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그리고 공동체 이야기
2008-02
“ 판” - 개판(?), 이판사판(理判事判) 그리고 새 판짜기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여기서도 주워들은 말에다가 내 얘기를 조금 더 첨가해보려 한다. 지나쳐간 연도들을 돌아다 보건데, 매년 연초가 되면 써가야 될 이야기가 익히 떠오르지 않아서, 십이지(十二支) 중에 그 해에 찾아온 동물 이야기를 늘어놓던가? 아니면 지난해의 이 나라 정세를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공감해서 표현된 고사성어를 갖다가 함께 덩달아서 말을 그저 꾸며 보는 것에 불과했던 것 같다. 이번 이야기도 그저 그런 것에서부터 출발 해보고자한다. 먼저 달에 이야기한 서대산기슭 사방댐 건너 그림 같은 집을 끼고 산보(散步)를 하려고, 가파른 서대리 마을 쪽으로 같은 식구 남녀 청년과 처와 두 아이가 함께 여섯이 길을 나섰다. 한동안 차도를 따라 걷다가 경사가 급한 비탈길로 올라, 완만한 산길을 따라 걸어 내려와 성당리 마을 쪽으로 내려와서는 한참 도로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 산기슭은 차량으로도 오르내릴 수 있는 길인데, 길을 따라 여러 집들이 들어서있다. 그런데 산 길가의 집들 대분이 여러 마리의 개들을 기르고 있어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되면 북새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곳저곳에서 개짓는 소리가 요란을 떨어댄다. 나는 다리를 저는 가운데에도 같이 걷는 이들에 비하여 걸음이 빠른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일에서도 걷다보면 처와 보조(步調)를 못 맞출 때가 많다. 다정다감한 남편이 못될 때가 많은 것을 되돌아본다. 느림의 아름다움을 터득하지 못한 덜 익은 미숙아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첫째 아이와 계속하여 걸음걸이가 앞서나가고 있었다. 한참을 가다가 요란스럽게 개짓는 소리를 듣던 아이가, “아빠 이거 개판이네”하는 그 아이 심성으로써는 도무지 나오지 않을 법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연히도 그 첫째 딸아이가 열두 가지 가운데 개띠라는데 흥미가 있다. “야 너도 개띠이면서, 너 개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냐?” 요즈음의 아이들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많은 아이들이 우리 소시(少時)적보다도 더 말들이 거칠어지고, 또한 한마디나 두서너 마디 말을 줄여서 신종어(新種語)를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그 비근한 예로 휴대폰이나 인터넷에서 오고가는 문자 멧세지라는 것을 볼 때도 말들을 줄여한다는 풍신(風神)들이 그러하다. 첫째 아이가 개판이라 말했으니, 어디 오늘은 그 개 이야기, 혹은 그 무슨무슨 판이라는 거, 뭐 그런 얘기 좀 늘어놓으려한다.
막 말을 할지라도 양해를 바란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 하였다. 그러나 개판하면 진흙땅에 개싸움인 이전투구(泥田鬪狗)고, 토사구팽(免死狗烹)이고, 뭐 묻은 개 뭐 나무란다는 식이다. 그리고 판하면 농담으로 말하는 이판사판공사판을 말하는 이판사판(理判事判)이다. 앞의 토사구팽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냥개에 의해서 토끼가 잡히고 나면, 그 사냥개는 쓸모없는 개가 되어 주인에게 잡혀 먹히게 된다는 뜻으로써, 적국을 정복한 뒤에 전공(戰功)이 있었던 충신이 죽음을 당하게 됨을 비유한 말인데, 필요할 때는 소중히 여기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 막 되먹은 세상을 말함이리라. 이번에 어느 당에서 아무개가 하는 말이 “십년동안 당을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다 기울였는데, 과거에 고작 벌금형 받은 전력이 있다고 해서, 작은 일을 가지고 그것이 법에 접촉된 것을 문제 삼아 국회의원 공천에서 누락시키려고 하는 작태가 토사구팽이 아니고 뭐란 말이냐?” 그러면서 발끈하니, 공천배제를 금고형 이상에만 적용하고, 벌금형까지는 공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이번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사람도 포함시키려는 자구책(自救策)을 써보고 있다. 가타부타 결정(決定)지음에 있어 심사숙고해볼 일이다. 예전 1970년대에 개에 비유하여 나보다 더 실날하게 세상사를 풍자한 시인 김지하(金芝河)가 있다. 그는 장준하 선생님의 1970년 상상계 5월호에서(*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이기도 했던 장준하 선생님이 1953년부터 주도하여 발행된 사상계(思想界)는 통일문제, 민주주의, 경제발전, 새로운 문화 창조, 민족적 자존심의 양성 등을 편집 방향으로 발행되었으며, 독재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할 말을 하는 대표 정론지로서 1950년대 지식인층 및 학생층 간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으며, 그 인기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압도했었던 월간 잡지다) 발표된 시 오적(五賊)에서 다음과 같은 극히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말을 한다.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여기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 하는 간뎅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이 질기기는 동탁배꼽 같은 천하 흉포 오적의 소굴이렸다” 그는 그 시에서 개견(犬)자를 넣어 조어(助語)를 만들어서 사용해서 그 사람들을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 비유하였다. 그 결과로 그는 오랜 동안 옥살이를 하여야만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떠하셨는가? 성서의 부분 부분만 떼어다가 말을 해보자면, 자신이 활동하시던 그 당시 나라 임금님인 왕 헤롯을 향하여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누가복음 13:32). 그 헤롯을 향하여 오늘말로 막말을 하자면 “저 여수에게 가서 말하여라(?)” 뭐 그런 격한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태복음 15:26-27)
