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이종건씨의 시 <고사목> 외 두 편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시는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를 점한다. 무엇을 보느냐는 내용이나 소재에 그치는 차원이지만, 어떻게 보느냐는 그 주제와 표현방식까지를 포함하는 범주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사진 분야에서 피사체의 선택 이전에 카메라 렌즈의 성능과 촬영 기술이 요구되듯이, 시창작에서는 형상화의 능력도 필요하지만 우선 사물을 보는 인식의 눈이 더욱 요구된다. 문학의 출발점을 인식에 두는 이유도 그렇다. 다시 말해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새롭게 보기’, ‘다르게 보기’, ‘낯설게 보기’가 요구된다. 이종건 씨의 <고사목>은 위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를 고사목과 상관화시키는 것은 사물을 정관하는 인식의 눈이다. 객관적 상관물을 이용하여 뜻을 전달하겠다는 시창작정신이 시인으로 첫 출발하는 자세로 매우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시적 화자는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를 보고 있는 듯하다. ‘산소를 흡수하고도 하루에 수십 번 죽는다’나 ‘식물인 듯 아닌 듯 식물성으로 숨을 유지하는’ 등의 시구는 누워 있어도 움직임을 잃은 사람의 삶은 삶도 아니고 죽음도 죽음이 아니라는 절망적 판단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서 고독한 시간을 멍하니 보내려면 환자나 가족들은 고장난 벽시계를 보고 있는 듯 느껴질 것이다. 백세시대에 와서 사회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병상을 지키며 시간과 공간을 잠식하고 사는 사람을 시적 화자는 ‘고사목’으로 표현했다. 시적 화자가 마주하고 잇는 사람은 고통도 감정도 없이 남의 말을 경청만 하고 있는 수도승이다. 여생은 가로세로 눕는 대로 반듯하다. 이 시는 고령사회의 문제를 정조준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는 안정화된 정서 속에서 직조되어 세련된 미감을 자아내고 있다.
‘짧은 기간 백 년의 고독으로 낮은 숨을 쉰다/ 이젠 천둥도 번개도 찾아오지 않는다’라는 마지막 의미화는 이 시의 백미다. ‘짧은 기간 백 년의 고독’은 살아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생환 불가의 환자를 둔 가족의 잠 못 이루는 심정을 잘 표백하고 있다. ‘천둥도 번개도 찾아오지 않는다’ 역시 절망과 고통의 흔적들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고사목을 지키고 선 가족들의 말못하는 고뇌를 짙게 드러내고 있어 공감을 자아낸다. 의식의 항아리에 고여있는 언어를 발효시키고 여과시켜 곰삭인 뒤에 퍼올린 진곡주라고나 할까, 절망적 상황을 구체화하기 위해 동원한 적절한 시어의 취사선택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그 시어를 연결하는 재치도 비범하다고 하겠다. 시인으로서 새 출발에 큰 박수를 보낸다.
정창원의 <아버지의 뒷모습>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아버지가 사라진 시대 들려오는 사부곡이라 눈길을 끈다. 작가는 결말부에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유산’이라고 썼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작가의 아들들에게 그대로 전이되어, 그 아들도 작가에게 “아버지는 저의 롤모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한 회사에 30년 넘게 근무하셨는데, 성실함을 꾸준하게 유지하셨고 자기발전을 위해 항상 집에 오시면 공부를 하셨습니다.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 몸소 행동으로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라며 존경을 표했다는 것이다. ‘두 아들에게 인정받는 나의 모습은 사실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고 하는 작가의 고백이 자식에게 되물림되고 있어 감동을 준다.
