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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오는 좋은 기별
성경본문: 잠언 25: 25
25.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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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별을 갈망함
저는 매일 집을 나설 때마다 편지함을 들쳐봅니다. 뭐 별로 편지 보낼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기대감을 갖고 편지함을 뒤집니다. 며칠 전에는 큼지막한 전보 한 통이 편지함에 들어 있었습니다. 딱히 전보 올 곳도 없는데 웬 전보인가? 급한 일이면 전화로 연락할 일인데? 얼른 집으로 들어가 뜯어보니 거래 은행에서 생일 축하 전보를 보낸 겁니다. 거창하게 은행장 이름으로! 내 생일이 며칠인지 나도 모르고 있는데 낮 모르는 은행장이 조무래기 고객에게 생일 축하를 다 해주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사람마다 좋은 소식을 기대합니다. 특별히 좋은 소식을 보낼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기대를 합니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냉수 한 그릇을 기다리듯이 좋은 소식에 목말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그만큼 이 세상에 좋은 소식보다는 좋지 않은 소식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이 세상은 좋은 소식보다는 좋지 않은 소식이 지배합니다. 요즘 신문사들의 세무 조사로 말이 많습니다. 그것 때문에 보수와 진보가 싸우고,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신문과 텔레비전이 싸우고, 소설가와 정치인이 싸우고, 학자와 학자가 싸우고, 영남과 호남이 맞붙어 싸웁니다. 제가 볼 때에 이 문제는 언론 자유 문제도 아니고 정치 문제도 아닙니다. 그냥 더러운 개판 싸움이요 감정 싸움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우리나라 신문의 품위가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사의 충실성보다는 장삿속에 치우쳐 경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광고주를 모으려면 많이 팔려야 하고, 많이 팔리려면 품위보다는 대중의 기호에 맞는 신문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기사의 중요성보다는 호기심을 따라 머릿기사를 결정합니다. 진실성보다는 정치인들이 한탕주의로 터뜨린 것들을 대서특필합니다.
요즘 신문들을 보면 자기 변명으로 신문을 도배질 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왜곡이 너무 심해요. 이런 신문들을 보고 어떻게 세상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언론은 독자에게 진실을 전달함으로써 바른 판단을 하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얘기가 엉뚱한 데로 흘렀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한 것은,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 태도입니다. 긍정적인 얘기보다는 부정적인 얘기가 기사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잘 되어 가는 얘기보다는 잘 안된다는 얘기가 주종입니다. 아마 이렇게 된 데는 독자들의 좋지 못한 습성도 원인이 되었을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소식보다는 좋지 않은 소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신문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신문 지면을 보세요. 기사화 되려면 우선 관심을 끄는 얘기가 되어야 합니다. 자연히 부정적인 얘기가 앞서는 겁니다. 범죄 소식, 사고 소식, 경제 불황 소식, 정치인 싸우는 소식, 부정 부패 소식, 교육 실패 소식....맨 그런 겁니다.
뉴스(NEWS)란 단어는 동서남북(NORTH, EAST, WEST, SOUTH)에서 온 말입니다. 동서남북에서 좋은 소식을 주워 모아야 될 텐데, 오히려 나쁜 얘기들만 모아놓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긍정적인 얘기, 좋은 얘기들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좋은 소식을 갈망해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기별의 효과
좋은 소식은 우리 인생에 좋은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눈의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잠15:30) 좋은 소식은 뼈를 윤택케 한다고 합니다. 좋은 소식을 들으면 그만큼 삶이 건강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문이든지, 텔레비전 뉴스든지 좋지 않은 소식은 될 수 있는 한 보지도 않고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집에서 대화를 할 때에도 부정적인 話題
는 올리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주로 웃을 수 있는 얘기를 하고, 기쁨을 주는 일에 몰두합니다.
좋지 않은 소식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엘리 집안이 몰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갔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길가 의자에 앉아서 전쟁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병사가 달려와서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했고, 엘리의 두 아들은 전사하고, 법궤는 빼앗겼다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는 만삭의 몸으로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남편의 소식을 듣자마자 갑자기 고통하면서 아이를 낳다가 죽습니다.(삼상4:17-22) 요즘 세상에 왜 그렇게 암이 많은지 아세요? 그게 다 좋지 않은 소식만 듣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겁니다.
이 세상은 나쁜 소식으로 가득합니다.
