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는 연극과 더불어 정치적·사회적 입장을 표명하기에 특히 적합한 예술입니다. 가령 모차르트의<피가로의 결혼>은 귀족의 썩어빠진 도덕을 숨김없이 드러내지요. 또 1970~1990년 사이에 독일 오페라에서 나타난,과감하고 진보적인 정치적 입장을 담아내려던 시도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오페라 음악을 들으면서 그 안에 노련하게 스며든 날카로운 비판의 시각을 떠올릴 수도 있고요.
오페라의 이러한 정치성이 과거에는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더군다나 그 비판의 화살이 군주를 향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지요.오페라 극장을 운영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군주의 지원과 후원은 절대적으로 중요했거든요. 18, 19세기만 해도 대부분의 오페라 극장은 궁정에 속하거나 아니면 군주의 도움으로 꾸려나갔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재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감사와 검열도 가해졌지요. 작곡가들은 되도록 위험하지 않은 주제를 선택하거나 혹은 비판적인 이장을 담더라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애를 썼지요. 그렇다고 오페라가 군주에게 늘 칼만 들이대는 위험한 존재는 아닙니다. 지배자의 권위와 위엄을 증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죠. 음악,춤,연극,회화가 하나로 합쳐진 오페라로 사람들에게 감각적 체험을 선사하고.독자적인 오페라 극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명성과 존경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페라는 군주의 위신을 세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한 나라의 자기과시욕을 채워주는 역할까지 도맡아 합니다. 19세기 중반에 불타오르기 시작한 애국적 운동은 오페라의 힘을 빌려 성공적으로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해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입니다.그의 오페라는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이 되었으니까요.그런데 작곡가의 본래 성향과 작품에 담긴 의도를 분리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르디가 자신이 애국자라고 고백하고 한동안 국회의원으로 정치일선에 뛰어든 것은 사실이지만,오페라를 통해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베르디가<나부코(Nabucco)>에 나오는‘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합스부르크와 부르봉 왕조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의 처지를 암시하려 한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의 위촉을 대부분 거절했거든요. 특정한 정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베르디의 예술관에 어긋났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당시에 형성된,자유를 위해 몸을 내던지는 투쟁가 혹은 애국주의자로서의 베르디 상은 지금까지도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지난 수십 년 전부터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등장과 발전으로 오페라는 더 이상 전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며 정치적으로도 흥미로운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탈리아에서는 여전히 오페라가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일조 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저명한 정치인들이 오페라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여름 축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회비판적인 내용과 사각을 담은 많은 오페라들이 끊이지 않고 등장하지요. 정치성 짙은 오페라를 쓴 대표적인 작곡가들로는 존 애덤스(John Adams),매러디스 멍크(Meredith Monk),한스 베르너 헨체,타니아 레온(Tania León),루이지 노노 등이 있습니다. <출처:쾰른음대 교수진,‘클래식 음악에 관한101가지 질문’_060> |