그 다음에 판을 말한다면, 판은 일이 벌어진 자리나 장면을 뜻하는데, 그래서 투전(投錢)판이 벌어지다. 판을 깨다라고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그 판 말고, 이야기를 이판사판(理判事判)으로 돌려보고자 한다. 그 말이 생기게 된 연유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판사판은 막다른 궁지또는 끝장을 뜻하는 말로 뾰족한 묘안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한자말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붙어서 된 말이다. 그리고 이 이판과 사판은 불교 용어로서 조선시대에 나타나게 된 말이다. 조선은 건국이념으로 억불숭유(抑佛崇儒)를 표방하였다. 이것은 고려 말에 불교의 폐해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조선의 건국에 신흥 유학자 사대부 세력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불교는 정권의 교체와 함께 하루아침에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천민 계급으로 전락한 승려들 또한 활로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되었는데, 그 하나는 사찰(寺刹)을 존속시키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불법(佛法)의 맥(脈)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는 폐사(廢寺)를 막기 위해 기름이나 종이, 신발을 만드는 제반 잡역(雜役)에 종사하면서 사원을 유지하였다. 한편으로 이와는 달리 은둔(隱遁)하여 참선 등을 통한 수행으로 불법을 잇는 승려들이 있었다. 이를 두고 잡역에 종사하며 사원을 유지하려했던 이들을 사판(事判) 중이라 했고, 숨어서 참선 등을 했던 이들은 이판(理判) 중이라 하였다. 결국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의 현대 불교가 이어오는 것도 이 두 부류의 승려들이 자신들의 소임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이판사판의 뜻이 전이(轉移)되어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된 데에는 시대적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억불정책은 불교에 있어서는 최악의 상태였다. 승려는 최하 계층의 신분이었으며, 성안으로의 출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자연히 당시에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막다른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판이나 사판은 그 자체로 “끝장”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나라는 새 해인 무자년(戊子年) 정월 초하루가 가고, 몇 날이 아니 되면 새 대통령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일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새 판짜기에 바쁘다. 어떠한 판 벌리기를 해나갈려는지? 사뭇 기대가 된다. 아무쪼록 민의(民意)를 헤아리는 정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을 바래본다. 다 아는 얘기이지만, 성장지상주의의 정책이기보다는, 분배도 함께 동반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예부터 나랏님은 하느님이 낸다고 했으니, 그 분에게 하나님의 인도가 있기를 바래본다. 뭇 서민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의도로 태평고(泰平.鼓)를 상징물로 내세웠다하니, 한번 두고 볼일이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는 다음의 말씀이 기록되어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옛날식으로 말하면 신복들과 함께 백성들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警醒)하기를 자기가 뉘우칠 자인 것같이 하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민초(民草)들에게 이르기까지 고루고루 살피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그럴 때에 국민들이 즐거움으로 나랏일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하지 않을 것이다. 모쪼록 우리들이 유익이 되는 나라, 바로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인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님들이 아니셨으면 한다. 흘러간 노래 중에 말하기를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차면 기우나니”라는 말이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즉,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겨가며 붉지 않다는 얘기다. 또 권불십년(權不十年), 곧 아무리 권력을 가졌어도 그 권력은 십년을 채 못 간다는 말이다. 사람들에게 “이 정부는 더 나은, 즉 소시민들의 신복(信服)이 되었었노라고” 대다수의 백성들에게서 회자(膾炙)되기를 새 희망을 가지고 기대해본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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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채경일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대전성남교회 중등부에서(정민량 목사님) 2008년 1월 24-26일까지 새터공동체에서 겨울 수련회 모임을 가졌습니다.
* 2008년 2월 3일 주일 오후에 매달 방문하여 섬겨주시는 대전 살림교회 박상용 목사님과 교우들이, 새터공동체 식구들을 급경사의 계단을 오르는, 박병민 목사 가정이 거처하는 위엣 건물 2층 사택으로, 등에 업은 상태로 모셔다 주셔서, 그곳에서 박상용 목사님 인도로 공동체 식구들과 살림교회 교우들이 함께 사택 방문 겸 주일 오후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 계신 분들 가운데 가장 오래 되신 2000년 5월부터 오셔서 사시는 박 선생님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 목사 가정을 처음 방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택 건물이 2층에 있다는 이유로 중증 장애인들이 오르지 못할 공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제한된 우리들의 엄연한 현실적 문제 속에서 파생된 결과들입니다. 장애인들이 못 다니는 곳이 없었으면 합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김기홍.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성삼순외3인).정무래.최영애.라홍채.박종만.진영택.최성재.신평교회.충전교회.양오석.대덕교회(이중삼.정진일).최선희.이원교회.채윤기(박현실).동춘교회6여전도회.대전충남지방통계청.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1인).추부제일교회.세광교회.진명구.금성교회.수영교회.일불사.금산푸드뱅크.임영호.되살미사랑나눔봉사대(김장섭.신현용).금산주부클럽(6인).신평리경로당.충남도청(허창덕외1인).추부새마을금고(방창석).성룡건설산업(김상종).한상익.신건태.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신영숙.그리스도의집(옹인숙).대전성남교회.모란회(4인).금산푸드뱅크.대전노회.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성삼순외2인)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