인물이다'라는
당대의 평가가 기록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느 독립운동가가 당시에 존경받았고
독립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처럼
나이 어린 여자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연히 나서
훌륭한 동기부여가 될만큼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32호로 지정된 독립문(獨立門)
일제에 독립하기 위해 지어진 문은 아니고
청나라에 조공바치는 나라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한 대한제국임을 기념하기 위해
1896년(건양 1) 독립협회(獨立協會)가
한국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청(淸)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 자리에
전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하여 세웠다고 해요
창건 당시의 면적 2,800㎡였으며,
총공사비는 당시 화폐로 3,825원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갑신정변 실패한 후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갔던
독립운동가 서재필(徐載弼)의 주도로 건립되었으며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서 스케치한 것을 근거로
독일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를 하였으며 공역(工役)은
건축기사 심의석(沈宜碩)이 담당하고
노역(勞役)은 주로 중국인 노무자들을 고용하였다고 해요.
공사비는 주로 기부금으로 충당, 1897년에 준공하였어요
그리고 후에 일제 총독부에서 관리했다고 하는데
위치도 여기가 아니었는데 옮기고 막 그랬다 하고,
독립문이라는 글씨가 이완용이 글씨라는
말이 있고 아니라는 말이있고
논란이 있다고 하네요. 암튼 좀복잡한듯 함^^!! ㅋ
한글로 " 독립문 " 표시된 곳이 앞문이고
한문으로 " '獨立門 " 으로 표시된 부분이 뒷문이예요.
재료는 주로 화강암을 사용하였는데,
구조는 중앙에 홍예문(虹霓門)이 있고
왼쪽 내부에서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어요
문 앞에는 구(舊)영은문의 주초(柱礎)였던
돌기둥이 2개가 있어요
1979년 성산대로를 개설하면서
원래 독립문이 있던 자리에서
북서쪽으로 70m 떨어진 곳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하고
예전자리에는 독립문지라는 표지판을 묻어놓았다고 해요
처음은 그 많은 독립운동가 중 서재필 동상만이
독립공원에 왜 있는지 궁금했하였는데,
지나간 역사를 살펴보니 독립문을 세우게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합니다..
안산자락길과 서대문형무소를 걸은후에
영천시장에서 맛나는 점심을 가졌어요..
※ 그리고 혼자 가는길 중에 있는 서소문성지를
둘러본 후에 다시 올려 보았어요..
순교 십자가
조선시대 죄인들의 목에 씌웠던
칼을 형상화하여 중첩배열함으로써
이 땅에서 죽어간 많은 의로운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고통속에서 땅을 뚫고 나와
하늘로 치솟는 작품의 형태는
의로운 이들의 기개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경순 작
피할수 없는 구속
모든것을 박탈당한 죄인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순교자들이 주님을 부르는 소리는
텅 빈 벽에 부딪쳐 메아리처럼 울려퍼져
단단한 벽을 뚫고 어두움을 빛으로 승화시킵니다.
높낮이가 다르고 비대칭적으로 배열한 조각들은
심한 고문으로 요동치는 순교자들의 믿음이
고통을 넘어 희망의 빛을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안의 둥근 형상들은 그 빛을 통해 거룩하게 변모된
순교자들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한 끼의 기도
단단한 껍질과 흙을 뚫고 새싹이 움터 나오듯
순교자들을 구속했던 형틀과 끊임없는 고통을
가했던 잔인한 고문의 도구들 속에서
구원의 십자가가 보입니다.
또한 겹겹이 쌓아놓은 형틀과 고문의 도구들은
굽힐줄 모르는 순교자들의 기상과 믿음앞에서
박해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강한 구원의 의지를 나타냅니다..
모란당초문 장식장
손대현 작
museum library
동백 자개조각 옻칠 브로치 / 옻칠 자개 발포 pvc
동백 자개조각 옻칠 목걸이 1 / 동백 자개조각 목걸이 2
이현경 작
첫댓글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잘 걸었습니다
후기도 훌륭합니다
다음 길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