아무리 듣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 옵니다. 이런 나쁜 얘기들만 듣고 살다 보면 멀쩡한 사람도 저절로 병이 납니다. 그렇잖아요? 밤낮 신물나는 얘기만 듣다 보면 스트레스 받아서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져요.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살려면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홍수와 같이 몰려드는 나쁜 소식들을 덮어두고 긍정적이고 좋은 소식에 초점을 맞춰서 사시기 바랍니다. 좋은 소식을 들으면 영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좀 극단적인 얘기이긴 합니다만, 북한 사람들을 보세요. 수 십 만 명이 굶어 죽고 있는데도 자살했다는 얘기가 없고 정신 질환자 얘기가 없어요. 항상 긍정적인 얘기만 보고 듣다 보니 굶어 죽으면서도 자신들이 망해간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겁니다. 오늘 이 멀쩡한 대한민국에서 마약에 중독되고,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병난 겁니다. 왜 이렇게 됐나요? 나쁜 소식에 쩔어 온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겁니다.
좋은 소식에 귀를 기울이세요.
사람은 무슨 소식을 듣고 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이 진리를 철저하게 체험했어요. 지난 목요일 오후에 저는 우리 교회 집사님 중에 한 분이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밥맛이 갔습니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숟가락을 놨습니다. "휴식은 무슨 휴식이냐? 교인이 이렇게 아픈데...." 하루 종일 우중충한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에 전화가 왔습니다. 집사님이 큰 병원에 가서 CT 촬영도 하고 내시경도 봤는데 암이 아니라는 확실한 진단이 나왔다는 겁니다. 갑자기 입맛이 났습니다. 월요일 날 뭘 할까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쁜 소식은 사람을 병나게 하고, 좋은 소식은 사람을 살립니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
오늘 말씀에 보면 "먼 땅에서 오는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멀리서 오는 소식일수록 기쁨을 더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솔로몬이 말한 "먼 땅"이란 외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먼 타국에 외교 사절을 많이 보냈습니다. 그의 1000명이나 되는 부인들은 주로 외국에서 데려온 女人들이었습니다. 이런 나라들 가운데는 사이가 좋은 나라도 있고, 사이가 나쁜 나라들도 있습니다. 만일 어떤 외교 사절이 적성 국가에 가서 평화 조약을 맺고 왔다면 얼마나 반갑겠습니다. 솔로몬은 이집트나 스페인에 무역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먼 나라에 갔던 무역선이 금은 보화를 가득 싣고 왔습니다. 더불어서 국가적으로 유익한 소식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우리는 때때로 먼 땅에서 오는 좋은 소식을 기다립니다.
과거 60년대, 70년대에는 많은 근로자들이 중동 지방에 나가서 일을 했습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일하느라 고생하는 남편에게서, 혹은 아들에게서 잘 있다는 편지가 왔을 때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월남전 때에도 많은 병사들이 參戰을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만, 당시에 어떤 라디오 방송에 "파도를 넘어서"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저녁 시간에 전선에서 보내온 편지들을 읽어 주는 프로그램인데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외국에 유학 가 있는 자녀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혹은 군대에 가 있는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러나 먼 땅 중에서도 가장 먼 땅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하늘 나라입니다. 가장 먼 곳에서 온 소식! 좋은 소식 중에서 가장 좋은 소식! 그것은 바로 천국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낸 소식! 가장 기쁘고 좋은 소식입니다. 성경은 이 소식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福音"이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ευαγγελιον)입니다. "좋은(ευ) 소식(αγγελοσ)" 즉, "good news"란 뜻입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일 수 밖에 없습니다.
첫째로, 내용이 좋으니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되라! 영생을 얻으라! 천국 백성이 되라! 얼마나 좋은 소식입니까? 서울역이나 명동 거리에 가서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라고 해 보세요. 아마 미친 사람인줄 알 겁니다. 그러나 핸드폰 공짜로 준다고 외치면 줄줄이 모여들 겁니다. 백화점 세일 때 보세요. 몇 푼 되지도 않는 사은품 준다는 소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러나 막상 죽을 날이 가까워 보세요. 핸드폰 공짜로 준다는 소식이 그렇게 기쁜 소식입니까? 백화점 사은품이 다 뭐 말라 죽은 겁니까? 임종을 앞두고 유언을 하는 환자에게 말해보세요. "핸드폰 공짜로 드린대요!" 그러면 아마 "별 정신 나간 놈이 다 있다!"고 할 겁니다. 죽을 날이 코앞에 다가오면 제일 반갑고 기쁜 소식이 천국 소식, 영생 소식, 하나님 자녀 되라는 소식입니다.