수필은 정의 문학이다. 수필이 좋은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살이에 ‘정’이 필요하다는 작가인식이 형상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때 문학성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언어예술로서 수필의 문학성은 당연히 언어적 형상화에서 나오겠지만, 수필은 언어적 형상화 못지않게 작가의 내면 풍경과 체취 그리고 향기를 내는 인간미가 중요하다. 이 수필은 인식의 측면보다 작가의 인간적 측면이 더욱 부각되는 수필이다. 정씨는 아버지가 “전라남도 민속에 관한 책『우리 조상의 빛난 얼』을 동료 교사와 함께 썼다.”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의 가치와 부자지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어 훈훈함을 안겨준다. 대를 이어가며 이루어지는 부자지간의 서로 존경하는 마음을 수필 형식에 담아 절절한 사부곡으로 승화시켰다. 이 작품 역시 ‘정’의 문학인 수필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수필의 백미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포인트를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설정한 것이고, 그 뒷모습을 ‘세상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유산’으로 의미화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수필은 정의 문학이다. 정이란 인간의 영혼이 응결된 심성의 꽃이다. 맑은 영혼을 드러내는 투박한 그릇이요, 풋풋한 향기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인간애, 그것이 없는 수필은 이미 수필이 아니다. 인간학의 명제에 바로 답하지 못하는 작품은 이미 수필로써 실패한 것이다. 글은 그 사람이다. 무심히 내뱉는 말 속에는 이미 그의 인생관이나 처세의 방식이 드러나 있어,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수필은 인간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녹아있다. 그렇다고 모든 수필이 사랑만 있다고 쓰여지지 않는다. 형상적 체험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최용석의 <마지막 선물>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원래 ‘마지막’ 이란 말이 형용사적으로 쓰인 수필은 대체적으로 모두 감동을 준다. 유한한 인생에서 마지막이란 말은 늘 애잔한 정서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수필은 지장에 출퇴근하면서 만난 어떤 새와의 교감을 바탕으로 쓴 글인데, 동병상련의 감정이 녹아 있어 어떤 작품보다 아프게 읽힌다. 처음에는 자기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한 새가 최씨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가깝게 잘 지내고 싶다는 최씨의 진심을 이해한 새가 다가오면서 서로간의 우정 아닌 우정이 싹트는데, 그 과정과 마무리가 진한 감동을 준다. 사람과 동물 간의 정이 내리는 빗줄기가 메마른 대지를 적셔 생명력을 주듯,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자신의 상처난 치부를 오늘 내게 보여줌으로써 꿋꿋이 병마를 이겨내라고 하는 꾸꾸의 마지막 선물은 아닌지.”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둘의 우정이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수필은 정의 문학이자, 고급문학이다. 가슴에 깃들어 있는 사랑으로 의미화하고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고 하겠다. “한밤중에 족제비의 습격을 받았거나 날카로운 철조망에 걸려서 물갈퀴가 찢어진 것은 아닌 듯하다. 근처에는 족제비도 철조망도 없기 때문이다. 공해와 생활오수에 계속 노출되면서 생긴 질병이 원인이거나, 예전에 가볍고 사소한 상처들이 나이가 들면서 노화현상으로 나타난 건 아닌지. 뇌경색 후유증으로 떨리는 손과 안과질환으로 장기간 복약하는 나로서는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찢어진 갈퀴로 재바르게 물살을 헤쳐나가자면 얼마나 애를 썼을까?”라는 대목은 수필의 문학적 성취를 견인하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문자언어를 넘어서서 작품이 풍기는 향기를 낸다고 하겠다. 이로 인하여 이 수필은 여운이 감도는 울림을 주기도 한다. 꾸꾸를 걱정하는 작가의 심경묘사는 끝없는 여운을 나타내고, 인간미를 부각시켜 향기를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문단에 처음 나오는 작가는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여야 한다. 수필가는 ‘보이지 않는다’의 눈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고, 바람직한 사회의 거울이 되어 휘청거리는 가치를 바로 비추어 내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수필은 내용이 형상화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 선물’은 반드시 있어야 할 당위적 가치를 주제로 내세우고 있는 글로써 심각한 환경오염 또는 생명경시 현상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동물의 위기 상황을 고발하면서, 인정이 메마르고 각박하다고 알려진 우리 사회의 숨은 한 단면을 체험 수법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이 수필은 수필문학이 갖는 본질적 특성인 ‘정’을, 생태적 합리성을 통해 더불어 함께 상생하는 가치덕목으로 승화시켜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깊이 있는 사유와 형상미학의 구현에 신경 쓴 결과가 당선을 영광을 가져왔다고 하겠다.
■ 심사를 마치며
제77회 본지 신인상에 응모해 준 예비 작가분들 그리고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특히 바쁜 일상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좋은 글을 써서 본지에 응모해 준 당선자들에게 감사함을 다시 전한다. 응모자들이 보여준 삶에 대한 사랑, 인간애, 자신에 대한 성찰과 고백 등은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가꾸어 가는 데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이것이 우리가 문인을 배출하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에세이문예 신인상에 응모하려는 분들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지금부터 제78회 신인상에 대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누구나 겪는 경험보다는 자기만이 경험한 체험을 문하화하면 감동을 주는 작품을 창작할 수가 있다. 다음 회에도 많은 분들의 수준 높은 작품이 많이 응모되기를 바라며 심사평을 마친다.
심사위원 권대근(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공광규(문학박사, 시인)
송명화(문학평론가, 본지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