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절에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좌익이나 우익이라는 어원은 18세기 불란서 혁명 당시 국회에서 과격파는 좌편에 앉아 있었고, 온건파는 오른편에 앉아서 불란서 혁명에 대하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온건파는 우익이라 하였고, 과격파는 좌익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정치상으로 공산주의를 좌익이라고 하고 민주주의를 우익이라고 합니다.
1. 성경적으로 나타난 좌익과 우익은 무엇인가
(1) 벌과 어두움은 좌익, 빛은 우익이며, 미련한 자는 좌익, 지혜자는 우익이라고 합니다.
(2) 심판 날에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었으니 선한자는 우익이요, 악한 자는 좌익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현대는 동서, 좌우, 진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물질주의와 신앙주의가 쌍벽을 이루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치되고 있습니다. 세상 유물론 주의는 사람을 단순한 물질로 보기 때문에 내세의 신앙 같은 것을 무시하며 현세의 삶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내세를 소망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좌우로 나눈 상황 속에서 결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2. 본문에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빛과 어두움의 대립을 말했습니다.
전 2:14에 “지혜자의 눈은 밝고 우매자는 어두움에 다니거니와”라고 했으며, 엡 5:3-14에서는 빛의 열매와 어두움의 열매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에 있다고 하였고, 어두움의 열매는 음행, 탐욕 더러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 14: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자는 미련한 자요, 좌익이라는 말입니다. 좌익의 근본 사상은 무신론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자는 자기 조상이 없다는 자들과 똑같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성을 지나치게 의존하여 하나님의 실체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결말은 멸망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은 다 지옥에 들어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I
3. 그러면 지혜자의 우편에 걸어가는 자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믿음과 양심으로 사는 파입니다.
마 5:8에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눈이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양심으로 느낄 수 있는 분입니다.
어떤 무신론자 학생이 목사님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열심히 설명해 주었으나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마음속에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학생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하기보다 그대 속에 말할 수 없는 죄를 회개해야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무엇을 생각하듯 하더니 돌아갔습니다. 그 날 밤중에 그 학생이 다시 찾아와 벌벌 떨면서 “목사님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학생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 주었고, 학생은 회개하고 난 후에 하나님을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요 1서 1:5-5에 “하나님은 빛이시니 털끝만치도 어두운 곳이 없으시니 하나님과 사귀었다고 하는 자가 어두움에 행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믿음과 양심에 따라 살지 못하면 하나님과 사귄 자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4. 미련한 자는 어떤 생활을 하는 자입니까?
눅 12:20에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돈만 알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육신만 알고 영의 문제를 등한히 하는 자요 현실만 알고 내세를 무시하는 자요, 자기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생각할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30분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어떤 유망한 청년이 35세에 박사과정까지 다 마치고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난 후에 심장에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가 보았습니다. 의사의 진단 결과가 급성 심장암으로 30분 후에 죽는다는 사형선고와 같은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의사는 그 청년에게 “죽음의 준비를 하시요”라고 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너무 허망했습니다. 그 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우편배달부가 편지를 배달해 주었습니다.
내용인즉 삼촌이 죽었다는 부고와 함께 그 많은 재산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이 합격했다는 소식입니다. 30여년동안 공부했던 결과 이제 박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박사라는 학위가 이 청년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시간은 흘러 10분 남았습니다.
그런데 편지가 왔습니다.
20번이나 구혼 편지를 보냈으나 거절 했던 그 애인에게서 그가 그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소원하였으나 막상 자신이 죽음 앞에 서게 되니 결혼 승낙서도 그가 바라고 원했던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었으나 자신이 죽게 되니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죽게 되면 백만장자의 상속권도 인생이 이렇게 허무한 것이로구나 생각하고 그 동안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죽을 때 후회하는 인생은 미련한 자입니다.
5. 옳은 것은 옳은 편이요 그른 것은 왼편입니다.
마 25:31에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우편에 앉은 양들에게 “아버지께 복을 받을 너희들은 나아와 이 세상 창조할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하였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라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대접해 주었고 헐벗었을 때 입혀 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시자 양들이 “언제 우리가 그렇게 하셨나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왼편에 있는 염소는 이와 반대였고,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로 일했고 주의 이름으로 선한 일도 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지극히 작은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자신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며 책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익과 좌익을 자비의 마음과 행위로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활을 개인 위주에서 이웃 위주로, 하나님의 위주로 삶의 방향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4:7-8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워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해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기다리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를 항상 살피면서 하나님의 우편에 속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펴온 글)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