저는 죽음을 앞 둔 분들에게 병상 세례를 베푼 적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환자들이 큰 기쁨을 얻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영생 천국 얘기하면 미친 소리 같지만 죽을 때가 되면 누가 정말 미친 사람인지 분명해 집니다. 우리 생애에 가장 좋은 소식은 바로 천국 소식입니다.
둘째로, 누구든지 쉽게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좋은 소식입니다.
만일 천 명에 하나, 만 명에 하나 겨우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무슨 재산을 털어 바치라든지, 죽도록 고행을 하라고 하든지, 자선 사업을 해야만 한다고 하면 좋은 소식이 아니예요.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면 좋은 소식이 아니라 슬픈 소식입니다. 복음이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는 것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하나님 자녀로 받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떤 죄를 지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신분이 상관이 없습니다. 많이 배웠든지 적게 배웠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머리가 좋든지 나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지위나 권세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그렇다고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 무가치하고 가벼운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쉽게 얻을 지라도 그 쉬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비싼 대가를 지불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해지셨습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가난해지셨습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수모를 당하시고 아픔을 당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귀한 생명을 바치셨습니까? 그 모든 희생 때문에 누구든지 쉽게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좋은 소식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지금 믿는 자 속에 함께 하시니 좋은 소식입니다.
만일 우리의 구원이 먼 훗날을 위한 것이라면 현재의 기쁨은 실감이 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믿는 즉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저는 장성한 자식들을 밖에 내보낼 때마다 임마누엘 때문에 마음에 평안을 얻고 위로를 받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병치레 걱정을 했는데, 장성하니까 바르지 못한 생활이나 사상에 물들까 걱정입니다. 요즘은 자동차 운전까지 하고 다니니 걱정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마음에 평안을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121:1-8)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얼마나 좋은 소식입니까?
좋은 소식 중에 가장 좋은 소식! 먼 땅 중에 가장 먼 땅에서 오는 소식!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소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라는 소식입니다. 영생을 얻으라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의 전파자가 되라.
오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세요.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메신저가 있습니다.
첫째는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요,
둘째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입니다.
기왕이면 좋은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시기 바랍니다. 좋은 소식은 천사가 전하고 나쁜 소식은 인간이 전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1:19,2:10) 오늘 우리는 천사들이 맡았던 좋은 소식의 전파자들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나쁜 소식은 굳이 내가 전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세상 사람들이 전합니다.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지 말라.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잠25:9-10)
좋은 소식을 전파하세요.
성경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의 신하 요압 장군이 이끄는 진압군과 압살롬 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다윗은 전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투 결과 압살롬 군은 제압당하고 압살롬 역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고자 몇 사람의 병사들이 나섰습니다. 반란군이 죽었으니 좋은 소식 아닙니까? 그래서 서로 먼저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압 장군은 이런 병사들을 말렸습니다.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날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삼하18:20)
아무리 반란군이라 해도 아들 아닙니까?
아들이 죽은 것을 좋아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굳이 그 소식을 내가 앞장 서서 전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나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로 뽑으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61:1-2)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사40:9)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5)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10)
오늘 좋은 소식의 사도들이 되십시오.
이 세상은 나쁜 소식이 너무 많습니다. 온통 매스컴이 나쁜 소식으로, 부정적인 소식으로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갈망합니다.
본문 말씀에 "목마른 사람"이라고 번역한 것은 의역입니다. 히브리 원문에는 "지친 영혼"(weary soul)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영혼은 좋은 소식을 듣기 위해 지쳐 있습니다. 이렇게 지친 영혼들에게 시원한 냉수 같은 좋은 소식을 전하세요. 매일매일 편지함에서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내 자신을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좋은 소식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좋은 소식을 들으세요. 좋은 소식 중에 가장 좋은 소식은 천국 소식입니다. 복음입니다. 영생 소식입니다.
먼저 이 소식을 들으세요.
그리고 이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남들이 내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기만을 기다리지 마세요. 먼저 내 자신이 목마른 사람에게 시원한 냉수 같은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