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5대 황제 옹정제의 어진이다.고려왕들의 어진은 물론 조선왕조도 태조와 영조어진 몇점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우리와 달리 중국은 왕조별 수많은 어진이 전해져 온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옹정황제 복식을 살펴 본다. 사자문양의 화려한 다리와 황금용 문양이 조각된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정면관에 밝은 황색의 여름용 조복을 입고 있는 전신 좌상이다.오른손은 조주라 부르는 백팔염주를 쥐고 오른손은 무릎위에 올리고 있다.
이런 모습은 청대 황제들의 기본 포즈이다.하얀 띠가 둘러진 붉은 색 모자 중심에는 동주 15개로 장식하고 그 가운데 금불상을 모시고 있다.모자 꼭대기의 장식은 관정이라 부르는데 3층으로 구성되어 동주 1개씩 꿰고 금룡 네마리로 연결하였다.맨 위에는 대진주 하나를 달았다.용포는 가슴 정면에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황룡이 금실로 수놓아져 있고 소매는 푸른 빛의 말굽 소매이다.허리에는 조대를 차고 머리부분이 각진 신발을 신고 있다.
특이한 것은 청나라 황제들이 백팔염주와 금불장식.관정장식에 들어가는 진주를 대동강과 두만강에서 채취한 동주를 사용했다는 점이다.백두산 아래 두만강은 여진족의 발상지이다.
옹정제는 아버지 강희제와 더불어 학문을 좋아한 황제였다.강희제는 유교를 숭상했지만 옹정제는 불교에 심취한 것이 다른점이다.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경을 읽고 정사를 시작하면 밤 12시까지 지방에서 올라온 결제서류를 꼼꼼히 챙겼다고 한다.옹정제는 자신이 거처하던 양심전에
천하가 다스려 지는데는 한 사람의 책임에 달린 것이니 자신의 한몸을 위해 천하를 희생시키지는 않으리라.ᆢ는 글을 적어 놓고 정무를 수행했다.그는 중정인화.라는 편액을 남겼는데 황제는 중립적이고 정직하며 인자하고 조화로움을 갖춰야 된다고 하였다.
뻬이징에서 유명한 옹화궁은 옹정제가 태자시절 살던 집이다.황제에 즉위한후에 옹화궁은 사원으로 개축되어 청나라 황실사원이 되었다.문화혁명때 주은래의 보호로 파괴 위험을 넘기고 지금까지 최고의 라마사원으로 내려 오고 있다.
옹정제는 아버지 강희제가 지어서선물한 원명원에서 청나라를 반석위에 올려 놓고 황제의 삶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